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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 양성자의 반지름을 측정하다

    ▲GIB, 박주현

     

    교과서에도 나오는 친숙한 입자, 양성자 속에는 십 수년간 과학자들을 괴롭혀 온 난제가 숨겨져 있습니다. 양성자가 정확히 얼마나 큰지 측정해 보려는 모든 시도가 서로 다른 값을 가리킨다는 ‘양성자 반지름 수수께끼’입니다. 그런데 2월 11일, 양성자의 반지름이 ‘1조분의 0.84mm’라는 아주 정밀한 측정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김현철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와 함께 살펴봤습니다. 

     

    ▲Shutterstock
    원자는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전자로 이뤄져 있다. 가운데 양성자와 중성자가 뭉친 원자핵을 중심으로 한 궤도 위에 전자가 있는 모형이다.

     

    양성자의 반지름은 0.00000000000084mm입니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를 1mm라고 하면, 1조분의 0.84mm는 한 뼘 정도입니다. 이 작은 입자의 크기를 정확히 측정하는 건 중요합니다. 양성자의 크기는 수소의 에너지 준위, 원자시계가 나타내는 시간 등 정밀한 계산값을 도출할 때 상수로 활용되기 때문이죠. 이 값에 아주 작은 오차라도 있다면, 양성자의 크기를 상수로 활용하는 다른 모든 계산값이 다 뒤틀리게 됩니다. 


    물리학자들은 리처드 파인만의 이론을 통해 양성자의 반지름을 계산합니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그는 빛과 전자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설명하는 이론 ‘양자 전기역학(QED·Quantum Electrodynamics)’을 완성한 공로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실험값과 이론값이 대부분 일치하는 물리학 역사상 가장 정확한 이 이론을 두고 파인만은 “물리학의 보물”이라고 칭했죠.


    2010년, 양자 전기역학의 위상이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동안 양성자의 반지름은 약 0.8768fm(펨토미터·1fm는 100조분의 1m)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에 양자 전기역학을 적용해 계산한 값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이끈 프랑스, 포르투갈, 미국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양성자의 크기(The size of proton)’라는 간결한 제목의 논문에서 양성자의 반지름이 0.84184fm 안팎이었다는 실험값을 발표했습니다. doi: 10.1038/nature09250


    이걸 사람의 키에 대입해 보면, 원래 170cm로 알고 있던 사람의 키가 사실은 163cm였다는 발표인 셈입니다. 물리학자들은 대체 어떤 값이 맞는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두 값 모두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실험을 한 뒤, 여기서 얻은 데이터를 양자 전기역학을 활용해 계산한 결과입니다. 실험 방식이 다르더라도, 활용한 이론이 같다면 같은 결론이 도출돼야 합니다. 둘 중 하나인 겁니다. 양자 전기역학이 틀렸거나, 아니면 두 실험 중 하나가 틀렸거나요. 이 난제에는 ‘양성자 반지름 수수께끼(Proton radius puzzle)’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올해 2월 11일,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이끈 또 다른 국제 공동연구팀이 전에 없이 정확하게 측정한 양성자의 반지름값이 0.8406fm 안팎이었단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양성자의 반지름이 생각보다 더 작다는 2010년 연구 결과에 힘을 실어준 겁니다. doi: 10.1038/s41586-026-10124-3

     

    수소 원자 스펙트럼으로 양성자의 크기를 재는 방법
    2월 11일, 양성자의 반지름이 0.8456fm 안팎이란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수소 원자 속 전자가 ‘2S’라 불리는 오비탈에서 ‘6P’라 불리는 오비탈로 옮겨갈 때 흡수하는 에너지를 측정해 양성자 반지름을 계산했다. 먼저 ❶ 냉각된 수소 원자가 분사된다. 여기에 ❷ 분광학 레이저를 쏜다. 레이저의 에너지를 미세하게 조절해 전자가 2S 오비탈에서 6P 오비탈로 이동할 에너지를 전달한다. 수소 원자 빔과 레이저는 ❸ 2S-6P 스펙트럼 측정 영역에서 만난다. ❹ 검출기로 전자가 오비탈을 이동하는지 관측한다. 이를 통해 전자가 오비탈을 이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양을 정확히 잴 수 있다. 이 외 장치들은 수소 원자 빔과 레이저를 정렬하는 데 쓰인다.

