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프라모델을 들고 씩씩 화를 내며 달려든 대통령에게 깔린 순간, 나는 이 가여운 사내를 맡아서 오랫동안 치료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통령이 예약 신청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스스로 나섰을지도 모른다. 밀실에서 혼자 프라모델을 조립하며 곱씹었을 외로움과 슬픔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몰락뿐이다. 대통령이라는 권좌에서의 추락은 더욱 아득하고 무섭고 두려우리라. 어리석게도 저 최형채라는 사내는 우는 법, 낙담하는 법, 부탁하는 법을 모르니 그 많은 감정이 화약으로 탈바꿈해 자신을 폭발시킬 것이다. 내 작은 노력이 그의 몰락을 연착륙시킬 수만 있다면!
감 박사에게 내가 받을 치료 수당을 물었다. 이렇게 돈부터 따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돈으로라도 내 어깨를 무겁게 만들고 싶었다. 감 박사가 부르는 값의 다섯 배를 달라고 했다. 이 일은 내게 많은 어려움을 안길 것이다. 내 불길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11.....
다음 주 목요일 밤, 다시 감 박사와 대통령 서재로 갔다.
감 박사는 흘러간 옛 영화 ‘스팅’이나 보겠다며 서재 소파에 기대앉았다. 나는 익숙하게 김지하 시선집을 뽑은 다음 책장을 돌아서 밀실로 들어갔다. 대통령은 점토 박스에 걸터앉아 자신이 일주일 전에 만들다 만 괴물을 노려보고 있었다. 괴물의 모습이 너무 흉측해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듯했다.
박스를 열고 점토를 꺼내 반죽했다. 대통령은 멀뚱멀뚱 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환자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말 것. 이것이 미술치료사의 철칙이다.
말랑말랑한 점토를 괴물 로봇 옆으로 가져갔다. 20cm 두께로 얇게 펴서 각 변이 2m쯤 되는 정사각형의 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괴물 로봇에서 프라모델을 하나씩 떼어 점토 위에 꽂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하도록 명령하지 않았고 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나랑 함께 점토 위에 프라모델 조각을 꽂자고 청하지도 않았다. 나는 정말 즐겁게 프라모델 조각을 꽂아 나갔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점토를 가지고 다양한 사물을 만든 경험이 있으리라. 코와 뺨에 흙이 묻어도 화내는 이는 없다.
대통령이 슬그머니 괴물에게서 프라모델 조각을 떼어 점토에 박았다. 나는 못 본 체하며 아예 등을 졌다. 그가 다시 조각을 든 채 내 등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건 어디에 박는 게 좋겠소?”
“맘대로 하세요.”
한 시간이 넘도록 우리는 프라모델을 점토에 꽂았다. 그 모양은 보다시피 그가 먼저 만든 괴물보다 더 복잡하고 기괴한 괴물이다. 허나 대통령은 이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녀석을 애완견처럼 아꼈고 죽을 때까지 없애지 않고 곁에 두었다.
12.....
프라모델을 점토에 박으면서 그와 나는 툭툭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그는 여전히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고학력 환자일수록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책과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증상에 대한 지식을 나보다 더 많이 알아냈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고 비싼 약을 먹어도 이 병을 완치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함께.
이럴 때는 미술치료사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오래전에 이런 시구를 읽은 적이 있답니다.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 사람들은 누구나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조화와 균형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발병 이전의 자리에 머물 수도 없지요. 가장 적당한 순간에 가장 적당한 방식으로 떠나기 위해서는 내 마음부터 다스릴 필요가 있답니다.”
“호스피스 하러 왔소? 한마디만 하리다. 맨 정신에도 내 마음을 다스리기 힘든데, 그림 몇 장 그린다고 그게 가능하오?”
“그럼 왜 제게 전화로 예약을 하셨어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소. 감 박사가 권유한 탓도 있지만 태은해 씨를 만나고 나니…….”
“맘에 드셨다고요? 이건 연애가 아니랍니다.” 농담으로 돌렸다. 환자들은 종종 미술치료사를 친구나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로 여긴다. 정도가 심해지면 팬클럽의 열광적인 아이들처럼 바뀌기도 한다.
“걱정 마시오. 나도 내 처지를 아니까.”
‘처지’란 두 글자가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내가 그 아픔을 다독일 수 있을까. 죽음을 예견하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합당한 위로를 주는 것은 신의 영역이 아닐까.
완전히 마음을 연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내게 도와 달라 손을 내민 것은 분명했다. 그의 곁에는 항상 많은 이들이 머문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신의 두개골 속 뇌가 일으키는 작은 변화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망할 놈의 전두엽에 대해! 점점 위험에 처한 측두엽에 대해!
