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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SF 소설] 한여름의 투명도감 I 5장 “라이카의 사랑으로” I

    AI 생성 이미지(Midjourney)

     

     편집자 주 
    과학동아 창간 40주년을 맞아 2026년 상반기, 짐리원 작가의 중편 SF 소설 ‘한여름의 투명 도감’을 연재합니다. 재건축을 앞둔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서 투명한 생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과학이 반드시 바라봐야 할 생명의 섬세함을 SF로 확장합니다.

     

    더바이빌리지 안은 더바이빌리지 밖과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손님 구역은 카트와 자원순환관리사가 있던 구역과는 또 완전히 달랐고 말이다. 새벽 네 시가 넘었는데도, 많은 사람이 시간은 아무 의미 없다는 듯이 돌아다녔다.
    조명은 햇빛 환한 해변가를 마냥 걷는 듯한 환상을 일으켰다. 1층은 다양한 크기의 공간이 겹겹이 연결된 구조였고, 이 공간을 둘러싸듯이 2층, 3층, 4층이 이어졌다. 어떤 구역에서는 눈대중으로 10층도 넘는 까마득한 높이까지 발코니가 쌓여 있었다.
    모아는 이곳 전체가 영화관 같다고 생각했다. 아주 넓은 세상을 향해 열린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모두가 여기 갇힌 것이다. 군데군데 착시를 이용한 가짜 창문들이 있는 덕분에, 조금만 자세히 보면 폐쇄된 실내라는 사실을 오히려 잘 알 수 있었다. 그 창문의 착시에 집중하면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는 것도 정말 영화관 같았고, 아니면 미래 같았다. 건물 밖이 더운 바람으로 가득했던데 반해, 이 안은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굳이 말하면 약간 추운 쪽에 가까웠다. 더운 휴양지를 산책하는 듯한 복장부터 스웨터까지 손님들도 그야말로 각양각색으로 입고 있었다.
     
    번쩍이는 가게들이 곳곳에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최근 서울에서 인기 있다는 수입 브랜드는 전부 들여온 것처럼 보였다. 아직 한국에 정식 수입되지 않은 외국 브랜드인지, 이곳의 독점 브랜드인지 알 수 없는 낯선 매장들도 눈에 띄었다. 이 매장들의 전면을 줄지어 장식한 화분마다 투명식물들을 심어 놓아서 모아는 놀랐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도 잘 보이게 투명식물에 반짝이를 뿌려 놓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투명식물을 만져 보며 사진을 찍고는 했다.
    가게 점원 중에는 사람도 몇몇 보였지만 청소는 로봇 청소기가 했고, 주문도 이동식 로봇이 받았다. 귀여운 쥐 캐릭터를 본뜬 이 로봇 청소기는 사람 발이 닿으려고 하면 삐이익 하며 멈추고는 스크린에 웃는 얼굴을 깜빡였다. 하지만 가장 많이 보이는 로봇 모델은 원통형에 터치스크린이 얼굴처럼 장착된 것이었다. 이 로봇들은 스크린에 웃는 눈 이모티콘을 띄운 채로 센서를 반짝이며 돌아다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봤을 때는 그저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어딘지 모르게 귀엽지가 않았다.
    매장 내부뿐만 아니라 플로어에도 웃는 얼굴의 로봇이 돌아다니며 음료수를 주거나 현재 더바이빌리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벤트를 안내했다. 노아와 모아가 어느 가게에도 들어가지 않고 한참을 멈춰 서 있자 로봇이 다가왔다. 노아는 흠칫하면서 물러섰지만, 모아는 잘 보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웃는 눈 이모티콘을 터치하자, 황금색과 붉은색을 섞은 글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씨 없는 미래 남들과 다른 세상
    하이퍼리얼리티 체험을 제공하는
    전대미문의 리조트
    잃어버린 미래를 되찾는 공간
    더바이빌리지 TheBai Village

    이 글자들이 흩어지자 메인 화면의 네 가지 메뉴가 떴다.

