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공구성은 과학기술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됐다는 교수의 말을 정말로 싫어합니다. 그에게 과학기술이란 언제, 어느곳에서든 재료만 있다면 구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치거든요. 그런 주인공이 덤프트럭에 치여 조선시대로 날아갔습니다. 세종의 눈앞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을 일으키러.
현재환



Jocelyndurrey(W)
1434년(세종 16년) 완성된 금속활자 갑인자는 이천과 장영실 등이 협업해 만든 당대 한국 인쇄술의 정점이었다. 천문기기를 제작하던 이들이 제작에 참여해 정교함을 갖췄고, 인쇄 속도를 전보다 두배 이상 올린 획기적인 금속활자로 꼽힌다.
프롤로그
보편적 진리도 덤프트럭을 피하지는 못한다
공구성은 코를 찌르는 진한 먹과 눅눅한 종이 냄새를 맡으며 눈을 떴다. 어두운 실내에 눈이 적응되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 안이었다.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니 두툼하고 단단한 굳은살이 손바닥 가득 박혀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여기가 본인이 방금 전까지 있었던 옥탑방은 아니란 점이었다.
30분 전 서울 관악산 기슭. 구성이 사는 옥탑방의 공기는 커피 향과 먼지, 그리고 지독한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대 과학학과에서 서양과학사를 전공하는 석사과정생 구성은 학기말 과제의 마지막 문장을 타이핑하고는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모니터의 워드 프로세서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과학사에 만연한 사회구성주의 비판: 과학의 보편성과 기술결정론을 옹호하며’.
석사 신입생인 구성이 보기에 ‘과학사통론’은 따분한 입문 코스였다. 서양 과학의 거대한 줄기를 훑는 이 개괄 수업에서 교수는 자꾸만 과학기술학(STS)이라는 양념을 쳤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학문 분야다. 이에 기반해 교수는 과학적 사실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됐다고 떠들었다.
구성의 머리를 식혀주는 것은 책상 위에 놓인 서양사 입문의 정석, 미국의 역사학자 E.M. 번즈의 ‘서양 문명의 역사’ 뿐이었다. 구성은 기술혁신이 합리적 이성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졌다는 말을 신봉했다. 1440년대 이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이 지식의 폭발을 가져와 과학 르네상스를 꽃피웠고, 16~17세기 과학혁명을 거쳐 산업혁명까지 이어졌다는 ‘진보의 연대기’는 그에게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사회적 맥락? 웃기는 소리. 기술은 물리 법칙의 응용일 뿐이야.”
그는 자신의 확신을 단호하게 되새겼다. 과학은 보편적이며, 그 산물인 기술 또한 시대를 초월해 작동해야 한다. 18세기 증기기관 설계도만 있다면 조선에서도 문제없이 기차를 만들 수 있을 터였다. 연료가 석탄이든 나무든, 열역학 법칙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료가 가진 화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운동에너지로 바꾼다는 법칙은 조선시대에도 틀림없이 작용해 기차를 작동시킬 것이었다.
흡족한 미소와 함께 인쇄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프린터에 ‘A4 용지 없음’ 표시가 떴다. 기말 과제 제출 마감까지 불과 세 시간. 구성은 빗줄기를 뚫고 편의점으로 뛰쳐나갔다. 관악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던 찰나, 빗길에 미끄러진 25톤 덤프트럭이 그를 덮쳤다. 보편적인 뉴턴의 운동 법칙과 마찰계수의 배신이 빚어낸 비극적 충돌. 그 압도적인 운동에너지 앞에서 구성의 의식은 암전됐다.
정신을 차렸을 때, 구성은 적송으로 가득 찬 낯선 숲에 서 있었다. ‘기말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한탄하는 구성 앞에 관악산 산신령을 자처하는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비웃듯 말했다.
“보편적 과학이 시공간을 초월해 기술을 만든다는 네놈의 믿음이 맞아떨어지는지 직접 경험해 보거라. 이른바 ‘강제 현장실습’이니라.” 어째선지 산신령의 얼굴이 지도교수님과 겹쳐 보였다.
