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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티, 외계인과의 ‘콘택트’에 도전

인공 전파와 빛 잡는 망원경, 지구 곳곳서 동원

1997년 개봉한 미국영화 ‘콘택트’에는 지구 바깥에서 날아오는 전파를 수신해 외계인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천문학자 엘리 애로웨이(조디 포스터 분)는 바로 이 같은 연구를 주도하는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다. ‘돈만 낭비하는 허황된 연구’라는 비난에도 애로웨이 박사는 흔들리지 않는다. 결국 그는 직녀성에서 온 전파를 잡아내고, 여기서 뽑아낸 설계도로 지구와 외계를 순식간에 오가는 운송 장치를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외계생명체가 쏜 전파를 포착하려는 연구가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황당할 법도 한 이 연구가 과학계에선 50년째 지속되고 있다. 바로 ‘외계 지적생명체 탐색계획’으로 불리는 ‘세티(SETI) 프로젝트’다. 미국의 과학자 프랭크 드레이크가 제창해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세티는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 과학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주제가 됐다. 현재 미국 세티 연구소,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와 호주 웨스턴시드니대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 중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한국도 독자적인 세티 연구에 나설 계획이다.

 


외계인도 전파로 통신할 가능성



과학자들이 고도의 기술문명을 지닌 외계인의 증거를 전파의 유무(有無)에서 찾으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생물이나 동물이 아닌,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문명을 가진 외계인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통신을 할 테고, 이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행성 밖으로 튀어나가는 전파를 만들 거라는 전제 때문이다. 실제로 지구인도 전파를 소통 수단으로 쓰기 때문에 우주 공간을 향해 ‘본의 아니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외계인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전 세계 세티 연구의 중심 격인 미국 세티 연구소의 프랭크 드레이크 박사는 이 같은 가능성을 확인하려고 도전한 첫 인물이다. 세티 연구의 대부인 드레이크 박사는 1960년대 초반 자신이 소속돼 있던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그린뱅크 전파천문대를 색다르게 이용할 수 있는 제안을 내놓았다. 바로 특정 별에 지름 26m짜리 안테나의 초점을 맞춰 지적 능력을 지닌 외계인의 흔적을 잡아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는 이 연구에 동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이름을 딴 ‘오즈마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인다. 세티 연구의 시작이었다.

물론 이 연구는 실패했다. 단 몇 주간 이어진 연구로 지적 능력을 가진 외계인을 찾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도는 외계인을 찾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으로 기록됐다. 이후 50년 동안 이어진 세티 연구의 주된 방법은 드레이크 박사가 했던 것처럼 외계에서 날아오는 전파를 잡아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와우 신호’ 재현 안 돼

그렇다면 지구인들은 외계인의 전파를 잡아낸 적이 있을까. 애석하지만 없다. 엄밀히 말하면 ‘이상 전파’를 포착한 적은 있지만 그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한 적은 없다. 과학적 사실이라면 반복적인 검증에서도 동일한 결과물이 관찰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게 지금까지 세티 연구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에는 ‘실패’로 밀어 놓기에는 분명히 특별했던 징후가 있었다. 1977년 8월 15일 미국의 ‘빅 이어 전파망원경’에 수신된 데이터를 검토하던 천문학자 제리 에흐먼은 72초간 지속된 강력한 신호를 발견했다. 천체에서 일반적으로 흘러나오는 전파와는 너무도 다른 이 신호에 흥분한 그는 데이터가 적힌 인쇄용지 한쪽에 ‘와우!(Wow!)’라는 감탄사를 써 넣었다.

지금도 세티 연구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와우 신호’다. 와우 신호는 세티 연구의 중요한 성과물로 알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 전파는 다시 관측되지 않았다. 와우 신호가 발견된 직후 빅 이어 망원경의 다른 장비로 동일한 구역을 훑었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미국과 호주에 있는 전파망원경을 통해서도 수색 작업이 이뤄졌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미국 세티 연구소의 세스 쇼스타크 박사는 그의 책 ‘우주생명 이야기(Cosmic Company-The Search for Life in the Universe)’에서 “와우 신호가 SF와 인터넷 채팅의 주제가 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혹시 외계인들이 지구를 향해 드리우던 전파를 마침 지구인이 재차 관측을 시작할 때 걷어간 건 아닐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 또한 추측이다. 명백한 증거가 없긴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외계인 행성 100만 개 가능성도

그렇다면 외계인을 찾는 일은 허황된 일일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우선 확률적으로 봤을 때 우주에는 아주 많은 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하 중심부엔 지름이 1만 6000광년에 이르는 공 형태의 별 집단이 있다. 그 주위를 나선 모양으로 또 다른 별 집단이 감싸고 있다. 나선 팔을 포함한 은하 원반은 지름이 9만 8000광년, 두께는 3광년에 이른다. 우리은하에 속한 별 개수는 수천억 개, 여기에 딸린 행성까지 합치면 천체 수는 훨씬 많아질 것으로 과학계는 보고 있다.

