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계절성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주로 A형 2종과 B형 2종 등 4종이다. 오소믹소바이러스과(Orthomyxoviridae)에 속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유전자 서열에 따라 크게 A, B, C형으로 나뉜다. 이 중 사람을 감염시키는 건 A형과 B형이다. 표면에 공통적으로 헤마글루티닌(H)과 뉴라미니데이즈(N)라고 불리는 거대한 당단백질이 있다.
A형 바이러스의 경우, H는 16종, N은 9종이 있다. H1N1부터 H16N9까지 144개의 아형(subtype)이 존재할 수 있다(최근 박쥐에서 H17, H18이 새롭게 발견됐다). 예컨대, 조류독감은 H5 또는 H7 단백질을 갖는다. 매년 사람에게 계절성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대부분 H1N1과 H3N2다. B형 바이러스는 뚜렷이 구분되는 아형은 없는데, 항원 단백질 염기서열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빅토리아와 야마가타 등 두 가지 계통(Lineage)으로 분류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매년 2월과 9월, 북반구와 남반구에 각각 유행하게 될 독감 바이러스 3종을 예측해 발표했다. 여기에는 A형/H1N1과 A형/H3N2가 반드시 포함되고 B형은 빅토리아와 야마가타 중 1종이 포함됐다. 전세계 제약사들은 WHO에서 배양한 해당 균주를 공급받아 3가 백신을 만들어 판매해 왔다. B형을 한 종만 포함한 이유는, 한마디로 B형 바이러스에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다. B형 바이러스는 A형에 비해 유전적 변이가 적다. 1990년대 들어서야 빅토리아와 야마가타 두 계통으로 구분됐으며, A형 독감에 비해 증상이 약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 4가 백신, B형 바이러스 추가
그런데 B형 독감 연구가 늘면서 새로운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에서 2000년 이후 B형 독감이 전체 독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최대 59.8%까지 늘었다는 점이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1년 말 유행한 전체 독감의 48.5%가 B형 독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계적으로는 전체 독감의 약 27%가 B형 독감으로 추정된다. 이는 A형/H1N1 보다 더 높은 수치다. A형 독감에 비해 덜 위험한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강진한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2011~2012 절기 B형 인플루엔자 감염의 임상 양상’ 연구에서 “B형 독감은 임상 양상과 검사실 소견으로는 A형 독감과 구분할 수 없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B형 바이러스에 대한 WHO의 예측이 자주 빗나갔다는 점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가 2013년 12월 학술지 ‘감염과 화학요법’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WHO가 권고한 B형 바이러스의 거의 절반이 실제 유행한 바이러스와 일치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2001~2011년 사이에 다섯 차례, 유럽에서는 2003~2011년 사이에 네 차례나 예측이 틀렸다. 한 유행 절기에 두 계통이 동시에 유행하기도 했다. 한국도 비슷해서,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이후 두 가지 계통의 B형 바이러스가 절기마다 동시에 유행하고 있다.
비록 딱 맞는 백신이 아니더라도 면역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를 교차반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화중 국립보건연구원 인플루엔자바이러스과 연구사는 “빅토리아와 야마가타 사이에 면역학적 교차반응은 미미하다”며 “예측이 빗나가면 백신 효과가 아무래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백신에 포함된 독감에 대한 방어 효과가 72~100%인 데 비해, 포함되지 않은 독감은 16~55%에 불과했다.
* 교차반응: 항원-항체 반응은 마치 자물쇠와 열쇠처럼 특정 항원에 특정 항체만 반응하는 ‘특이성’이 가장 큰 특징인데, 간혹 다른 항체에도 약하게 결합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교차반응이라고 한다.
결국 WHO는 2013~2014 절기부터 B형 바이러스의 두 계통을 모두 포함하는 4가 백신을 권장했다. 대한감염학회도 ‘2014년 권장 성인예방접종 개정안’에서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3~4월에 B형 인플루엔자 유행이 반복되고 있으며 백신으로 제작된 B형과 실제 유행한 바이러스 사이에 불일치 현상이 있어 4가 백신 사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2년 미국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4가 백신이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도 영국계 제약사가 지난해 식약처의 승인을 받아 올해부터 4가 백신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 만능은 아니지만…가장 뛰어난 해결책
하지만 제약사의 홍보 내용처럼 4가 백신이 독감 발생률을 크게 줄일지는 미지수다. 사람에게 계절성 독감을 일으키는 주요 바이러스는 4종이지만, 이들의 변종까지 따지면 사실상 천문학적인 개수의 독감 바이러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같은 A형/H1N1 바이러스일지라도 캘리포니아주, 텍사스주, 브리즈베인주 등으로 세분된다. 일반적으로 변종 바이러스가 처음 분리된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
독감 바이러스의 변종이 많은 이유는, 유전자가 RNA로 돼 있어서다. 일반적으로 RNA 유전자 복제효소는 정확도가 떨어진다. 유전자를 복제할 때 실수할 확률이 DNA 유전자 복제효소에 비해 1만~10만 배쯤 높다. 또한 독감 바이러스 유전자는 여덟 조각으로 나뉘어 있다. 서로 다른 독감 바이러스가 한 세포에 들어가 섞이면, 새로운 바이러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 독감 바이러스는 해마다 H와 N 단백질의 유전자를 살짝 바꿔 인체 세포를 공격한다. 이런 변이는 독감 바이러스가 인체의 면역세포들에게 적발되지 않고 침입하려고 ‘눈 밑에 작은 점’을 찍는 행동인 셈이다.
보통 독감 백신은 H와 N 단백질을 항원으로 사용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그런데 이들 단백질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과거에 감염됐거나 백신을 맞아서 항체가 이미 있더라도 빠르게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없다. 예컨대, 2002년에 유행했던 A형 독감 바이러스는 H3N2의 변종인 파나마주였다. 그런데 다음 해에 푸젠성주가 나타나 질병을 일으켰다. 바이러스 아형이 H3N2로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 독감에 걸린 것이다. 당시 세간에서는 ‘물백신’ 논란이 나왔다.
만약 이렇게 WHO의 예측이 빗나가면, 4가 백신도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모든 독감 바이러스에 공통으로 있는 항원을 공격하는 ‘만능 백신’ 연구도 활발하지만, 아직 상용화된 건 없다.
그럼 방법이 없는 걸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그 해에 유행할 바이러스를 더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다. 이 연구사는 “유행할 바이러스를 100% 정확하게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면서도 “변종 바이러스들의 유전 정보를 분석하는 등 예측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백신이 만능이 아니라고 해서 맞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백신은 여전히 최선의 독감 예방책이다. 4가 백신은 B형 1종을 추가함으로써 3가 백신보다는 불일치 위험을 상대적으로 낮췄다. 예방 확률이 높은 4가 백신이냐, 가격이 싼 3가 백신이냐, 선택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