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과학동아 창간호의 표지엔 핼리 혜성이 담겼다. 핼리 혜성은 약 76년 주기로 지구 가까이 오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혜성 중 하나다. 이 혜성을 살아서 단 한 번만 볼 수 있다는 점이 모두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핼리 혜성에서 결정질 규산염이 어떻게 포함될 수 있었는지는 지난 20년간 천문학계에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지난 1월, 이정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연구팀이 그 비밀을 밝혔다.
2023년 10월 5일, 2024년 5월 10일. “관측 데이터를 받기 전까지는 관측이 제대로 됐는지 안 됐는지를 알 수 없으니 너무 떨리더라고요.” 이정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이 ‘EC 53’을 촬영하던 이틀을 이렇게 회상했다. 천문학자로서 당일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루 종일 마음을 졸일 뿐이다. 관측은 이 교수가 한국인 최초로 JWST의 연구 목적 사용을 허가받으면서 가능했던 기회였다. JWST은 1년에 약 250개의 과학 관측 프로젝트를 허가하는데, 선정률은 9% 수준이다.
EC 53은 뱀자리 성운 방향에 있는 태아별이다. 태아별은 별이 되기 전 상태의 천체다. 뱃속에서 10개월 동안 인간이 되기 위해 성장하는 태아처럼, 태아별도 주변 물질을 공급받으며 별로 성장한다. 이 교수는 혜성 속 일부 물질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JWST로 EC 53를 들여다봤다. 이 교수는 이 해답을 1월 2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doi: 10.1038/s41586-025-09939-3
있을 수 없는 곳에서 발견된 결정질 규산염
지구,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혜성인 핼리 혜성을 비롯해 태양계의 모든 행성과 혜성은 같은 곳에서 만들어졌다. 그 시작엔 99%의 기체와 1%의 먼지로 이루어진 먼지구름이 있다. 먼지구름은 성운이라 불리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어 보이지만 성운 내에는 여러 힘이 부딪치고 있다. 서로를 끌어당기는 중력, 그리고 중력을 버티는 힘인 압력이다. 압력이 중력과 균형을 이루면 성운으로 남는다. 힘의 균형이 깨지면 성운은 안쪽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중심으로 물질이 몰리며 밀도와 온도가 올라가고, 뜨겁고 밝은 덩어리가 생긴다. 태아별이다.
태아별 주변에는 원시행성계원반이 있다. 원반은 성운이 수축하며 만들어진 것으로, 태아별이 만들어지고 남은 성운의 찌꺼기다. 이 교수는 “성운 안쪽이 원심력에 의해 납작해진 것”이라 설명했다. 이처럼 원반은 태아별의 중력권 안에 있다. 태아별은 원시행성계원반 속 물질을 먹으며 질량을 불려 나간다.
태아별이 커지면 원반도 점점 커진다. 주변 물질을 끌어당기는 태아별의 중력이 세지기 때문이다. 태아별이 원반 물질을 먹어 치우며 크는 사이 원반 내의 작은 먼지 입자들은 서로 달라붙으면서 점점 커져 자갈에서 바위, 바위에서 행성 크기로 성장한다.
문제는 얼음덩어리 혜성의 탄생 과정이다. 우리 태양계는 100AU(천문 단위·태양과 지구까지의 거리, 1AU는 약 1억 4900만km) 너비다. 그 안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 2.2~3.2AU에, 태아별이 주변에 영향을 미치면서 형성되는 경계선, ‘스노우라인’이 있다. 스노우라인은 분자가 기체로 남을지, 아니면 얼음으로 응결해 먼지에 붙어 있을지를 결정하는 경계다. 태아별과 가까운 스노우라인 안쪽은 태아별이 내는 에너지 탓에 온도가 높아, 물 분자가 기체 상태로 존재한다. 반면, 스노우라인 바깥쪽은 온도가 낮아 물이나 이산화탄소, 메탄 같은 분자가 먼지 표면에 얼음처럼 코팅돼 있다.
먼지 구름에서 행성계로
태양계의 형성 과정
거대한 먼짓덩어리 내 작은 핵이 수축하고 태양계가 되기까지 약 5000만 년이 걸린다. 중력 수축 후 수만 년 안에 태아별이 만들어지고, 수십~수백만 년 동안 원시행성계원반이 발달한다. 원반 속 물질은 행성과 작은 천체로 정리된다. 태양계 형성 과정과 원반 속 물질이 구성되는 원리를 정리했다.
※ 일러스트에 표현된 태양계 거리 비율은 실제와 일부 차이가 있습니다.
태아별과 태양계 형성
별이 되기 전 단계의 천체, 태아별이 방출하는 에너지는 원시행성계원반을 뜨겁게 가열한다. 원시행성계원반은 어린 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가스와 먼짓덩어리다. 원시행성계원반 내에서도 태아별과의 거리에 따라 전달되는 열의 양에 차이가 있다. 이에 따라 열에너지가 큰 원반 안쪽에는 암석형 행성이, 열에너지가 작은 바깥쪽에는 가스형 행성이 만들어진다.