    About Us
    Shopping
    F&B
    Entertainment

    모아가 “About Us” 항목을 터치하자 도시 조망을 배경으로 소개 글이 떴다. 202x년 완공 예정인 VIP 회원제 주택 단지. 모든 환경 리스크를 완벽하게 고려해서 설계한 주거 공간. 미래형 웰빙을 추구하는 더바이빌리지는 주말 별장, 휴양지로도 적절하고, 자녀가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는 최고 수준의 사교육과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다시 메인 화면으로 돌아간 모아는 이번에는 “Entertainment”를 골랐다. 몇몇 메뉴에는 아기 곰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는데, 터치해 보니 아동 동반이 가능한 프로그램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모아는 쭉쭉 스크롤을 내렸다.

    필라테스 요가 모나리티
    이기적 유전자, 초이기적 탤런트
    리스크 시대의 무인 자산 증식
    화성 이주, 언제 투자해야 하나
    4D AI 동물 체험

    모아는 자기도 모르게 4D AI 동물 체험을 터치했다. 최신 4D 기술로 구현한 투명 동물 생태계 체험이라는 자막이 곧바로 이어졌다. 태그는 #자연과동물 #버츄얼체험 #감성개발 #이색데이트코스가 달려 있었다. 모아와 노아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이 동물 체험 공간에 도착했을 때는 체험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 같았다. 커튼이 드리워진 복도를 따라 로봇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손님(대부분이 어린아이와 학부모였다)들이 나오는 중이었다. 손님들은 장갑과 마스크를 벗어서 로봇들에게 건넸다.
    “죽였잖아! 네가 그랬잖아!”
    여자아이 하나가 울면서 남자아이를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달랬다.
    “엄마가 진짜 아니라고 했지. AI로 만든 동물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너희 놀라고 있는 건데. 친구한테 그러면 어떡해.”
    남자아이 부모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 아들을 데리고 떠났다. 아이 손을 잡고서 얘기 중인 다른 부모도 보였다.
    “말랑말랑했지? 세아야. 실컷 만졌어? 이렇게 마음대로 만질 수 있으니까 참 좋다, 그치?”
    이렇게 어수선한 틈을 타서 노아는 커튼 밑으로 숨어들었고 모아도 그 뒤를 따랐다. 길고 어두운 복도를 빠져나오자, 천장이 높은 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방은 넘어진 의자들과 굴러다니는 바닥 조명(수영장 공 같기도 했다), 생긴 이유도 알 수 없는 물웅덩이들로 엉망진창이었다. 사다리와 대야. 뒤집어진 먹이통. 흩어진 전깃줄. 축축한 바닥 여기저기에 두꺼비같이 생긴 생물들까지 꾸룩대고 있었다. 이들의 조개껍데기 비슷한 등껍질이 반짝반짝 빛났다. 먹이통에서 쏟아진 것도 이름 모를 투명식물이었다.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사람이 두꺼비의 등을 쓰다듬으며 뭔가 속삭이고 있었다. 모아 일행이 들어온 문에서 등을 돌리고 있어 그들이 들어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노아가 멈춰 섰다.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노아가 말을 걸었다.
    “이게 네가 얻은 권력이야?”
    모아가 놀라서 노아를 쳐다보았다. 노아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앉아 있던 노랑머리 사람은 전혀 놀란 눈치가 아니었다. 그녀가 돌아보며 말했다.
    “석 달 만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고작 그거야?”
    “같이 일하면 우리도 얻을 게 있다며. 무조건 자본과 기술에 반발할 게 아니라 그들의 힘을 빌리고 이용해야 한다며. 그렇게 사람들 다 내쫓고 애들 팔아서 얻은 건, 고작 AI 동물 체험?”
    노랑머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꿀꿀거리기 시작한 두꺼비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두꺼비가 대야로 뛰어들자 대야를 한쪽으로 치운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나 혼자 하루에 클레임을 얼마나 많이 받는진 알아? 시말서 한 백 장은 썼어. 그래도 투명우산 프로토콜은 다 지켰고.”
    “해태는 왜 선택했는데? 가뜩이나 예민한 애들을.”
    “여기 이사진이 골랐어. 받는 게 있으면 내주는 것도 있어야지. 불가살이 같은 걸 애들 만지라고 줄 수는 없잖아. 영원히 할 것도 아니고. 진짜 4D AI 동물이 개발될 때까지만 하는 거니까.”
    중립적인, 거의 무감정한 톤이었다.
    “그다음은?”
    노아가 물었다. 노랑머리는 답하지 않았다.
    바닥 조명인지 수영장 공인지도 모를 것이 모아 쪽으로 굴러왔다. 발밑에 닿고서야 조금 찌그러진 공인 걸 알았다. 찌그러진 부분에 사람 손자국도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불규칙적으로 빛이 점멸하는 공. 모아는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살피다가 어느 순간, 이 공이 투명생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새 모아 주변에 공 무리가 통통통 모여들었다. 모든 공이 투명생물은 아니고, 진짜 공 사이에 가짜 공이 섞여 있었다. 아니, 가짜 공 사이에 진짜 공이 섞여 있는 건가. 몽글몽글 빛들이 반응하며 무슨 말을 거는 듯했다.
    “그만 나가 줘. 당장 경비 불러서 강제로 내쫓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하긴 싫어. 네 새 제자 데리고 그만 나가.”
    노랑머리가 여전히 아무 감정이 없는 톤으로 말했다. 그 말 밑에는 눌러 참은 마음이 가득했다. 오직 악의라고 짐작하기도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
     
