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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연못에서 뛰쳐나온 올챙이

충돌중인 은하가 빚어낸 신비한 형상

겨우내 땅속에 잠들어 있던 개구리가 따스한 봄기운에 놀라 뛰쳐나온다는 경칩이 한참 지났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3월 하순부터 물웅덩이에 알을 낳기 시작한다. 그후 알을 깨고 올챙이가 되는데는 대개 보름 정도가 걸린다. 때문에 이르면 4월 중순부터는 연못에서 노니는 올챙이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우주에서도 올챙이를 만날 수 있다면 억지일까. 지난해 4월말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공개한 허블우주망원경의 영상을 살펴보자. 허블우주망원경에 새로 장착된 첨단관측카메라(ACS)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 사진 속에는 놀랍게도 ‘올챙이’ 한마리가 힘차게 뛰놀고 있다. 둥그런 머리와 긴 꼬리가 영락없이 올챙이를 닮았다.

자세히 관찰하면 소용돌이 모양은 올챙이의 배에 꼬여 있는 창자처럼 보이고 길게 뻗은 꼬리는 어디로 바삐 헤엄쳐 가는 듯하다. UGC10214라는 이름의 이 천체는 그 모습에 걸맞게 별명 역시 올챙이다.

우주라는 거대한 연못에 올챙이가 뛰놀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올챙이는 성체인 개구리의 어릴 적 모습이다. 개구리는 때로 왕권과 관련해 신성한 존재를 상징한다. ‘삼국사기’의 부여신화에 등장하는 금빛 개구리가 좋은 예다.

부여왕 해부루는 늙도록 슬하에 아들이 없어 마음 아파하다가 산천에 후사를 달라고 정성껏 치성을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해부루가 곤연이라는 지역에 이르자 갑자기 타고 있던 말이 큰 바위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해부루가 바위를 옮겨 보니 그곳에 금빛으로 빛나는 개구리 형상의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해부루는 이 아이를 하늘이 내린 축복으로 여기고 이름을 금개구리라는 뜻의 금와(金蛙)라고 지었다. 금와는 해부루가 죽은 후 왕위를 이어받았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금와는 혹시 UGC10214라는 우주 올챙이가 하늘에서 내려와 변신한 모습은 아닐까. 해부루의 정성에 감복해서 말이다.

1백30억년 역사 보여주는 6천개 은하

UGC10214의 정체는 사실 우리은하처럼 수천억개의 별들이 모여 있는 은하다. 은하는 모양에 따라 타원은하, 나선은하, 불규칙은하로 나뉜다. 지구에서 용자리 방향으로 4억2천만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UGC10214는 나선은하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리 평범한 종류가 아니다. 놀랍게도 올챙이를 닮은 주인공은 격렬하게 충돌중인 두 은하가 빚어낸 모습이다.

실제로 올챙이가 충돌중인 두 은하의 모습인지 확인해보자. 사진에서는 올챙이의 머리와 배를 이루는 위치에 나선모양의 원반을 가진 커다란 은하가 쉽게 눈에 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은하는 어디 숨어있을까. 올챙이 머리 쪽에 소복이 쌓여 있는 파란 별무리가 보인다. 큰 은하의 원반을 관통하고 있는 조그만 가해자의 모습이다.

올챙이의 긴 꼬리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두 은하가 충돌하는 와중에 서로에게 미친 강한 중력으로 인해 만들어진 부스러기가 그려낸 모양이다. 별과 가스로 구성된 부스러기 꼬리는 28만광년이 넘는 길이로 뻗어있다. 기다란 꼬리 중간에는 파란 별무리 둘이 돋보인다. 충돌 과정에서 새로이 탄생한 별무리로 나중에 큰 은하를 도는 왜소은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거대한 우주 올챙이는 교통사고처럼 충돌의 아픔을 겪은 파괴의 현장이자, 지성 끝에 하늘이 점지해준 금와처럼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현장이기도 한 것이다. 해부루의 말이 눈물을 흘린 이유도 금개구리로 변신할 올챙이의 아픔을 알았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올챙이의‘배경화면’을 살펴보자. 올챙이 뒤로는 무려 6천여개에 달하는 은하들이 등장한다. 마치 작은 올챙이가 꼬물거리는 듯한 모양이 모두 은하다. 다양한 형상을 간직한 이들은 1백30억년이라는 장고한 세월에 걸친 우주의 진화를 보여주는 화석들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어두운 은하는 거의 우주 초기의 모습이다. 금와왕을 탄생시킨 신통력 있는 올챙이가 노는‘물’은 확실히 다르다.

200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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