① 암석형 행성
스노우라인 안쪽에서는 물이 얼 수 없다. 고체 물질은 암석과 금속뿐이다. 그래서 지구 같은 암석형 행성이 만들어진다.

② 가스형 행성
스노우라인 바깥에는 물이 얼음으로 존재하는 덕에 고체 물질의 양이 많다. 원시행성 핵이 빨리 자라 주변의 가스를 끌어 모은다.

③ 혜성의 고향
혜성의 고향은 공전주기에 따라 카이퍼 벨트와 오르트 구름으로 나뉜다. 주기가 200년보다 짧으면 단주기, 길면 장주기 혜성이다.
행성계 형성 과정
성운 속의 가스와 먼지가 중력으로 수축해 뜨겁고 밀도가 높은 덩어리가 된다. 이를 태아별이라 부른다. 남은 물질은 주변에서 원반을 이루며 행성을 만든다. 태아별이 임계질량을 넘겨 수소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 별이 돼 행성계를 완성한다.
자료: Greene 2001

➀ 암흑성운의 중력 붕괴
우주 공간에 수소 분자, 헬륨, 먼지 입자로 이뤄진 차갑고 어두운 구름, 암흑성운이 있다(붉은 영역). 암흑성운 안에서 주변보다 밀도가 높은 부분(가운데 검은 영역)이 수축하며 별이 탄생한다.

➁ 태아별의 탄생
암흑성운 중심부에 형성된 뜨겁고 밝은 덩어리가 태아별(붉은 구)이다. 태아별이 주변 물질을 끌어모으면서, 성운이 납작한 원시행성계원반으로 재편된다. 태아별 위아래 방향으로는 주변 물질 일부가 초속 수십~수백 km 속도 제트로 방출된다(푸른 화살표).

➂ 태아별의 성장
시간이 지나며 태아별이 성장한다. 이때 태아별은 밝기가 불규칙하게 변하고, 표면 활동이 강하며 물질을 강하게 뿜어낸다. 원시행성계원반 내에서는 먼지 입자들이 서로 달라붙으며 점점 큰 덩어리로 커진다.

