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가난하면 더 아플까?
지난 5월, 마스크를 쓰고 열화상카메라를 지나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건물에 들어섰어요.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죠. 김 교수님은 “딸들도 어린이과학동아 독자”라며 기자를 반갑게 맞았어요. 인터뷰 내내 어린이들에게 ‘사회역학’이라는 낯선 분야를 설명하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히 고르는 모습이셨지요.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고 뉴스에서 ‘역학’, ‘역학조사’ 같은 단어를 들어 본 적 있을 거예요. 역학조사는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의 원인을 찾고, 이를 막는 방법을 밝히는 일이에요. 사회역학자는 질병의 원인을 사회 속에서 찾고 이를 막을 방법을 밝히는 사람이죠.”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부탁에 김 교수님은 올해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 전염병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어요.
“최근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지가 미국의 코로나19 사망률을 분석해 봤더니, 부유한 지역보다 불법이민자나 흑인, 라틴계 등 유색인종이 사는 지역에서 사망률이 더 높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알고보니 코로나19 때문에 미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지만, 가난한 흑인이나 이민자는 재택근무로 대체할 수 없는 공장 등지에서 일하기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그들은 미국의 값비싼 의료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어 사망률도 높았던 거죠. 실제로 5월 초에 미국의 고기 공장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코로나19바이러스에 감염돼 공장이 폐쇄됐는데, 노동자의 대부분이 흑인이나 이민자들이었어요. 질병의 원인은 바이러스지만,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따로 있었던 거죠.
앞으로 건강 불평등의 문제는 계속될 거예요. 하지만 가난하다고 더 아프고 수명이 짧아지는 건 부당합니다. 이런 격차를 줄이는 것이 사회역학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Q&A
과학의 힘을 믿으세요! 김승섭 교수
“주말마다 한 보건소의 선별진료소에 나가 진료를 보고 있어요. 사회적 낙인과 차별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과학의 힘을 믿으세요.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막연한 공포로 인한 낙인과 차별을 피할 수 있어요.”
Q 사회역학자란 직업이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우리나라에서 의대와 보건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로 유학을 갔습니다. 이곳에서 사회역학에 대해 알게 돼 진로를 바꿨지요. 한국에 있을 때 진료를 보며 무력감을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허리 디스크 환자에게 “좀 쉬세요!”라고 말하면 환자가 “쉴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가정폭력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를 치료해도, 다음에 또다시 폭력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병원을 찾고요. 환자의 건강을 해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단 생각에 힘이 빠졌죠.
사람들이 예방할 수 있는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그래서 질병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요. 이를 통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기도 하죠. 문제를 진단해야 개선할 수 있으니까요. 이것이 사회역학자가 해야 할 일이지요.
Q 사회적 약자의 건강에 대해 주로 연구하시더라고요. 왜 약자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나요?
‘인권’이란 말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평생 한국에만 머물면 차별받을 일이 별로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가까운 일본은 물론, 유럽이나 미국 등에 가면 당장 아시아인,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경험할 수 있어요. 언제든 나도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차별은 언제든 나의 문제가 될 수 있지요.
또한, 약자에 대한 관심은 내 안전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감염에 가장 취약한 분들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이분들이 코로나19에 걸리면 한국 사회 누구도 안전하지 않아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누구든 걸릴 수 있고, 이로 인해 금세 사회적으로 감염세가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감염병의 확산을 막고, 효과적으로 방역할 수 있어요. 즉,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인권이라는 먼 일이 아니라 나의 이익과 직접 관련이 있는 거죠.
Q 사회역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회역학을 하기 위해 꼭 의학을 전공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회역학은 치료보다는 예방에 더 관심을 많이 갖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를 근거로 하므로 통계 등 수학 능력은 기본이고요, 사회학을 전공한 학생들도 있지요. 무엇보다 연구 가설을 세우려면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 질문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Q 사회역학에서 질병은 사회적인 것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질병은 유전적으로 몸이 약한 사람이 잘 걸리는 거 아닌가요?
20세기 내내 질병의 원인을 두고 ‘유전이냐, 환경이냐’는 논쟁이 계속됐어요. 현재는 이런 이분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환경의 원인을 많이 받는 질병이라도 몸이 유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순 없어요. 반대로 유전적 요인이 아주 강한 질병이라고 해도 그 질병이 발생하는 시점이나 증세가 우리 몸이 살아가는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없죠.
질병의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각각 몇 %인지 계산하는 연구도 있어요. 하지만 사람은 무척 복잡한 상황이 뒤엉킨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이런 다양한 요인을 모두 가정하고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있을까요? 극단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모든 질병은 유전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코로나19에 걸렸던 친구들이 ‘코로나에 걸렸던 애’란 낙인과 차별을 받진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어요.
코로나19는 누구나 자기 잘못과 상관없이 걸릴 수 있고, 완치 후엔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지 않아요. 그러니 코로나19에 걸렸던 친구나 감염자가 나온 가게를 꺼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코로나19에 걸렸다 나은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가졌으니 나중에 이 병이 재유행하더라도 바이러스의 전염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장벽이 되어 줄 수 있어요.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막연한 공포로 인한 낙인과 차별을 피할 수 있죠.
어과동 친구들은 과학의 힘을 신뢰하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근거를 갖고 주장하는 과학적 관점과 태도를 갖추길 바랍니다.
Q 과학이 왜 중요한가요?
과학을 물리나 화학 같은 좁은 의미의 과학으로 보기보다, 어떤 대상을 합리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라고 볼 필요가 있어요. 데이터를 모아 가설을 세우고, 근거에 따라 주장하는 거죠. 만약 그 근거가 잘못됐다면 내가 틀렸다는 반대 주장에 대해서도 열려 있는 태도로 임해야 마땅하겠지요.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과학과 인문학 중 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보다, 과학적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우리 친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어요. 불편하겠지만 마스크를 끼고, 생활 속 거리두기를 지켜 주세요. 백신이 나올 때까지 건강하게 잘 버텼으면 해요. 작아 보이지만 나와 가족, 내 이웃을 함께 지키는 중요한 일이에요. 어려운 시절은 분명 지나가게 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