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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오빠 논문연구소] 버려졌던 이론의 재탄생

통합과학) 에너지와 물질순환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이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2016년과 2017년에 연달아 발생한 경주 지진과 포항 지진 등 전 세계에서 들려오는 대지진과 쓰나미, 화산 폭발 뉴스는 가만히 굳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땅덩어리가 사실은 동적인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러나 지구 표면을 이루는 크고 작은 조각들이 맨틀의 대류에 의해 움직이고 충돌한다는 판구조론의 기본 아이디어가 구체화 된 것은 사실 50여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핵무기나 최초의 컴퓨터가 개발된 시기보다 늦은 셈입니다.

 

대륙은 어떻게 움직일까?


1912~1915년 독일의 젊은 과학자 알프레드 베게너는 오늘날 ‘대륙이동설’로 불리는 가설을 제기합니다. 그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양측의 해안선이 유사한 모양을 갖는다는 점, 산맥이나 빙하퇴적층과 같은 지질 구조가 연속적이고 동일한 종류의 화석이 양쪽에서 발견된다는 점 등을 근거로 과거에는 대륙들이 하나로 붙어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이 혁신적인 주장은 일부 호응을 얻었지만, 영향력 있는 대다수 학자의 격렬한 반대와 조롱에 부딪혔습니다. 거대한 대륙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여겨졌을 뿐 아니라, 그 원동력이 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이단처럼 취급되던 베게너의 주장은 그로부터 수십 년 뒤에야 비로소 재평가됩니다. 여기에는 수중음파탐지기(SONAR·소나)의 발달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U보트로 대표되는 잠수함의 약진으로 수중 탐지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면서, 음파를 쏘아 보낸 뒤 돌아오는 파동을 측정하는 감지 기술이 서둘러 개발됩니다. 
이로써 바닷속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과거 추에 줄을 달아 늘어뜨리는 원시적 방법으로 측정하던 대양의 깊이와 해저 지형의 정보를 매우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선봉에 섰던 미국 컬럼비아대 라몬트지질연구소 연구팀은 미 해군의 지원 아래 1940년대 말부터 전 세계 대양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중앙해령과 관련된 괄목할만한 사실들을 발견했습니다. 
대서양 한가운데에 폭이 넓은 거대한 산맥이 발달한다는 사실은 이전에도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연구팀은 여기에 더해 해저 산맥의 한가운데에 골짜기가 발달하고 그 분포가 해양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지점과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또 해령 주변의 퇴적물 두께가 매우 얇으며, 현무암이나 사문암과 같은 화성암이 발견되고, 육지나 주변 해양에 비해 높은 열을 방출한다는 점 등도 속속 발견됐습니다. 
대륙이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올 퍼즐의 조각은 이미 갖춰지고 있었지만, 당시 모리스 유잉 라몬트지질연구소장은 대륙이동 자체에 매우 회의적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발견의 의미를 알아보고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한 연구자가 해리 해먼드 헤스 프린스턴대 교수였습니다. 일찍이 북태평양 해저 지형을 조사하기도 했던 헤스 교수는 새로운 정보가 나올 때마다 자신의 해석을 꾸준히 수정 보완했고, 1960년경 해령은 다름 아닌 맨틀대류가 상승해 퍼져나가는 곳이며 양측의 대륙은 마치 각각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것과 같이 해령으로부터 멀어져 간다는 ‘해저확장설’ 모델을 완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헤스 교수는 1960년 동료들에게 이 아이디어를 초고 형태로 공유합니다. 이후 헤스 교수의 이론은 1962년 그의 은사인 버딩턴 교수 헌정논문집에 ‘해양분지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정식 발간됐습니다. 한편 같은 요지의 가설이 당시 미 해군 전자연구소의 해양학자 로버트 디에츠에 의해 1961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최초로 공식 발표됐고, 해저확장설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사실 맨틀의 대류로 대륙이 이동해간다는 구상 자체는 이보다 앞서 영국의 지질학자 아서 홈즈 등에 의해 제안된 바 있지만, 오늘날 헤스 교수를 해저확장설의 주창자로 기억하게 된 것은 그가 해령에 관한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해저 확장 모델을 제시하고, 초고를 미리 많은 학자에게 읽혔기 때문입니다.