     

    양성자의 반지름을 측정하는 두 가지 방법

     

    연구를 자세히 뜯어보기 위해 3월 4일 김현철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를 찾았습니다. “파인만이 그랬어요. 양자 전기역학은 실험과 이론이 동일할 정도로 정확하다고요. 이 논문은 그 말을 입증해 줍니다.” 


    과거보다 더 발전한 기술로, 아주 정밀하게 측정한 실험들에서 0.84fm 언저리의 비슷한 값이 나오니, 이전에 측정했던 0.8768fm라는 값이 틀렸을 수 있다는 설에 무게가 실립니다. 과거 실험값에 오차가 있었던 겁니다. 양자 전기역학이 잘못됐던 게 아니라요. 


    김 교수는 입자의 구조와 성질을 연구하는 이론 물리학자입니다. “수소 원자는 양성자 한 개와 전자 한 개로 이뤄졌습니다. 구조가 단순해서, 과학자들은 양성자의 크기를 연구할 때 수소 원자를 주로 사용했죠.” 김 교수의 설명입니다.


    2010년 이전까지 과학자들이 양성자의 크기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던 방법은 전자 산란 실험과 수소 원자 스펙트럼이었습니다. ‘전자 산란 실험’은 전자를 양성자에 쏜 다음, 튕겨 나가는 전자의 분포를 보고 양성자의 크기를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 방법인 ‘수소 원자 스펙트럼’은 수소 원자 속 전자가 오비탈을 오가며 방출하고 흡수하는 에너지를 통해 양성자의 크기를 측정합니다. 쉽게 풀어 볼게요. 수소 원자에서 전자는 양성자 근처 궤도에 존재합니다. 이 궤도를 ‘오비탈’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전자가 양성자 근처를 도는 게 아니고, 제각기 다른 오비탈 영역 속에 랜덤하게 존재하는 건데… 어려우니까 이 기사에선 앞 페이지에 나온 그림처럼 양성자 근처를 뱅글뱅글 돈다고 상상해 보세요(오비탈은 대학교에서 배웁니다.).


    전자는 가지고 있는 에너지(에너지 준위)에 따라 제각기 다른 오비탈에 자리 잡습니다. 에너지 준위가 낮을 때 자리잡을 수 있는 오비탈과 높을 때 자리잡을 수 있는 오비탈이 달라요. 에너지 준위가 낮을 때는 양성자가 끌어당기는 힘에 따라 양성자와 가까워지고요, 에너지 준위가 높으면 끌어당기는 힘을 이기고 멀어집니다. 


    강아지에게 목줄을 메고 산책할 때, 에너지가 넘치는 강아지는 목줄을 팽팽히 당겨 주인에게서 멀어지려 하고, 피곤한(에너지가 낮은) 강아지는 목줄에 당겨져 주인 근처에 머물잖아요. 전자도 마찬가집니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크면 더 먼 오비탈에 머물죠.


    수소 속 전자가 에너지 준위가 높은 오비탈에서 낮은 오비탈로 이동할 때 에너지가 방출됩니다. 반대일 때는 에너지를 흡수하고요. 이 에너지를 빛의 형태로 관측할 수 있죠. 이걸 수소 원자 스펙트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자가 오비탈에서 오비탈로 이동할 때 필요한 에너지는 양성자의 반지름 등에 비례합니다. 즉 수소 원자 속 전자가 오비탈 사이를 오가며 방출, 흡수하는 에너지를 알면 파인만의 양자 전기역학을 이용해 양성자의 반지름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2010년 전까지 알려진 0.8768fm이란 값은 국제 과학 위원회(ISC)의 데이터 위원회 ‘CODATA’가 전자 산란 실험과 수소 원자 스펙트럼을 종합해 도출한 값이었습니다. CODATA는 최신 연구 결과를 종합해 과학에서 쓰는 기본 상숫값을 제시합니다. 교과서 속 상수들은 다 CODATA에 따른 값이라고 보면 돼요.

