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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와 중국 허셰, 누가 더 좋을까

고속철도가 시속 300km로 달리는 이유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속철도를 개통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이 열차로 세계에서 가장 긴 베이징-상하이 구간을 5시간 안에 달린다고 한다. 한국의 고속철도 기술이 중국에 뒤쳐진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들린다. 하지만 정말일까. 가장 빠른 열차가 가장 좋은 열차일까.



지난 6월 27일 중국 정부는 새롭게 ‘징후 고속철도’를 개통했다.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거리로 서울-부산의 3배에 육박하는 1318km다.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철도 구간이다. 징후 고속철도에 투입된 ‘허셰(CRH380)’ 열차는 이 거리를 다섯 시간 안에 주파한다. 열차의 최대 운행속도는 시속 350km로, 한국의 KTX에 비해 40~50km 정도 빠르다. 중국 정부는 이날 “중국 고속철도가 세계 최고”라고 자랑했다.

개통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중국 고속철도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수차례 일어난 운행정지 사고 때문이다. 결국 중국 정부는 운행속도를 시속 350km에서 300km로 낮췄다. 전문가는 ‘최고속’이란 말을 쓰기 위해 억지로 성능을 높인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최고 속도를 억지로 높이는 일이 가능할까.

KTX가 시속 300km 인 이유

고속철도와 일반철도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구분하라면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김영국 한국 철도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보통 시속 200km를 기준으로 그보다 빠르면 고속철도, 낮으면 일반 철도로 본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속도를 높이다 보면 조금씩 구조나 설계가 달라지는 부분이 있지만 기술체계가 다르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고속철도는 열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일반열차가 자연스럽게 ‘업그레이드’한 것이지 전혀 다른 기술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고속철도의 속도경쟁은 1964년 일본이 도쿄-신오사카 구간에 개통한 신칸센이 세계 최초로 시속 210km를 기록하면서 급속도로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현재는 시속 300km의 고속철도를 운행하는 나라가 많다. 시험운영 과정에서 시속 300km를 훌쩍 넘긴 열차도 꽤 있다. 1972년 프랑스가 시속 318km를 기록한 데 이어 1981년에는 380km를 기록했다. 한국형 고속철도인 KTX-2는 2005년 시속 350km를 기록했다.

중국의 허셰도 2010년 12월 시험운행 과정에선 최고 시속 486.1km을 기록했다. 중국 관계자 중에는 “최고 속도 기록을 갱신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세계 최고 속도는 프랑스가 1990년 5월에 기록한 시속 515.3km다. ‘작정하고’ 달리면 시속 400~500km를 내는 건 어렵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2011년 현재, 모든 나라가 고속철도를 시속 300km 내외로 운행하고 있다. 이 속도가 안전속도의 상한선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열차는 쇠로 만든 바퀴를 쇠로 만든 선로 위에 굴려 앞으로 나아간다. ‘휠온레일(Wheel on Rail)’ 방식이라고 부른다. 바퀴가 굴러가려면 땅과 달라붙는 마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철도는 시속 300km를 넘어서면 마찰력 지수가 0.08~0.1까지 떨어진다. 자동차로 얼음판 위를 달리는 것보다 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여기서 속도를 더 올리면 열차 바퀴가 선로에 ‘붙질’ 못하고 헛돌 수 있다. 바퀴가 헛돌면 철이 철 위를 미끄러져 나가는 상태가 되므로 바퀴나 선로가 깎여 나가는 원인이 된다. ‘플랫’이라고 부르는 현상으로 이 현상이 누적되면 열차바퀴나 선로가 계속 손상되고, 심각해지면 탈선으로 이어진다.

이런 문제 때문에 철도 전문가들은 승객이 탄 상태에서 안전하게 운행이 가능한 최대 속도를 시속 330km 정도로 보고 있다. 300km도 이미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기술개발로 최고 속도는 앞으로 점점 올라가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시속 350~380km를 계속 달리는 것은 어렵다. 중국 철도부의 전 과기사 사장인 저우이민 씨는 “일본과 독일의 고속철 차량도 실험실에서는 시속 40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지만 실제 운행할 때는 시속 300㎞로 운행한다”며 “중국은 이 차량을 도입한 뒤 안전 여유 속도를 줄여 시속 350㎞의 신형 차량을 만든 것처럼 선전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허셰호의 원형은 일본 신칸센과 독일의 이체에(ICE)3라서 기본 성능 역시 두 열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열차보다 중요한 건 선로

국내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 때문에 중국의 350km 운행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속도보다는 안전하고 정확한 운행 시스템을 개발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속열차의 속도를 결정짓는 것은 기관차의 출력만이 아니다. 열차 속도는 선로의 상태, 직진성, 신호체계, 중간 경유역의 숫자, 전력 공급선, 운행 열차간의 간격 조절, 통제시스템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 중 한 가지만 빠져도 고속운행이 불가능하다. 만약 이런 문제를 모두 무시하고, 베이징-상하이 구간만큼 긴 직선거리에서 속도 테스트를 한다면 KTX-산천의 최고 속도도 지금보다는 훨씬 빨라질 것이다.