    “좋아. 하나만 알려줘, 이무기들은 어디 뒀어? 그다음에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노아가 말하자, 노랑머리가 대답했다.
    “내가 관리하는 건 프로그램에 있는 동물들뿐이야.”
    “그리고,” “그래도…”
    둘은 거의 동시에 말했다. 말을 이은 쪽은 노랑머리였다.
    “알면? 내가 알면? 네가 알면? 뭘 할 수 있는데? 설마 그 허접한 변장을 하고 몸으로 부딪히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어차피 얘네가 이겨. 여기까지 들어 왔으니 뭐라도 해낸 것 같겠지만 그냥 운이 좋았던 건 알아? 다음 주에 보안 시스템이 완전 자동화될 예정이라 잠깐 보안 공백이 생긴 거야. 네가 여기 온 것 그냥 그 덕분이야. 중요한 시기가 아니라서, 시스템 전환기라서. 지금이 아니었으면 빌리지에 발도 들여놓기 전에 잡혀갔을걸.”
    노랑머리는 더바이빌리지 전역에 사각지대 없이 설치된 고화질 카메라, 비디오 판독과 얼굴 인식 기술, 전기와 테크놀로지와 돈의 눈부신 흐름을 이야기했다. 어째서 “그 낡은 1980년대에나 통했을 방법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지. 몸으로 아무리 세게 부딪혀도, 머리를 아무리 잘 굴려도, 최선의 최선을 다해도, 왜 이제 절대 안 되는지에 대해. 
    결코 이길 수 없는 거대한 세계가 우리 머리 위에 만들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말하기도 싫다는, 정신 차리라는 투였다. 집에서 학교에서 모아도 셀 수 없이 들어서 너무 익숙한 저 말투. 이제 그만 어른이 되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무기는 어딨는데?”
    잠자코 듣던 노아가 말했다. 노랑머리가 헛웃음을 쳤다. 노아는 말을 이었다.
    “실패를 해도 내가 하는 거야. 하지만 이무기가 어딨는지 아는 건… 네 책임이잖아, 산하야. 더바이건설에 모든 걸 넘기더라도 투명동물 관리는 책임지고 감시하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난 네가 이렇게 모르는 것 같지? 여기 있는 몇 종, 도깨비불, 해태, 투명도마뱀, 얘네 말고 나머지는 어디 있어?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아?”
    책임. 산하. 모든 걸 넘긴다. 점차 모아의 머릿속에서 여러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은 해체된 투명동물구조단체는 대표가 따로 있었다고 했고, 그 사람이 더바이건설에 동물들을 넘겼다고 했다. 돈이 있는 대기업이 투명동물을 더 잘 돌봐줄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더바이건설과 계약한 단체의 대표님이라기에는 이 사람, 산하는 너무 심하게 시달린 것처럼 보였다.
     
