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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발랄 생각실험실] 몰리뉴의 물음

눈을 뜬 시각장애인, 정육면체와 구를 구별할 수 있을까?

광학을 연구하던 아일랜드 과학자 ‘윌리엄 몰리뉴’는 1688년 7월 7일, 철학자 존 로크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어요. 그 속엔 재미있는 질문이 있었지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어. 그는 정육면체와 구를 만져서 구별할 수 있었지. 정육면체는 8개의 뾰족한 꼭짓점이 있고 구는 둥그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수술을 통해 시력을 얻었다고 생각해 보세. 

저 멀리 정육면체나 구가 놓여 있을 때, 그 사람은 만지지 않고 시각만으로 정육면체인지 구인지 곧바로 구별할 수 있을까?’

 

 

 

편지를 받은 로크는 이 시각장애인이 정육면체와 구를 구별할 수 없다고 주장했어요. 로크는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이 모두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생각을 ‘경험주의’라고 해요. 경험하지 않으면 어떤 생각이나 개념을 가질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지요. 


로크는 몰리뉴가 던진 문제에도 이 생각을 적용했어요.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만져서 얻은 경험은 시력을 찾은 뒤 눈으로 얻은 정보와 이어질 수 없는 거죠. 


이후 18세기의 해부학자이자 외과의사인 윌리엄 체슬던의 기록은 이런 로크의 주장을 뒷받침해요. 체슬던은 1728년, 백내장 때문에 시력을 잃은 14세 소년을 수술하는 데 성공했어요. 소년은 그 뒤 시력을 얻었지만 고양이를 보고도 그것이 고양이인지 알지 못했어요. 이전에 고양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고양이가 앞에 있어도 그 동물이 고양이라는 것을 몰랐던 거예요. 


또 그 소년은 모든 사물이 자기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어요. 시각 정보를 처리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사물들의 ‘거리’ 개념이 없었던 거예요. 소년처럼 공간감에 대한 개념이 없다면, 어떤 물체가 뾰족한지, 둥근지 구별하는 것도 불가능하겠지요.

 

 

 

17세기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겪은 사람도 세모와 네모의 차이를 알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눈이 안 보이면 몸의 운동으로, 몸의 운동 능력이 없으면 눈으로 거리와 공간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라이프니츠는 도형이나 공간의 성질을 다루는 학문인 기하학의 개념을 익히는 데 꼭 시력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여겼던 거예요. 


예를 들어 바지를 입고, 양말을 신으면서 양말보다 바지가 더 크다는 사실을 익힐 수 있어요. 또 자신이 들고 있는 막대기나 신발은 자기 입에 들어갈 수 없지만 포도나 사탕은 입에 쏙 들어간다는 것도 알 수 있지요. 이때 바지와 양말, 신발, 사탕 등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시각 정보는 없지만 ‘길다’, ‘둥글다’, ‘크다’, ‘작다’와 같은 개념은 머릿속에 가질 수 있지요. 라이프니츠의 생각처럼 지식은 경험만으로 생길 수 없고 이성에 의해 얻어진다는 사고방식을 ‘합리주의’라 합니다. 


합리주의에 따르면, 체슬던의 소년은 이전에 고양이와 닭을 만져본 경험을 통해 고양이의 다리가 네 개, 닭의 다리가 두 개라는 개념을 갖고 있을 거예요. 따라서 만약 체슬던이 소년에게 “저기 앞에 놓인 동물은 고양이일까, 닭일까?”라고 물었다면 소년은 그 둘을 구별해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이 질문이 왜 중요할까? 


이 질문은 철학자들 사이에서 ‘몰리뉴의 문제’로 잘 알려져 있어요. 몰리뉴의 문제는 볼테르, 디드로, 아담 스미스 등 18세기의 학자들뿐만 아니라 마흐, 제임스, 헬름홀츠 등 19세기 학자들 사이에 큰 논란이 된 질문이에요.

 

이 질문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지식을 습득하고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험주의자’와 이성에 의해 지식을 습득하고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합리주의자’들의 대립으로 이어졌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졌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리는 경험으로 세계를 보는 걸까요? 아니면 이성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는 진짜 세계와 얼마만큼 같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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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6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김명석 교수
  • 기타

    일러스트 고고핑크
  • 에디터

    신수빈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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