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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4 우주개발의 메카 NASA, 그 영광의 궤적

방대한 조직과 연구인력을 바탕으로 우주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NASA는 이제 90년대를 맞아 본격적인 우주기지 건설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 National Aeronautic and Space Administration)이라 하면 어린이로부터 남녀노소할 것 없이 세계의 그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1957년 10월4일 인류사상 처음으로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1호를 발사함으로써 인간의 우주를 향한 돌파구를 열었을때, 아직도 거북이와 토끼 이야기의 토끼같이 백일몽(白日夢)에 잠겨있던 미국은 크게 놀랐다.

부랴부랴 거북이를 쫓아 잡으려고 달리기 시작했던 토끼는 다음해인 1958년에 NASA란 새운동화까지 만들어 신고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거북이는 너무나도 멀리 앞서나가 10년동안이나 토끼의 시야속에 들어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NASA란 새운동화는 드디어 저력을 발휘해 1969년 7월21일, 거북이를 추월했다. 이날이 바로 미국이 처음으로 사람을 달(月)표면에 무사히 착륙시킨 날이다. 이로부터 NASA는 쉴사이 없이 미지(未知)의 우주세계를 파헤쳐 주었기 때문에 NASA란 이름은 우주개발의 대명사가 되었다.
 

우주개발의 메카


11개의 연구조직

NASA란 이름은 1959년에 만들어졌지만, 이것은 단일기관이 아니고 미국 전토에 분포돼 있는 11개의 시설과 미국의 수도인 워싱톤D.C.에 있는 본부를 총칭한 것이다.

제각기의 조직이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함과 아울러 일치단결해 성취한 것이, 아폴로(Apollo)가 이룩한 달정복이었고, 바이킹(Viking)의 화성연착륙(軟着陸)이었다. 이어서 파이어니어(Pioneer) 보이저(Voyager)탐사선 등의 태양계 행성탐사가 계속되었고, 우주왕복선(Space Shuttle)이란 우주개발의 신기원을 개척했다.

NASA란 이름은 화려하지만, 그 산하조직에서 일하는 수많은 과학 기술자들은 세상에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나름대로의 사명감과 보람을 갖고 오늘도 묵묵히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1903년 라이트(Wright)형제가 엔진을 단 비행기로 사람을 태우고 처음 날았을 때 미국은 이것이 뜻하는 중요성을 인식못했다. 영국은 글라이더(Glider)시대였던 1866년 벌써 ASGS(Aeronautical Society of Great Britain)란 정부기관을 창설했다. 프랑스와 독일에도 여러가지 연구소가 만들어졌고 대학에까지 연구기관이 설치되었다. 이탈리아와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프랑스는 1천5백대의 비행기를 군용으로 제조 보유하고 있었고, 독일은 1천대, 영국이 4백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육해공군을 모두 합해 겨우 1백대가 넘는 정도였다.

미국은 부랴부랴 1915년 국가항공자문위원회(NACA, National Advisory Commission of Aviation)를 창설했다.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오늘날 NASA의 전신(前身)이 된 셈이다. 미국은 항상 출발은 늦지만 달리는 속도는 빨라, 그 이후 NACA의 업적은 비행기의 진보 그 자체라고 할만큼 많은 공을 세웠다. 엔진의 공기저항 감쇄장치, 초음속비행을 위한 후퇴식 날개 등은 오늘날의 첨단비행기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NACA는 어찌된 영문인지 로켓(rocket)개발엔 아주 회의적이었다. 로켓이라 하면 불꽃놀이나 달나라로 여행가는 망상(妄想)의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 무렵 미국이 낳은 위대한 로켓 공학자 가다드(Goddard)교수의 피눈물 나는 연구개발 노력에 대해 그 유명한 뉴욕 타임즈도 '어른의 장난감'이라고 비웃는 기사를 실었을 정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전세가 불리하게 기울어지는 것을 만회하기 위해 독일은 V-2라는 로켓무기를 개발했다. 독일땅에서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영국의 수도인 런던을 마구 폭격하기 시작했을 때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미국은 V-2라는 로켓의 피해를 직접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보유하는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다. 겨우 X-15라는 로켓을 단 비행체만을 갖고 '음속(音速)의 벽'을 어느정도 돌파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가 인공위성개발에서도 소련한테 당했던 것이다.