    사이렌이 울렸다. 소방 알람처럼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소리였다. 온몸으로 듣는 소리. 모두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모아는 본능적으로 노랑머리… 산하가 경비를 호출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도 모아만큼이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깔끔하게 하나로 묶인 줄 알았던 산하의 머리도 옆에서 보니 여기저기 삐져나와 있었다.
    이어 방범문이 철컹철컹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들어온 문도 위에서 내려오는 무거운 방범문으로 덮였다. 조명은 내려갔다. 곧바로 대신 켜진 비상등은 거의 푸르게 보일 정도로 깊은 빨간색이었다. 모두의 눈에는 이상한 푸른빛이 돌았다.
    소리는 그만 멈춰야 하지 않나 싶을 때까지도 끝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볼륨이 높아지는 것 같았다. 모아는 귀를 막고 주저앉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온몸의 신경을 지지는 듯한 사이렌이었다. 방 전체가 전기에 감전된 것만 같았다. 산하가 말했던, 전 세계를 하나로 잇고 지배하고 결국 불태우는 힘, 모두 그 힘에 감전된 것처럼.
     
    조각조각 모자이크처럼 방 안의 풍경이 바뀌었다.
    산하는 귀를 막고 벽으로 향했다. 패널을 열고 조작했지만 패널은 산하의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두꺼비들이 수조와 대야 여기저기에서 지져지는 것처럼 튀어 올랐다. 몇 마리는 다시 튀어 오르지 못했고, 나머지도 물 흥건한 바닥에서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모아 옆에 모여든 투명한 공들이 떨렸다.
    노아가 산하에게 뭐라고 소리쳤다. 산하는 고개를 흔들었다. 할 수 없다는 것 같았다.
    노아는 한 팔을 다른 팔로 받친 채 패널로 접근했다.
    그때 진동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무엇이 떨리는지도 알 수 없었다. 벽 자체가 떨리는 것도 같았다.
    맑은 피리 소리 같은 것에 익숙한 꽉꽉 소리도 섞여서 들렸는데, 다 착각 같기도 했다. 피리 소리는 어릴 때 포천 할머니 집에 가면 들리던 소리였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기 전, 아직 아빠 차를 타고 어딘가에 가던 시절. 가만히 누워 있으면 하늘이 자동차 머리 위로 흘러갔던 때.
    벽의 진동만큼은 확실했다. 착각이 아니었다. 건물을 부술 때 인간이 쓰는 힘이 쾅쾅쾅이라면 이 소리는 콰르르르에 가까웠다. 소리가 점점 커졌다. 사이렌 소리가 귀를 통해 신경 전체를 지졌다면 콰르르르는 심장 깊은 곳에서 시작해서 점점 영혼으로 퍼져나갔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집약돼서 쏟아지는 울림이었다.
     
