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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D-100 | 미확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라

     

    병원체 확인이 우선이다. 환자의 코와 목에서 채취한 검체, 혈액, 병원 환경 시료가 실험실로 향했다. 시료가 상하지 않도록 극저온 용기에 꽁꽁 포장한 박스 운송 모습은 흡사 스파이 영화를 연상케한다. ‘정확한 유전 정보를 확인하기 전까지 잠은 없다!’ 미생물학, 면역학 연구자들이 비장한 얼굴로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는 작업에 돌입했다.


     정체불명의 병원체가 나타나면 연구자들은 시료 속에서 병원체의 유전물질을 검출·분리해 분석한다. 이후 유전물질을 읽어 염기서열을 확보한다. 또 수많은 짧은 염기 조각을 읽고 겹치는 부분을 이어 붙이면 하나의 긴 유전체로 조립할 수 있다. 이후 국제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병원체가 어느 ‘가문’에 속하는지 살핀다. 가까운 바이러스는 무엇이고, 어떤 계통에 속하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병원체 정보는 백신 개발의 출발점이다. 백신이 겨냥할 항원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항원이란 면역계가 알아봐야 할 병원체의 표식이다. 코로나19에서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대표적인 항원이었다. 병원체의 성질, 필요한 면역 반응에 따라 최적의 백신 플랫폼도 달라진다. 백신 플랫폼이란 병원체의 항원 정보만 바꿔 여러 감염병 백신을 빠르게 설계 및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 기술이다. 


     

     CEPI는 대표적으로 mRNA백신, 바이러스 벡터 백신, 단백질 재조합 백신 플랫폼에 주목한다. mRNA 백신은 항원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mRNA)를 몸에 넣는 방식이다. 바이러스 벡터 백신은 운반용 바이러스에 항원 유전자를 실어 보낸다. 단백질 재조합 백신은 실험실에서 항원 단백질을 만들고 이를 인체에 넣는 방식이다. 


     

    CEPI

    2017년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감염병혁신연합(CEPI)이 출범했다. 노르웨이, 인도 정부와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웰컴 재단, 세계경제포럼이 CEPI 창설에 앞장섰다.

     

    코로나19, 100일 미션이 성공했다면

    감염병혁신연합(CEPI)이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 의뢰한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이 유전자 염기서열 공개 후 100일 이내에 보급됐다면 2021년 말까지 830만 명의 생명을 구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아래 그래프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실제 사망자(연두색)와 100일 미션이 성공적으로 수행됐을 경우의 사망자 수(하늘색)를 나타낸다. 두 선 사이의 색칠된 면적은 100일 미션으로 줄일 수 있던 사망자 수를 국가 소득별로 나눈 것이다. 연구는 특히 저소득 및 중하위소득 국가에서만 약 480만 명의 생명을 구했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자료: CEPI

     

    D-99   정체 분석, 팬데믹 위험이 큰 가문 소속이었다

     

     꼬박 24시간의 분석 끝에 빠르게 결론이 나왔다. Disease XYZ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었다. 연구자들은 숨을 들이켰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변이가 빠르고, 호흡기 전파 가능성이 높다. CEPI와 WHO가 이미 주의 깊게 보던 고위험군 바이러스였다. 적의 정체를 아는 상태에서 백신 개발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CEPI는 치쿤구니야, 코로나바이러스, 에볼라, 라싸열, 엠폭스, 니파바이러스, 리프트밸리열, Disease X를 팬데믹 잠재력이 있는 우선순위 병원체로 보고 대비해 왔다. 이들은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하며, 자연계에 바이러스를 유지하는 숙주나 매개체가 넓게 분포돼 있고, 유전체 변이가 빠르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사람 간 전파에서도 호흡기 비말과 공기 전파가 가능한지 여부가 핵심이다. 
 

     

     시나리오 속 질병 XYZ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란 점은 행운이다. 완전히 모르는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순위 병원체에 속하는 바이러스들은 주요 병원체는 물론 병원체가 속한 바이러스군에 대한 연구가 이미 진행돼 있다. CEPI는 이런 ‘바이러스군 접근법’을 강조해 왔다. 미래 어떤 바이러스가 팬데믹을 일으킬지 정확히 맞출 수 없기에 팬데믹 위험이 큰 바이러스군을 미리 골라, 그 안의 대표 병원체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 연구에는 항원 구조 분석부터 임상시험 방법, 제조 공정 등 백신 개발 전반이 포함된다. 


