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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 얼음은 왜 뜰까? 물, 4℃에서 가장 무거운 이유 밝혀지다

    GIB, AI 생성 이미지(챗GPT)

     

    시원한 콜라 잔 위에 둥둥 뜬 얼음을 보면서 물의 특성을 궁금해 본 사람? 거의 없겠지만 사실 콜라 잔은 물의 신기한 특성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대부분의 물질은 고체일 때의 밀도가 액체일 때보다 높은데, 물은 반대여서 얼음이 물 위에 뜬다. 심지어 물이 가장 무거운 온도는 0℃나 100℃가 아닌 약 4℃ 근처다. 왜 4℃일까. 50년 동안 풀리지 않던 물의 미스터리를 최근에 밝혀낸 김경환 POSTECH 화학과 교수를 만나 물어봤다.

     

    Shutterstock

     

    겨울에도 어류가 살 수 있는 4℃의 마법


    대개 액체는 차가워질수록 무거워진다. 화학적으로 생각하면 쉽다. 온도가 낮으면 액체 분자의 운동이 느려지고, 그러면 분자 사이 거리가 가까워져 밀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물은 예외다. 물은 얼기 직전의 0℃ 근처가 아니라 3.98℃에서 가장 무거워진다. 온도가 낮아지면 3.98℃가 될 때까지 무거워지다가, 3.98℃보다 차가워지면 다시 가벼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얼음이 되면 물보다 밀도가 낮아져 물 위에 뜬다(앞으로 본문에서는 약 4℃로 통칭하겠다).


    이 특성이 예상 밖의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겨울에도 물속 생명들이 살게 해 준 것이다. 기온이 떨어져 강물이 얼기 시작하면 얼음이 위로 뜨고, 4℃ 근방의 물은 깊은 곳에 얼지 않고 머무른다. 덕분에 물속 생명체들은 얼지 않고 얼음 아래서 살아간다. 이외에도 물은 나머지 액체와 다른 특성이 많다. 분자량이 비슷한 다른 물질(암모니아, 메테인)에 비해 물은 끓는점이 특히 높아서 액체로 존재하는 온도 범위가 넓다. 또 물질의 온도를 올리는 데 필요한 열에너지, 즉 비열이 가장 높은 액체이기도 하다.


    예외적인 특성이 많다 보니 물리화학자들은 물을 ‘가장 특이한 물질’이라 부른다. “초전도체처럼 구조가 특이한 것도 아니에요. 수소 둘, 산소 하나뿐이죠. 이렇게 단순한 물질이 특이하다는 점이 불가사의예요.” 4월 27일 POSTECH에서 만난 김경환 화학과 교수의 대답이다. 그렇다면 물이 가장 무거운 온도는 왜 하필 4℃일까. 3월 26일, 김 교수팀이 그 증거를 찾아냈다. doi: 10.1126/science.aec0018
    50년 묵은 논쟁, 해결의 기미가 보이다


    김 교수는 ‘액체-액체 임계점(LLCP)’ 이론에 주목했다. LLCP 이론은 1992년 미국 보스턴대 물리학과 연구팀이 처음 제시한 가설이다. 그들은 물에는 고밀도 물과 저밀도 물의 두 상태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밀도 물과 저밀도 물은 ‘수소결합’ 여부로 구분된다. 먼저 물이 차가워지면 분자 운동이 느려져 분자 사이 거리가 좁아지면서 밀도가 높은 고밀도 물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분자 사이 거리가 더 가까워지면 서로 다른 물 분자의 산소와 수소 원자가 서로의 전기적 인력에 이끌리는 수소결합을 형성한다. 수소결합이 형성되면 물 분자들은 그물처럼 연결돼 분자 사이 빈 공간이 생기고 전체적인 밀도는 낮아진다. 저밀도 물은 이러한 수소결합이 낮은 온도에서 강하게 형성된 상태다. 얼음이 물에 뜨는 이유도 수소결합 때문에 얼음의 밀도가 액체 상태 물보다 낮기 때문이다. 수소결합이 거의 생기지 않으면 고밀도 물,  수소결합이 강하게 생기면 저밀도 물이 되는 것이다.


