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나노세계를 여는 기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전통적인 묘화기술에다 이를 한차원 진전시킨 LIGA 기술, 원자조작을 가능케하는 STM 등의 원리를 살펴보자.
현재 사회는 산업화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정보화사회는 자료의 대량전송과 처리를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는 소자의 고집적화와 초고속화에 의해 만족될 수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소자의 대부분은 재료의 거시적(macroscopic) 성질을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소자만으로 닥쳐올 미래사회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새로운 물리현상을이용한 새로운 개념의 소자개발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예를 들어 기계부품의 초소형화는 제품의 경량화와 소형화에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재료의 준미시적(mesoscopic) 혹은 미시적(microscopic) 성질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재료 크기가 작아지면 크기에 따른 양자효과(quantum effect)가 나타난다. 양자효과가 나타나는 소자의 특성은 기존 소자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들은 기존의 매크로부품 가공기술과는 전혀 다른 제작방법이 사용된다.
지금부터 새로운 소자와 초소형 부품제작기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이러한 구조물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초소형 모터나 기어와 같은 수십 마이크로미터(${10}^{-6}$m) 이상의 크기를 갖는 초소형 부품, 마이크로미터 이하에서 수 나노미터(${10}^{-9}$m)의 크기를 갖는 초미세구조, 나노미터 이하의 크기로 된 극초미세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초소형부품에는 묘화기술(lithography, 描畵, 석판기술이라고도 함)에 기반을 둔 LIGA 기술이 이용되며, 초미세구조는 석판기술과 패턴전달(pattern transfer) 기술이 활용된다. 극초미세구조의 제작에는 주사터널링현미경 기술을 이용한 원자조작기술이 근간을 이룬다.
□ 묘화/그림본을 뜬다
묘화기술의 어원은 인쇄를 위해 패턴을 기록한 석판(stone plate)에서 기원한다. 이는 기판 위에 있는 감광성 유기박막으로 된 레지스트(resist, 화학작용에 저항한다는 의미)에 패턴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새겨지는 잠재형상은 레지스트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화학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형상은 어떤 부위에 빛이나 입지를 방사(radiation)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감광된 레지스트를 용매로 용해하면 패턴이 형상화되는데, 이는 사진촬영 및 현상과정과 유사하다. (그림1)은 묘화기술의 기본단계를 보여 주고 있다. 방사물에 노출된 부분이 제거되면 양성이라고 하고, 노출되지 않은 부분이 제거되면 음성이라고 한다.
무기질 레지스트는 비교적 높은 분해능을 얻고자 할 때 사용한다. 플라스마 현상법을 적용하는데, 플라스마에 대한 재료의 화학반응 차이를 이용하여 현상한다. 이보다 더 높은 분해능(high resolution)을 얻고자 할 때는 자기 현상레지스트(self-developing resist)를 사용한다. 이 방법의 특징은 방사물에 노출된 부분의 원자나 분자들이 기체화돼 증발하므로 현상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묘화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에 어떤 방사물을 쬐느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자이온광자(photon) 등이 사용되는데, 그러나 이들은 특유의 산란성을 가지고 있고, 회절이나 쿨롱반발력, 또는 광학장치의 한계로 인해 빛이나 입자의 에너지를 아주 작은 영역에 국한시킬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실제로 레지스트에 입사된 에너지는 고체 내에서의 압자의 산란성 때문에 레지스트박막에서 확산되므로 작은 영역에서 활용이 어렵다.
□패턴전달/식각과 증착
레지스트에 형성된 패턴을 시편(실제 사용되는 재료)에 전달하여 실제 구조를 창출하는 기술을 패턴전달기술이라고 한다. (그림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레지스터에 형성된 패턴을 원하는 영역에 물질을 증착하거나 식각함으로써 구조를 만든다.
패턴전달은 초미세구조 제작에서 고분해능을 얻는데 걸림돌이 된다. 예를 들어 묘화기술로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구멍을 제작했더라도 이러한 크기의 구조를 시편에 옮기는 일은 매우 어렵다.
패턴전달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기술은 식각(etching) 증착(growth) 리프트-오프(lift-off) 도핑(doping) 등이다. 식각은 (그림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출된 시편에서 원자를 제거하여 음각된 구조를 만드는 것이고, 증착은 반대로 노출된 시편 위에 물질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리프트-오프는 현상 후 남아있는 레지스트와 노출된 시편 위에 물질을 증착한 후 원하지 않는 부위를 제거하여 양각 구조를 만드는 기술이다. 도핑은 노출된 시편 부위만 선택적으로 도핑하여 구조를 형성시키는 방법이다.
□LIGA/2차원에서 3차원으로
센서나 부품의 초소형화를 추구하는 마이크로머신 기술은 IC칩을 제작하는 반도체 공정 기술에서 한수 배우고 있는 중. 기판 위에 기계부품과 전자부품을 조합하여 초소형부품을 제작하고 있다. 묘화와 패턴전달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기계구조를 창출하는 것이다. 물론 이 때 만들어지는 부품은 초미세구조보다는 훨씬 큰 수십 마이크로미터 이상이다.
