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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태양계 최대의 화산 ‘올림푸스몬즈’에 가다

➋ 화성에서 보낸 첫날



지구 떠난 지 일곱 달. 목적지 화성은, 처음엔 별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각 크기를 재면서 종착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착륙을 이틀 앞둔 그제 아침에는 타르시스고원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한쪽에서 그 반대쪽 끝까지 장장 5000km에 달하는 고원지대! 아르시아, 파보니스, 그리고 아스크리우스 같은 순상화산들이 늘어선 모습이, 도열한 부대의 열병식을 떠올리게 했다.

화성 표면 위를 바싹 붙어 비행했다. 출발 전, 우리는 올림푸스몬즈와 마리너계곡 상공을 저공 활강해 아마존평원에 착륙하는 임무를 배정받았다. 다른 지역에 내리는 임무를 맡은 팀들이 부러움과 질투 섞인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지구에서 볼 수 없는, 아니 태양계에서도 보기 드문 절경을 지척에서 구경하는 드문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올림푸스몬즈는 하와이의 화산 마우나로아(10km)의 2.7배, 에베레스트(9km)의 3배 높이를 자랑하는, 태양계에서 가장 거대한 화산지대다. 지구에서는 결코 이런 지형이 만들어질 수 없다. 중력이 강해 결국 무너지고 말 테니까.

창 밖으로 까마득한 벼랑이 보였다. 숨이 멎는 듯 했다. 마리너계곡이다. 총 길이 4000km, 폭 200km로 태양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협곡이다. 북미대륙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의 길이와 맞먹는 크기로, 지구의 그랜드캐년은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길이가 10분의 1, 깊이는 4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착륙

일행을 실은 착륙모듈은 속도를 줄여 천천히 하강했다. 행성 표면에서 일어나는 먼지 때문에 선실 밖은 시계가 몇 m도 되지 않았다. 표면중력은 지구의 3분의 1.먼지 가라앉는 속도가 더디게 느껴졌다.

“5, 4, 3, 2, 1. 터치다운!”

에어록을 열고 땅을 밟았다. 7개월 반 동안 좁은 선실에 감금됐던 우리는 터질 것 같은 해방감에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러댔다. 지상국 보고를 위해 체중을 재보니 28.1~28.2kg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떠나기 직전 몸무게는 74kg! 중력이 3분의 1이니까 체중도 줄었다. 100kg인 거구도 화성에 오면 38kg의 저체중 환자가 되고, 점프를 해도 3배는 더 뛸 수 있다. 동료가 엄지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내가 뭐랬어, 지구에서 3m 덩크슛을 한다면, 여기서는 9m까지 뛸 수 있다니까!”


지금은 화성 북반구의 여름, 화성 시간으로 막 오후 2시를 넘긴 한낮이다. 여기서 하루(쏠=sol)는 지구 시간으로 24시간 40분에 해당한다. 1년은 지구 날짜로 687일, 곧 670쏠이다. 화성의 나이로 계산하면 어려진다. 지구에서 만 32세였던 나는 화성에서 열일곱 살로 다시 태어난다.

오후 내내 실험모듈에 온습도계와 구름 센서, 풍향풍속계, 전천카메라를 설치했다. 데이터가 잘 들어오는지 점검한 뒤에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어 지질학자인 동료가 암석과 흙 시료를 채취하는 일을 도왔다. 그녀는 2주 동안 이 지역의 표토에 미소운석이 포함됐는지, 그리고 우주환경 때문에 특성이 변했는지를 조사하기로 했다. 놀랄 만한 자료가 앞으로 몇 달 동안 쏟아져 나와 지구에 남은 동료들을 기쁘게 할 것을 생각해서인지, 그녀의 표정도 밝았다.


