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진화적 직관을 대신할,
모두의 과학적 사고
넥스트 씽킹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의 사고 대전환 프로젝트
솔 펄머터, 존 캠벨, 로버트 매쿤 지음│노승영 옮김
위즈덤하우스│412쪽│2만 3000원
‘넥스트 씽킹’은 우주 가속 팽창을 발견해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솔 펄머터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 물리학 교수, 같은 대학의 철학 교수인 존 캠벨, 공공정책·법학 교수를 역임한 심리학자 로버트 매쿤의 신간이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두 가지다. 노벨상을 받은 저자의 명성, 어떤 분야의 석학이 쓴 일반적인 교양 강의에 해당하는 책을 읽고 감탄한 적이 많았던 개인적 경험이다. 지금까지 쓸 만했던 인류의 진화적 직관 대신, 새로운 과학적 사고를 강조하는 책을 무척 직관적으로 택했다.
세 저자의 소속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들이 버클리캘리포니아대에서 10년 넘게 진행한 인기 강의 ‘원대한 사상’이 ‘넥스트 씽킹’의 바탕이다. 물리학, 철학, 심리학을 연구한 세 학자는 크고 급하게 바뀌는 세계에서 우리의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도울 ‘과학적 사고법’을 제안한다.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를 포함한 저명한 교수들이 지금까지 함께 활용해온 기본적인 사고 도구의 사용법과 그간의 시행착오를,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 학자들의 연구 경험은 과학적 사고를 해볼 독자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자신들이 검증한 대책, 직관에 휘둘리지 않게 도와준 성취감을 독자와 공유하는 ‘넥스트 씽킹’의 큰 힘이다.
‘넥스트 씽킹’의 과학적 사고법은 그 도구로 신호와 잡음의 구분, 임계값, 확률론, 페르미 추정의 네 가지를 강조한다. 신호와 잡음의 구분은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신호와 무의미한 잡음을 구분하는 정확도를 높이는 것을 뜻한다. 임계값은 ‘있는 신호’를 포착하는 민감도와 ‘없는 신호’는 포착하지 않는 특이도 간의 최적 균형이다. 확률론은 예측을 단정하지 않고 그것이 틀릴 가능성을 반영하는 사고다. 페르미 추정은 복잡한 현실을 쪼개 핵심 요소의 근사치부터 구하는 방식이다.
과학적 사고의 조건은 무엇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수정하는 절차와, 각 사안에서 어떤 전문성을 신뢰할지의 기준 수립이다. ‘넥스트 씽킹’은 이 사고 도구들을 활용한 과학적 사고의 생생한 사례들까지 이어진다. 따라서 이 책은 과학적 사고법으로 현대 과학이 어떤 일을 해냈고, 왜 실패했는지의 엄밀한 자기 성찰로도 읽힌다.
이 책은 서로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 책 전체를 함께 썼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저자들이 각자 쓴 원고를 체계적으로 구성할 때의 장점들이 있지만, 주제의 설득력, 집중력이 약화되는 것도 사실이다. 과학적 사고법이 추구하는 효율적 의사결정은 다수가 소통하는 상황에서 특히 중요하기에, 세 학자가 과학적 사고에 대한 결정을 도출해낸 점에서도 ‘넥스트 씽킹’은 미래의 모두를 위한 사고법으로서 타당성을 지닌다.
건축물이 지워질 때,
드러나는 맥락들
힐튼서울 자서전
글린트 기획│글린트│312쪽│4만 원
서울 남산자락의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힐튼서울)은 아직 철거 중이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미국의 판스워스 주택 등을 설계한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한국인 제자인, 김종성 건축가의 대표작이 힐튼서울이다. 이 건물은 1983년 개관 이래로 1970년대 고도 성장기를 맞은 한국의 낙관성, 자신감을 미스가 정립한 간결함과 보편성의 건축 미학으로 구현해낸 점이 국내외 건축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 까닭에 보존을 전제로 한 여러 대안이 제기됐지만 철거하고 경제적, 효율적인 건물로 신축하는 한국의 일반적 결말을 피하지 못했다.
