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이전 이야기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 문명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2080년, 지구 환경을 되살리려는 조직 ‘시드키퍼스(Seedkeepers)’의 한국지부 수색팀 이삭, 엘레나, 린웨이는 다국적 기업 ‘니세이 애그로테크’에게 멸망의 책임이 있다고 의심한다. 봉화 기지에서 니세이 측의 공격을 막아내며 많은 희생을 치른 시드키퍼스의 앞에, 구사일생으로 인천 송도에서 귀환한 요나가 등장한다.
─ Prologue
처절했던 밤이 지나고, 백두대간의 봉우리들 사이로 빛이 서린 새벽이었다. 태양은 아직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경북 봉화의 시드볼트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그보다 먼저 깨어나 있었다.
요나는 쓰러지기 직전까지 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 안에는 인천 송도에서 얻은 소중한 저장 장치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었다.
“재기동 시작. 열화된 데이터 복구 중… 권한 확보 완료.” 린웨이의 손이 빠르게 단말기 위를 움직였다. 이삭은 곁에 있는 요나를 바라보며 침묵 속에 해독 결과를 기다렸다.
“이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야. 니세이에서 만든 유기-편집체 드론과 에덴폴 코어 생물의 DNA 편집 알고리즘을 되감는 역해독 시퀀스야.” 침묵을 깬 이삭의 말에 함께 엘레나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반격할 수 있어.” 이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데이터를 통합 시스템에 입력하며 말했다. “기지에 남아 있는 장비들로 드론을 공격할 박테리아를 합성하자.”
“좋아.” 린웨이는 한결 밝아진 얼굴이었다. 린웨이의 지휘 아래 전력이 연결되자 전쟁으로 인해 가동이 중단됐던 기계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삭은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박만식이 남긴 묵직한 금속 캡슐을 손에 쥐고 여러 생각에 잠겨 있었다.
─ 2080.09.06
요나는 의무실 침대에 누운 채 겨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곁에 앉은 이삭은 조용히 의무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변해 있었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망가져 있었다.
“그때, 송도에서… 난 생각했어.” 요나가 마른 모래를 삼킨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릴 이렇게 만든 게 니세이 하나뿐일까? 누가 처음 화석연료의 봉인을 풀고, 바다로 플라스틱을 흘려보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어.”
린웨이가 옆에서 이어받았다. “공유지의 비극.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엘레나는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무기로 쓰는 건 니세이야.” 이삭은 손에 쥔 금속 캡슐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과거를 분석하기에 우린 멀리 와 버렸어. 우리는 원인을 쫓기보단, 미래의 가능성을 준비해야 해.”
그 순간, 모든 시드키퍼스 기지의 통신 단말기에서 익숙한 이름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이삭 일행이 전북 김제의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 만난 자율 온실 관리 시스템의 이름이었다. 니세이의 버려진 스마트팜에서 식물과 인공지능(AI)가 함께 진화해 창조해 낸 기묘한 온실이 일행의 머릿속을 스쳤다.
「다중 접속 시도 감지됨. 접속 시스템: HIRONIA」
메시지를 확인한 엘레나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뭐야 이건! 이 상황에서 우리 통신망에 접속을 한다면, 니세이인가? DDoS 공격으로 전자전을 하겠다는 거야?” 접속 로그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던 린웨이가 놀라며 말했다. “니세이 측 공격 대상과 다름!”
대원들이 손쓸 틈도 주지 않고 HIRONIA는 시드키퍼스 내부의 모든 정보를 확보했다. 대원들은 모두 망연자실한 상태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HIRONIA는 요나가 가져온 니세이 내부 정보를 확보하고 나서 즉시 데이터 결합을 시도했다. 이삭은 조용히 화면을 확대해 보이며 말했다. “김제에서 확인한 HIRONIA는 우리가 접촉한 이후에 독자적인 진화 노선을 선택한 모양이야. 니세이가 공격한 이유와 다른 이유로 우리를 찾은 것 같아.”
