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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에너지가속기가 해결하는 20세기 숙제

질량의 기원과 반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힉스 입자를 찾아내는 것과 CP 대칭성이 깨지는 원인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과 우주의 존재에 대한 기원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가까운 장래에 고에너지 가속기 실험을 통해 밝혀질 20세기의 숙제를 탐색해보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반물질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황의 핵을 포함한 우주선(빨강)이 감광판에 부딪혀 16개의 파이온 (노랑)과 염소핵(초록).그리고 다른 핵(파랑)들이 흩어져 나오는 모습.


지난 20세기 동안 특수상대론과 양자역학이 수립되고 새로운 입자들을 만들 수 있는 고에너지 가속기가 건설되면서 물질의 근본구조와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는 입자물리학 분야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현재 과학자들은 약 2백GeV 정도의 고에너지까지, 거리로 보면 약 ${10}^{-16}$cm 정도의 미시세계까지의 물리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양성자의 질량이 E=${mc}^{2}$cm을 통해 모두 에너지로 변했다고 할 때에 얻어지는 에너지가 약 1 GeV이고 보면 엄청난 에너지다. 그리고 참고로 양성자나 중성자 등 핵자의 크기는 약 ${10}^{-13}$cm, 원자의 크기는 약 ${10}^{-8}$cm이다. 즉 원자를 지구에 비교했을 때에 핵은 축구 경기장 정도의 크기이며, ${10}^{-16}$cm 정도의 미시세계는 동전에 비유될 수 있다.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입자물리학에서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예를 들어 중력을 양자역학적으로 다루는 문제라든지, 왜 전자보다 2백배 가량 무거운 뮤온이라는 입자 등 많은 입자들이 존재해야 하는지, 우주는 왜 편평하지, 반입자로 만들어진 반원자들이 왜 우리 주위에 없는지, 즉 우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문제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들 여러 문제들 중에서 현재 또는 가까운 장래에 고에너지가속기 실험을 통해 연구될 수 있는 문제가 바로 힉스 입자의 발견과 CP 대칭성이 깨지는 원인의 규명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우주 생성 비밀의 열쇠와도 같은 질량의 기원과 반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밝혀질 것이다.


톱 쿼크를 발견한 페르미 가속기연구소의 테바트론 가속기.입자 질량의 근원인 힉스 입자도 여기서 발견될 수 있을까.


힉스 입자가 풀어내는 질량의 기원

우선 질량의 기원과 힉스 입자를 현대 입자물리학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가벼운 물체가 무거운 물체보다 더 쉽게 움직인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즉 물체의 관성을 나타내는 정도를 질량으로 나타내며 질량이 클수록 운동상태를 변화시키기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한 질량이 실제로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현대 입자물리학에서조차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1967년 와인버그 등에 의해 제창된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Standard Model)에서는 이 질량 생성의 문제를 힉스 입자를 도입함으로써 해결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자. 물체가 공기 중에서 움직일 때 보다는 물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더 힘들다. 즉 관성이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물 속에서 물체의 효과적인 질량이 증가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무언가 공간을 메우고 있을 때 질량이 생성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설명은 매우 단순화된 설명으로 공간에 에테르가 꽉들어차 있는 것으로 혼동해서는 안된다. 또한 물체가 물 속에서 움직이면 물결이 일게 되고 이를 통해 그 물체가 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표준 모형에서는 전 공간에 힉스(Higgs) 입자와 관계된 장(field)이 꽉 들어차 있어서 모든 물질들이 힉스 장이라는 물 속에서 움직임으로써 질량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물체 주위에 있는 힉스 장이 물결과 같이 떨리는 효과가 바로 힉스 입자의 생성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모든 물질이 지니는 질량이 힉스 입자에 의해 생성된다는 현대 물리학의 입장이 맞는다면, 힉스 입자를 만들어낼 확률은 물질의 질량에 비례하므로 힉스를 가속기에서 만들어 내려면 우선 무거운 입자가 만들어져야 한다. 따라서 양성자의 90배정도 되는 질량을 지닌 ${W}^{+}$,${W}^{-}$,${Z}^{˚}$입자, 또는 지금까지 발견된 소립자 중에서 가장 무거운 톱 쿼크의 양자역학적 효과를 통해 힉스 입자가 만들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 현재까지의 여러 실험자료들을 분석해보면, 힉스 입자의 질량이 대략 1백10GeV에서 2백GeV 사이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를 찾는 실험이 현재 스위스 제네바 소재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거대 전자-양전자 가속기(LEP)에서 행해지고 있다. 올해 안에 거대 전자-양전자 가속기 실험에서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가까운 장래에 미국 페르미연구소의 테바트론 가속기 실험, 또는 2005년부터 가동될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 실험에서 이 힉스 입자가 꼭 발견돼야 한다. 만일 연구자들이 예측한 범위 내에서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표준 모형의 질량생성과 관계된 부분은 크게 수정돼야 한다.