    진동이 쌓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격변은 한 순간이었다. 문이 무너졌다. 아니 쏟아져 내렸다. 모아는 부스러기들이 자기 위로 쏟아지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피할 시간은 없었다. 노아가 뭐라고 외쳤지만 산하 옆에서 패널 조작을 돕던 노아도, 모아 쪽까지 올 시간이 없었다.
    나중에 기억난 것은 공 무더기뿐이다. 가짜 공과 진짜 공. 붉은 공과 투명 공. 한데 모여 와르르 모아의 몸 위로 쏟아졌다. 모아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마치 많은 하늘에 작은 달들이 한꺼번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달들은 전부 찌그러져 있었다. 찌익찌익 소리를 내며 쪼그라들고 있거나. 다친 건가. 나 때문에? 모아는 생각했다.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벽이 열려 있었다. 벽에 뚫린 구멍의 모양만큼은 나중까지 모아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아주 거대한 나뭇잎의 모양이었다. 나뭇잎 구멍 사이로 당당하게 뛰어든 것은 닭이라기에는 너무 눈이 반짝반짝하고 오리라기에는 너무 괴물 같고 칠면조라기에는 귀여운 새, 당고새였다. 해적처럼 안대를 찬 구룩이었다. 구룩과 함께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사람은 자원순환관리사 방호복, 한 사람은 택시 기사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아저씨?”
    모아가 말했다. 택시 기사 심계수 아저씨였다. 아저씨의 목에는 손바닥만 한 검푸른 악기가 걸려 있었다. 악기는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삼각형으로, 동그란 구멍들이 불규칙하게 뚫려 있었다.
    “PDBN?”
    노아가 중얼거렸다. 방 저편에서 작은 소리로 한 말인데도 이상하게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꾸엥!” 목소리를 듣고서야 확신을 얻은 양, 꾸엥도 구멍 사이로 머리를 내밀었다. 하지만 꾸엥보다 먼저 모아 옆에 온 건 자원순환관리사였다. 모아도 목소리를 들었을 때에야 이 자원순환관리사가 아까 그들을 도와준 사람인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주저앉아 있던 모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까 소개도 못 드렸죠. 조세희입니다. 식물을 기르고 있어요.”
    모아는 얼떨떨한 채 그 손을 잡았다.

    나뭇잎 모양 구멍 밖은 온통 연기였다. 폭탄 테러인가, 모아는 생각했다. 서울 어디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어릴 적부터 질릴 정도로 들었지만, 실제로 테러를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이렌 소리도 학교의 대피 훈련 때 들었던 그 소리였다. 이 정도 볼륨은 아니었지만.
    여기 계속 있는 게 안전할까, 아니면 탈출을 하는 게 안전할까. 모아는 대피 훈련 때 배운 것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심계수 아저씨와 조세희 씨가 익숙한 태도로 그들을 다른 출구로 이끌었다. 패널 옆 기둥에 숨겨져 있던 부분을 조세희 씨가 두드리자 숨겨져 있던 문이 나타났다. 문이 소리 없이 옆으로 스윽 열렸다.
    문은 모아가 몇 시간 전에 통과했던 더바이빌리지의 미로 같은 복도로 연결됐다. 카트와 물건들, 자원순환관리사들이 다니는 더바이빌리지의 내장. 더바이빌리지에 음식과 자원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외부로 실어내지만 손님 구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공간. 에어컨이 없고 눈 아픈 하얀 조명이 지배하는 곳. 이곳은 사이렌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손님 구역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어렴풋이 들릴 뿐이었다. 카트는 모두 멈춰 서 있었다.
    복도에 들어서 모아는 드디어 자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모아는 자신의 목과 얼굴이 엄청나게 뜨거워졌다는 사실, 그리고 식은땀이 흘러서 티셔츠 목 주변이 끈적거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희 씨가 앞장섰다. 아까와 달리 손과 방호복 여기저기에 흙이 묻어 있었고 허리춤에는 계수 아저씨 목에 걸린 것과 같은 찌그러진 삼각형의 악기가 매달려 있었다. 모아는 홀린 듯이 흙 묻은 바지와 대롱거리는 악기를 따라갔다. 세희 씨는 그들을(계수 아저씨와 모아, 두 마리의 당고새를) 엘리베이터 앞으로 이끌었다.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복도 구석에 숨겨진 거대한 화물용 엘리베이터였다.
    산하는 따라오지 않았다. AI 동물 체험 방을 나서기 전에 모아가 마지막으로 본 산하의 모습은 두꺼비, 아니 해태가 든 대야를 든 모습이었다. 그녀는 조금씩 움찔거리는 해태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길을 잃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아는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동물은 길을 잃은 채였다. 인간의 도시에서 동물을 만나는 게 슬픈 것은 투명하든 불투명하든 날개가 있든, 꼬리가 있든, 모든 동물은 길을 잃었기 때문인지도. 모아는 자기도 모르게 노아도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안 올 거예요?” 심계수 아저씨가 엘리베이터에서 얼굴을 내밀고 소리쳤다. 구룩도 구룩구룩거렸다. 그제야 노아는 왔다. 손안에는 반쯤 찌그러지고 색색거리고 쪼그라든 투명 공을 한 아름 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여놓기 직전에도 노아는 뒤를 돌아봤다.
    “동물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던 것 아니었어요?”
    심계수 아저씨가 말했다.
    그들은 거대한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정확히 말하면 계속 내려간 것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는 일반적인 엘리베이터와 달리 수직으로 내려가지 않고, 여러 번의 평행 이동을 거쳤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래로 내려갔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는 이 공간의 다른 것들과 달리 기계적으로 굴러가는 것 같았다. 코너를 돌 때마다 덜커덕거렸고 쓸데없이 컸다. 바닥에는 많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투명하고 투명하지 않은, 식물과 동물의 몸이 남긴 자국.
    쪼그려 앉은 모아 옆에 꾸엥이 또 머리를 붙였다. 파충류 같은 옆모습과 따뜻한 몸, 동그란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공룡처럼 길고 유연한 실루엣이었는데 털은 부들부들했다. 얼굴을 파묻고 싶을 정도로.
    노아는 한 팔을 움켜잡은 채 아주 지쳐 보였다. 노아 옆에는 카트가 한 대 있었고, 내부는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없이 풀 냄새가 났다.
    “고맙습니다.” 노아가 말했다.
    “PDBN 분들, 맞지요?”
    “그렇게도 부르지요. 저희끼리는 사밭나무 운동이라는 명칭을 선호하지만요.” 세희 씨가 미소를 지었다. 엘리베이터의 이상한 빛 속에서 두 사람 모두 전에 만났을 때만큼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둘 다 오래된 사람의 얼굴이었다. 모아는 세희 씨가 소매가 넓은 신라 시대 옷을 입은 모습을 바로 상상할 수 있었고, 계수 아저씨는 고구려 벽화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계수 아저씨도 말했다. 자꾸 어딘가로 탈출할 것 같은 모아의 정신을 또렷하게 붙잡아 주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뭐 그런 이름이 의미가 있나요. 투명우산의 노아 씨, 맞죠?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손으로 덥썩덥썩 투명동물을 잡는다면서. 아까는 거짓말해서 미안해요. 얼굴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거 참 계획이 서로 잘 맞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 반대인가?”
    노아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덜컹하면서 멈췄다. 문이 드르르르륵 열렸고, 그들은 거대한 어둠 앞에 노출되었다.
     