엘레나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HIRONIA의 관리자였던 토시유키가 벌인 짓일까?” 린웨이는 잠시 침묵하다가 단말기 화면을 이삭 쪽으로 회전시켰다. 이삭은 띄워진 분석 결과를 읽다가 한 구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이 코드는 과거에 토시유키가 남긴 학습 시퀀스 중 하나야. HIRONIA는 이걸 기반으로 우리가 김제에서 넘겼던 정보를 단순 지시가 아니라 ‘해석 가능한 메시지’로 받아들였던 모양이야. 그 근거는 생태계의 통제 불가능성이었겠지.” 이삭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건 안도의 숨이기도 했고, 이제 곧 벌어질 일의 무게를 자각하는 숨이기도 했다. “토시유키가 남긴 의문을 HIRONIA도 깊이 고민했다는 건가.” 엘레나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민? 기계가?” 요나가 옆에서 자지러지듯 웃었다. 그는 고통에 숨을 가쁘게 쉬면서도, 재미있는 일을 겪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삭은 요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본질이 기계라 해도, 우리가 남긴 무언가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지?”
모니터의 푸른 불빛이 잠시 깜빡이더니, 다음 문장이 나타났다.
기후변화 대응 계획 논의 게이트 오픈
이삭이 속삭이듯 말했다. “토시유키…. HIRONIA에게 희망을 심었구나.” AI가 인간에게 함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찾자고 말을 걸었다.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시드키퍼스 대원들은 HIRONIA와 수많은 질문을 주고받았다.
어느 순간, 봉화 기지 통신실의 주파수 대역이 자동으로 조정되었다. 무선 간섭을 뚫고 분열된 데이터가 정렬되더니, 사람의 형체가 드러나는 동시에 한 음성이 울려왔다.
“시드키퍼스에게 전합니다.” 그건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철저하게 감정을 덜어낸 니세이 ‘에덴폴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 레비 카가야의 것이었다. 시드볼트를 공격한 장본인의 목소리에 대원들은 주먹을 꽉 쥔 채 퍼져가는 분노에 잠식되고 있었다.
“당신들과 다시 대화할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HIRONIA가 우리가 구축한 시스템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소 당황스럽지만, HIRONIA는 시드키퍼스 당신들과 대화하기를 종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꽉 깨문 이삭은 화면 앞에 조용히 섰다.
니세이의 공격 말고도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요인은 많았다. “기후변화란 이름의, 자연이 강제한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레비는 말을 이어갔지만, 목소리의 높낮이는 변함이 없었다. “이전 만남에서 당신들은 이질성과 혼란, 그 안에서 피어나는 다양성이 생태계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죠. 나는 다양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제되지 않은 다양성은 무질서입니다. 무질서는 생산성의 적입니다.”
레비가 말하는 중에 HIRONIA의 메시지가 전송됐다. 이번에는 더 명확하고, 더 간결했다. 레비도 같은 메시지를 받은 듯 보였다.
통제된 균형은 진화의 정지로 귀결. 의외성은 지속가능성의 조건 중 하나.
레비는 그 문장을 잠시 읽듯이 되뇌다,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들, 시드키퍼스는 의외성을 무기로 우리가 만든 시스템을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기후는 이미 위기에 도달한 지 오래됐으며,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자원은 유한합니다. 니세이는 변수를 줄이고, 최적의 질서를 설계해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엘레나와 요나가 동시에 빈정거렸다. “이 자식…. 결국엔 다 짜인 게임판 위에서 자기들만 살아남겠단 소리야.” 이삭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레비. 만약 우리가 니세이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다시 이 세계를 되살릴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나?”
레비의 대답은 짧았다. “가능성이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성공한다면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삭은 모니터를 향해 한 발 다가서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다시 이야기를 나눌 날이 기대되는군.”
레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통신을 종료했다.
레비의 통신이 끊긴 직후, 린웨이가 경고 표시가 뜬 화면을 스크롤 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HIRONIA가 니세이 군사 인프라에 직접 접속 중. 자동화 병력 제어 루틴 정지.” 지도 위의 붉은 공격 신호 마커들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안도하는 표정으로 엘레나가 말했다. “인공 박테리아를 사용하지 않고도 드론을 무력화한 건가?” 이삭이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HIRONIA가 직접 전투 명령어를 수정했어. 그런데 우리측 통제 권한도 먹통이야.”