입자를 반입자로 C 변환, 좌우를 바꿔주는 P 변환

CP 대칭성은 무엇이고 CP가 깨지는 현상은 왜 중요할까. 이를 위해서는 우선 C와 P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가 지닌 대부분의 질량은 양전기를 띠는 핵을 가지고 있다. 핵은 양전기를 지닌 양성자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이 전자기력을 통해 음전기를 지닌 전자들을 속박해 원자들을 이루고, 원자들이 모여서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물, 금속, 유리 등의 물질들을 만든다. 이들이 다시 중력에 의해 뭉쳐 별들과 은하, 그리고 우주 공간을 채우고 있는 여러 천체들을 이룬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우주선(cosmic ray)들이 지구의 대기권과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입자들 가운데에 전자와 질량이 같으나 전자와는 반대로 양전기를 지닌 입자인 양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1932년 앤더슨에 의해 발견됐다. 이러한 입자는 이보다 1-2년 전에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디랙이 특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접목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디랙 방정식으로부터 이미 예측된 바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입자와 질량은 같고 전하나 기타 내부 양자수(핵자수, 아이소스핀(isospin), 기묘도(strangeness) 등)가 반대 부호값을 지니는 입자를 반입자라 하며, 입자를 반입자로 변환시키는 작용을 C변환(charge conjugation)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어진 하나의 상황에 대해 C 변환을 한 상황이 자연계에 똑같은 확률로 나타날 수 있으면 ‘C 변환이 좋은 대칭성이 된다’고 한다.

한편 P 변환은 한 상황을 거울에 비추어진 상황으로 바꾸어주는 변환인데, 좀더 쉽게 생각하면 좌우를 바꾸어주는 변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한 예로 현실 세계에서는 오른손잡이인 사람이 거울 속의 세계에서는 왼손잡이가 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주어진 하나의 상황에 대해 P 변환을 한 상황이 자연계에 똑같은 확률로 나타날 수 있으면 ‘P 변환이 좋은 대칭성이 된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볼 때에 자연계의 법칙이 왼쪽과 오른쪽을 근본적으로 구분하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우며, 1956년까지는 당대의 최고의 물리학자들 대부분이 이에 대해 털끝만큼의 의심도 갖지 않았다. 이러한 믿음은 파울리가 “신이 왼손잡이란 말인가 ?”라고 말한 데에서 웅변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P와 C 변환이 약한 핵력의 작용에 의해 완전히 깨진다는 사실이 중국계 물리학자들에 의해 1956년 밝혀지면서 상황은 바뀐다.


만일 우리 주위에 많은 수의 반입자들이 있었다면 몸 안의 원자들과 만나 쌍소멸을 일으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반물질의 존재를 비유족으로 표현한 마릴린 먼로의 반전 사진.


CP 대칭성이 깨진다는 의미

그러면 P와 C 대칭성이 약한 핵력에 의해 완전히 깨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1930년대 일본의 유가와가 강한 핵력의 전달자로 내세웠던 파이온 중에서 전하를 지닌 ${π}^{+}$중간자는 생긴지 약 2.6×${10}^{-8}$초 후에 약한 핵력의 작용에 의해 ${π}^{+}$→${μ}^{+}$(R)vμ(L)라는 과정(과정 1)을 통해 붕괴하는데, 이 때에 R과 L은 각각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입자들이다. 좀더 정확하게는 입자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엄지손가락을 향했을 때에, 입자의 스핀이 오른손 또는 왼손의 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할 때에 이를 각각 R 또는 L입자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 C 변환을 하면 ${π}^{-}$→${μ}^{-}$(L)$\overline{v}$μ(R) (과정1-C)을 얻는다.

P 변환을 취하면 스핀의 방향은 그대로이고 운동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R과 L이 바뀌게 돼 ${π}^{+}$→${μ}^{+}$(L)vμ(R)(과정 1-P)을 얻는다. 끝으로 과정(1-C)에 P변환을 하면, ${π}^{-}$→${μ}^{-}$(L)$\overline{v}$μ(R)(과정 1-CP)를 얻게 되며, 이는 (과정 1-P) 에 C 변환을 취해서 얻는 과정과 같다. 만일 P 또는 C가 좋은 대칭성이었다면 (과정 1)과 (과정 1-P) 또는 (과정 1-C)가 자연계에서 같은 확률로 발견돼야 한다. 이들이 완벽한 대칭성이 아니라 적당히 깨진 대칭성을 갖는다면 이들 과정들이 일어날 확률이 서로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자연계에서 (과정1)과 (과정 1-CP) 는 같은 확률로 관측됐지만 (과정 1-P)와 (과정1-C) 는 실험오차 한계 내에서 관측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P와 C 대칭성이 약한 핵력에 의해 완전히 깨진다는 말의 의미다.