➃ 전주계열성
원시행성계 원반 속 일부 물질이 행성이나 소행성, 혜성 같은 작은 천체의 재료가 되면서, 원반이 얇아졌다. 태아별은 계속 수축하면서 더 뜨거워지고 있다. 어느 순간 중심 온도가 충분히 높아지면 수소 핵융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➄ 젊은 행성계
약 5000만 년에 걸쳐 행성계가 만들어졌다. 안정적인 중심별이 있고, 행성들이 주변 궤도를 돌고 있다. 행성계가 완전히 정돈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큰 충돌, 행성 이동, 잔해 원반의 소멸 같은 과정이 남아 있다.
얼음이 없는 스노우라인 안쪽으론 물질이 ‘모래 알갱이’처럼 존재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입자들이 충돌해도 쉽게 튕겨 나가거나 부서지기 때문에 큰 덩어리로 성장하는 게 어렵다. 이 때문에 작은 암석 덩어리들이 조금씩 모여 만들어진 암석형 행성은 충돌과 병합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진다. 태양계 스노우라인 안쪽의 암석형 행성인 수성, 금성, 지구와 화성이 그 예다. “충돌에너지를 흡수한 암석은 마그마처럼 뜨거워져 액체로 상태가 됐다가, 이후 점차 식어가는데 이때 결정화된 규산염 광물이 만들어져요.” 이 교수가 설명했다. 고체가 열에 의해 액체가 된 것을 용융 상태라 부른다.
문제는 스노우라인 바깥이다. 스노우라인 저 멀리서 만들어지는 혜성은 덩어리가 작아 용융 상태에 놓인 적이 없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혜성이 지구처럼 뜨거운 곳에서 만들어진 물질인 결정질 규산염을 품고 있었다.
태아별 EC 53의 폭식을 포착하다
이 교수는 결정질 규산염의 생성과 이동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규명하기 위해 EC 53을 살폈다. EC 53은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태아별과 다르게 주기적으로 밝아지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한다. 태아별의 밝기가 변하는 이유는 ‘폭식’ 때문이다. 태아별 주변 물질이 자기장을 따라 태아별로 한꺼번에 많이 유입되면 표면에 큰 충격파가 발생해 태아별의 밝기가 증가한다. 이 시기를 태아별의 폭발기라 부른다. 상대적으로 물질 유입이 적고 충격파가 작을 때에는 표면이 어둡고 차갑게 유지된다.
다른 태아별도 폭발기와 휴지기를 갖지만 이 주기는 대부분 불규칙하다. 그런데 EC 53은 약 18개월 주기로 밝기가 변화한다. 이 교수는 “(근처에 있는) 원시 행성이 태아별을 한 바퀴 돌면서 약 18개월마다 원반 물질에 교란을 주고, 이 교란으로 물질이 한꺼번에 태아별로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C 53은 우주의 좋은 실험실이에요.” 이 교수는 EC 53의 주기성 덕분에 원반의 물질이 어떻게 유입되는지, 원반의 온도는 얼마나 달라지는지, 그로 인해 원반에서 분자의 상태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연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폭발기는 스노우라인을 더 넓게 이동시키고, 물질 상태를 바꾸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시기이기 때문에 규산염 결정 형성과 같은 원시행성계원반의 물리·화학적인 변화를 추적하는 데 최적이었다.
연구팀이 연구를 위해 JWST를 택한 이유는 적외선 망원경이 태아별 주변을 높은 해상도와 감도로 볼 수 있는 장비였기 때문이다. “태아별 주변에는 가스와 먼지가 두껍게 둘러싸고 있어, 짧은 파장의 빛은 주변 물질에 다 흡수돼요. 적외선으로만 관측이 가능한데 허블망원경처럼 짧은 파장 관측을 수행하는 우주망원경으로는 태아별이 있는 구름 내부를 들어다볼 수 없었죠.” 또한 원시행성계원반은 크기가 작아서 구경이 작은 다른 망원경으로는 픽셀 하나처럼 뭉뚱그려져 보인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JWST은 집광력과 해상도가 높아 원반 매우 안쪽에서 결정질 규산염이 만들어질 때 나타나는 특유의 스펙트럼을 포착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JWST을 총 두 번에 걸쳐 사용했다. 첫 번째는 EC 53의 휴지기였던 2023년 10월 5일, 두 번째는 2024년 5월 10일의 폭발기였다(이 교수가 JWST 사용 허가를 받은 날은 2023년 5월 10일이었다. 5와 10의 반복은 신기한 우연이었다). 연구팀은 두 날의 EC 53의 JWST의 중적외선 스펙트럼을 비교, 분석했다. 1차 관측은 약 5시간, 2차 관측은 약 7시간 정도 이루어졌다.
우주 고속도로 따라 날아간 규산염
