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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D-60 | 모두를 위한 최적의 백신을 선택하다

    ▲Shutterstock
    2020년 4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이동 통제 명령이 내려졌고, 도시가 봉쇄됐다.

     


    
임상 시험으로 백신 후보 간 차이가 드러났다. 어떤 후보는 빠르게 강한 항체를 만들었지만 발열 반응이 컸고, 또 다른 후보는 안전성 면에선 만족스러웠지만 중화항체의 양이 기대보다 낮았다. 또 어떤 후보는 반드시 냉동 상태로 유통해야 해 제조 지역에서 먼 곳으로 보내기 어려웠다. 이에 CEPI는 여러 후보를 과학적 성능은 물론 안전성, 제조 가능성, 유통 편의성 등 다각도로 살폈다. 

    특히 CEPI는 백신이 전 세계에 공평하게 공급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이 백신은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까지 보내는데 무조건 상할 것 같아.” “아프리카 지역의 백신 제조 시설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


     

    루세라 이사는 “코로나19를 통해 CEPI가 배운 주요 교훈 중 하나는 백신을 개발하는 도구뿐만 아니라 백신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는 역량도 함께 키우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 지역이나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에 백신 생산과 공급망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CEPI는 이를 ‘공평한 접근성’이라 표현한다.


     

    “처음부터 공평한 접근성을 기반에 두기 위해 CEPI가 투자하는 모든 프로젝트나 파트너십은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게 하고, 백신 제조 시설 네트워크(WMFN·Vaccine Manufacturing Facility Network)를 꾸려 대응해왔습니다.” 


     

    WMFN이란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전 세계 어디서나 신속하게 백신을 제조하고 공급하기 위해 구축한 제조 파트너십 네트워크다. 한국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26년 2월에 WMFN에 가입했다. 이상명 삼성바이오로직스 CDO개발담당 상무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 제조 거점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저소득 및 중하위 소득 국가에 백신이 신속하고 공평하게 닿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다. 루세라 이사는 “팬데믹 발생 시 최소 15~20억 회분의 백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Shutterstock, 자료: CEPI
    CEPI의 백신 제조 시설 네트워크. 한국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외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인도, 세네갈의 연구소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팬데믹이 닥칠 경우 각 대륙에서 빠르게 백신을 생산해 보급하기 위함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이 배양기를 점검하고 있다. 배양기는 바이오 의약품의 원료가 되는 미생물을 대량으로 증식하고 키우는 장비다. 실제로 세계 각지에 백신이 보급되기 위해서는 백신 개발과 함께 백신을 빠르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생명공학 인프라의 역할이 중요하다.

     

    D-40 | 드디어 대규모 백신 생산 시작되다

     

     

    “조심히 옮겨야해!”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생산시설로 손바닥만 한 플라스크에 담긴 백신 후보 물질이 전달됐다. 연구실에서 확립한 제조법, 분석법, 세포주 정보도 함께 전달됐다. 소량의 백신 후보 물질을 수억 명에게 투여할 백신으로 키워내기 위한 대량 생산이 시작된 것이다.


     

    생산공정 담당자들이 긴장된 얼굴로 제어실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수천~수만 L 크기의 대형 설비에서 배양 규모를 키우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배양액의 온도, 산소 농도, pH(수소 이온 농도)는 물론 배양액을 섞는 속도와 방식이 모두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는데…” 한 연구원이 나직이 읊조렸다. 세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항원 단백질의 양이 줄거나 품질이 달라질 수도 있다. 


