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술공학자이지 순수과학자가 아닙니다.”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 개발사업단을 이끄는 박종오 단장(46)은 엔지니어와 사이언티스트, 즉 기술공학자와 순수과학자의 차이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순수과학자는 시대와 무관하게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원리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기술공학자는 다릅니다. 현 사회에서 필요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술을 개발해 산업까지 연결시켜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항상 시대와 같이 가야 하는 사람이 바로 기술공학자입니다.”
‘책상 연구 피하라’
순수과학자와 기술공학자를 설명하는 그의 말투에는 기술공학자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일을 추진하는 열정적인 자세가 자연스레 묻어났다. 사업단을 이끌기까지 스스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인물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독일 유학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을 언급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지도교수인 바르네케 교수로부터 일하는 기본 방침이나 추진력을 배울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제 지도교수이자 독일 응용공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바르네케 교수는 독일의 생산기술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만큼 미래를 널리 보고 일을 추진하는 분입니다.”
박단장은 지도교수에 대한 자랑과 함께 교수로부터 배워서 지금도 하나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는 ‘3계명’을 소개한다. ‘연구보다 실험을 먼저 해라. 연구소에서는 고객이 왕이다. 관료주의를 타파하라’가 바로 그것. 그는 독일이 생산공학 분야의 강국으로 우뚝 선 비결은 바로 실험을 중시하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책상에서 하는 연구보다 실제 현장에 적용해 직접 체험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박단장은 유학 시절부터 치열한 생존경쟁의 단편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3백명이 넘는 거대 조직 속에서 학생이면서도 학교에서 느낄 수 없는 험난함을 체험했다는 것. 오늘의 그는 이런 생활을 통해 다져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 1초까지 최선을 다한다
독일 유학시절 인상 깊었던 또 한명의 인물은 연구소에서 ‘잘 나갔던’ 볼라이 박사다. 박단장은 자신의 가이드를 했던 볼라이 박사에게서 기술공학자가 갖춰야 할 성실함을 배웠다고 한다. 거대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바로 성실함이라는 것.
‘마지막 1초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자세를 삶의 모토로 삼고 있는 박단장은 1987년 귀국 후 자신의 생활이 없어질 만큼 더욱 바쁘게 살아왔다. 한쪽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한쪽은 희생해야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기 때문에 후회나 아쉬움이 없었다.
박단장이 소개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독일에서 박사구두시험을 볼 때 시험장까지 수십권의 책을 잔뜩 들고 입실하기 바로 전까지 정독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 그는 긴장감을 즐긴다고 말한다. 항상 긴장감과 압박감을 팽팽하게 갖추고 있어야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열정과 의욕이 샘솟는다는 것이다.
생각은 머리가 아니라 연필로 하는 것
그가 사업단장에 응모한 것도 오랜 계획과 도전 끝에 실행된 것이다. 1981년부터 로봇 분야에 몸담아 오면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며, 5년 전에는 독일, 영국, 프랑스, 스웨덴과 합작해 마이크로로봇 프로젝트를 수행하려고 시도했다. 그 계획은 비록 무산됐지만 그의 끊임없는 노력이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 개발사업단의 수장이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셈이다.
20년 간 전체를 보는 눈을 길렀다는 것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말하는 박단장은 지금도 초소형 정밀 기계를 공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석사 때의 지도교수로부터 꼼꼼하게 시스템 전체를 보는 눈과 겸손함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곽병만 교수님은 항상 생각을 머리로 하지말고 연필로 하라고 강조하셨죠. 피상적으로 그리지 말고, 직접 실행하는 자세로 확실한 계획을 세우라는 뜻이었습니다.”
그의 추진력과 결과물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그런 기질을 보면 천성적으로 엔지니어가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의 성격이 본래부터 엔지니어에 맞게 갖춰진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그는 스스로 이성보다 감성이 많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결정을 믿었고, 그 길을 걸어가면서 스스로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성격도 자연스레 변해가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박단장은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특히 KIST에서 10년 이상 친하게 지낸 홍예선 박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저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사람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거침없이 몰아붙이는 것이 제 스타일이라면, 홍박사는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무리하지 않고 처리하는 깔끔한 타입이죠. 홍박사가 가진 장점을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시라도 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할 것 같은 박단장. 열정과 의욕으로 똘똘 뭉친 강한 눈빛에 마이크로시스템의 밝은 미래가 빛나고 있다.
가스관 검사하는 소형로봇 개발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 개발사업단은 1999년 12월에 출범했다. 사업단의 목표는 2010년까지 진략기술 분야에서 선진권에 진입해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기술혁신의 성과를 사회기반 전 분야로 확산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정부투자기관, 민간 등이 합동으로 소요 연구비를 확보하고, 민간 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중요 추진사항을 협의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또 사업단장에게 책임추진체제를 적용해 사업단의 본부 조직을 사업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독립 법인화해 사업단장의 자율적이고 책임있는 활동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단계별(3-4년)로 다년도 협약을 체결해 사업단 연구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해외의 우수과학자를 연구책임자로 위촉하는 등 연구팀 구성을 국제화해 국내외 인적 자원을 총동원할 예정이다.
사업단 과제는 크게 캡슐형 내시경, 손목시계형 마이크로 PDA, 공통기술 분야로 나뉜다. 캡슐형 내시경 분야에서 사업화가 가능한 제품은 가스관 균열검사 마이크로로봇, 군사용야간 감시센서 등 총 21건, 손목시계형 마이크로 PDA 분야에서는 마이크로 가상 디스플레이, 휴대폰용 고출력 전지 등 총 14건이 사업화가 가능한 제품으로 계획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