하지만 이 CP 대칭성도 약한 핵력이 작용할 때에, 수명이 짧은 중성 K 중간자(Ks)가 두 개의 파이 중간자(π)들로 붕괴하는 과정에서 매우 미미할 정도로 깨어진다는 것이 1964년에 크리스텐슨 등에 의해 발견됐다. 표준 모형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고바야시-마스카와 위상(Kobayashi-Maskawa phase)이라고 불리는 복소수 위상을 가지고 설명한다.

만일 이 설명이 맞는다면 K 중간자보다 약 10여배 무거운 B 중간자 붕괴에서는 더 큰 양의 CP 붕괴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찾는 실험을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수의 B-B( -B는 B반중간자)쌍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B 중간자 공장(B factory)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99년부터 미국 스탠퍼드의 선형가속기연구소(SLAC), 일본의 고에너지연구소(KEK), 그리고 미국 코넬대학교 등에서 B 중간자 공장들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의 벨(BELLE)이라는 실험그룹에 우리나라의 실험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CP대칭성 깨짐을 찾으려고 한다.

B 공장에서는 1년에 수백만개의 B -B쌍을 만들어내어 B 중간자의 섞임과 붕괴에서 일어나는 CP 붕괴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 실험으로부터 표준 모형이 예측하는 정도의 CP 붕괴율이 관측된다면 이는 KM 위상으로 입자물리의 모든 CP 붕괴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될 것이다. 반면에 표준 모형의 예측과 다른 실험결과를 얻게 된다면 KM 위상 이외에 CP를 깨는 새로운 물리법칙이 있어야 함을 암시하는 것이 된다.

인류 존재의 이유

CP 대칭성 연구가 왜 중요할까. 모든 입자에 대해 반입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부터 도출되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따라서 반양성자와 반중성자로 이루어진 반핵 주위를 양전자가 여러 양자 상태에 들어가 있는 반원자들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다시 반물질을 이룰 것이다. 하지만 우주에 반물질들이 보통의 물질에 비해 훨씬 적다는 사실은 우리 주위를 봐도 명확할 뿐 아니라 은하보다 큰 스케일에서 살펴봐도 역시 그렇다. 이를 우주에 내재하는 핵자 수의 비대칭성(baryon number asymmetry)이라고 부른다.

만일 우리 주위에 많은 수의 반입자들이 있었다면 몸 안의 원자들과 만나 쌍소멸을 일으키면서 그 에너지를 광자 등의 형태로 방출할 것이며 우리는 더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러시아의 반체제 물리학자로도 유명한 사하로프박사는 1967년 우주에 내재하는 핵자 수의 비대칭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발표했다. 그 조건 중의 하나가 C와 CP를 깨는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준 모형에서는 위에서 살펴본 대로 C와 CP가 약한 핵력에 의해 깨어지기는 하지만 우주의 핵자 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는 안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러한 문제는 대통일 이론, 또는 초대칭 표준 모형 등에서 해결될 것으로 여겨지나 확실한 결론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고바야시-마스카와 위상 이외에 CP를 깨는 새로운 위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위상은 B 중간자 물리현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B 중간자 공장 실험을 통해 CP를 깨는 새로운 물리법칙을 발견하는 연구는 그 자체로서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핵자 수의 비대칭성, 즉 우리가 어떻게 우주에 존재할 수 있는가를 근원적으로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입자물리학의 유용성

이상으로 향후 십 수년간 입자물리학 실험 분야의 주요 과제인 힉스 입자 탐색과 CP 대칭성의 이해가 왜 중요한지 살펴봤다.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위의 두 실험들은 일상 생활을 당장에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연구는 아니다. 인간과 우주의 존재에 대한 기원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게 해 줌으로써 인류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연구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연구는 학문적인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관련 과학 기술 분야의 최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접분야의 신기술개발을 수반하게 돼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인터넷 정보사업의 근간이 되고 있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개념이 도입된 동기는 바로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물리학자들이 많은 양의 데이터들을 여러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공유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경주한 노력의 결실이다.

또한 최첨단 입자물리실험에서 추구하는 것은 인류가 이제까지 전혀 도달하지 못한 고에너지와 미세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최첨단의 기술과 데이터 해석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전자공학과 재료공학, 그리고 컴퓨터 산업도 동시에 발전된다. 이처럼 입자물리 실험은 순수학문으로서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산업의 도약적인 발전을 수반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입자가속기를 국내에 건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이기 때문에 국내 입자실험 물리학자들은 외국의 주요 가속기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활동이 국제 입자실험 물리학계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관련된 첨단 기술 분야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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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고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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