    기술이전이란 백신을 어떻게 만들어야하는지를 백신 개발 기관이 위탁생산업체에 넘겨주는 과정이다. 제조 레시피 전체를 생산시설로 옮기는 일이다. 생산시설은 실험실 규모의 제조법을 실제 공장 시설에서 재현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이후 작은 규모에서 시작해 배양 및 정제 조건 등을 조정하며 스케일업 공정을 검증한다. 스케일업은 백신 후보 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공정 규모를 키우는 과정이다. 이 상무는 백신이 개발된 뒤 실제 생산이 되는데 가장 많은 시간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과정으로 이 스케일업 단계를 꼽았다. “백신의 경우 세포를 통해 생산하므로 미세한 환경 변화에도 생산량 품질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후 공정이 안정화되면 순도와 효능, 오염 여부 등 품질시험이 진행되며 이 기준을 통과해야만 대량 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백신 개발 후 기술이전에 6~9개월가량이 소요된다. 100일 미션에서 백신 제조가 ‘병목’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를 위해 CEPI와 WMFN은 백신 개발뿐만 아니라 공정 개발과 기술 이전 준비를 병행해 기술 이전에 드는 시간을 크게 줄일 계획이다. WMFN는 세포를 배양하고 정제 과정을 거쳐 항원 단백질을 골라낼 뿐만 아니라, 어떤 세포주를 썼는지, 어떤 조건에서 배양했는지 등에 관한 기록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이 자료는 규제기관이 백신의 안전성과 품질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또한 원자재 공급망 관리를 통해 백신 생산이 중단되는 사태도 미리 방지했다. “바이오 제조 공정은 속도와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소모성 원·부자재(제품을 제조할 때 들어가는 모든 원료와 재료)를 많이 사용해요. 일회용 배양백이나 필터, 바이알(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병) 등이죠. 만약 이런 자재들의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백신 생산 자체가 중단됩니다.” 이 상무의 설명은 2020~2021년 실제 인류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백신 후보 물질은 매우 빠르게 찾아냈지만 수억 명 분의 백신을 무균 상태로 생산하고, 바이알로 담아 전 세계로 배송하는 물리적인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죠.”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WNFN은 원·부자재 공급망을 다양화하고 지역화했다. 이 상무는 “다양한 각국의 원·부자재 공급사를 발굴하고, 사전에 품질을 평가 및 검증해 두고, WMFN 인근에 필수 원·부자재 생산 인프라가 함께 조성되는 클러스터 형태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위기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2026년 4~5월, 남대서양을 항해하던 MV 혼디우스호에서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 사건이 발생했다. 한타바이러스의 치명률이 20~35%로 높았음에도 사람 간 전파력이 매우 낮아 팬데믹으로 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MV 혼디우스호 사건은 언제든 새로운 감염병이 세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불안을 일깨웠다.<

     

    D-DAY | 세계 각지로 알약 백신 배달 완료!

     

     

    “어? 백신이 알약이에요?” 백신을 포장하던 직원이 깜짝 놀라 말했다. 질병XYZ를 막는 백신은 알약이다. 그동안 백신 대부분이 주사로 투여할 수 있게 액체 형태로 개발됐던 것과 다르다. 알약 백신은 빠르게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저소득 및 중하위 소득 국가로 이동했다. 고소득 국가에서 백신이 보급되는 시기와 큰 차이가 없다. CEPI와 모든 파트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100일 미션이 해냈다!”

     

    코로나19 백신은 인류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는지 보여줬다. 동시에 세계가 얼마나 불평등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도 보여줬다. 저소득 국가들은 고소득 국가에 비해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이나 늦게 백신을 확보했고 접종 시작 시기도 그만큼 늦어졌다. 고든 브라운 WHO 세계보건자금조달 대사는 2022년, 110억 회분의 백신이 생산됐을 당시 “지금도 전체 백신 생산량의 70% 이상이 G20 국가에 돌아간다. 이는 나머지 175개국은 그냥 소외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팬데믹에서 백신 접근성의 지연은 곧 생명의 격차다. 때문에 100일 미션은 구매력이 큰 곳이 아니라 가장 위험이 큰 곳, 그리고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CEPI는 WMFN을 구축하는 것 외에도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의 백신생산 능력 확보 계획을 추진해 왔을 뿐만 아니라 알약형 백신, 내열성 백신 설계와 같은 혁신적인 기술에도 투자해 왔다. “냉동 보관의 필요성이 없어지면 백신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루세라 이사의 설명이다.

     

    
알약 형태의 백신은 주사기가 필요 없어 접종이 매우 간편하며, 상온 보관 및 운송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액체형 백신의 경우 ‘콜드 체인’이라고 알려진 저온 유통 과정이 필수다. 영하 70°C의 매우 낮은 온도에서 단단한 유리병에 보관하지 않으면 효능이 떨어진다. 때문에 의료 시설이나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에도 보급하기 까다롭다.


     

    가상 시나리오 속 인류는 이렇게 질병 XYZ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게 끝일까? 루세라 이사는 고개를 저었다. 


     

    “감염병은 진화하고 있어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질병뿐 아니라, 우발적이든 고의적으로도 감염병을 만들 수 있습니다. 때문에 CEPI는 계속해서 전략을 고민하고 감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집중해야 하죠. 저는 원래 의사였는데 지금은 CEPI에서 전략 업무를 맡고 있어요. 과학동아 독자들도 전염병 대응책 개발에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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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7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김태희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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