전세계의 국가들은 1957년과 1958년을 국제지구관측년으로 정해 이 기간동안 전세계의 국가들은 자기나라를 중심으로 지형·환경조사에 나서기로 돼 있었다. 미국은 관측기기를 실은 인공위성을 발사하기로 돼 있었는데, 소련이 스푸트니크1호로 선수를 친 것이다.

당황한 미국은 6개월 뒤진 1958년 1월31일에야 겨우 익스플로러(Explorer)1호를 올려 체면을 유지했다.

그러나 NACA는 더욱 큰 충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련이 스푸트니크2호를 1호의 성공 직후에 곧바로 발사했는데 그안에 라이카(Laika)란 이름의 개한마리가 타고 우주여행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개가 사람보다 먼저 우주여행을 했지만 다음 차례는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다. 미국은 당시에 인공위성조차 올리지 못했으니 충격의 정도는 쉽게 상상이 된다.

겨우 미국은 독일에서 데려온 폰 브라운(Von Brown)박사의 도움으로 1958년 10월 1일 NACA를 해체시켜 NASA를 만든다. 이것이 바로 NASA 탄생의 배경이다.

NASA는 출발에서부터 필사적으로 뛰어야 했다.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투입됐다. 전국에 퍼져있는 각종 연구소가 흡수됐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연구기관과 훈련 및 실행기지들이 설치됐다.
 

(그림1)NASA의 조직분포


■랭글리 연구센터/월면지도작성에 기여

NASA가 보유한 시설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것은 1920년데 개설된 랭글리(Langley)연구센터다.

랭글리란 하버드대학의 부설연구소인 스미소니언(Smithsonian) 천체물리연구소의 소장직을 지낸 사람의 이름이다. 그는 비행기개발을 위해 정부의 보조금을 너무 많이 사용한 까닭으로 뉴욕타임즈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비난기사가 나간 9일후,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날리는 데 성공함으로써 랭글리는 비행기 발명의 영광조차 놓쳐버렸다.

그의 이름을 딴 이 연구소는 풍선같이 하늘에 올라가면 부풀어지는 수동형(受動型) 통신위성과, 달에 사람을 보내기 위한 월면지도를 작성하고자 띄운 달의 인공위성 루나 오비터(Lunar Orbiter)를 만드는데 성공했고, 상층대기 관측용 로켓개발로도 유명하다.

■에임즈 연구센터/관측기기 개발

다음으로 1939년에 창설된 에임즈(Ames)연구센터가 있다. 이 이름은 1927~39년 NASA의 전신인 NACA의 위원장을 지낸 J.S.에임즈를 기념하여 붙인 것이다. 이 연구소는 주로 위성과 우주탐사선에 적재할 관측기기 항법기기의 개발과 태양 및 지구관측위성 등의 제작에 참여해왔다.

■루이스 연구센터/로켓엔진 개발에 주력

1940년에는 루이스(Louis)연구센터가 개설됐다. 이 이름도 1919~47년 NACA의 항공기술연구소소장을 지낸 G.W. 루이스를 기념해 붙인 것이다.

이곳은 항공기 및 제트엔진 그리고 미래형 로켓엔진개발에 큰 업적을 남겼고, 앞으로도 이 분야에 전념할 예정이다.

■드라이덴 비행연구센터/초음속 비행

1946년 9월 랭글리 연구센터로부터 육군항공비행 실험부대에 13명의 요원이 파견됐다. 여기서는 초음속비행의 실험이 이루어졌다. 이 연구소는 NASA의 부장관을 지낸 H.드라이덴(Dryden)의 이름을 따 드라이덴 비행연구센터라 부른다.

