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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성 이미지(ChatGPT), DK
 편집자 주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과학창의재단이 후원한 제8회 SF숏포머블 공모전의 주제는 ‘우주 운송 기술’입니다. 총 6편의 수상작 중 대상을 받은 ‘김치 로켓’을 지면에 게재합니다.

 

1.지구에 계신 어머니께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돔 3구역 외벽 공사는 예정보다 빠릅니다. 사실 에이전트들이 다 해서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 직함은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터인데 3개월 뒤에는 그냥 병목이라고 불릴 것 같아요.
어쨌든 밥도 잘 먹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액체 우주식량을 마십니다. 씹을 일이 없는 게 흠입니다. 특식은 감자입니다. 여기 흙에서 재배할 수 있는 건 감자뿐이라, 찌고 굽고 으깨고 튀기고 수프로 끓입니다. 온실 상추가 일주일에 2장 나옵니다, 2장입니다. 어머니. 저는 그걸 절여서, 고춧가루에 버무려 감자에 얹어 먹었습니다. 가져온 고춧가루를 아끼고 아껴서요. 이름은 감자 김치라고 제가 붙였습니다. 눈물 나게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어제부로 고춧가루가 떨어졌습니다.
괜찮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면, 이곳에서는 김치 한 조각도 나오지 않습니다. 화성까지 김치를 보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어머니 김치가 너무 그립습니다. 어머니, 오래 사셔야 합니다. 제가 돌아가서 얻어먹어야 하니까요.

둘째 아들 도윤 올림
 
한말숙 여사는 이 편지를 세 번 읽었다. 한 번은 아들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려고, 한 번은 울려고, 마지막은 화를 내려고.
“내 새끼가 지금, 김치를 못 먹고 있다고?”
한 여사는 편지를 부녀회 단톡방에 올렸고, 부녀회장 딸이 그걸 인터넷에 올렸다. 3일 뒤 ‘화성 노동자 급식 실태’가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올랐고, 회색 감자 수프 사진엔 댓글이 10만 개 달렸다.
–김치 하나를 안 준다고? 너무한 거 아니냐.
–저러니까 누가 화성을 가냐.
그 분기, 화성 건설 사업 지원자는 전 분기보다 40% 줄었다.
 
2.“냉장고를 하나 실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국회 청문회에서 의원이 묻자, 한국궤도물류(KOTL)의 해당 업무 담당자인 박형래는 견적서를 들어 보였다.
“김치 100kg을 냉장 상태로 보내려면, 6개월간 냉장기를 돌릴 태양전지판, 배터리, 압축기, 방열판이 필요합니다. 합쳐서 1100kg. 김치 질량의 11배입니다. 운송비는 질량에 비례합니다. 김치 한 통을 배달하려고 냉장고 열한 통 값을 쓰는 겁니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경제적으로는,” 그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미친 짓입니다.” 
“그럼 통조림으로 보내면요? 예전에도 우주로 김치 보냈잖아요.”
“그건 죽은 김치입니다. 멸균이라 유산균이 없죠. 다음 김치를 못 담급니다. 저희가 보내려는 건 거기서 계속 담글 수 있는, 산 김치입니다.”
“그럼 방법이 없다는 겁니까?”
“그래서 예산을 받으러 왔습니다.”
 
열관리 엔지니어 서지오가 받은 제작요구서의 필수 조건은 한 줄이었다.
“전체 이동 구간에서 화물 온도를 2℃(±2℃)로 유지할 것.”
김치의 전체 이동 구간. 트럭, 발사체, 궤도 터미널, 수송선, 궤도선, 착륙선, 지상 차량. 환적 7번. 발사대 위는 영상 30℃, 심우주 그늘은 영하 170℃였다. 이 운송 수단들마다 컨테이너 규격이 달라서 그동안은 환적 때마다 화물을 꺼내 다음 컨테이너에 옮겼고, 이 과정에서 터미널은 평균 42시간 동안 전원 공급이 차단됐다.
4개월간 서지오 팀은 시뮬레이션을 360번 돌렸다. 김치는 360번 전멸했다. 얼거나, 익거나. 최종 도착한 김치 중 가장 좋은 버전조차 ‘섬유질이 포함된 산성 액체’였다.
360번째 실패의 밤, 서지오는 뉴스에서 한말숙 여사의 인터뷰를 봤다. “김치는 냉장고에 넣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여사는 혀를 찼다.
“김치를 냉장고가 지키는 줄 알아? 아니야. 김장은 시간과 장소라고. 배추 절이는 시간, 버무리는 날 기온, 어느 땅 어느 그늘에 묻을지, 언제 꺼낼지. 그걸 40년 하면 냉장고 없이도 김치는 안 죽어.” 
서지오는 일어나 앉았다.
온도가 아니라 시간과 장소.
그는 제작요구서의 한 줄을 지우고 다시 썼다.
“화물 온도를 고정하지 말 것.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화물이 언제 어디를 지나는지에 맞춰 화물 온도를 계획할 것.”
‘유지’가 ‘범위’로 바뀌자 문제 형태도 바뀌었다. 2℃ 온도 고정을 버리자 전기 냉장기가 필요 없어졌다. 필요한 것은 적절한 시간과 장소였다.
 
