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 차가워!”
차디찬 동굴 물웅덩이에 엎드리자 속옷까지 물이 스며들었어요. 한 사람이 몸을 납작 엎드려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속칭 ‘개구멍’을 지나야 동굴 속을 볼 수 있다니, 피할 도리가 없었지요. 찬 기운에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어요. 백번 가까이 동굴에 와 보셨다던 우경식 교수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눈을 질끈 감고 물웅덩이에 몸을 담갔지요. 7월 12일 있었던 <;파고캐고 지질학자!>; 팀의 찐동굴탐사!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헤드 랜턴이 꺼지면 암흑천지!
한낮 기온이 30℃를 훌쩍 뛰어넘던 이 날, 동굴은 서늘하기만 했어요. 강원도청 최돈원 박사는 동굴이 ‘일년 내내 평균 약 11~14℃를 유지한다’고 말했지요. 동굴엔 어떤 조명도 없어 입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천지가 암흑에 잠겼어요.
이곳은 강원도 평창군에 위치한 백룡동굴입니다. <;파고캐고 지질학자!>; 현장취재를 위해 필자인 강원대학교 우경식 교수님과 기사 담당인 이창욱 기자, 그리고 강원도청과 함께 이곳을 찾았지요. 방송국 촬영팀도 막판에 합류했습니다.
백룡동굴은 체험형 개방동굴로,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는 일반 개방형 동굴과는 달랐습니다. 동굴 생태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 입장 인원도 제한하고, 조명도 설치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입장객은 동굴 가이드와 헬멧에 달린 가늘고 약한 헤드 랜턴 불빛만 의지해 걸어가야 합니다.
입장객을 제한하는 건 동굴 생태를 지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백룡동굴이 석회동굴이기 때문입니다. 석회동굴은 석회암 지대에 지하수가 석회암을 녹여서 생긴 동굴입니다. 석회암은 주로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져, 이산화탄소가 많이 들어 있는 빗물이나 지하수에 잘 녹는 성질이 있어요. 평창군 최재훈 주무관은 “입장객이 드나드는 일요일까지 사람들이 호흡하며 뿜어내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쭉 올라가다가, 휴무일인 월요일이 되면 뚝 떨어진다”고 말했어요. 이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동굴생성물이나 건강이 나쁜 사람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어 주의 깊게 관측하고 있다”고 했지요.
취재는 동굴 운영 휴무일인 월요일에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전주에 비가 많이 와 동굴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휴무일이라 물을 퍼내는 양수기가 돌아가지 않았지요. 덕분에 물웅덩이를 첨벙이며 개구멍에 도착한 취재진은 카메라 및 조명 장비가 젖지 않도록 조심하며, 물속을 기어 개구멍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지요. 최재훈 주무관은 “원래는 동굴에 물이 차면 양수기로 물을 퍼내 개구멍을 젖지 않은 채 편안히(?) 기어갈 수 있다”며 “독자가 오해하지 않도록 기사에 꼭 적어 달라”고 강조했습니다.
우경식 교수님은 ‘백룡동굴은 지질학자들에게는 아주 편안하게 즐기는 코스’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처럼 밤눈 어두운 탐사 초심자에겐 ‘인디애나 존스’ 뺨치는 탐험의 시작이었습니다.
백룡동굴
●천연기념물 제260호
●이용방법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 후 가이드 투어
●이용요금 어른 1만 8000원, 어린이 1만 4000원
●문 의 pc.go.kr/cave, 033-334-7200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변동 및 하루입장 가능 인원 제한,
6세 이하 어린이 등 관람 제한이 있으니 확인 필수
계란후라이랑 피아노, 네가 왜 동굴에서 나와?!
백룡동굴은 백운산의 ‘백’, 동굴 최초 발견자인 정무룡 형제의 ‘룡’에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45년 전, 정무룡 형제는 백운산을 거닐다 작은 구멍에서 시원한 바람이 새어 나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리곤 과감하게도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동굴 입구를 넓힌 뒤, 가치 있는 동굴임을 확인하고 지방 관청에 신고했지요.
당시 우경식 교수님은 백룡동굴을 개발하는 데 앞장선 전문가 중 한 사람이었어요. 동굴의 입장객과 조명을 제한하고, 인근 지역 주민들이 가이드가 되어 동굴 안내를 하는 등 생태와 환경을 지키는 체험형 동굴로 개발하는 방안을 자문했지요. 덕분에 백룡동굴은 입장객을 맞이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었어요.
개구멍을 통과하자 동굴 벽에 꽃처럼 맺힌 동굴 산호를 비롯해 천장에 너울거리는 동굴 커튼 등 화려한 동굴생성물들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수백만 년 전부터 만들어져 지금까지 자라는 것으로 추정되지요. 그러다 어렴풋이 너른 공간이 보였습니다. 주동굴의 끝에 있는 대광장이었습니다.
대광장엔 거대한 석주를 비롯해 다양한 동굴 생성물들이 은은하게 빛을 받고 있습니다. 구조물들이 어찌나 거대한지 사람이 다가가면 마치 미니어처처럼 보였지요. 가까이 들여다보자 계란후라이 석순이 보였습니다. 동굴 바닥의 한 점에 오랜 기간 똑똑 떨어진 지하수 속에 녹아 있던 탄산칼슘이 쌓여 만들어진 구조물이지요.
“박쥐는 없나요?”
관박쥐가 산다던데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최돈원 박사는 “여름이라 박쥐들이 시원한 안쪽으로 들어간 데다 인기척이 있으면 더 깊숙이 들어간다”고 말했어요. 한국동굴연구소는 2006년 이곳에 약 56종의 생물이 사는 것을 조사했습니다. 온기와 빛 한 조각 없는 동굴에서 박쥐의 똥은 생물들에게 귀한 영양분이 되어 주지요.
탐험을 마치기까지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됐습니다. 방송국 PD님은 제게 “어린이들이 컴컴한 동굴을 무서워하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백룡동굴에서 신이 날 독자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무서워하는 친구들도 있겠죠. 하지만 어린이들은 의외로 어두운 것, 무서운 것을 좋아합니다. 안전하게 동굴을 탐사하며 지질에 대한 호기심을 키울 수 있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