‘강제 현장실습…?’ 구성이 여기까지 기억을 되짚은 순간, 건물 바깥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구성은 소리의 주인에게 상황을 물어봐야겠다 다짐하고 뛰쳐나갔다. “저기 선생님, 혹시 여기가 사극 세트장…?” 그리고 그의 질문은 중간에 끊기고 말았다.
“경은 어찌하여 그리 넋을 놓고 있는게요? 주자소의 활자가 자꾸 어긋나니, 과인이 일찍이 새로운 방도를 강구하라 명했거늘.”
금빛 용이 꿈틀거리는 곤룡포, 후덕하면서도 떡벌어진 풍채,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 구성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누가 봐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숙직이라도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일 중독자, 진짜 세종대왕이었다. 당혹감에 휩싸인 순간, 허공에 갑자기 익숙한 푸른색 반투명 창이 떠올랐다. 대학원에 다니며 지겹게 봤던 학사관리 시스템의 로그인 화면이었다. 아마도 구성의 눈에만 보일 그 글자를 보고서야 구성은 백발 할배가 말한 ‘과학사 현장실습’의 의미를 깨달았다. 꿈도, 사극촬영도 아니었다. 여긴 진짜 15세기 조선이었다.
과제

금속 활자와 병장기 개량을 비롯한 각종 과학기술 프로젝트를 총괄하던 전설적인 공학자이자 무인이던 이천.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은 구성이 현재 누구의 몸에 들어와 있으며, 어떤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줬다.
“자네 전하 앞에서 무슨 무례인가! 어서 얼굴을 조아리게.”
세종대왕의 옆에 선 환관의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이 든 이천, 아니 구성의 심장은 긴장감에 터질 듯 두근거렸다. 세종대왕이 말한 주자소란, 조선시대 활자 주조 및 인쇄를 담당했던 관청이다. 이천은 당시 주자소의 실무 책임자였다. 이들의 노력 끝에 세종대왕 재위 기관동안 주자소에서는 조선시대 인쇄술이 혁신적으로 발전했다.
인쇄술 혁명은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면서 귀족의 전유물이던 종이에 적힌 지식을 널리 보급한 사건을 말한다. 이걸 조선에서 일으켜보라는 게 과제였다. 곧 구성의 마음 속에서 오만한 본성이 고개를 들었다. ‘인쇄술 혁명? 누워서 떡 먹기지. 구텐베르크가 독일 마인츠에서 인쇄기를 완성한 시기는 약 1440년 경, 아직 5년은 넘게 남았다. 내가 여기서 먼저 혁명을 일으켜주지. 설계도만 정확하면 기술은 어디서든 작동하는 법이니까.’ 구성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세종에게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전하! 조선의 인쇄 방식은 비효율적입니다. 앞으로 열 달 안에 현재의 인쇄술을 바꿀 구텐베르… 아니, ‘누름틀’을 제작하겠나이다.”
1434년은 금속활자 ‘갑인자’가 개발된 한국 인쇄술의 역사에 중요한 해였다. 금속활자는 금속 판에 금속 활자를 올린 다음 종이에 찍어내는 인쇄 장치를 말한다. 당시엔 활자를 하나하나 모래로 된 거푸집에 부어 만들었다. 그 탓에 활자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아, 판을 짤 때마다 장인이 일일이 활자를 고정해야 했다. 갑인자는 대나무 조각을 이용해 활자를 고정시켜 인쇄 속도를 전보다 두배 이상 올린 획기적인 인쇄기술이었다. 그러나 구성의 눈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보다 한참 모자라 보였다.
구성이 도입하려는 신기술은 미국의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이 극찬했던 구텐베르크의 ‘삼종 세트’였다. 삼종 세트를 이용하면 표준 규격을 가진 활자를 주조하고, 종이를 활자에 찍는 압착 과정을 기계화 할 수 있을거라고 봤다. 물론, 세종에게 구텐베르크를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구성은 구텐베르크 인쇄기를 대충 ‘누름틀’이라 둘러댔다. 어찌 되었든 의미만 통하면 되니까.
