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중국,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아시아 10개국에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습격하면서 심각한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2월 9일 현재 이미 5천만마리 이상의 닭과 오리가 도살됐으며, 19명이 조류독감에 감염돼 사망했다. 조류독감은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류독감 때문에 국내에서는 이미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축산농가와 사료업계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소매업체들이 문을 닫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은 모습이 됐다. 다행히도 범국민적인 닭고기 소비촉진운동이 벌어지면서 최근 큰 폭으로 회복하는 추세다. 전세계에서 공공의 적으로 등장한 조류독감에 대한 의문을 낱낱이 파헤쳐본다.
조류독감 정체는?
독감바이러스는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인간은 물론 조류, 말, 돼지, 가금류뿐 아니라 물개처럼 바다에 사는 동물까지도 감염시킨다. 최근 큰 사회문제가 된 조류독감은 조류를 감염시키는 독감바이러스 ‘고병원성 가금인플루엔자’에 의해 나타나는 급성 질병이다.
독감바이러스는 감염대상보다 일반적으로 면역반응에 의해 정해지는 혈청형에 따라 분류한다. 모든 독감바이러스는 표면에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다제(NA)라는 단백질을 지니고 있다. 독감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 두 표면단백질이 항원으로 작용해 이에 대항하는 항체가 만들어져 면역반응이 일어난다(항체 특이성). 이를 기반으로 여러가지 혈청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인체독감의 경우 현재 H3N2형과 H1N1형 두가지만 유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조류독감은 좀더 다양하다. 헤마글루티닌에 의해 생기는 H혈청형은 15가지, 뉴라미니다제에 기인하는 N혈청형이 9가지 종류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두가지를 조합하면 총 1백35가지(15×9)에 해당하는 다양한 혈청형이 가능하다. 최근 인체감염을 일으킨 조류독감 H5N1형이고, H9N2형과 H7N7형이 인체를 감염시킨 사례가 보고돼 있다.
바이러스 얼마나 위험한가?
조류독감에 감염되면 닭의 경우 병원성에 따라 증상이 경미한 것에서부터 갑작스럽게 폐사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활력이 저하되고, 사료섭취가 감소하며, 쇠약증세를 보이고, 깃털을 세우고 한곳에 모이는 행동이 관찰된다. 산란율이 감소하면서 껍질이 약하거나 아예 없는 달걀도 관찰된다.
조류독감은 병원성에 따라 비병원성, 약병원성, 고병원성으로 구분한다. 비병원성은 질병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폐사가 없는 경우이고, 약병원성은 5-10%의 폐사율을 보인다. 반면 고병원성(HPAI)은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폐해 가능성이 크다고 분류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가축전염병예방법상 법정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고병원성에 감염되면 사료섭취가 크게 감소되고, 벼슬에서 청색이 나타나며, 머리와 안면의 부종이 나타나고, 80% 이상 폐사한다.
국내 조류독감 안전한가?
우리나라의 경우 조류독감 발생지역의 사람이나 돼지에게서 발병 사실이 보고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안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조사에서도 국내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베트남의 바이러스와 유전자 배열순서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국내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독립적으로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독감바이러스는 높은 변이율을 보이기 때문에 단순히 배열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종류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의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사람의 세포를 감염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안전성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어떤 경로로 전염되나?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파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전파방법은 분변의 직접적 접촉이다. 사람의 발, 사료차, 장비, 달걀표면에 묻은 오염된 분변을 통해 다른 닭으로 전파되는 것이다.
질병발생 개체가 생산한 달걀의 껍질이나 병아리를 통해 질병이 전파되기도 하지만, 달걀 속이 직접 감염돼 퍼지지는 않는다. 분변속에 있는 바이러스는 4℃ 조건에서 35일 이상 생존이 가능하다. 이 사이 감염되면 2-3일간의 짧은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난다.
