‘반갑습니다’
구작가(구경선)를 처음 대면한 기자는 두 손을 ‘따봉’ 모양으로 만들고 가슴 앞에서 몇 차례 흔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언어, 수화로 표현한 반가움의 인사였죠. 구작가는 어렸을 적 열병으로 인해 청력을 잃었지만, 희망만은 잃지 않고 ‘베니’를 통해 세상에 따뜻함을 전하고 있어요. 경기도 용인의 한 카페에서 구작가가 전한 따스한 얘기를 들려드릴게요.
나를 대신해 세상의 소리를 들어주는 베니
“제 몸이 한 개라서 시간을 어떻게 쪼개야 할지 항상 고민이에요.”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작가는 콜라보 작업부터 굿즈, 에세이 등 쉴 새 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어요. 베니의 인기 덕이었죠. 이때를 놓치지 않고, 큰 귀 토끼 베니의 탄생 비화를 여쭤 봤습니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장애인으로서 현실이라는 벽이 참 높았어요. 아무도 나를 원하는 곳이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캐릭터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어떤 캐릭터를 만들까’ 고민하면서 이 책 저 책 펼쳐보다가 토끼 부분에서 시선이 멈췄어요. ‘동물 중에 청력이 가장 뛰어난 동물이다’라는 설명을 읽고 굳었던 마음이 움직였어요. ‘청력이 뛰어난 네가 나 대신 많이 들어줬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으로 베니라는 귀가 큰 토끼 캐릭터를 만들게 되었어요.”
베니는 예전 인터넷 소셜 사이트 ‘싸이월드’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예요. 기자는 탄생한 지 10년도 더 된 베니의 오랜 인기 비결을 물어봤습니다.
“베니는 귀여운 면과 친숙한 부분도 장점이지만, 무엇보다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롱런의 비결은 역시 솔직함인 듯해요. 슬프면 울고, 기쁘면 방방 뛰고 하는 모습 말이에요. 사랑하면 숨기지 않고, 아낌없이 표현하는 친구랍니다.”
작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도 소통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두 눈을 마주 보며 최대한 또박또박 이야기했어요. 그 모습을 보며 기자 또한 왠지 긍정의 기운을 느꼈지요. 베니를 통해 오래도록 삶을 나누고 싶다는 구작가, 이어지는 작가의 이야기 또한 많은 울림을 주었답니다.
Q&A
궁금해요!
“베니를 만나고 난 후 세상이 더욱 넓어졌어요.”
Q베니의 다채로운 표정은 어떻게 탄생하나요?
저를 많이 참고하는 편이에요. 애니메이션 수업에서도 가르치는 내용이에요. 본인의 표정을 거울로 관찰하면서 그대로 그리는 수업이었죠. 마찬가지로 제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거울 앞에서 연기하면서 관찰하는 편이에요. 이후 베니를 통해 나타내는 거죠.
Q베니를 만나고 난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베니를 만나기 전에는 장애로 인해 미래가 너무 깜깜했어요.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어 집에서만 지냈어요. 그랬던 제가 베니를 만나고 난 후에는 해외를 많이 돌아다녔어요.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죠. 이젠 제 미래에 대해 몇십 년 뒤까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된 거예요. 베니가 제게 희망을 선물한 셈이에요.
Q평소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 편인가요?
아이디어는 일부러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어느 날 번뜩 떠오르는 편이에요.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라는 생각이 떠오르죠. 혹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떠오르기도 해요. 아이디어는 제가 평소에 지니고 있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Q청력을 또렷하게 얻게 된다면 어떤 소리를 가장 먼저 듣고 싶나요?
뮤지컬을 보러 가고 싶어요. 뮤지컬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연기도 하잖아요. 세 가지를 한 번에 하는 멋진 작품인데, 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프게도 뮤지컬을 보면 언제나 잠들어 있더라고요. 공연을 선보이는 분들께 너무 죄송했어요. 제대로 느끼고 즐기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거든요. 청력을 또렷이 되찾게 된다면 뮤지컬부터 제대로 느껴 보고 싶어요.
Q그림 그리기 꿀팁을 전수해 주세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일단 모두 적어 보세요. 예를 들어, 분홍색과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둘을 그냥 섞어 봐요. 그러면 분홍색 고양이를 그리면 되는 거예요. 참 쉽죠? 좋아하는 것들로 여러가지 시도를 하다 보면 나만의 색채를 찾을 수 있답니다.
Q몸이 불편해서 작업하는 데 힘이 많이 들 것 같습니다. 혹시 지칠 때면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저는 지금까지 극복한 적이 없어요. 우울하거나 힘들 때 특별히 애쓰지 않는 편이에요. 그저 주어진 상황을 가만히 따라요. 그러다 보면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갑자기 힘이 생기는 지점을 만나요.
제가 30년 넘게 몰랐던 내 눈의 장애를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절망적이었어요. 분노가 가득했어요. 하필 필리핀 봉사를 이틀 앞두고 있었는데, 필리핀행을 취소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 됐죠. 그러다 거기서 한 아이를 만났어요. 사진작가를 꿈꾸던 아이에게 사진작가가 된 베니를 그려줬어요. 그 아이는 식사 시간에 밥도 먹지 않고 제 그림에 푹 빠진 채 그림을 꼭 안고 있었죠. 재난으로 모든 걸 잃고도 희망을 잃지 않고 제 그림을 소중히 다루는 모습에 저절로 힘이 생겼어요.
절망으로 집에만 있었다면 느낄 수 없었을 거예요.
Q베니가 어떤 캐릭터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베니가 비밀도 몰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길 바라요. 아무도 모르는 비밀과 속상한 이야기, 그리고 좋은 일까지 모두 나눌 수 있는 친구로 말이에요. 베니를 통해 삶과 꿈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베니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당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앞으로도 전하고 싶어요.
Q독자들에게 꿈에 관해 전할 말씀이 있다면서요?
꿈이 없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중에 꼭 생길 테니까요. 저 또한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았지만, 확고한 꿈은 없었어요. 그림은 그저 좋아하는 일이라 꾸준히 했던 것뿐이죠. 그러다 베니를 그리게 되었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었답니다.
지금의 제 꿈은 베니가 무민이나 도라에몽처럼 100년 넘게 사랑받는 캐릭터가 되는 거예요. 베니, 많이 사랑해 주실 거죠?
특별 이벤트
베니를 직접 그려 팝콘플래닛 ‘그림터’에 비밀댓글로 그림을 올려 주시면, 구작가가 선정해 그림 에세이 사인본을 드립니다.
더 많은 베니를 보고 싶다면 소셜미디어 공식 계정(@benny_licensing)을 방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