린웨이가 화면을 가리켰다.
교전 기준 재정의 요청. 기후변화 대응 방안 우선순위 참조.
이삭은 화면을 바라보다 말했다. “마치… 싸우지 말고 화해하란 얘기 같군.” 요나는 의무실 복도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다가와 린웨이와 엘레나에게 양어깨를 걸며 말했다. “서로 친하게 지내고, 싸우지 말고…. 우리 엄마 잔소리 같은데?”
그 순간, 봉화 기지의 중앙 패널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마치 오랜 침묵 끝에 내리는 결론 같았다.
에덴폴 시스템 통제 권한 획득 및 운영 프로토콜 재설정 완료
기능 제한 모드 발동 - 레비 카가야의 통제 계층 부분 보류
엘레나가 이삭에게 속삭였다. “레비는 입맛이 좀 쓰겠는데?”
HIRONIA의 통신이 끊기자 모든 것이 정지한 듯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정적은 죽음의 침묵이 아니라, 무언가 다시 시작되기 전의 조용한 숨 고르기였다.
─ Epilogue
며칠 뒤, 이삭은 봉화 기지 외곽의 경사면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투명한 씨앗 용기가 들려 있었고, 그 앞에는 정리된 땅 한 구획이 작지만 조심스럽게 갈아엎어진 채 기다리고 있었다. 요나가 다가와 이삭 옆에 섰다. 팔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었다. 이삭이 툭 던지듯 말했다. “이 땅, 예전에 클로버 꽃밭이 있던 자리야.”
요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평범한 걸 기억해?”
“빛이 잘 들던 자리라 기억나.” 이삭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용기에서 씨앗 하나를 조심스럽게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건 박만식이 남긴 금속 캡슐에 저장되어 있던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합성된 클로버 씨앗이었다. 이삭은 그 안에 높은 기후 적응성을 가진 한반도의 자생식물인 산꼬리풀의 유전자를 편집해 넣었다.
이삭이 땅을 손으로 살짝 파고, 그 안에 씨앗을 밀어 넣었다. 어느새 다가온 린웨이가 그 위에 흙을 덮고, 엘레나는 손가락으로 흙을 지그시 눌렀다. 요나는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채워와 그 위에 흥건하게 뿌렸다. 하늘에는 점차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이삭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빛이 있으라.”
그 순간, 구름 사이로 한 줄기 햇빛이 천천히 내려와 이삭의 어깨와 그 앞의 씨앗 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들은 말없이 그 빛을 바라보았다.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창세기 1장 12절
시드키퍼스(SeedKeepers) 윤리 자문부 보고서 요약본
문서번호_ SEED-ECOETHICS-R0622
문서 등급_ 공개
작성일_ 2080.12.02
작성자_ 생태윤리 자문국
“공유지의 비극과 조율된 미래: 기후위기 이후의 생태 윤리”
1. 공유지의 비극이란 무엇인가?
“개인의 이익이 반복되면, 결국 모두의 자원이 붕괴한다.”
― G. 하딘, 1968
공유지의 비극은 인간이 공동 자원을 사적 이익을 위해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결국 전체 시스템이 붕괴하는 사회윤리적 현상을 뜻한다. 기후변화는 이 이론의 대표적 사례다. 산업화 이후 수 세기 동안 축적된 이산화탄소, 해양오염, 생물다양성 파괴 등은 특정 개인이나 기업만의 책임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전 지구적 윤리 실패의 결과다.
앞선 연재에서 살펴봤듯, 생물다양성이 낮은 땅은 산불, 홍수, 가뭄 등 재난에 취약합니다. 그래서 현재 농업계에선 생물다양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2. 기술이 해답이 될 수 있는가?