3.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화성 표준 컨테이너 MSC-1였다. 겉보기엔 모서리 둥근 백색 상자인, 자율주행 냉장고였다.
발사 전 지구에서 MSC-1 컨테이너의 열배터리에 냉기를 충전했다. 벽면의 상변화물질이 얼면서 냉기를 저장하고, 항해 중 천천히 녹으며 화물 온도를 유지했다. 컨테이너와 로켓의 결합부는 전 운송수단 공용이라, 화물을 꺼내지 않고 컨테이너째 옮기면 전원과 통신이 연결됐다. 결합된 동안에는 수송선 냉각계가 열배터리를 재충전해서, 냉기 재고를 유지했다. 자율 열관리 AI도 있었다. 컨테이너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도착까지 며칠 남았는지 알았고, 스스로 단열과 방열 모드를 오가며 온도 변화를 기록했다. 김치의 발효 가스는 압력 밸브가 알아서 뱉었다.
 
문제는 KOTL 이사회였다.
“김치 한 통에 이 개발비를?” 사외이사가 물었다.
“이건 김치 전용이 아닙니다. 같은 규격으로 인슐린, 백신, 혈액, 각종 정밀기기를 화성으로 운송할 겁니다. 운송 규격을 표준화하면 환적이 자동화되고, 임무를 마친 컨테이너는 화성 현지에서 의약품 보관함으로 재사용됩니다. 기반 시설입니다.” 박형래는 마지막 장을 띄웠다. “첫 화물이 김치인 이유는 하나입니다. 온 국민이 이 화물의 도착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효과적인 광고는 없습니다.”
시험 운송 1회, 김치 1200kg이 승인됐다. 빈자리엔 즉석 쌀밥이 실렸다. 김치가 가는 데 밥이 빠질 수 없었기에.
발사일, 한말숙 여사는 참관석에 앉아 있었다. 김치는 규정대로 밀봉 포장돼 이미 로켓에 실려 있었으므로, 여사는 보자기에 싼 빈 항아리를 안은 채로 로켓이 올라가는 것을 끝까지 봤다.
“김치 로켓 올라간다.” 누군가 말했다. 그 별명은 저녁 뉴스 자막이 됐다.
서지오는 뉴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MSC-1이라고요.”
 
4.
순항 127일째, 행성간 수송선 남양호. 모래알만 한 미세운석이 초속 11km로 좌현 방열판을 스치자, 냉각 루프 2개 중 1개가 압력을 상실했다.
박 선장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화물칸 전력 차단. 이후 냉각 기능은 전부 선내에서 가동.”
“화물은요? 그 김치는?”
“일단 살고 봐야지. 저건 자기가 알아서 작동한다고 들었다. 알아서 하는지 보자.”
전력이 끊기는 순간, MSC-1은 깨어났다. 외부 전력이 차단됐으니 남은 건 열배터리에 저장된 냉기뿐이었다.
 
계산 하나. 잔여 냉각 능력: 61%. 잔여 무전원 비행 기간: 84일. 운송 판정: 불가, 도착 19일 전 냉각 능력 초과.
계산 둘. 남양호에 요청 발신. 화물칸 위치를 태양 반대편 그늘로 유지 요망. 박 선장은 피식 웃으며 화물칸 위치를 조정했다. “화물이 승무원한테 지시하는 건 처음 보네.” 변경 사항: 복사열 37% 감소. 운송 판정: 불가, 도착 6일 전 냉각 능력 초과.
계산 셋. 부유식 화물칸이 웅웅거리며 팔레트를 돌렸다. 열에 민감한 김치통들을 상변화물질 벽면에 밀착시켜 다시 쌓았다. 판정: 도착 2일 전 냉각 능력 초과.
 2일. 마지막 2일이 안 나왔다.
지구, KOTL 관제실. 통신 지연, 20분.
“질문 하나 보내면 답이 20분 뒤에 와요. 답답해 죽겠어요.” 
상대인 서지오는 3일째 집에 못 갔다. 남은 변수는 하나, 시간표였다. “열배터리는 화성 궤도선에 결합되는 순간부터 재충전됩니다. 문제는 ‘화성까지 며칠’이 아니라 ‘결합까지 며칠’이에요. 궤도선이 마중 나오면 어때요?”
담당자가 계산을 돌렸다. 궤도선이 위상을 조정해 랑데부를 3일 앞당기는 대안. 다만 전체 착륙 일정은 5일 밀린다. 약속한 도착일을 못 지킨다.
박형래가 말했다. “도착일 늦는 건 사과하면 되는데, 쉰 김치는 용서가 안 돼. 바꿉시다.”
새 시간표가 전송됐고, 20분 뒤 판정이 돌아왔다.
수정 시간표 수신. 재계산 완료. 화물 온도: 허용 상한 대비 -0.8℃, 판정: 가능, 냉각 능력 유지.