현재 전문가들은 조류독감 전염과정에서 특히 돼지를 주시하고 있다. 돼지가 인간의 면역체계를 뚫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돼지의 호흡기 세포에는 조류독감과 인체독감 바이러스 모두와 결합이 가능한 수용체가 있다. 이 세포 안에서 서로 다른 두 바이러스가 유전자를 교환하면 조류독감의 파괴력과 인체독감의 전파력을 함께 갖춘 바이러스가 탄생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자어로 가족을 나타내는 家자는 지붕 밑에 돼지(豚)가 들어가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집 앞마당에 돼지우리나 외양간이 같이 있는 우리 시골집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가축과 인간이 공존하기 때문에 인체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매우 위험한 신종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조류독감 인체감염 시나리오
1. 돼지 매개 시나리오
철새를 통해 먼저 가금류가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가금류는 다시 돼지를 감염시킨다. 조류 바이러스에 감염된 돼지가 인체독감 바이러스에도 감염되면 유전자재조합 바이러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 재조합 바이러스가 인체로 옮겨가면 순식간에 퍼진다.
2. 재조합 시나리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직접 인체를 감염시킨다. 인체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증식하던 중 자체적인 유전자 변이로 인간끼리 전염이 가능한 새로운 독성 바이러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돌연변이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퍼진다.
3. 돌연변이 시나리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직접 인체를 감염시킨다. 이 사람이 인체독감 바이러스에 추가적으로 감염되면 재조합 바이러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재조합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퍼진다.
인체감염 가능성은?
1997년도에 홍콩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해 감염자의 약 30%인 6명이 사망한 것이 최초의 인체감염 사례다. 혈청형은 H5N1형으로 분류되는데, 최근 아시아 전역에서 발병된 조류독감이 이와 동일한 혈청형이다. 전문가들이 대규모 인체감염 가능성을 경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외에도 1999년도에 H9N2형이 홍콩에서 발병했고, 2003년도에 H7N7형이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83건의 감염사례가 보고됐는데 사망률은 낮았다.
조류독감의 인체감염에 전세계적으로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변종이 출현해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체바이러스와 조류바이러스 사이에 새로운 독성변종 바이러스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은 유전적 특성 때문이다.
1만3천5백-1만6천개의 염기를 가진 독감바이러스는 8개의 리보핵산(RNA)의 조각으로 구성돼 있는 리보핵산 바이러스다. 2개의 다른 독감바이러스가 한 세포에 동시에 감염할 경우 감염된 세포내에서 서로 유전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 간단하게 계산해보아도 2백56개(28)의 다른 변종(재조합 바이러스)이 나올 수 있다. 기존에 알려진 독감바이러스 종류가 수백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경우 이로부터 만들어지는 변종의 수는 천문학적 숫자가 된다.
아울러 독감바이러스 유전자는 리보핵산을 경유해 복제가 이뤄지는데, 일반적으로 이런 복제효소는 유전자 변이를 많이 일으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조각난 유전자 사이의 재조합뿐 아니라 높은 자체 변이율에 의해 새로운 변종이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
인체 감염 경로는 아직 확인된 바는 없으나 크게 3가지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 철새를 통해 먼저 닭과 같은 가금류가 조류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이후 조류바이러스와 인체바이러스가 돼지를 감염시켜, 이를 숙주로 해 유전자재조합 바이러스가 만들어져서 돼지로부터 인간으로 퍼져나간다. 둘째, 사람이 인체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조류바이러스에 감염돼, 인체 내에서 2가지 바이러스 사이에서 독성이 매우 높은 새로운 재조합 바이러스가 만들어져 퍼져나간다. 셋째, 조류바이러스가 인체감염 후 증식과정에서 자체적인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인체독성이 높아진 바이러스로 변환돼 퍼져나간다.
1918년 스페인에서 발병해 4개월 동안 무려 2천만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던 스페인독감의 유래가 조류독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영국 국립의학연구소 존 스켈 박사팀은 스페인독감에 감염돼 사망한 뒤 알래스카 동토에 매장된 환자들의 사체에서 추출한 바이러스를 분석한 결과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온라인판 2월 5일자에 발표했다. 스페인독감의 헤마글루티닌 항원단백질이 조류독감 특유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생활에서 지킬 예방책은?