    갑자기 밤으로 되돌아온 것 같기도 했고, 우주 앞에 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모아는 문득 지구과학 선생님의 TMI를 기억해 냈다. 지구과학 선생님은 워낙 시험에도 수능에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딴소리를 자주 했고 그럴 때마다 모아는 그냥 정신을 우주로 보냈는데, 그날은 어쩐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쩌다 화제가 그리로 갔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보통 우주를 떠도는 외톨이 행성이 어두울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땅만이고 밤하늘은 쏟아지는 빛들로 무한히 밝을 거”라는 얘기였다. 외톨이 행성이란 항성의 중력을 벗어난 행성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지구가 어떤 일로 태양계에서 쫓겨난다면 지구도 외톨이 행성이 되는 것이었다. 태양 중력에서 벗어난 지구는 태양의 빛을 잃겠지만 밤하늘은 몇 배 아니 몇십 배 밝아질 것이었다. 길을 잃은 지구가 은하의 중심을 향해 떠돈다면 더더욱. 그러므로 사실은 태양 옆이 제일 어두웠다.
    “여기 맞아요.” 심계수 아저씨가 코를 킁킁거린 뒤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모아도 냄새를 맡았다. 수영장 같은 소독약 냄새, 물 냄새인지 뭔지 모를 것. 그리고 농장을 지나가면 나는 냄새도 어렴풋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발을 내딛던 아저씨가 멈춰 섰다. 그는 뒤를 돌아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노아인지 세희 씨인지 모를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의 전등을 껐다. 

     


     짐리원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으로 2023년 제3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고, 과학동아 2024년 8월호에 ‘기억과 사회’를 기고했다. 기후위기와 환경 오염, 서울에 대해 계속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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