관측 결과 태아별 주변에 원반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 원반 안쪽에서 규산염이 결정화된다는 점이 드러났다. 또, 결정화된 규산염이 밖으로 이동하는 ‘고속도로’가 있었다는 증거도 찾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관측이 있었다. 첫 번째는 규산염이 태아별의 폭발기에만 결정을 이룬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중첩된 제트 구조를 확인한 것이다. 제트는 태아별 근처 자기장의 영향으로 주변 물질이 천체의 수직 방향으로 뿜어져 나가는 현상이다.
우선, EC 53의 폭발기에서만 결정질 규산염의 방출 신호가 나타났다. 원반 내부에는 원자 배열이 뒤죽박죽 상태인 규산염 먼지가 있다. 폭발기, 태아별에 물질이 급격하게 유입되면서 원반 내부가 뜨거워진다. 이에 따라 규산염 먼지 속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되면서 규산염이 결정화됐다. 혜성의 미스터리를 만든 결정질 규산염이 원반 안쪽에서 만들어짐을 확인한 것이다. 이 교수는 “결정질 규산염과 비결정질 규산염은 형태가 다른 스펙트럼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관측을 통해 구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결정질 규산염은 원반풍을 타고 원반 가장자리로 이동한다는 증거를 확인했다. 원반풍(disk wind)이란 태아별과 원반의 자기장에 의해 원반 안쪽에서 가장자리로 원반 물질이 이동하는 이론적 현상이었다. “쉽게 말해 우주 고속도로라고 볼 수 있죠.” 이 교수는 원반풍을 이렇게 빗댔다.
자기유체학적 원반풍 모델에 따르면 자기장과 결합한 원반 표면의 가스가 원반 위로 끌려 올라가 바깥으로 분출된다. 이때 분출은 하나의 흐름이 아니다. 원반 가장 안쪽에서 나오는 물질은 강하게 가속해 제트가 되고, 바깥쪽 원반에서 나오는 물질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퍼져 나간다. 즉 빠르고 좁은 제트를 중심으로 더 넓은 각도의,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의 원반풍이 겹겹이 둘러 쌓인 모양이다.
“케플러 법칙에 의해 안쪽 원반은 더 빠르게 회전하고, 바깥쪽 원반은 더 느리게 회전해요. 때문에 원반풍 속도도 안쪽은 더 빠르고 바깥은 느린 특성을 지니게 돼죠.” 즉 제트를 중심으로 바깥으로 갈수록 점차 느린 속도의 물질 분출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EC 53에서 중첩형 분출 구조를 관측했다. 가장 안쪽에는 약 초속 100km의 속도로 제트가 물질을 내뱉고 있었고, 이를 둘러싼 여러 층의 분출류가 초속 50, 10km로 뿜어져 나왔다. 즉 결정질 규산염을 이동시키는 원반풍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제트를 중심으로 바깥으로 갈수록 속도가 느려지는 중첩형 유출 구조를 확인함으로써 원반풍이 존재함을 역으로 입증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원반풍이 안쪽 뜨거운 원반에서 만들어진 결정질 규산염을 혜성이 형성되는 바깥쪽 차가운 영역으로 운반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76여 년을 주기로 태양을 맴도는 핼리 혜성의 심장에 45억 년 전 태양 가까이에서 만들어진 결정질 규산염 먼지조각이 자리잡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혜성의 재료를 운반하는 원반풍의 구조

멘붕을 넘어 생명 신호 찾을 미래로
“사실 1차 관측 이후 정말 ‘멘붕(멘탈붕괴)’이었어요.” 이 교수는 1차 관측에서 공동 연구자가 관측 영역의 중심을 실수로 반대로 설정하는 바람에 원반풍 영역이 조금만 포함됐다는 얘길 인터뷰가 끝난 뒤 털어놓았다. 이 교수는 웃으며 말했지만 당시에 연구자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눈에 선했다. “특히 폭발기 관측에는 잔상이 남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2차 관측 전 몇 주 동안 잠도 못 자고 관측 영역과 방식을 완전히 새로 짜야 했죠.”
이 교수는 앞으로도 별 탄생과 행성계의 진화 과정에 많이 남은 지식의 공백을 찾고자 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HWO를 준비하고 있어요.” HWO는 거주가능행성관측소(Habitable Worlds Observatory)를 뜻하는 차세대 우주망원경이다. 지구 같은 행성과 생명 신호를 직접 찾는 것을 목적으로 2040년대 초 발사가 예정돼 있다. “별의 탄생과 행성계 형성 그리고 생명의 기원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려 해요. 그 과정에서 어려서 상상의 범주에 있던 것들이 실재하는 것을 보는 감회가 남다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