대기

우리가 안착한 지역은 아마존평원 남단이었다. 거기서 발을 딛고 있는 지표면은 온도가 섭씨 21℃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불과 2m가 채 안 되는 머리 위는 0℃다. 발 밑은 여름, 머리꼭대기는 겨울인 낯선 세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특수 제작한 화성 우주복을 입고 있었다. 시설물을 짓거나 정교한 작업을 하는 우주인이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화성 표면기압은 지구 25km 상공과 같기 때문에 이에 맞춰 설계됐고, 극지 최저기온(영하 143℃)부터 적도지방의 최고기온(27℃)까지 견딜 수 있다.

만일 화성에서 우주복을 입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화성의 대기는 95%가 이산화탄소로 돼 있다. 나머지는 질소 3%, 아르곤 1.6%이고, 산소는 극미량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주복 없이는 당장 호흡곤란이 오고, 화성 대기에 몸이 그대로 노출될 경우 우리는 3분 안에 숨을 거두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저온으로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기온뿐이 아니다. 화성은 표면기압은 8hPA(헥토파스칼. 압력의 단위로, 대기압에 많이 쓰이는 밀리바(mb)와 같은 단위)로, 지구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우주복을 입지 않는다면 온몸의 장기들이 살갗을 밀어내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에 나오는 괴물처럼 온몸이 부풀어 오르고, 더 끔찍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한두 시간 전부터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화성은 자전축이 25°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계절변화가 있다. 국지적인 온도차 때문에 생기는 모래폭풍(먼지폭풍이라고도 말한다)은 여름철 남반구에서 더 심하다. 이 돌발적인 현상은 단 몇 시간 만에 일어나 며칠 사이에 화성 전역을 뒤덮은 뒤, 수 주간 계속된다.

하지만 화성은 기압이 낮아, 폭풍이라 해도 실제로는 미풍에 가깝다. 모래먼지 때문에 태양전지판의 출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인체나 전자기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오래 전에 모로코 사막에서 겪은 일이 떠올랐다. 모래바람이 불었다. 얼굴을 온통 천으로 감쌌지만, 콧구멍과 눈가, 그리고 입 안에 이물감이 가득했다. 그 감각이 되살아나 밭은 기침이 나왔다.
화성에서 맞는 아침(위)과 저녁. 느낌이 낯설다. 태양이 더 작고 어둡게 보인다.

일몰

저녁 7시. 어느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장밋빛 하늘을 배경으로 두 개의 위성이 시야에 잡혔다. 포보스는 지구로 치면 정지위성보다 낮은 궤도(5989km)를 돌기 때문에, 모행성 화성이 자전하는 것보다 빨리 공전한다(지구의 저궤도위성과 정지위성을 생각하면 쉽다!). 화성에서 관측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데이모스는 화성의 자전과 자신의 공전으로 인해 2.7일을 주기로 동쪽에서 떴다가 서서히 서쪽 지평선으로 지는 것처럼 보인다. 두 위성의 공전주기는 각각 11시간과 30시간으로, 먼 과거에는 소행성이었다가 화성 중력에 포획됐다. 화성은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까.

화성의 낮 하늘은 오렌지색에서 진홍색을 띠는데, 일출과 일몰 때에는 장밋빛에 가깝다. 이때 태양 주변은 푸른색으로 보이지만, 물 얼음입자가 떠 있으면 빛의 산란으로 보라색으로 변한다.

긴 하루가 갔다. 창 밖으로 위성 포보스가 보인다. 지구에서 보는 달의 3분의 1 크기다. 모래바람이 포보스를 집어삼킬 기세다. 화성으로 출발하기 전, 외우도록 읽고 또 읽었던 매뉴얼의 내용이 떠올랐다. 화성에서 보는 태양은 ‘지구의 태양’의 8분의 5 정도 크기고, 40% 어둡다. 내일 보는 첫 일출은 어떨까. 화성에서 처음 맞을 아침을 기대하며, 이른 잠을 청했다.

201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문홍규 기자
  • 일러스트

    박장규
  • 에디터

    윤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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