     

    ▲Vitaly Wirthl, MPQ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수소 원자 스펙트럼을 측정하는 데 활용한 실제 장치.

     

    전자vs.뮤온, 오랜 싸움의 종지부를 찍다

     

    2010년 발표된 연구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양성자의 반지름을 쟀습니다. 앞서 수소 원자 스펙트럼이 전자가 오비탈 사이를 오가며 흡수하고 방출하는 에너지를 측정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 발표한 연구에선 전자 대신 뮤온이 양성자 주위를 돌도록 했습니다. 뮤온은 전자보다 200배 더 무거워요. “뮤온은 양성자에 아주 가까이 가기 때문에 궤도가 양성자의 반지름에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 뮤온으로 측정한 값이 바로 0.84184fm였던 겁니다. 


    “뮤온은 수명이 백만분의 2초라 금방 붕괴합니다. 실험 물리학자들도 참 대단하죠, 그 짧은 시간 안에 뮤온의 에너지 준위 변화를 측정한 거니까요.” 김 교수가 감탄했습니다. 더 정확한 방법으로 측정한 결과였으니 과학자들이 ‘동공 지진’할 만했죠.


    한편, 이번 연구는 기존 방식대로 수소 속 전자의 에너지 준위 변화를 아주아주 정밀하게 봤습니다. 연구팀은 수소 원자를 빔 형태로 쐈습니다. 이 빔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수소 원자 속 전자가 오비탈을 오가며 흡수하고 방출하는 에너지를 측정할 수 있어요. 연구팀은 4.8K(-268.35℃)의 극저온 빔을 사용했는데요, 이런 저온 환경에서는 에너지 준위 변화를 아주 정확하게 잴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 결과는 현재까지 측정한 에너지 준위 변화 중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수소 에너지 준위는 표준모형에서 언급하는 전자 루프, 뮤온 루프 현상에도 아주 미세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루프란 전자나 뮤온의 입자-반입자가 동시에 생성됐다가 사라지는 현상입니다. 이런 효과마저도 이론값과 1조분의 0.7 정도 오차로 일치한 실험 결과를 낸 겁니다. 서울과 부산 사이 거리에서 머리카락 두께보다 작은 오차입니다. 이렇게 얻은 값은 0.8456fm 안팎으로, 2010년 결과에 힘을 실어줬죠.


    김 교수는 “앞으로 실험 기법들이 점점 더 정확해지면 양성자 반지름 퍼즐도 풀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도호쿠대가 주도해 국제 선형 충돌기(ILC·International Linear Collider)를 이와테현 지하에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전자와 양전자를 충돌시키는 장치인데, 김 교수는 “국제 선형 충돌기는 아주 낮은 에너지의 전자빔을 만들 수 있다”면서 “이를 이용하면 양성자의 반지름을 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양성자는 화학을 조금만 알면 누구나 들어봤을 입자지만, 인류는 아직 그 정확한 크기도 모릅니다. 1조분의 0.03mm는 실험물리학이 발전을 거듭하며 이론값을 더 높은 정확도로 나타낸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2010년, 물리학은 약 1조분의 0.03mm만큼 앞으로 나아간 셈이죠. 앞으로 실험값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줄어들 겁니다. 진리처럼 여겨지던 교과서 속 숫자도 뒤바뀔 수 있습니다. 과학이 살아 움직인다는 좋은 예시죠. 앞으로 어떤 숫자가 뒤바뀌어 우리를 놀라게 할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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