감 박사는 이 분야의 권위자이긴 하지만 딱딱한 의학용어들을 나열할 뿐이다. 문제는 그 뇌의 구체적인 부위들에 결함이 생길 때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바뀌는가 하는 것이며, 또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점이다. 대통령은 이 문제를 풀고 싶겠지만 나도 해답을 모른다. 치료사는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도록 도울 뿐이며, 마음의 미로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환자의 몫이다.
13.....
다음 주 목요일에 감 박사가 택한 영화는 ‘애수’였다.
왜 구닥다리 영화만 보느냐고 했더니 고전의 향기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답했다. 문득 감 박사는 일주일에 한 차례씩 대통령 서재에서 ‘스팅’이나 ‘애수’ 같은 영화를 보고 얼마나 수고비를 받을까 궁금했다. 적어도 나보다는 많으리라. 겉으론 도덕군자지만 챙길 건 다 챙기는 사람이다. 치료는 내가 하는데 치료비 총액은 감 박사만 안다.
정물화를 그리자고 했다. 집중력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핸드백에서 사과 두 개를 꺼내 로봇들 사이에 놓았다. ‘로봇 사과’. 제목이 썩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대통령이 사과를 노려보다가 말을 더듬었다.
“저…… 저게…….”
대통령의 두 눈이 흔들린다. 기본 단어를 잊은 것이다.
“사과 말인가요?” “나도 아오. 사과! 저 사과를 꼭 그려야 하오?”
“왜요? 대통령님이 따로 그리고 싶은 거라도 있으세요?”
“거 대통령, 대통령 소리 안 할 수 없소?”
여전히 불만스런 물음이지만 친근함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마땅한 호칭이 없는데…….”
“이 순간부터 나는 태은해 씨를 T라고 부르겠소. 티쳐.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그럼 나는 대통령을 무엇이라고 부른담!
“어렸을 때 별명 없나요?”
설마 ‘숫자는 전부다’나 ‘Backspace’는 아니겠지.
“래빗!” “래빗이라구요? 토끼?”
“별명까지는 아니고, 종종 어머니가 날 래빗이라고 부르곤 했다오.” “왜 하필 래빗이죠?”
“그건 나도 모르겠소. 하여튼 T! 사과 말고 내가 그리고 싶은 게 하나 있긴 한데…….”
“뭔가요?” 래빗이 바지 뒷주머니에서 반으로 접은 흑백 사진 한 장을 주섬주섬 꺼냈다.
“이게 뭐죠? 마을을 온통 철조망으로 둘러쌌군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저녁 뉴스다. 조간신문도 받아보지 않는다. 포털사이트 첫 화면에 뜨는 소식들만 겨우 살피는 정도다.
“왕밤골이라오.”
“왕밤골이라면…… 대통령님이, 아니 래빗이 미군 부대 주둔을 위해 마을 사람들 전원에게 출입 금지를 명령한…….”
“그렇소. 바로 그 왕밤골이오. 오래전 대추리와 매우 흡사한 처지에 놓인 마을이지.”
“그런데 왜 이 사진을 그려보려는 건가요?”
래빗이 눈을 동그랗게 토끼처럼 떴다. 자신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듯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밀실을 나왔다. 집중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살필 수만 있다면 사과를 그리든지 사진을 옮기든지 상관없었다. 이왕 집중력을 실험하는 시간이라면 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보다 사라지는 편이 더 나았다.
그날 나는 뜻하지 않게 ‘애수’란 영화를 중간부터 끝까지 보고 또 처음부터 중간까지 봤다. 감 박사는 종종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지만 나는 비비안 리의 과장된 연기가 자꾸 거슬렸다. 작은 오해 때문에 사랑을 잃고 거리의 여자로 떠돌다가 자살하고 만다는 이야기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시 밀실로 갔다.
그림의 제목은 ‘이것과 저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두 시간 전에 본 흑백 사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펜화였고 사진은 그림 뒷장에 붙어 있었다. 프라모델을 성급하게 이어 붙이는 유치원생 사내아이 같던 래빗의 모습과 달리 이 펜화는 전문가 뺨칠 수준이었다. 철조망에 돋은 가시 하나하나의 크기와 굵기까지 제각각 담아낸 솜씨가 놀라웠다. 정말 이걸 래빗이 그렸을까.
치매가 시작되면 집착이 는다. 다양한 욕망들이 삐죽삐죽 솟아나면서 거미줄처럼 주위 사람과 사물을 휘감는다. 펜화의 핵심은 역설적이게도 빛이다. 형상을 흉내 내기는 쉽지만 그 형상 위에 얹힌 밝기와 어둡기를 명암과 각도를 살려 따라 그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명확히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그 선을 희미하게 뭉개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너무 많이 지우면 사물 자체가 사라지고 너무 적게 지우면 빛이 실종되는 형국이다. 그러므로 펜화는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사진 바깥에 존재하는 빛의 높낮이와 밝기를 따져 사진 안에 담긴 사물들의 특징을 잡아내는 일이기에, 그리는 사람의 시선은 항상 안팎을 넘나들어야 한다. 안에서도 밖을 생각하고 밖에서도 안을 살피는 일은 갓 치매를 앓기 시작한 이에게 무척 힘든 작업이다. 그 작업을 대통령은 너무나도 훌륭하게 또한 어쩌면 매우 즐겁게 완성한 것이다. 놀라움의 시작이었다.