 

해저확장설은 지질학을 어떻게 바꿨을까?


1960년대 프레드 바인과 드러먼드 매튜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팀의 해령 주변에서 나타나는 지자기 줄무늬 연구, 투조 윌슨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의 열점과 변환단층 연구 등 결정적 증거를 담은 후속 연구들이 잇따르며 해저확장설은 빠른 속도로 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해령에 집중됐던 연구자들의 관심은 이후 해구와 호상열도로 퍼져나갔고, 판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경계를 좀 더 이해하게 되면서 판구조론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대륙이동설에서 해저확장설, 판구조론으로 이어진 지구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생물학에서 진화론이 그러했듯 지질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진이나 화산활동은 물론 전 지구적 물질순환, 과거 대륙과 생물의 분포, 습곡 단층과 같은 지질구조의 형성, 암석과 광물의 생성 및 변성에 이르기까지 연구 대상을 막론하고 학자들은 판의 움직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이후 ‘플룸 이론’ 등 판구조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부 현상을 보강하는 이론들이 제시됐지만, 판구조론은 여전히 오늘날 지질학의 바탕을 이루는 중심 이론입니다.

 

해령에서 자원을 찾는다?


군사적 필요가 해저확장설의 탄생에 도움을 줬듯이 기초과학의 진일보도 산업과 사회로 돌아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여러 지하자원의 생성 요인과 분포를 이해하고 채굴하는 데 판구조론이 큰 기여를 했음은 물론입니다. 최근 해령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래 금속자원 연구 개발은 또 다른 좋은 예입니다.
새로운 지각물질이 만들어지고 많은 균열이 발달하는 해령은 차가운 해수가 지반으로 침투해 물질 교환을 거치며 가열돼 다시 분출되는 심해 열수 활동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환경입니다. 전 세계 대양 곳곳에 분포하는 열수광상은 바다의 화학조성 및 물질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태양 빛이 전혀 닿지 않는 심해 환경에서 생물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생물자원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한편 이 과정에서 구리나 아연 등 각종 유용한 금속이 밀집한 심해 열수광상이 만들어지는데, 오늘날 세계 각국은 그 잠재 가치에 주목하고 이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속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자원연구본부도 미래 해양자원 확보를 목표로 2009년부터 인도양중앙해령 지역에서 활발히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이런 노력이 열매를 맺어 2014년 정부는 국제해저기구(ISA)와 열수광상 독점 탐사광구 계약을 체결해 2029년까지 독점 조사권을 확보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모리셔스 북동쪽 남위 8도에서 17도에 해당하는 공해상으로 넓이만 1만km2에 이릅니다. 
연구팀은 먼저 연구해역에서 해령의 축을 따라 118개의 측정 장비를 내려 열수활동을 확인했습니다. 관찰된 열수활동의 빈도는 해령 확장속도와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관관계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열수 활동의 신호가 대칭형 해령보다는 비대칭형 해령에서 높게 나타나고, 일부 신호가 해령 골짜기 중심축이 아닌 절벽 주변에서 관찰됐습니다. doi:10.1002/2013GC005206
이에 연구팀은 연구해역을 고해상도 지도로 만들고, 이곳 해령이 주로 잡아당기는 힘으로 발달했음을 시사하는 형태지구조적 특징을 관찰했습니다. 특히 ‘해양핵복합체(OCC·Ocean Core Complex)’와 ‘비변환불연속대(non-transform discontinuity)’라는 특수한 지질구조를 확인했고, 해령 축에서 벗어난 열수활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doi:10.1016/j.gr.2016.12.015
2029년까지 계속될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은 탐사광구 면적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500km2를 최종 유망지역으로 선정하고 개발권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개발 시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등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연구팀은 과학적 호기심과 국가적 필요를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문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에서 연구원으로 있다. 심해퇴적물의 기원지 및 고환경 연구와 더불어, 해저열수광상과 망간단괴 등 심해저자원 개발 시 발생하는 잔사물질에 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mgkim@kio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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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문기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연구원
  • 에디터

    김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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