초기에는 방사물로 자외선을 사용하여 패턴을 만든 후 수 마이크로미터의 두께의 물질을 증착시켜 구조를 형성했다. 이 방법은 기존의 반도체 공정과 비슷하여 제작이 용이하다는 장점은 있으나, 두께 혹은 깊이가 폭에 비해 훨씬 작아 부품의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보다 성능이 우수한 부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3차원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LIGA는 독일어로 Lithographie Galvanoformung Abformung의 약자로 묘화기술 전기도금 성형기술을 의미한다. LIGA는 3차원구조, 즉 폭에 비해 두꺼운 구조를 갖는 초소형기계부품을 갖는 제작하는 방법으로, 1980년대 초반 독일의 에르펠트에 의해 개발됐다. 이 공정을 이용하면 수백마이크로미터 두께를 갖는 구조물 제작이 가능하다.
이 경우 레지스터의 두께도 이와 필적할 만큼 두꺼워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방사물(빛 등)로는 패턴제작이 어렵다. 강력한 에너지가 요구되므로 방사광가속기에서 방사되는 X선을 이용한 묘화기술이 사용된다. 패턴을 형성한 후에 전기도금 방법으로 금속을 성장시킨다. 이러한 일련의 단계를 거친 후 필요없는 부분을 제거하면 원하는 금형을 얻을 수 있다. 원판(master)을 이용하면 많은 금형을 제작할 수 있어 같은 구조물을 다량으로 제작할 수 있다. LIGA기술에 의한 부품 개발의 단계는 (그림3)에 나타나 있다.
□원자 조작/전자주사현미경을 이용
원자 조작 기술은 원자수준에서 구조를 제작하고 변형하는 기술을 말한다. 극초미세구조 제작이나 분자 조작 등에 응용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원자조작기술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주사터널링현미경(scanning tunneling microscopy, STM) 기술이다.
전기장에서 두 전도체를 근접시키면 두 물질이 직접 접촉하지 않더라도 전자가 둘 사이의 간격을 뛰어넘어 전류가 흐른다. 이를 관통전류(tunneling current)라 하는데, 이를 이용하여 도체의 표면구조나 전자적 성질을 측정하는 기술이 STM기술이다. 이 기술은 비닉과 로러에 의해 1980년대 초반에 개발됐다. 이 기술은 표면의 상태나 계면(界面)의 구조 조사, 박막성장 연구, 원자조작 등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다.
(그림4)에 STM의 개략도가 그려져 있다. 전압이 가해진 상태에서 날카로운 금속탐침을 시편에 접근시키면 처음에는 전류가 흐르지 않으나, 둘 사이가 나노미터 이하가 되면 전자들이 관통하면서 전류가 흐른다. 이때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면 전류의 크기 또한 일정하게 된다.
전류의 세기는 거리에 민감하므로 탐침의 움직임에 의해 시편의 표면구조를 원자수준에서 측정할 수 있다. 시편의 어떤 부위에서 한 원자층만큼이 돌출돼 있으면, 탐침이 이 영역을 통과할 때 돌출된 만큼 뒤로 물러나야 한다. 이를 이용해 물질의 미세 표면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 표면 구조 연구에 사용된 STM기술은 1990년대에 들어 원자 조작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탐침과 시편 사이에 강한 전기장이 존재하게 되면 탐침과 시편에 붙어 있던 원자집단이 한쪽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IBM 등에서는 시편 위에 나노미터 크기를 갖는 글자를 새겨 자사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아무튼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면 극초미세구조를 기판 위에 형성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이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온도의 영향 등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해결돼야 한다.
□원자집합체/${C}_{60}$ 풀러렌에 주목
새로운 소자나 부품의 개발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고 있는 물질의 성질을 이용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신소자의 개발을 위해서는 새로운 물성을 갖는 재료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목적에서 새로운 개념의 재료개발이 활발하게 수행되고 있다. 기존의 물질을 이용한 인위구조, 즉 초격자(superlattice) 구조 양자우물(quantum well) 양자선(quantum wire) 양자점(quantum dot) 등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는 원자의 집합체에 대한 관심이 점점 증대되고 있다. 원자집합체는 수십개의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크기는 수Å(10-10m). 이런 크기의 원자집합체는 일반 결정구조와는 아주 다르다. 특히 금속원자의 집합체인 경우는 안정도가 비슷한 수많은 구조가 존재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원자집합체는 탄소원자 60개로 이루어진 풀러렌(${C}_{60}$)이다. 구조는 (그림5)와 같다. 12개의 오각형과 20개의 육각형으로 이루어진 32면체의 탄소원자집합체다. 여기에서의 탄소결합은 흑연과 다이아몬드 결합의 중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자집합체는 반응성이 크기 때문에 불안정한데 비해 풀러렌은 안정성이 높아, 이를 기본단위로 하여 고체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알카리 금속 원자로 도핑을 하면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의 초전도체 개발이 가능하다. 안정도가 높은 원자집합체 개발은 나노분자과학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미세·미소기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기술을 소개했다. 새로운 소자나 부품은 현재의 산업구조나 생활패턴을 급격히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타분야의 과학기술을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