드레이크 박사는 이 가운데 우리은하 안에서 외부에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문명체 수를 계산하는 방정식을 고안했다. 바로 ‘드레이크 방정식’이다. 1961년 제기된 드레이크 방정식은 외계인과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논의하는 유용한 틀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통신이 가능한 지적 문명체의 수를 계산하는 변수는 모두 7개다. 즉 생명체가 거주 가능한 행성을 거느릴 수 있는 항성의 연중 생성률, 항성들이 행성을 갖고 있을 확률, 항성계당 거주 가능한 행성과 위성의 평균 수,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행성에서 실제 생명체가 나타날 확률, 생명체가 지적 문명을 발달시킬 가능성, 지적 생명체가 통신 기술을 갖고 있을 확률, 기술 문명의 수명이다. 이들을 모두 곱한 값이 우리은하 내 지적 문명체의 수다.

현재 과학계에선 거주 가능한 행성을 거느릴 수 있는 항성이 매년 10개 정도 탄생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은하 안에 있는 수천억 개의 항성과 130억 년으로 추산되는 우리은하 나이를 거꾸로 되짚어 얻은 결과다.

항성들이 행성을 갖고 있을 확률은 0.1 정도로 과학계는 내다본다. 그동안 우주를 관찰한 결과 얻은 대략적인 값이다. 항성계당 거주 가능한 행성과 위성탄생할 조건에서 실제 생명체가 나타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지구의 경우를 볼 때 100%에 가깝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문제는 지적 생명체가 나타날지, 그리고 이들이 통신 기술을 갖고 있을지다. 이는 학자들에 따라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사항들을 지구에 기대 추론할 경우 각 값들은 1에 가깝다.

기술 문명은 치명적인 무기가 생산될 가능성이 높은 초기 1세기를 지나면서 안정화돼 수만 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과학자들은 전망한다.





이를 바탕으로 ‘콘택트’의 원저자인 칼 세이건은 통신할 수 있는 지적 생명체가 사는 천체를 100만 개로 내다봤다. 반면 드레이크 자신은 그 숫자를 1만 개로 추산했다. ‘우주생명 이야기’에 따르면 별 100만 개에 외계인이 살 경우 일부 별은 지구에서 100광년 안쪽에 존재한다. 외계인의 신호를 포착하는 게 허무맹랑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빛으로 외계인 흔적 잡는다.

최근 들어 세티는 변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전파에서 가시광선으로 관찰의 영역을 넓힌 대목이다. 자연적인 현상과 구분되는 강력한 빛이 짧은 주기로 번쩍이는 현상이 발견된다면 이는 외계인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과학정보사이트 익사이트 닷컴에 따르면 2001년 세티 연구소,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등의 연구진은 약 1000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보낸 빛을 포착할 수 있는 망원경을 가동했다. 보도에 따르면 드레이크 박사는 빛 자체에 복잡한 정보를 싣지는 않더라도 번쩍이는 주기를 활용해 의사를 전달하려는 외계인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존에 사용되던 전파망원경의 성능도 좋아지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세티 연구인 피닉스 프로젝트에서는 지구와 가까운 항성계 1000개를 조사하고 있다. 대개 200광년 안쪽에 있는 천체가 대상이다. 1960년대 드레이크 박사는 겨우 수 광년 떨어진 항성 2개를 조사하는 것으로 세티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의 범위가 일취월장한 셈이다.

세티 연구소는 최근 ‘앨런 망원경 배열(ATA)’이라는 새로운 망원경 집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종합 용도의 전파망원경을 잠시 빌려 썼던 지금까지의 모든 세티 연구 방식에서 벗어나 가동 시간의 전부를 세티 연구에 할애한다. 게다가 안테나 지름이 6m인 42대의 안테나는 다양한 천체를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 당연히 대형 안테나 1개에 의존하는 관측보다 효율이 높다.

세티 연구소는 ATA에 속한 전파망원경을 350대까지 늘릴 방침이다. 이 작업에는 총 2600만 달러(300억 원)가 들 것으로 세티 연구소는 보고 있다. ‘앨런 망원경 배열’이라는 명칭은 이 계획에 거액을 내놓기로 한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세티 연구자들은 “외계인을 찾으려는 노력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콜럼버스가 출항한 지 몇 주 만에 되돌아갔다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처럼 세티 연구자들은 아직 할 일이 많다는 얘기다. 