     

     6월 1일 IVI 본부에서 만난 송만기 과학담당 사무차장은 이런 대비가 “처음부터 0에서 시작하는 것을 막는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백신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었던 것도 메르스바이러스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이 단백질이 바이러스가 세포에 결합하기 전의 형태일 때 병원체를 무력화하는 중화항체를 더 잘 유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즉 주요 바이러스군과 대표 병원체 연구는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 백신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D-90   전 세계 실험실, 백신 개발 시작하다

     


    
세계 여러 연구 기관과 기업에서 백신 후보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러 mRNA 후보, 바이러스 벡터 후보, 단백질 재조합 후보가 설계됐다. 여러 후보 중에서도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각각의 실험실에서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빠르게 하나만 뽑기 어렵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CEPI는 중앙 실험실 네트워크(CLN·Central Laboratory Network)를 구축해 왔다. 전 세계 실험실이 같은 분석법, 같은 기준물질, 같은 평가 기준으로 백신 후보를 비교하도록 하는 체계다. 전 세계 20개 연구 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백신 비교 체계가 잘 잡혀있으니 혼란스러울 필요가 없다. 약 열흘 만에 몇 개의 유망한 후보가 추려졌다.


    한국에는 질병관리청과 한국에 기반을 둔 국제백신연구소(IVI)가 중앙 실험실 네트워크에 소속돼 있다. CEPI 출범부터 함께 했던 것은 아니다. 송 사무차장은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 CEPI가 확보한 임상 분석용 실험법, 특히 중화항체 분석법을 제공받지 못해 한국 백신 개발이 크게 늦어졌던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백신을 개발하려면 임상시험 참가자의 혈액을 분석해 중화항체가 얼마나 생겼는지, 면역반응이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해야 한다. 이 측정 방법을 ‘어세이’라고 부른다. 백신 허가 자료에 쓰이는 어세이를 만드는 데 통상 1년 이상이 소요된다. “한국에선 임상 분석을 수행할 곳이 거의 없어 보통 해외 기관에 의뢰하는데, 당시엔 전 세계에서 수요가 몰려 분석을 맡기기 어려웠죠.”


     

    중앙 실험실 네트워크 내에선 여러 병원체에 대한 검증된 분석법, 표준물질, 기술을 공유한다. 또한 각 기관은 중요 병원체에 대한 분석법 개발에 기여할 수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중앙 실험실은 후보 백신이 어떤 면역반응을 일으키는지를 중심으로 살핀다. 바이러스를 막는 중화항체가 생기는지부터 항원에 잘 달라붙는 결합항체가 생기는지, 감염된 세포를 제거하는 T세포 반응이 유도되는지, 면역반응이 얼마나 강하고 오래가는지 등을 평가한다.


     

    실험 결과만으로 백신을 선택할 순 없다. 중화항체가 높다고 반드시 사람에게서 감염 효과가 높다는 뜻이 아니며, 나타난 면역반응이 실제 보호 효과와 연결되는지 모르기도 한다. 때문에 네트워크 내 비교 분석은 유망한 백신 후보를 빠르게 좁히는 역할이다. 
 

     

    D-80   임상시험과 규제 검토가 동시에 진행되다

     

     

    “어서 오세요. 여러분이 지금 맞을 주사에 세계의 명운이 걸려 있습니다.” 세계 곳곳의 병원이 임상시험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임상시험은 참가자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발열·통증 같은 이상 반응과 더 심각한 안전성 신호를 확인하는 단계다. 또한 시험 참가자들의 혈액 시료를 채취해 다시 표준화 실험실로 보낸다. 항체가 생겼는지 T세포 반응이 나타나는지를 분석하기 위함이다. 


     

    임상시험은 사람에게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충분히 쌓여야 해 오래 걸린다. 참가자를 모집하고, 동의를 받고, 여러 연령과 지역 및 기저질환 집단을 포함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후보 백신이 개발된 지 채 10일도 안 돼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표준 프로토콜, 윤리심의 절차, 대상자 모집 체계, 데이터 관리 체계를 준비해 놓은 덕분이다. 또한 보통 백신 개발에서는 전임상, 임상, 제조자료, 품질자료가 차례대로 쌓인 뒤 규제기관이 검토한다. 팬데믹에서는 이 순서가 백신 개발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 이에 CEPI는 각국의 규제기관, WHO, 백신 개발사 등이 어떤 자료가 필요하고 또 어떤 기준으로 검토할지에 관해 논의해 두었다.


     

    “2020년 코로나19를 계기로 전염병 진단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배웠어요.” 루세라 이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났을 때 병원체를 빨리 찾아내고 이름 붙이는 것만으로는 팬데믹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전 세계 규제 당국과 협력하고, 백신을 제조할 수 있는 환경을 미리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백신에 대한 신뢰 문제도 중요하다. 코로나19 당시 327일 만에 백신이 개발됐다. 유례없던 백신 개발 속도에 일부 사람들은 ‘너무 빨리 개발됐다’는 이유로 접종을 꺼렸다. CEPI의 100일 미션에서도 같은 우려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루세라 이사는 “100일 미션이 안전성 검증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규제 검토에서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해 두고, 위기 때 병렬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 불필요한 지연을 줄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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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김태희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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