삼종 세트 중 첫째는 나사식 압착기다. 기존 방식이 사람이 붓으로 종이 뒷면을 문질러 잉크를 찍어내는 방식이었다면, 나사식 압착기는 나사의 회전력을 이용해 판 전체에 균일한 수직 압력을 가한다. 기계가 찍어내기에 인쇄 품질이 일정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다. 다음은 점도가 높아 금속 표면에 완벽히 밀착되는 유성 잉크다. 구성은 들기름을 활용해 유성 잉크를 만들 셈이었다. 그는 먹을 만드는 묵장들이 애지중지하던 유연묵조차 점도가 낮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셋째는 인쇄 혁명의 정수로 꼽히는 활자의 표준 주조법이었다. 구성은 녹는점이 낮아 가공하기 편한 납과 주석 합금 활자를 제안했다. 강철 펀치로 활자 틀을 찍어내는 서구식 주조법을 도입하면, 규격이 일치하는 활자를 수만 개씩 찍을 수 있다. 대나무 조각을 끼우는 번거로운 공정 없이 활자판을 정교하게 조립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숙련된 장인의 재주가 없어도, 이 누름틀만 있다면 찰나의 순간에 서책을 쏟아낼 수 있사옵니다.”
보고서
유럽과 조선의 사회기술 시스템은 ‘종이 한 장 차이’
세종의 허락을 얻어낸 구성은 즉시 대장간 부서를 닦달해 나사식 압착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져나왔다. 15세기 조선의 대장장이들은 ‘나사’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다. 서구의 나사는 포도주 압착기에서 유래해 오랜 시간 축적된 금속 가공의 산물이었다. 서양인들이 포도주에 취한 기간만큼이나 오래된 노하우를 지녔다는 뜻이다. 조선의 장인들에게 무쇠를 깎아 정교한 나사를 만들라는 갑작스런 명령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이천님! 이 나사라는 거, 제대로 작동하지가 않습니다요.”
“아니, 조금 더 노력을 해보게. 하면 된다니까!”
이천, 그러니까 구성이 장인들을 들볶는 동안, 진짜 복병이 등장했다. 합금 활자였다. 구성은 납과 주석으로 만든 합금에 안티모니(Sb)란 재료가 더해지지 않으면 강도가 약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합금 활자는 너무 물러 찍어낸 글자가 뭉개졌다. 구성은 이를 압력 부족이라 오판해 압착기의 나사를 끝까지 조이고 유성 잉크를 더 듬뿍 발라 해결하려 했다. 이것이 비극의 도화선이 될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열 달 후 주자소에서 열린 누름틀 시연회. 세종대왕과 참석한 대신들 앞에서 구성은 서양식 유성 잉크를 합금 활자에 바르고, 그 위에 조선의 자랑인 닥나무 종이, 즉 한지를 덮었다. 시연할 활자의 내용은 농사직설을 선택했다.
“보십시오! 이것이 누름틀입니다!” 구성이 나사를 힘차게 돌렸다. 콰득, 소리와 함께 거대한 압력이 수직으로 쏟아졌다. 이제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10년 넘게 앞서 조선의 농사직설이 최초의 인쇄술 혁명을 일으킨 책으로 기록되리라. 구성의 마음이 뿌듯함으로 가득 찼다.
“아니, 이게 무슨…!”
하지만 나사를 풀고 종이를 들어 올렸을 때, 그곳에는 정교한 인쇄본이 없었다. 갈가리 찢겨 나간 닥나무 섬유의 잔해와, 종이 뒷면까지 시커멓게 번진 잉크의 얼룩 뿐이었다. 구성은 경악했다. 누름틀에서 물리 법칙은 정확히 작용했다. 따라서 활자를 종이에 찍어낼 때 필요한 압력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종이의 ‘물질성’을 간과했다.
