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인 박사님은 다윈의 발자취를 따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버스로 10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항구도시, 바이아블랑카에 도착했어요. 다윈이 방문했을 당시의 바이아블랑카는 인디오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정부 간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 위험한 곳이었어요. 도대체 다윈은 이 곳에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요?

약 170여 년 전, 다윈이 방문했던 바이아블랑카는 외부인에게는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군인들은 *인디오를 무자비하게 토벌했고, 인디오의 습격을 막기 위해 요새를 지었다. 이 곳을 방문했던 다윈은 이 요새 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조사를 위해 야외를 마음껏 돌아다녀야 하는 다윈에게는 아마 이 요새가 감옥과 같았을 것이다.
시내에 있는 역사박물관에서 자료를 얻어, 요새를 찾아 나섰다. 요새 외곽은 지금은 은행, 법원, 도서관, 세관 등 현대식 건물들로 들어차 있었다. 반갑게도 요새 광장 근처에서 피츠로이 선장의 이름을 딴 거리를 발견했다. 피츠로이 선장은 비글호에 자연사학자가 필요하다며, 다윈을 항해에 참여시킨 사람이다. 또한 기초적인 측량 및 연구 자료를 제공해, 다윈이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다윈은 근처의 푼타알타에서도 많은 화석을 발견했다고 기록해 두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푼타알타로 향했다. 다윈은 푼타알타에서 메가테리움의 화석을 발견했는데, 메가테리움은 당시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스페인의 왕립박물관에만 있던 귀중한 화석이다. 이러한 대형 화석이 발견될 수 있었던 이유는 푼타알타의 기후가 건조하고, 지하에 수맥이 발달하지 않는 등 화석이 잘 보존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에게 겨우 물어물어 푼타알타 항구에 도착하니, 다윈이 묘사한 대로 진흙 제방과 수풀이 무성한 항구가 보였다. 수풀 사이로 작은 물길들이 많이 나 있었다. 다윈 일행은 이러한 수풀 속을 보트로 이동하다가 길을 잃었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보다 수풀이 무성하게 높이 솟아 있었던지 아니면 진흙 제방이 더 높게 쌓여 있었던 것 같다.
다윈이 화석을 발견했다는 모래언덕을 열심히 찾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 동안 북반구에 적응했다가, 해가 반대로 뜨는 남반구로 오니 방향 감각이 사라진 것 같다.
바이아블랑카에서 다윈의 흔적과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 흔적을 느낄수는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음 여행지에서는 좀 더 많은 다윈을 만나길 바라며 다음 여행지로 출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