여러 조건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선로다. 우리나라의 열차용 선로 폭은 1.435m로 일정하다. KTX건, 새마을호나 무궁화호건 모두 같은 폭의 선로를 쓴다. 따라서 어떤 열차도 노선에 구분 없이 운행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선로에 서는 제 속도를 낼 수 없는 게 문제다. 국내 철도는 시속 300km로 설계돼 있는 고속철도 구간, 200km 속도를 낼 수 있는 1급선, 150km의 2급선, 120km의 3급선, 70km의 4급선으로 나뉜다. KTX도 4급선 위에서는 시속 70km밖에 운행하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훨씬 우수한 초고속 열차가 등장해도 국내에서 운행할 수 있는 최대 속도는 KTX의 300km가 한계다. 반면 저속으로 달리게 만든 무궁화호를 고속철도 구간에 올려 둔다면 평상시 속도보다 ‘약간’ 과속해도 큰 문제가 없다.

물론 철도 구간마다 기술적인 차이가 있고, 고속철도는 고속철도에 적합한 설계가 뒤따른다(과학동아 2009년 6월호 참조). 고속철도와 1~4급선을 나누는 결정적인 기준은 무엇보다 선로의 ‘최소곡선반경’과 ‘최대기울기값’이다. 얼마나 휘어 있고, 얼마나 기울어져 있냐는 것이다. 결국 산이나 호수를 돌아 굽이굽이 만든 철도는 저속형, 일직선으로 달릴 수 있도록 만든 직진성이 높은 철도가 고속철도 용이다.

그래서 KTX가 다니는 구간은 중간에 산이 있으면 터널을 만들고, 강이나 하천을 만나면 교량을 놓는다. 안정적인 고속철도 구간은 국가적인 토목공사 실력과 연결된다. 이런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 정상급 실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 징후 고속철도 노반 조성 및 철로 부설의 50% 이상을 맡고 있는 중궈톄젠(中國鐵建)의 첸구이린(錢桂林) 기업문화부 부장은 동아일보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2005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자갈을 쓰지 않는 노반 조성은 한국이 개발한 것을 배워온 것”이라며 한국의 고속철도 기술을 칭찬했다.



시스템 갖춰야 안정적 운행 가능

열차의 전력공급 시스템도 중요하다.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는 모두 디젤 엔진을 사용하지만 KTX는 전기모터를 쓴다. 대량의 전기를 끌어 오기 위해 열차 위쪽으로 전기 공급선을 설치한다. KTX 구간으로 일반 열차가 다닐 수 있지만, KTX가 2, 3, 4급선을 다니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 지하철이나 KTX 위쪽으로 번쩍번쩍 하며 불꽃이 튀기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팬터그래프’라는 전류를 공급받는 장치가 전선과 떨어졌다가 붙으며 생기는 현상이다. 팬터그래프는 스프링 장치를 써서 전류공급장치가 항상 전선과 맞닿아 있도록 만든다. 김영국 연구원은 “흔들림이 많은 고속 열차에서 팬터그래프가 항상 제 기능을 한다고 말하긴 어렵다”며 “팬터그래프 때문에 열차의 최대 속도에서 70% 정도를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개념의 팬터그래프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는 한, 시속 400km로 달리게 설계된 열차라도 280km 정도로 운행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필요한 운영 시스템은 많다. 기관사가 없는 무인운행 시스템을 만들어 최적의 운행 시간표를 짜면 선행 열차가 노선에서 빠져 나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다. 역에서 정차시간도 최소로 줄일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은 운행속도 자체를 높이지 못해도 상대적으로 속도가 올라가는 결과를 낳는다. 철저한 점검, 승무원의 안전교육, 플랫폼의 효율적인 운영, 신호기의 운영 같은 안전시스템도 신뢰성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하다.



