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가 생각 실험을 위해 한 학교 운동장에 한가득 모래알을 쌓아 두었습니다. 여기 있는 모래알은 1000경 개 정도 되지요. 사람들은 분명 이걸 보고
‘모래더미’라고 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이 모래더미에서 모래 한 알을 빼냈어요. 그래도 사람들은 이 남은 모래알들을 여전히 모래더미라고 하겠죠? 이어서 또 모래알을 한 알, 두 알 계속해서 빼 봅시다. 이렇게 모래알을 빼내다 보면 언젠가 모래 한 알만 남을 거예요. 이 과정에서 모래더미는 더 이상 모래더미가 아니게 됩니다.
모래 한 알이나 열 알을 모래더미라 하긴 어려우니까요.
자, 여기서 오늘의 생각 실험! 그렇다면 우리는 모래더미와 모래더미가 아닌 것을 또렷이 가릴 수 있을까요? 모래알 하나만 더 빼내면 더이상 모래더미가 아닌 그런 아슬아슬한 모래더미가 있을까요? 모래알이 몇 개 모여야 더미일까요?
가설1 모래더미와 모래더미가 아닌 것을 가리는 정확한 모래알의 개수가 있어요.
모래알을 쌓아 놓고 ‘이것은 모래더미이면서 모래더미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한테는 모래더미이고, 다른 사람한테는 모래더미가 아닌 것 역시 과학자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모래더미는 우리가 단지 ‘더미라고 생각해서 더미’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이 더미’이기 때문에 ‘더미’여야 합니다.
그러니 더미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더미인 것과 더미가 아닌 것을 정확히 가릴 수 있어야 해요. 자연과학은 그동안 사물을 정확히 측정해 연구해 왔으니까요. 그러니 모래더미도 정확히 측정해 정의해야 하지요.
따라서 과학자들은 먼저 어떤 특징을 가져야 모래더미라고 부를 수 있는지 정해야 해요. 과학자들이 정확한 연구 끝에 모래더미라 할 수 있는 모래알의 개수를 찾으면, 모래알이 몇 개 이상 쌓인 것을 ‘모래더미’라고 부를 수 있지요.
가설2 ‘더미’라는 건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 정확히 가를 수 없어요.
과학자들이 아무리 탐구해도 모래더미와 모래더미가 아닌 것을 가르는 모래알의 개수를 찾을 수 없을 거예요. 과학자들마다 생각이 다를 테니까요. 프랑스의 과학자와 한국의 과학자가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한국의 물리학자와 한국의 화학자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요. 결국 다양한 국적과 학문의 과학자들이 모래를 아무리 연구해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겁니다.
과학자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까닭은 간단해요. 그것은 ‘모래더미’라는 것이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에요. 모래알들이 100개 쌓여 있으면 누군가 그것을 ‘더미’라고 생각해서 ‘모래더미’라고 부르는 거예요. 바닥에 실제로 깔린 것은 모래알 100개이지 ‘모래더미’가 아니랍니다.
이것은 ‘추위’와 비슷해요. 어떤 사람은 20℃에 ‘추위’를 느끼고 다른 이는 10℃에 ‘추위’를 느껴요. 하지만 바깥에 있는 것은 온도일 뿐, 추위가 아니에요. 추위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더미’도 이와 비슷하죠. 사람들이 마음으로 느끼는 무엇일 뿐이랍니다.
▶이 질문이 왜 중요할까?
‘더미’는 모호한 낱말이에요. 과학에 모호한 낱말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것을 모두 없앨 수 없어요. ‘모래알’도 사실 모호한 낱말이에요. 규산염 분자가 몇 개 모여야 모래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학에서 모호한 낱말을 모두 없앨 수 없다면 우리는 모호한 낱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늘의 생각실험은 여러분께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물음을 던집니다. 과학자들에게 이 물음은 당장 풀어야 하는 숙제이기도 합니다.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쁘다’라고 할 때, 어느 정도가 되면 ‘매우 나쁨’이고 그냥 ‘나쁨’인지도 모호하지요. 나쁨의 기준인 36㎍/㎥ 이상이면 나쁨일까요? 그럼 35.99㎍/㎥은 안 나쁜 걸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