    LLCP 가설은 4℃ 물의 비밀을 임계점 밑에서 두 상태의 물이 분리돼 있다가, 임계점을 넘으면 하나로 뒤섞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두 상태의 물이 공존한다면, 물이 차가워질 때 고밀도 물 분자가 서로 가까워지려는 효과와, 저밀도 물 분자가 서로 멀어지려는 효과가 경쟁하게 된다. 두 효과의 타협점이 4℃다. 수소결합이 최소로 생기면서 분자 운동도 적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물분자들 사이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온도가 바로 4℃라는 것이다.


    LLCP가 맞냐 틀리냐, 지난 50년간 물리화학계 연구자들은 이 주제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논쟁이 길어진 것은 LLCP의 증거를 실험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탓이다. 물이 두 가지 액체상으로 존재하는지 확인하려면, 0℃는 물론 임계점보다 낮은, 아주 차가운 온도에서 물이 얼기 전의 상태를 순간적으로 포착해야 한다. 그런데 물은 온도가 낮아질수록 더 빠르게 얼어붙는다. 과학자들이 제출한 증거는 컴퓨터로 진행한 가상 실험뿐이었다. “영하 42℃ 이하 물은 ‘무인지대(No-Man’s Land)’라고 불릴 정도였어요. 그렇게 차가운 물을 액체 상태로 포착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김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김 교수는 본인의 주 연구 분야이던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하면 무인지대를 포착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방사광가속기는 X선으로 시료를 관측하는 장비다. 레이저로 얼음을 5ns(나노초·10억 분의 1초) 동안 녹여 놓고 물이 다시 얼어붙기 직전에 X선으로 빠르게 물을 찍었다. “3세대를 넘어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나오면서 더 밝은 빛을 만들고, 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어요. 장비의 발전으로 물이 얼기 직전, 찰나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게 됐죠.”


    2017년 연구팀은 처음으로 영하 45℃의 얼지 않은 물을 포착했다. doi: 10.1126/science.aap8269 2020년에는 영하 70℃에서 물이 고밀도와 저밀도, 두 액체상으로 존재하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doi: 10.1126/science.abb9385 그리고 3월 26일, 안데르스 닐슨 스웨덴 스톡홀름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과 마침내 LLCP의 임계점을 찾아내 발표했다. doi: 10.1126/science.aec0018 10년간의 연구 끝에 물의 비밀을 밝혀낸 순간이다.


    LLCP의 임계점은 영하 60℃에 압력 1002bar(바·0.99atm) 조건이었다. 물은 고밀도와 저밀도 상태로 분리돼 있다가 임계점의 온도와 압력을 넘어서면 두 상의 구분이 사라진다. 임계점을 넘어선 이 상태를 ‘초임계유체’라고 부른다. 약 25℃인 상온에서 물은 고밀도, 저밀도 구분이 사라진 초임계유체다. 상온에서 보지 못한 물의 두 얼굴을 드디어 마주한 셈이다.

     

    초저온 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영하 60℃보다 낮은 초저온에서 물은 두 가지 상태로 분리돼 존재한다. 이른바 저밀도 물과 고밀도 물이다. 이를 설명하는 가설이 ‘액체-액체 임계점(LLCP)’ 이론이다. 

     

    Shuttterstock, AI 생성 이미지(챗GPT)

     

    물 분자 사이를 이어주는 수소결합
    물은 산소 원자 1개와 수소 원자 2개가 104.5도 굽은 모양으로 결합해 전하가 산소 쪽에 치우쳐 있다. 이때 수소 쪽은 부분적으로 양전하를 띠게 된다. 양전하를 띤 수소는,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인 전기음성도가 큰 (다른 분자의)산소에 끌리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인력이 수소결합이다.