 
[열차가 전력을 공급받는 장치인 ‘팬터그래프’의 모습. 팬터그래프는 크기가 늘어났다가 줄어들며 항상 전선과 맞닿아 있도록 만든다. 팬터그래프가 오작동을 하면 열차에 전력 공급이 끊어지고, 주변에서 바라볼 때 불꽃이 튀는 경우도 있다.]
 

열차도 변한다
고성능 열차는 고속철도 시스템의 핵심이다. KTX는 프랑스 알스톰사로부터 테제베(TGV) 열차를 도입한 것이다. 정부는 KTX에 우리만의 기술을 더해 2002년 한국형 고속열차를 개발했다. 이 열차는 2002년부터 5년간 24만km를 달리며 안전성 검증을 마쳤다. 이것이 KTX-산천 모델이다(최근 기존의 KTX는 물론 신형인 KTX-산천 모델 역시 열차 운행정지 같은 사고가 잦지만 이런 문제는 열차 자체의 성능보다는 철도 운영 시스템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철도기술연구원은 2007년부터 ‘차세대 고속철도’를 개발하고 있다. 2012년 첫 시험운전을 기대하고 있다. KTX나 KTX-산천은 모두 앞뒤에서 기관차가 밀고 끄는 ‘동력 집중식’이다. 차세대 고속철도는 기관차가 따로 없는 ‘동력 분산식’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열차를 얼마든지 연결할 수 있는데다, 자동차의 4륜구동 방식처럼 몇 개의 바퀴에 플랫 현상이 일어나도 속도를 내는 데 필요한 마찰력을 잃지 않는다. 영업속도도 시속 370km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 이런 속도로 열차를 운행하려면 철도의 운영, 제어 시스템도 함께 개발해야 하고, 일부 구간은 선로 역시 새로 만들어야 한다.

국내에서 개발한 또 다른 형태의 고속열차가 있다. KTX가 일반 철도노선에서 제 속력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곡선구간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도기술연구원은 2008년 ‘틸팅열차’를 개발했다. 곡선구간을 달릴 때 객실을 곡선 안쪽으로 최대 8°까지 기울일 수 있어서 차량이나 승객이 바깥으로 밀리는 현상을 줄여준다. 곡선구간을 달릴 때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되므로 이론상으로는 2, 3급 노선에서도 시속 200km 정도로 달릴 수 있다. 2008년 시험운행에서는 130km 속도로 5.2° 기울어진 채 달리는 데 성공했다.



시속 500km 자기부상열차

선로 위를 달리는 전통적인 열차는 고속 운행에 한계가 있다. 시험 운행에선 시속 500km를 넘는 경우가 있지만 시속 400km 이상의 속도로 매일같이 운영하기는 어렵다.

현재 시속 400km를 넘는 속도로 운행하는 열차는 없을까. 있다. 중국 상하이 푸동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자기부상열차 SMT는 시속 430km까지 달린다. 독일에서 개발한, 열차 안에 든 전기모터 코일을 회전시켜 움직이는 ‘상전도’ 방식 자기부상열차 ‘트랜스 래피드’를 도입한 것이다. 만약 초저온 상태에서 물질의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현상을 이용한 자기부상열차가 상용화되면 시속 500~600km에 달하는 고속철도도 상용화될 것이다.

자기부상열차를 가장 먼저 상용화한 나라는 일본이다. 2005년 아이치 엑스포에 맞춰 엑스포 행사장까지 연결하는 저속 자기부상열차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일본은 고속 자기부상열차 상용화는 독일과 중국에 비해 한발 늦었지만 2003년 1월에는 시험용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해 철도 역사상 가장 빠른 581km를 기록했다. 일본은 앞으로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530km거리를 50분에 달릴 수 있는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기계연구원이 2010년 5월 도시형 자기부상열차를 공개했다. 2013년부터 인천국제공항 6.1km 거리에서 운영될 계획이다. 이 열차는 도심형 저속 철도다. 고속형 자기부상열차 계획은 아직 없다. 최근 현대건설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기부상열차 선로 제작 기술을 개발하는 등 건설기술만큼은 대학, 정부연구기관, 기업들이 앞다퉈 연구하고 있다. 박도영 한국기계연구원 도시형자기부상열차사업단장은 “고속 자기부상열차는 지금까지 개발한 도시형 자기부상열차와 달리 철도 선로 안에도 전자석을 매립해야 하는 등 한층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며 “초기 건설비도 매우 비싸 국내에 꼭 필요한지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구나 빠른 교통수단을 꿈꾼다. 10~20년 후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 이내에 달려갈 수 있는 초고속 열차가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201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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