신간 ‘힐튼호텔 자서전’은 하나의 건축물에 설계 과정의 공학적, 경영적 측면부터 이 건물이 활용되는 사회적, 역사적 변천까지 얼마나 많은 맥락이 결합되는지 잘 보여준다. 이 책은 2026년 1월 4일까지 서울 중구 피크닉에서 개최 중인 같은 제목의 전시회 도록이기도 하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이었던 1970~1980년대에 세계적 브랜드의 호텔을 설계, 건축하며 김종성 건축가가 미국 측 임직원들과 소통한 서신과 회의록이 담긴 초반부터 인상적이다. 막대한 자본과 고도의 기술력이 결합한 거대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관계자가 어떻게 소통하며 협업했는지 그 구체적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김종성 건축가의 인터뷰와 여러 책에서 발췌한 그의 육성, 이 건물의 보존을 위해 노력한 황두진 건축가의 글은 물론, 박효남 전 총주방장을 비롯한 호텔 직원들과 건물 설계 당시에 실무를 맡은 기업 관계자들의 밀도 있는 인터뷰도 ‘힐튼호텔 자서전’에서 돋보인다. 현대 한국에서 대규모 건축물이 유기적으로 작동한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중 설계 실무자였던 민병욱 건축가가 이 건물을 건축적, 경제적으로 짜임새 있게 설계한 이유 중 하나로, 1970년대 한국의 경제적 한계를 짚은 대목이 인상적이다. 힐튼서울은 당시 한국에 주어진 여건 안에서 심혈을 기울인 건축이란 의미다. 고도성장기 한국의 제약들이 오히려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인 이런 역설적 측면에서도, 지금 우리 주위의 건축물에서 간과되는 현대 한국의 맥락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 지구가 들려준 생명과 의식의 진화사
38억 년 동안 이어진 지질학과 생물학의 역사를 따라가며, 생명이 단순히 진화의 ‘결과물’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는 ‘원인’이었음을 증명해 나가는 책이다. “문어와 인간은 생명의 나무에 함께 있는 존재”라며 가장 다르지만 동등한 지위를 가진 생물이라고 주장한 ‘아더 마인즈’, 여기서 더 나아가 지구상의 모든 후생동물들도 자신들의 생각을 펼치며 살고 있음을 탐구한 ‘후생동물’에 이은 과학철학자 피터 고프리스미스의 ‘의식 3부작’의 완결편이다.
생명의 여정 피터 고프리스미스 지음 〡 이송찬 옮김 〡 이김 〡 432쪽 〡 2만 2000원
| 법, 도덕, 과학의 최전선, AI/p>
미국 듀크대 로스쿨 교수이자 디지털 권리의 선구자인 법학자 제임스 보일이 인공지능(AI), 인간, 기업, 동물, 키메라에 이르기까지 ‘인격’의 경계를 추적하며, 우리가 어디까지를 사람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탐구한 책이다. 저자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누구에게, 어떻게 ‘인격’을 부여했는지를 추적하며, 우리 사회가 그 경계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분석한다. 법과 철학, 과학과 SF가 어우러지는 흥미진진한 여정을 통해, AI와 함께할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있다.
AI는 인간을 꿈꾸는가 제임스 보일 지음 〡 김민경 옮김 〡 미래의창 〡 576쪽 〡 3만 3000원
| 붕괴의 파편들을 엮어낸 냉철한 상상력
한국 사회를 실시간으로 간파해내는 예리한 시선으로 장르를 넘나드는 소설가 장강명의 첫 짧은 SF 소설집이다. 작가 특유의 냉철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종말이 확정된 세계,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인류가 최후를 맞는 모습은 어떨까?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할까? 완전한 ‘끝’ 앞에서 시시각각 무너지는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며, 불공정한 시스템과 폭력이 종말 직전까지 유지되는 모순을 직시하는 이야기들이다.
종말까지 다섯 걸음 장강명 지음 〡 문학동네 〡 212쪽 〡 1만 6000원
| 기후 위기를 정확히 읽기 위한 입문서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인 이은지 미국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항공센터 협력 연구원이 극한 기후 현상, 지구 온난화, 탄소의 흐름, 물의 순환 등 얽히고설킨 기후 변화의 각 요소들을 균형 있는 시각으로 설명한 기후 위기 입문서다. 저자는 과학자로서 기후 위기라는 실존하는 현상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과 우리의 노력이 이 위기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지구 관찰자의 기후 노트 이은지 지음 〡 한길사 〡 208쪽 〡 1만 8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