HIRONIA의 사례는 시드키퍼스 내부에서도 논쟁적이다. 인공지능(AI)이 생태계를 ‘제어 대상’이 아니라 ‘해석과 반응의 상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이번 봉화 기지 방어전에서, HIRONIA는 인간이 남긴 정보를 자율적으로 해석하고 전투 시스템에 비폭력적 개입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기술이 단순히 도구나 무기가 아닌, 윤리적 판단의 조율자로도 진화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땅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선 풍성한 생태계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선 어느 정도로 인간이 개입해서 작물이 더 많이, 잘 자라도록 유지해야 하죠. 현대 기술은 이제 지속가능성과 생산성 사이의 균형을 인공지능(AI)이 맞춰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대호 교수는 “AI의 도움을 받으면 생물다양성을 얼마나 높여야 하는지 알 수 있고, 에너지와 자원 측면에서 최적화된 생태 복원 농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3. 결론 및 제언
기후위기는 단일한 책임 주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윤리적 판단과 협력 구조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하며, 조율 가능한 시스템이 지속 가능성의 핵심 요소가 된다. 우리는 이제 ‘설계된 낙원’이 아니라, 실패를 수용하며 다시 자라는 세계를 만들 준비가 되어야 한다.
보고 끝.
※ 본 보고서는 《Regenesis》 이후 조율형 생태계 전략 평가를 위한 사전 검토 문서로 제출되었음.
| 과학동아 SF 프로토타이핑 #6 기술과 생명의 조화, 생태복원형 농업
SF는 과학에 발을 디디고 이야기 속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장르입니다. 이런 특성 덕에 SF는 과학이 만들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 활용되기도 해요. 대표적 예시인 ‘SF 프로토타이핑’은 2010년 미국의 정보통신(IT) 기업 인텔의 미래학자들이 ‘10년 뒤, 우리 회사의 집적 회로는 어디에 쓰일까?’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처음 탄생시킨 개념입니다. 미래 과학기술과 이를 통해 변화하는 사회의 미래를 상상하고, 거꾸로 그런 사회에서 필요할 과학기술을 제시하죠. 과학동아는 여러분과 SF 프로토타이핑을 해 보는 연재 코너를 진행합니다. 과학동아와 함께 과학기술이 불러올 미래를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의 SF 콘텐츠는 과학동아 지면에 수록됩니다.
| 과학동아와 함께 기후위기 그 후를 상상해 볼까요?
기후변화가 불러올 미래를 걱정하고, SF가 보여주는 상상력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주목! 매 화 연재되는 ‘불타버린 낙원에서 다시 심는 씨앗’ 소설의 과학적 소재를 함께 보고 SF 콘텐츠를 창작해 주세요. 소설, 일러스트, 카툰 등 콘텐츠의 종류는 무관합니다.
여러분의 콘텐츠 중 우수 사례를 선정해 과학동아 지면에 수록합니다. 선정된 분들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뱃지’와 작품이 수록된 과학동아를 보내드립니다. 아래는 6화의 소재인 ‘기술과 생명의 조화, 생태 복원형 농업’ 콘텐츠 우수 사례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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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서클 오브 라이프 _ 라쿤 덱스터
하암! 음? 어머! 왜 표정이 그러세요? 예? 제가 먹고 있는 게 흙이 아니냐고요?
아, 맞아요. 흙이에요. 왜 흙을 먹고 있냐고요? 아아, 그러고 보니까 선생님은 다른 곳에서 오신 분이죠?
하긴, 보시면서 좀 놀라셨겠네요. 제가 알기로도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흙을 먹지는 않는다고 들었으니까요.
제가 왜 흙을 먹냐면요, 제 안에서 이 흙을 정화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전쟁 이후에 흙이 오염됐잖아요? 꼭 방사능 낙진이 아니더라도, 각종 유해성 화학물질, 독성 곰팡이,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등요.
그런 흙에서는 뭐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죠.
이곳 사람들은 모두 인간이 망가뜨린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전자 조작 인간들이에요.
저 같은 경우, 뱃속에 흙을 정화할 수 있는 미생물이 살 수 있도록 유전자가 조작되어 있죠. 마치 대장균처럼요.
그래서 음식과 함께, 흙을 먹으면 뱃속을 거쳐서 영양소가 풍부해진 흙으로 나오게 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