 

# 외계신호 포착되면‘종교 논쟁’가능성

세티는 기본적으로 우주에 관한 연구다. 하지만 아폴로 계획처럼 ‘정복’을 테마로 삼지 않는다. 세티는 ‘관찰’을 고수한다. 현재 각국이 추진하는 우주계획이 자원 전쟁의 전초전 양상을 띠고 있는 건 세티와의 극명한 차이점이다. 지구에서 유용한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는 ‘헬륨3’을 달에서 퍼오거나 월면에 상주기지를 만들려는 계획에 각국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결국 우주를 언젠가는 개척해야 할 공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티는 특정 천체에서 날아오는 전파에 관심을 둘 뿐 인위적인 행동을 취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얌전한’ 것처럼 보이는 이 연구에 잠재적인 폭발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세티는 과학적으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 만약 지구인 외에 지적 능력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이는 우리의 인식 틀 자체를 바꿀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선 신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던 많은 종교들은 어떤 식으로든 외계인이라는 새로운 상대를 ‘교통 정리’해야 할 수밖에 없다. 신과 외계인, 외계인과 인간의 관계에 관해 거센 논쟁이 일어날 것이다.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세티 연구소의 수석 천문학자인 세스 쇼스타크 박사는 자신이 집필해 국내에도 소개된 책인 ‘우주생명 이야기’에서 “수준 높은 기술문명을 이룬 사회가 자기파괴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간은 라디오로 첫 전파를 쏘아올린 지 10여 년 만에 원자폭탄을 제조했다. 지금은 지구 전체가 절멸할 정도의 무기를 쌓아두고 있다. 인간이 본격적인 기술 문명을 지닌 지 1세기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계인은 인간보다 훨씬 나은 문명 속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외계인이 지구인에게 전파를 보냈다면 이는 우리에게도 ‘생존의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가 된다는 뜻이다.

글 이정호 기자 sunrise@donga.com

 

# 미국 세티 연구소의 수석 천문학자 세스 쇼스타크 박사에게 듣다





"미국 세티 연구의 원동력은 민간펀드"

“미국인들에게‘세티 연구에 쓰겠으니 5센트씩 기부하겠느냐’고 하면 대부분 ‘OK’라고 할 겁니다. 그것이 세티 연구가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이죠.”

지난 10월 15일 대전 국제우주대회 행사장에서 만난 미국 세티 연구소의 수석 천문학자 세스 쇼스타크 박사는 1990년대 초반 정부 지원이 끊긴 뒤에도 세티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를 이 같이 설명했다. 쇼스타크 박사는 프랭크 드레이크 박사, 질 타터 박사와 함께 세계 최고의 세티 연구기관인 미국 세티 연구소를 이끄는 핵심 인물이다. 대전에서 열린 국제우주대회에 연사로 참가한 그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세티의 최신 흐름을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현재 세티는 민간 펀드를 통해 마련한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쇼스타크 박사에 따르면 펀드 조성에는 대부분 개인들이 참여한다. HP와 같은 일부 거대 정보기술 기업의 간부들도 사재를 털어 재원 마련에 한몫하고 있다고 쇼스타크 박사는 말했다. 이렇게 해서 세티 연구소에 주어지는 액수는 연간 300만 달러(35억 원) 정도다.

세티는 1960년대 이후 줄곧 ‘돈을 낭비하는 대표적인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태생적으로 국가 위신이나 자원 확보와 같은 정치·경제적 이득을 얻는 일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93년 미국 의회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통한 지원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쇼스타크 박사는 “당시 결정은 충격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운영비가 끊기는 것은 물론 국가 소속의 망원경을 사용하는 일도 힘들어졌다. 하지만 미국인 특유의 프런티어(개척자) 문화가 죽어가는 세티 연구를 살렸다고 쇼스타크 박사는 지적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영웅을 탄생시키는 일에 큰 관심을 둔다”며 “위험과 실패를 감수하는 사람에 대한 우호적인 문화가 세티를 지원하는 민간 펀드를 성공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쇼스타크 박사는 일반인들이 세티에 관해 갖는 궁금증에 대해서도 답했다. 그는 “전파를 잡아내려는 지금의 세티가 연구 대상을 헛짚은 것 아니냐는 e메일을 자주 받는다”며 “물론 문명이 발달한 외계인이라면 전파가 아닌 다른 소통 수단을 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단 전파는 우리가 상상하는 한 가장 유력한 소통 수단”이라며 “외계인들의 정확한 소통 수단을 모르는 현 시점에서 전파는 가장 합리적인 측정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쇼스타크 박사에 따르면 인류는 1974년 지구의 문명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담은 전파를 헤르쿨레스자리에 있는 구상성단 ‘M13’에 보내기도 했다. 지구에서의 거리는 2만 5000광년. 전파를 받기만 하던 자세에서 보내는 쪽으로 능동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이후에도 이같은 시도는 10여 차례 이어졌다.

쇼스타크 박사는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연구자들이 매우 젊다는 점을 발견했다”며 “앞으로 한국에서 이 연구가 더욱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글 대전=이정호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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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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