     

    저밀도와 고밀도 물, 4℃에서 비율 뒤바뀐다

    물이 냉각될 때는 두 효과가 경쟁한다. 하나는 온도가 낮아지면서 분자 운동이 느려지고 분자 사이 거리가 가까워져 물의 밀도가 높아지는 효과다. 다른 하나는 수소결합을 이루는 저밀도 물의 비율이 증가하는 효과다. 
    4℃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분자 운동이 느려지는 효과가 더 크다. 그래서 온도가 낮아질수록 물의 밀도가 증가한다. 
    하지만 4℃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수소결합이 만들어져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진다. 그래서 온도가 낮아질수록 물의 밀도가 감소한다. 
    따라서 두 효과의 균형이 바뀌면서 가장 물이 무거운 온도는 상압 기준 4℃다.   

     

    초저온 상태 물을 순간 포착하는 방법 

    김경환 POSTECH 교수팀은 ‘4세대 방사광가속기’로 초저온 물이 얼어붙기 직전, 찰나의 순간을 포착했다. 방사광가속기는 X선으로 시료를 관측하는 장비다.

     

    POSTECH

     

    두 가지 물이 뒤섞이는 장면

    연구팀은 방사광가속기 실험 전, 물이 임계점 이하일 때부터 임계점을 넘어설 때까지 어떻게 상이 바뀌는지 시뮬레이션했다. 노란 부분이 고밀도 물, 파란 부분이 저밀도 물이다. 임계점인 영하 60℃ 부근을 지나면 두 물이 뒤섞인다. 이후 방사광가속기 관측을 통해 이 현상이 실제로 일어남을 확인했다.

     

    Science


    물과 생명체, 필수불가결인 관계의 시작을 찾아서


    물이 상온에서 초임계유체임을 증명함으로써 물이 4℃에서 가장 무거운 이유는 물론, 물의 다른 특이한 성질들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물의 비열이 임계점에서 급격히 상승한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두 상태의 물이 섞여 초임계유체로 변화하는 임계점에 다다를 때, 물의 구조를 재배치하는 데 내부적으로 열이 소모됐다. 그러면서 물의 열용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김 교수는 “물이 생명체에 필요한 추가적 이유를 밝혀내는 데 이번 연구가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이 왜 이토록 특이한지 그 바탕 이론이 정립된 것만으로도 생명의 근원, 물의 근원을 밝힐 때 더 빠른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거예요. 물에 관한 다양한 이론을 일일이 고려할 필요가 없어졌죠.” 김 교수팀은 생명체와 물의 상호작용을 밝혀내기 위해 물 분자의 진동 양상 등 조건을 바꿔 나가며 물 분자가 단백질 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고 있다. 


    “물이 생명체에 필수적인 물질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생명체가 세상의 수많은 물질 가운데 하필 가장 특이한 물질인 물을 필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물의 특이한 성질은 생명의 탄생과 진화에 깊이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물의 특이성과 필수성, 둘 사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밝혀내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물의 임계점을 찾아낸 이번 연구가 LLCP 논쟁의 완벽한 종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물의 임계점이 영하 60℃ 부근이라는 점은 알아냈지만, 물 분자가 임계 현상을 유지하는 모습은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팀은 임계 현상을 유지하는 온도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갈릴레오가 금성의 위상 변화 등을 망원경으로 관측해 지동설을 주장할 때 천동설을 주장하던 학자들은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더 명확한 증거를 요구했지요. LLCP 역시 마찬가지예요. 임계점 자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반박하는 사람이 많겠죠. 백만 분의 1초 단위로 물이 얼어붙어버리는 온도이기 때문에 포착이 쉽지 않아요. 평생 LLCP가 아닌 다른 이론을 믿어온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아주 긴 증명의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POSTECH

    김경환 POSTECH 화학과 교수(가운데)와 연구원들이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앞에 두고 실험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김 교수팀은 앞으로도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물의 특성을 연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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