■월롭스 비행센터/7천번의 미사일 발사경력

이와 비슷한 성격의 시설로서는 1944년에 미사일 시험발사장으로 개설된 월롭스(Wallops) 비행센터가 있다. 악 7천번에 이르는 각종 미사일발사시험 경력을 갖고 있다.

이상은 NACA로부터 인계받은 조직이며 신설기관은 다음과 같다.

■가다드 우주비행센터/우주비행의 사령탑

NASA가 창설되자마자 가다드(Goddard) 우주비행센터가 만들어졌다. 20세기 초반에 미국인의 냉대를 받으며 홀로 로켓개발에 일생을 바친 R.H. 가다드박사를 추념하는 뜻에서 이름을 붙인 연구소다.

이곳은 전세계에 산재하는 NASA의 모든 시설, 공중에 떠있는 NASA전용기, 바다위의 위성추적선들을 전부 한 시스템으로 관제하고 있는 NASCOM(NASA Communication System)의 사령탑역할을 하고 있다. 우주왕복선을 비롯 모든 인공위성들의 운영 및 관제를 여기서 한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직접 혜택을 입고 있는 통신 기상 자원탐사 및 해양·측지 위성의 기획 운영이 모두 이 센터에서 이루어진다. 이밖에 위성을 이용한 천문·우주연구활동도 여기서 이루어진다.

■제트 추진연구소/태양계탐사의 주역

미국의 서해안도시 LA근교에는 파사데나(Pasadena)라는 곳이 있다. 이곳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부설연구소인 제트(Jet)추진연구소가 있는데, NASA가 공동관리를 제의해 1959년부터 대부분의 운영자금을 NASA에서 제공한다. 태양계탐사는 주로 여기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달탐사선 레인저(Ranger) 서베이어(Surveyor)호들의 성공과, 화성 금성 수성탐사에 개척자 역할을 한 마리너(Mariner) 시리즈를 기억할 수 있다. 그 이후 화성에 연착륙시켜 직접적인 표면탐사를 하는데 큰 업적을 세운 바이킹1,2호, 목성의 고리(環)를 발견한 파이어니어(Pioneer)호 등도 제트추진연구소의 계획하에 탐사활동을 벌였다. 1989년까지 장장 12년간에 걸쳐 목성 토성 천왕성 및 해왕성과 이들에 매달린 위성들에 관한 신비의 문을 열어준 보이저1,2호의 눈부신 활약 또한 제트추진연구소의 업적이다.

■마샬 우주센터/달착륙 성공시켜

1960년데는 마샬(Marshall)우주센터가 개설됐다. 육군 탄도(彈道) 미사일실험소가 NASA에 인계된 것인데, 여기서는 폰 브라운 박사의 영도하에 유인우주선 및 로켓개발에 전력을 다해 아폴로(Apollo) 11호를 달에다 착륙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센터의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국육군총참모장을 지냈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G.마샬장군을 기념한 것이다.

■존슨 우주센터/우주비행사의 훈련

1961년에는 존슨(Johnson)우주센터가 개설됐다. 이 연구소가 텍사스주에 유치되는 데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존슨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도 있다. 여기는 우주비행사의 훈련을 하는 일이 주임무다.

■케네디 우주센터/로켓발사장소

로켓과 그것에 실을 우주선과 탐사선을 만들고 우주비행사를 훈련하고 나면, 이젠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로켓을 발사할 장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1962년 케네디(Kennedy)우주센터가 만들어졌다. 아폴로 계획을 강력히 추진해 인간의 달나라 착륙을 성공시켜 미국에게 영광을 안겨준 J.F.케네디 대통령의 이름을 딴 것이다.

■ 국립우주기술연구소/태양에너지 연구

또 하나가 있다. 국립우주기술연구소가 1965년에 개설됐는데, 이곳은 바로 아폴로우주선을 날린 새턴(Saturn) 로켓을 개발한 곳. 지금은 태양에너지와 같이 이른바 NASA의 본사업에서 파생된 기술개발에 종사하고 있다.

