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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 겨드랑이 냄새만 맡으면 말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2025년 여름, 독수리 계곡이란 뜻의 몽골 욜링암에서 승마 트레킹을 했다. 기자는 일행 중 유일하게 말을 겁내지 않았고, 기자를 태운 말은 다른 말들보다 당당히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고 약 반년이 지난 1월, 프랑스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에 발표한 연구를 봤을 때 생각했다.
    ‘그때 말이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냄새로 맡았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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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땀’에는 감정이 담겨 있다

     

    냄새는 공기 중으로 퍼지는 화학물질이다. 이 가운데 한 생물 개체가 분비해 다른 개체의 행동이나 생리, 감정에 영향을 주는 물질을 ‘케모시그널(chemosignal)’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적 의사소통 수단이다.


    동물에서는 이런 신호가 흔하다. 특히 같은 종 사이에서 특정 반응을 유도하는 케모시그널을 페로몬이라 부르는데, 개미가 먹이까지 이어지는 길을 표시할 때 남기는 화학 흔적이나, 나방이 짝을 유인할 때 사용하는 물질이 대표적인 사례다. 페로몬은 주로 번식이나 경고, 영역 표시 같은 명확한 행동을 유도한다.


    화학물질로 전달되는 신호가 인간에게도 있다는 연구는 2012년 발표됐다. 당시 동물이 화학적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지만 인간도 냄새로 감정을 동기화할 수 있단 가설은 검증된 적이 없었다. 귄 세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사회행동과학부 교수팀은 남성 실험 참가자들에게 공포 감정과 불쾌감이 유발되는 상황(공포 영화 시청)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을 각각 조성했다. 참가자들 겨드랑이에 패드를 부착해 땀을 흡수했고, 실험 동안 향수, 음식 등 땀에 밸 수 있는 다른 냄새는 철저하게 통제했다. 


    그다음, 연구팀은 새로운 여성 참가자들을 모집해 병에 담긴 패드 냄새를 맡게 했다. 그리고 냄새를 맡는 동안 이들의 얼굴 근육을 근전도로 측정했다. 그 결과 공포 상황에서 배출된 땀 냄새를 맡은 참가자들은 공포 표정을 모방하고, 역겨운 장면에서 나온 땀 냄새를 맡을 땐 얼굴을 찡그리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인간이 냄새만으로도 감정을 동기화한다는 뜻이었다. doi: 10.1177/0956797612445317 


    사람이 공포를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율신경계가 반응해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결과 땀의 화학 조성이 달라지고 체취를 변화시킨다. 이런 변화가 공기 중으로 퍼지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페로몬이란 용어를 정의하는 데 이견이 많아 인간의 경우 케모시그널이라 부른다.


    특히 연구팀이 겨드랑이 땀을 감정을 전달하는 통로로 이용한 이유가 있다. 인체의 땀샘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손, 발, 얼굴 등 전신에 위치한 에크린 땀샘이다. 에크린 땀샘에서 분비되는 땀은 화학적으로 묽은 식염수에 가깝다. 반면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귓구멍에 위치한 아포크린 땀샘에서 분비된 땀은 단백질과 지질을 포함한 ‘걸쭉한’ 액체다. 모낭과 연결된 피지선에서 분비되는 피지 성분이 함께 섞여 나오기도 한다. 이 땀이 분비되면 피부에 사는 미생물들이 단백질과 지질을 분해하며 냄새를 생성한다. 특히 겨드랑이는 땀이 잘 차 세균 번식에 최적인 환경인데, 아포크린 땀샘에서 분비되는 지방과 단백질이 피부 세균에 의해 분비되며 휘발성 화합물이 풍부하다.

     

    냄새 없는 땀, 냄새 나는 땀

    인체 땀샘은 체온 조절을 담당하는 에크린 땀샘과 특정 부위에 집중돼 체취를 유발하는 아포크린 땀샘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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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말은 겁먹은 사람 태우지 않습니다

     

    프랑스 투르대, 국립농업연구원, 국립과학연구센터 등 공동연구팀은 지난 1월, 인간의 냄새가 말의 행동과 생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doi: 10.1371/ journal.pone.0337948 연구팀은 공포에 질린 상황과, 기쁜 상황에서 사람의 겨드랑이 체취를 채취했다. 총 30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공포 영화와 코미디 영상을 시청하게 해, 같은 사람에게서 공포와 기쁨을 유발했다. 이후 연구팀은 감정 강도가 높은 참가자 14명만 선별해 이들이 즐거울 때 분비한 겨드랑이 땀과 무서울 때 분비한 겨드랑이 땀 샘플을 각각 14개 마련했다. 그리고 웰시(welsh) 품종의 암말 43마리를 모집해 즐거운 땀냄새를 맡을 14마리, 무서운 땀냄새를 맡을 14마리, 그리고 아무 냄새도 맡지 않을 대조군 그룹 15마리로 분류했다. 말에게 냄새를 맡게 하기 위해 입마개 안에 패드를 고정해 고삐에 연결했다. 


    연구팀은 총 4종류의 행동 실험을 했다. 먼저, 말을 쓰다듬었을 때 말이 이 자극에 반응해 사람에게 얼마나 접촉해오는지, 사람이 서 있을 때 말이 자발적으로 다가오는지, 먹이를 먹는 중 갑자기 우산을 펼쳤을 때 말이 얼마나 놀라는지, 낯선 물체를 보여줄 때 얼마나 응시하는지 등을 살폈다. 그리고 반응을 살피는 동시에 말의 심박수를 측정하고 타액을 채취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분석했다. 


    실험 결과 공포 냄새를 맡은 말은 사람과 상호작용을 줄였다. 대조군의 경우보다 사람에게 다가간 횟수가 적었고, 또 덜 접촉했다. 이는 말이 공포 감정을 느낄 때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뜻이다. 또 말은 낯선 물체를 오래 바라보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말이 환경을 더 경계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우산이 갑자기 펼쳐질 때도 더 크게 놀랐다. 뿐만 아니라 땀에 섞인 공포 감정을 감지했을 때 심박수가 더 높아졌다. 인간이 느낀 공포가 말에게도 정확히 전달돼, 말의 행동과 생리를 동시에 변화시켰단 뜻이다. 다만 사람이 기쁠 때 배출한 땀 냄새는 말의 행동에 유의미한 차이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이런 현상은 말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능력은 아니다. 개를 대상으로 한 이전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확인된 바 있다. 2018년, 비아조 다니엘로 이탈리아 나폴리 페데리코 2세 대학교 동물학과 연구팀은 개가 사람의 겨드랑이에서 공포 감정을 맡았을 때 스트레스 행동이 증가하며, 기쁜 감정을 맡았을 때 보호자를 벗어나 낯선 사람에게도 많이 접근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doi: 10.1007/s10071-017-1139-x 2022년에는 인간이 스트레스 상태에서 나는 냄새를 개가 94%의 높은 정확도로 구별해 낼 수 있단 사실도 발표됐다. doi: 10.1371/journal.pone.0274143 


    말과 개는 인간과 수천 년 이상 함께 지내며 공진화한 동물이다. 어쩌면 냄새로 인간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해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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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미는 페로몬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생물 중 하나다. 개미는 동료가 뿌린 페로몬의 자취를 쫓아 먹이가 있는 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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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연구는 인간의 감정이 다른 종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신호로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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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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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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