관제실에 퍼진 것은 환호가 아니라, 참았던 숨들을 일제히 내쉬는 소리였다. -0.8℃. 이동 시간을 211일로 계산한 화물 온도는 기준치보다 0.8℃의 여유가 있었다.
 
5.
착륙선이 도착한 날, 컨테이너가 화물 입고 포트에 철컥 물리자 상태 기록계가 216일치 운송 그래프를 토해냈다. 발사 전 과냉각으로 시작해, 순항의 긴 평탄면, 전력 차단의 꺾임, 그늘에서의 버팀, 궤도선 결합의 재충전 하강을 지나, 허용 상한 0.8℃ 아래에서 끝나는 온도 곡선이었다. 누군가 심전도 같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공동 식당. 식판마다 즉석 쌀밥과 감자 수프, 그리고 김치 한 접시가 놓였다. 160명이 앉았는데 아무도 먼저 먹지 않았다. 반장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한 프로, 어서 먹자고. 밥 식겠다.”
한도윤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쌀밥 위에 김치를 얹고, 한참을 보다가 먹었다. 어머니 김치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216일의 여정이 맛을 조금 눌러놓았다. 동료가 물었다. “어때, 지구 맛이야?”
“지구 맛은 모르겠고요.” 도윤이 말했다. “어머니 맛입니다.”
식당 스크린에 지구 생중계가 떠 있었다. 손을 흔드는 한말숙 여사 뒤로, 다음 발사를 기다리는 컨테이너 30대의 행렬이 보인다. “적재 목록: 인슐린, 백신, 씨감자, 즉석 쌀밥, 그리고 김치.”
 
박형래의 책상에 화물 인수증이 놓였다. “품목: 김치. 수량: 1200kg 상태: 양호.” 서명란 아래, 화성 물류 담당자의 손글씨 한 줄이 적혀있다.
“수령 확인. 잘 먹겠습니다.”
반년 뒤, 첫 컨테이너는 지구로 돌아오는 대신에 화성 돔 병동의 의약품 보관함이 됐다. 화성에서 태어난 첫 아이의 해열제가 그 안에 들어있었다. 화성 건설 사업의 지원자 수는 다음 분기에 회복됐고, 그다음 분기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은 그 원인을 단지 ‘복합적 요인’이라고 분석했지만, 한말숙 여사의 부녀회 단톡방은 지원자 급증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넉 달 뒤, 한도윤 앞으로 어머니의 답장이 도착했다.

화성에 있는 둘째에게

김치 잘 갔다니 됐다. 엄마가 뉴스 다 봤다. 네가 일 잘한다는 것도 이제 온 나라가 안다.
다음 김장 때는 고춧가루 넉넉히 넣어 보내마. 그 상자, 가는 데 200일 걸린다며. 그럼 도착할 때쯤 딱 맛있게 익겠구나. 엄마가 시간 맞춰 담그마.
오래 살라는 말은 네가 했으니, 지구에서 김치는 계속 간다. 몸 성히 있어라.

엄마가

 

도윤은 편지를 접어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넣고, 헬멧을 집어 들고, 돔 4구역 외벽으로 나갔다.
머리 위 분홍빛 하늘 어딘가에서, 다음 김치 로켓이 오고 있었다. 

 

작가 소감
이번 공모전 주제를 보고 화성으로 배달가는 김치를 떠올렸습니다. 김치 국물에 흥건해진 택배 상자,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김치 포장지, 수육과 먹으려고 열었는데 텅 비어 있던 김치통, 이런 경험들이 한국인의 DNA에 새겨졌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발전이 가끔 무섭지만, 큰 방향에서 우리 일상을 돕는 쪽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썼습니다. 이 글이 모쪼록 김치 한 조각만큼의 즐거움은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DK
때때로 글을 쓰는 평범한 직장인. 기형도 시인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아직은 종종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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