독감바이러스는 75℃의 온도에서 5분 이상 있으면 단백질이 파괴돼 모두 독성이 없는 형태로 불활성화된다. 닭고기와 오리고기는 우리나라 식생활 습관상 날로 먹지 않고 전부 익혀서 먹기 때문에 이로 인한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직까지 홍콩 등 외국의 경우에도 닭과 오리고기, 달걀 섭취로 인한 인체감염 발생사례는 없다.
따라서 닭고기를 날로 먹거나 덜 익혀 먹고, 청결하지 않은 생달걀을 먹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인간전염 바이러스가 출현한다고 가정할 경우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는 미리 효과적인 백신의 개발과 이의 비축이 필수적이다.
방역조치는 어떻게 하나?
양계농가에서는 감염된 개체를 도살하고, 농장의 출입을 통제하며, 내·외부를 계속 소독하는 차단방역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한 경우 일차적으로 감염된 양계장의 닭을 모두 도살처분한다. 발생농장 뿐만 아니라 3㎞ 이내의 닭이나 오리의 달걀은 전부 폐기 조치된다. 3-10㎞ 사이의 가금류나 그 생산물에 대해서도 이동통제를 실시해 일반인이 오염원과 접촉할 가능성을 최소화한다.
바이러스 때문에 도살된 생물체는 땅속에 묻는다. 땅속에 묻으면 감염사체가 부패하면서 화학적으로 불안정한 독감의 리보핵산 유전자도 함께 불활성화된다. 감염된 개체의 분변이나 사료, 깔짚, 기타 오염된 물건 등도 매몰하거나 소각한다. 이후 사람이나 기계류 등에 의해 다시 오염이 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소독을 실시한다. 소독제로는 수산화나트륨, 페놀, 차아염소산나트륨, 이염화이소시안나트륨 또는 이의 혼합물을 이용한다.
소독이 완전히 끝난 건물이나 지역은 끈 등을 이용해 출입을 통제하고 경고판을 부착한다. 1차소독 후 2주가 지나면 동일한 방법으로 2차소독을 실시하는데, 1차검사 감독관이 아닌 다른 사람이 실시한다.
백신개발 어떻게 이뤄지나?
조류독감 백신은 현재 없는 상황이며,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 개발에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인체독감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오셀타미비어가 조류독감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일단 사람이 감염될 경우 이를 복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류독감 백신개발은 8개로 조각나 있는 유전자의 특징을 응용한다. 먼저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해 독성이 없는 바이러스를 제조한다. 이 바이러스와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동일한 세포에 감염시켜서 배양하면 2개의 바이러스 사이에 유전자의 재조합이 일어난 새로운 바이러스를 얻을 수 있다.
8개의 유전자 중 6개는 독성이 없는 바이러스로부터 받고, 2개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항체 생성에 관여하는 항원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다제인 바이러스를 골라낸다. 6:2로 유전자가 재조합된 새로운 바이러스를 찾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이러스는 독성은 없지만 조류독감에 대항하는 동일한 항체를 생성하도록 하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코에 스프레이처럼 뿌려 예방효과를 유도하는 생백신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 이 바이러스로부터 항원만을 분리·정제해 주사제로 사용하는 사백신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백신개발에 6개월이나 걸리는 이유는 재조합 바이러스를 골라내 유전자 구성을 확인하고, 이를 대량생산하고, 항원능력을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개발된 역유전학기술을 이용하면 개발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HA와 NA 2가지 유전자를 DNA 형태로 바꾼 후 세포에 침투시켜 백신바이러스를 제조하는 기술이다. 이 경우 원하는 유전자 조성으로 이뤄진 바이러스를 얻기 때문에 추가적인 유전자 확인작업 없이 백신균주의 생산이 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최근 국내에서 백신균주가 만들어져 이르면 6월중 인체 백신 개발이 가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