유럽에선 넝마(면 섬유)를 짓이겨 만든 면으로 종이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면지는 짧은 섬유들이 엉겨 붙어 수직 압력에 강하고 잉크를 표면에 잡아 두는 성질이 있었다. 반면, 조선의 한지는 닥나무의 길고 질긴 섬유를 그대로 살려 만든다. 한지는 압착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털 붓으로 문질러 섬유 사이로 잉크가 서서히 스며들게 해야 하는 매체였다. 강한 수직 압력은 한지의 유연한 섬유 결합을 파괴했고, 침투력이 좋은 유성 잉크는 닥나무 섬유를 타고 기름 얼룩을 만들어내며 뒷면까지 번져 나갔다.
세종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경이 그리 자신만만하게 말한 누름틀이 고작 종이를 찢고 귀한 활자를 뭉개는 것이었더냐?”
구성은 당황해 “면으로 종이를 만들면 됩니다!”라고 외쳤다. 이 말이 더 큰 화를 불렀다. 조선에서 면포는 화폐 그 자체였다. 누름틀을 만든답시고 장인들을 차출한 것도 모자라, 귀한 면을 종이로 만들자는 구성을 탄핵하라는 여론이 거셌다. 결국 구성은 전라 남원으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유배지로 가는 길, 그는 비로소 보았다. 농민들이 종이 공납을 맞추기 위해 산천의 기후를 살피며 닥나무를 재배하는 모습, 승려들이 얼음물에 손을 담가 섬유를 뜨는 노동, 그리고 긴 닥섬유의 틈을 채우기 위한 닥풀, 얽힌 섬유를 다듬기 위해 방망이로 두드리는 ‘도침’, 그것은 단순히 물리 법칙을 응용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조선의 토양, 기후, 노동력이 촘촘하게 엮인 ‘사회기술 시스템’ 그 자체였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포도주를 만들고, 면 넝마를 널리 사용하던 유럽의 사회기술 시스템 안에서만 ‘보편적’이었던 것이다.
허공에서 산신령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허허, 이제야 닥나무 냄새가 좀 나느냐? 네놈의 1주차 성적은 F다. 다음 주차에는 ‘은’의 맛을 좀 보거라.” 빛이 번쩍였다. 구성의 정신이 다시 흐릿해졌다. 이번엔 어디로 떨어질 것인가.
현 교수와 소설 뜯어보기
사회 생태계는 종이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양의 넝마 종이와 ʻ도시형 재활용 생태계’
넝마 종이의 재료는 버려진 헌 헝겊을 물에 불린 뒤, 망치로 잘게 짓이겨 짧은 섬유를 추출하는 식으로 얻습니다. 이후 섬유를 금속망으로 걸러내 시트 형태의 종이를 만들죠. 따라서 서양에서 종이란, 도시화와 직물 산업의 부산물인 ʻ직물 폐기물’을 원료로 하는 도시 중심적 자원 순환 구조가 반영된 결과물입니다. 인쇄 수요의 급증은 ʻ넝마주이’라는 새로운 직업군을 활성화하며 도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죠.
조선의 한지와 ʻ자연 공생 생태계’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잿물로 삶아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 닥풀(황촉규)을 섞어 ʻ외발뜨기’로 종이를 빚는 식으로 만듭니다. 여기엔 나무를 베어도 다시 살아나는 닥나무의 생명력에 기반한 농촌 생태적 순환 시스템이 반영돼 있습니다. 한지는 장인의 숙련된 노동과 마을 단위의 협업, 그리고 잿물과 닥풀이라는 식물 자원을 활용한 친환경적 기술 집약체죠.
| 공구성이 봤더라면 좋았을 글
김화선, ʻ조선 금속활자 인쇄술의 백미(白眉) “갑인자”에 대한 평가의 의미 재고(再考)’, 한국과학사학회지 44 (2022)
이정, ʻ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 (푸른역사, 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