한 가지 지적할 부분은 이 펜화에는 곡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날카로운 직선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며 상하좌우로 뻗어 있다. 물론 철망이 지닌 날카로운 느낌을 그대로 옮겼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학력이 높고 논리적인 사람에게 직선이 많이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도 나온 바 있다.
그 후에도 래빗은 몇 장의 펜화를 그렸다. 해지는 변산반도나 해 뜨는 포항 해안은 걸작 중에서도 걸작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과 저것’을 언제나 첫손에 꼽는다. 대통령이 선보인 놀라운 작품들의 시작이 바로 ‘이것과 저것’이기 때문이다.
14.....
칭찬을 몇 마디 하려는데 밖이 소란스러웠다.
감 박사의 고함에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군데군데 섞여들었다. 책장이 빙글 돌아가면서 그녀가 들어왔다.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 황재령이었다. 황재령이라는 이름보다 로즈라는 별명이 더 자주 오르내렸다. 장미를 워낙 좋아해서 옷이며 액세서리를 모두 그쪽으로만 장만한 탓도 있지만, 차기나 차차기 대권을 노리며 아름다운 자태만큼이나 날카로운 가시를 지닌 탓이다. 로즈는 나를 무시하고 래빗에게 곧장 가서 또박또박 말했다.
“서해 쪽이 심상치 않대요. 국방부 장관이 들어왔으니까 속히 집무실로 가세요.”
“내 허락 없인 서재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서해 5도가 위급하다니까요.”
래빗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은 이쯤 해야겠소. 평가는 다음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로즈에게 시선을 주며 당부했다.
“결례를 하지 마시오. 내 손님들이라오.”
대통령이 나가자, 황재령이 내 손에 들린 펜화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이의 놀이터까지 들어온 그쪽은 누구신가요? 설마 명찰에 적힌 대로 간호사 조성희라고 우기진 않을 테죠? 조 간호사랑 닮긴 했네요. 하지만 조 간호사는 해산일이 오늘내일 해요.”
뒤따라 들어온 감 박사가 당황스런 얼굴로 말했다.
“제가 전부 다 설명하겠습니다. 태은해 씨는 잘못이 없습니다.”
“태, 은, 해!”
로즈는 내 이름을 게 껍질 씹듯 딱딱딱 끊어 읊조렸다.
“지금 대통령님은…….”
“잠깐! 감 박사님 잠깐만 나가서 기다리시겠어요? 나는 여기 태은해 씨와 둘이서 할 말이 남았답니다. 잠깐이면 되거든요.”
감 박사가 괜찮겠냐며 눈으로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가 내렸다. 감 박사가 밀실을 나서자마자 로즈가 가시를 세웠다.
“길게 얘기하지 않겠어요. 그이를 사랑하나요?”
“뭐, 뭐라고요?”
기가 막혔다. 로즈는 래빗이 나와 바람을 피운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이에게 딴 여자가 있다는 건 눈치 채고 있었어요.
대통령 서재까지 끌어들인 것은 의외지만. 사랑이 아니면 뭔가요? 돈이 필요했나요?”
헛웃음이 나왔다. 로즈는 나를 창녀 취급하는 것이다.
“나는 미술치료사에요. 지금 대통령님은…….”
로즈가 말을 잘랐다.
“그쪽 직업을 물어본 게 아니야.”
방 한쪽에 놓인 점토에 꽂힌 프라모델 로봇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요즘 미술치료에는 저런 괴물을 만드는 것도 포함되나? 깔끔하게 끝내려고 했는데 자꾸 핑계를 대려고 하는군. 몇 번이나 그이와 잤어? 그 일 모두 없었던 걸로 묻어두기로 하고 대가를 말해봐. 캐시로 줄까? 아님 다른 걸 얘기해도 좋아.”
옆에 있던 태권 V 로봇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내가 무슨 짓을 했던가.
정신을 차려보니 로즈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 넘어져 있고 내 손에는 로즈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가여운 태권 V는…… 하체는 내 손에 들렸고 상체는 로즈의 옆구리에 박혀 있었다. 로즈의 비명과 함께 감 박사와 경호원들이 뛰어들어왔다. 욱하는 성미가 또 사고를 친 것이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대통령의 서재에 그런 구멍이 있을 턱이 없다.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