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2006독일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이에요. 새벽까지 월드컵을 보느라 학교에서 꾸벅꾸벅 조는 친구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만큼 월드컵이 재미있기 때문이지요.
1930년 우루과이에서 첫 발걸음을 뗀 월드컵은 76년 동안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키켰습니다. 수많은 명장면과 재미있는 사건들도 많았지요. 지금 펼쳐지고 있는 경기들만큼이나 재미있는 월드컵 역사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76년 월드컵 역사를 한 눈에!
월드컵의 힘은 상상을 초월해!
2002년 한일월드컵 때의 응원 열기가 기억나나요? 부모님 손을 잡고 거리에 나가 신나게 응원을 즐겼던 흥분이 아직 남아 있을 거예요. 지난 월드컵을 통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제껏 느껴 보지 못했던 자신감과 단결심을 경험했는데요. 월드컵이 가지고 있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답니다. 월드컵 때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역사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월드컵 때문에 전쟁이 났다구?
축구의 열기가 뜨겁기로 소문난 중남미. 1969년에는 그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전쟁으로까지 번졌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맞붙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너무 치열한 응원을 펼친 나머지 엘살바도르에서 열린 2차전에서 온두라스 관중들이 폭행 당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온두라스 국민들은 자기 나라에 살고 있는 엘살바도르 교민들을 살해했다. 결국 1969년 7월 12일 엘살바도르의 선전포고로 두 나라간에 전쟁이 시작되었고 3000명의 전사자를 내고야 말았다.
월드컵에서 우승 못 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슬퍼!
1950년은 제4회 브라질월드컵이 열린 해였다. 브라질 국민들은 자기 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우승에 대해서 한치의 의심이 없었고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 패하게 되는데,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나 경기장에 모인 20만 명의 관중 대부분이 울면서 해가 뜰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집집마다 조기를 게양했으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권총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줄을 이을 정도로 패배의 슬픔은 컸다.
월드컵이 돈을 벌어 주네〜!
월드컵은 단일 운동종목의 행사 중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로 모여들고 수십 억 명이 TV로 경기를 시청한다. 이로 인해 엄청난 경제적 가치가 생겨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에 따르면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얻은 경제적 이익은 11조 7130억 원이며 새로운 일자리를 얻은 사람이 24만 5000명이라고 한다.
이름보다 별명이 더 유명한 나라들
별명은 이름보다 사람의 특징을 잘 나타내 줍니다. 나라의 별명도 마찬가지지요. 축구세상만큼 나라의 별명을 자주 쓰는 곳도 드문데요. 월드컵은 많은 나라들에게 영광스러운 별명을 만들어 줬습니다. 흥미진진한 각나라들의 별명들을 알고 나면 이번 월드컵이 더 재미있을 거예요.
아트사커 프랑스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축구마저 예술(아트)처럼 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1998년 우승할 당시 프랑스 축구의 모습은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전차군단 독일
1차세계대전 때 독일은 세계 최초로 전차를 만들었고 그 전투력은 막강하였다. 이후 월드컵에서 독일 축구가 보여 준 힘과 탄탄한 조직력이 전차와 닮았다고 해서‘전차군단’이란 별명이 붙었다.
무적함대 스페인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지만 16세기 스페인은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다. 그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 막강한 해군인‘아르마다(무적함대)’였는데 세월이 지나 축구국가대표팀의 별명이 되었다.
불굴의 사자 카메룬
1990년 8강에 오른 카메룬은 아프리카 축구의 힘을 세계에 보여 줬고 강렬한 인상을 받은 축구팬들은‘불굴의 사자’란 별명을 붙였다. 사자는 카메룬을 상징하는 동물.
월드컵을 빛낸 전설적인 선수들
축구는 11명이 하는 운동입니다. 무엇보다 팀의 조직력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걸출한 선수 한 명이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 때도 많습니다. 월드컵은 수많은 스타들을 만들어 냈고 아직도 전 세계의 축구 팬들은 이 들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지요. 월드컵 76년사에 찬란히 빛나는 전설적인 축구 스타들을 만나 볼까요?
레프 야신 (러시아. 1929년 출생)
‘골키퍼의 신’이라 불리는 구소련의 전설적인 골키퍼.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골키퍼에게‘야신상’을 수여하고 있다.
페렌크 푸스카스 (헝가리. 1927년 출생)
축구 역사상 가장 강한 팀이라고 평가받는 1950년대의 헝가리 팀을 이끌던 스트라이커. 국제대회 84경기에 출전해 83골을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득점력을 자랑했다.
에우제비오 (포르투갈. 1942년 출생)
‘검은 표범’으로 불리는 포르투갈의 국민적 영웅.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모잠비크 출생으로 아프리카 출생으로는 최초로 국제 스타가 된 선수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북한과의 8강전에서 혼자 4골을 넣으며 5 : 3 역전승을 이끌어 냈다.
바비 찰튼 (잉글랜드. 1937년 출생)
축구의 종주국 잉글랜드 국가대표 경기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 1966년 잉글랜드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엘리자베스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펠레 (브라질. 1940년 출생)
‘축구황제’로 칭송받고 있는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스타. 1958년, 1970년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정식 경기에서 무려 1000골을 넘게 기록했으며 헤트트릭(한 경기에서 3골 이상 기록하는 것)만 92회나 기록했다.
게르트 뮐러 (독일. 1946년 출생)
1970년 멕시코월드컵 10골, 1974년 독일월드컵 4골, 통산 14골을 기록해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다‘. 폭격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1974년 독일(당시 서독)의 월드컵우승을 이끌었다.