NASA의 직원수는 약 1만명에서 시작해 1966년 최고에 이르렀을 때는 3만3천명선까지 올라갔다. 그 이후 하강선을 그려, 현재 2만2천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NASA용역회사의 NASA주재 직원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1960년에 5만정도였던 것이 1966년엔 급격히 증가해 41만명까지 늘었다. 우주개발 기술이 어느정도 정착되면서 점차로 줄어 현재는 13만명선을 유지하고 있다(그림2).
 

(그림2)NASA의 직원수와 용역계약회사의 NASA 주재직원수


미래에의 지표

21세기를 겨냥한 NASA의 가장 위대한 업적의 하나는 우주왕복선을 개발 실용화였다.

인공위성궤도까지 진입했다가 다시 지구로 귀환하는, 그것도 1백회이상 반복해서 왕복이 가능한 우주선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지구에 사는 인간의 사회활동구조에 대혁명을 가져오는 역사(役事)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군사적인 면에서도 큰 의의를 갖는다.

미국은 콜럼비아(Columbia) 챌린저(Challenger) 디스커버리(Discovery) 및 아틀랜티스(Atlantis)호라는 네대의 우주왕복선을 건조했지만, 1986년 1월28일에 7명의 승무원을 태운 챌린저호의 폭발사고로 3년이상이나 계획이 중단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주왕복선 활동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전(前)미국대통령 레이건은 그의 재임시 NASA로 하여금 우주기지(Space Station) 건설하도록 명령했고, 현재 부시대통령도 기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도록 정책적인 배려를 하고 있다.

지구궤도에 우주망원경을

NASA는 벌써 태양열을 이용한 우주발전소 실험에 성공했고, 이 우주기지에서 태양에너지와 무중력(無重力) 및 진공의 특성을 이용한 여러가지 실험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다. 이 우주기지는 지구상공 5백km쯤 되는 궤도를 도는 영구기지가 된다.

1989년에는 갈릴레오(Galileo) 목성탐사선이 발사됐다. 갈릴레오는 목성의 유명한 대적반(大赤斑)에 낙하산이 달린 관측기기를 투입해 목성의 대기를 조사하고 목성주위를 도는 탐사선을 띄워 이웃 행성의 지식을 얻으려 한다.

금년에는 우주왕복선을 이용해 천문·우주과학자들의 오랫동안의 숙원인 우주망원경을 지구위성궤도에 올린다. 이 망원경은 우주구조연구에 큰 공을 세운 미국의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의 이름을 따 허블 우주망원경이라 명명했다.

크기는 비록 직경이 2m정도 밖에 안되지만 지구대기권 밖에서 관찰하기 때문에 5m의 직경을 가진 팔로머(Palomer) 천문대의 망원경보다 10배나 되는 위력을 발휘한다. 아마도 이 망원경이 활약하게 되면 우주구조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쏟아질 것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NASA의 활동은 보다 실질적인 것이다.

21세기 초에는 월세계기지와 화성기지가 건설될 전망이다. 이 사업은 그저 사람들에게 흥미거리를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 장차 우리가 당면할 인구증가 및 자원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그 다음의 계획은 우주도시(Space Colony) 건설이다. 이 착상은 1970년대에 당시 프린스톤(Princeton) 대학의 물리학교수였던 오닐(Oneil)박사가 처음으로 내놓은 것인데, 곧 스탠퍼드(Stanford)대학과 NASA측이 호응해 진지하게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거창한 사업이다.

지구와 달의 중력권이 상충하는 우주공간에 거대한 우주도시를 건설하자는 내용. 이 일은 달에서 인간의 산업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이 우주도시 건설에 필요한 기자재 전부를 달로부터 운반하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상상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그러진 타이어(tire)꼴의 원통으로된 우주도시 내부는 지상낙원이 될 것이다. 그속에는 인공중력에 의해 지구와 똑같은 생활환경이 조성될 것이며, 공해와 병균이 없는 장수촌이 건설된다. 약 5만명 단위의 거주민들이 살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아마도 여기서 사는 사람의 평균수명은 적어도 1백50세는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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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조경철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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