요한 크루이프 (네덜란드. 1947년 출생)
‘축구계의 피타고라스’라고 불릴 만큼 창조적인 선수다. 1974년 독일 월드컵에 단 한번 출전했는데도 그가 보여 준 영리한 플레이는 현대 축구를 한 수준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다.
로저 밀러(카메룬. 1952년 출생)
월드컵 최고령 선수 골 기록을 갖고 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러시아와의 예선 경기에서 42세 39일의 나이로 골을 기록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카메룬의 돌풍을 이끌며 아프리카 축구의 힘을 전세계에 알렸다.
차범근 (대한민국. 1953년 출생)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1978년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10년 넘게 스트라이커로 활동하며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칭송받았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도 출전해 훌륭한 기량을 선보였다.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1960년 출생)
개인기의 대명사.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환상적인 드리블과 슈팅을 보여 주며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끈다.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무려 9명을 제치고 골을 넣은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역사상 최고의 팀을 뽑아 보자!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우승팀은 브라질이었습니다. 다섯 번이나 우승을 차지했고 18번의 월드컵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나라며 통산 성적도 60승 14무 13패로 가장 뛰어납니다. 총 191골을 기록해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기도 하지요. 이번 독일월드컵에 참여하는 브라질 팀 역시 현존하는 세계 최강의 팀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역사에는 이에 못지 않게 빼어난 팀들이 많았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팀들을 만나 볼까요?
팀 1. 1954년 헝가리 대표팀
대한민국이 첫 출전한 1954년 스위스월드컵. 세계 축구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특히 0 : 9라는 처참한 패배를 안겨 준 헝가리 팀은 막강 그 자체였다. 골잡이 푸스카스가 이끄는 헝가리 팀은 1952년부터 1956년까지 국가대표간 경기에서 딱 한 번 패할 정도로 강했다. 그 딱 한 번 진 경기가 1954년 스위스월드컵 서독과의 결승전이었는데 어느 누구도 헝가리가 질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팀 2. 1970년 브라질 대표팀
영국 BBC 방송이 이미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뽑았을 정도로 1970년의 브라질 팀은 천하무적이었다. 전승으로 우승했으며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무려 4 : 1이라는 큰 점수차로 물리쳤다. 최고의 축구 스타 펠레를 비롯해 가린샤, 지코, 소크라테스 등 화려한 선수진을 자랑했다. 브라질에게 세 번째 우승을 안기면서 당시 우승컵이었던‘줄리메 컵’을 영원히 간직하게 되었다.
팀 3. 1990년 독일 대표팀
남미축구의 활약으로 개인기가 중요하게 생각되던 80년대 말 독일 대표팀은 조직력의 진수를 보여 준다. 1990년의 독일 대표팀은 막 통일을 이뤘던 독일에게 세 번째 우승을 안긴다. 결승전 상대는 천재 골잡이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한 명의 천재보다 클린스만, 마테우스, 헤슬러 등이 만들어 내는 조직력의 힘이 더 우수했던 것이다.
약자가 강자를 이긴다!
실력이 강한 팀이 약한 팀을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일.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면 축구 팬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약자에게 당하는 강자의 입장에서는 창피한 일이겠지만 그런 이변이 있기에 월드컵을 보는 재미가 더 큰 것이겠지요? 그럼 월드컵 역사에서 길이 남을 대표적인 이변을 만나 보도록 해요.
이변 1
1950년 브라질월드컵
(미국 1 : 0 잉글랜드)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둔 지금이야 미국도 당당한 축구 강국이지만, 1950년 브라질월드컵 때의 실력은 걸음마 수준이었다. 상대인 잉글랜드는 축구 종주국으로 명실상부한 세계최강국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우리는 놀러왔다’라고 밝힌 미국은 잉글랜드를 1 : 0으로 이겼고 잉글랜드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당시 많은 신문사들이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잉글랜드가 1 :0, 또는 10 : 0으로 미국에게 이겼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변 2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북한 1 : 0 이탈리아)
당시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로 이뤄진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북한은 월드컵에 첫 참가한 풋내기 팀이었다. 이탈리아 선수들 뿐아니라 모든 축구 팬들이 이탈리아가 이길 것으로 예상한 이 경기는 예상 외로 북한의 1 : 0 승리로 끝났다. 이후 북한은 승승장구 8강진출이라는 기적을 이뤘고 이탈리아는 예선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귀국한 이탈리아 팀에게 돌아온 것은 국민들의 썩은 토마토 세례였다고.
이변 3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카메룬 1 : 0 아르헨티나)
당시 아르헨티나는 전 대회 우승팀으로 슈퍼스타 디에고 마라도나가 전성기를 달리던 우승 후보 1순위였다. 반면에 카메룬은 축구불모지로 여겨졌던 아프리카의 조그만 나라였고 어느 누구도 카메룬이 아르헨티나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경기가 벌어지자 아르헨티나는 압도적으로 밀어붙였고 카메룬은 2명의 선수가 퇴장 당하는 악조건 속에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결과는 카메룬의 1 : 0 승리였다. 어찌나 기뻤는지 카메룬의 대통령은 이 날을 임시공휴일로 정했고 결승골을 넣은 로저 밀러는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다.
2002년 대한민국은 4강진출이라는 이변 아니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축구를 즐기는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경기에 임한다면 이번 독일월드컵에서 또 기적의 주인공이 될 지도 모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