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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편리한 현대의 딜레마, 포장지 속 과불화화합물

과불화화합물. 이름은 낯설지만 방수제와 윤활제, 페인트와 잉크, 종이, 섬유, 카페트, 조리도구, 반도체 세정제, 소화약제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다. 특히 반질반질하게 코팅된 종이 음식 포장지에는 두세 개 중 하나에 과불화화합물이 쓰였다. 과불화화합물은 다른 물질은 따라올 수 없는 발수력(물을 튕겨내는 성질)을 자랑한다. 게다가 열을 가해도 안정적이고 먼지가 묻지 않으며 심지어 기름도 스며들지 않는다. 비결은 구조에 있다. 탄소가 여러 개 결합한 탄화수소의 기본 골격에서 수소가 플루오린으로 치환돼 있는데, 안정한 플루오린 성분 때문에 표면장력이 실리콘보다도 낮다(86쪽 참고).


패스트푸드 포장지에도?
그러나 너무 팔방미인인 것도 문제다. 미국 침묵의 봄 연구소 로렐 샤이더, 미국 캘리포니아주 독성물질관리국 시모나 발안, 미국 호프칼리지 화학과 마가렛 디킨슨 등 공동 연구팀은 이 같은 과불화화합물이 식품 포장지에 널리 쓰인다는 점을 잠재적인 문제로 지적했다. 연구팀은 미국 전역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포장하는 일회용품 407개 샘플을 수집해 들어있는 과불화화합물의 양을 측정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환경과학기술레터스’ 2월호에 발표했다.(doi:10.1021/acs.estlett.6b00435)

샘플은 포장지, 비접촉 포장지, 포장용 판지, 종이컵 등 6가지였다. 연구팀은 이것을 메탄올에 넣은 뒤 180초 동안 양성자빔을 쪼였다. 플루오린이 방출하는 감마선 에너지 값을 측정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전체 샘플의 33%에서 검출 한계(16nmol/cm2) 이상의 플루오린이 검출됐다. 많은 것은 50배인 800nmol/cm2에 달했다. 플루오린이 검출되는 비율은 피자 박스와 같은 포장용 판지에서보다 햄버거 포장지와 같은 접촉식 포장지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아래 그래프).

연구팀은 플루오린이 다량 검출된 샘플 가운데 20개를 추려 대표적인 과불화화합물인 퍼플루오르알킬설포네이트(PFAS) 등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평가했다. 액체크로마토그래피와 질량 분석기를 사용해 분석한 결과, 20개 중 14개에서 PFAS 성분 또는 PFAS가 될 가능성이 있는 전구체 물질이 검출됐다. 14개 중 10개에서는 그 양이 200nmol/cm2을 초과했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미국 제조업체들이 2011년부터 자발적으로 탄소가 8개(C8)인 과불화화합물(탄소사슬이 길수록 발수력이 뛰어나지만, 잠재적인 유해성도 크다)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며 “음식을 먹는 사람이 과불화화합물에 간접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용출은 안 된다지만 …→ 위해성 연구 필요
한 연구만 보고 과민반응해서는 안 된다. 포장지에 과불화화합물 성분이 들어있더라도 녹아나오지 않으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인 위해성은 낮기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도 “과불화화합물은 안정적이고 반응성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자외선과 같은 강한 자극을 가하지 않는 한 용출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떤 제품에 쓰이는지도 모른 채 아주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나 많은 곳에 쓰이는가는 유럽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에서 허가대상 물질을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다. 실제로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2013년 발표한 ‘과불화화합물의 제품 이용 실태 및 관리방안 마련’ 보고서를 보면 시중에 얼마나 많은 물건에 과불화화합물이 쓰이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연구를 맡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KOTITI 시험연구원이 조사한 16개 제품군 중 14개에서 과불화화합물 사용이 확인됐다. 300점을 분석한 결과 약 17%인 51개 제품에서 검출됐다. 사용 비율이 높은 제품군은 프라이팬과 코팅주방용기, 방수가공 아웃도어, 오염방지 가공 카페트, 어린이용 가방, 일회용 식품 포장용 종이였다. 음식과 직접 접촉하는 위생접시와 종이호일에서도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됐다.

물론 과불화화합물이 걱정할 정도로 용출된 사례는 없었다. 제품을 빨거나 피부에 접촉시킬 때를 가정해 와류진탕추출기에 넣고 인공 침, 인공 땀으로 시료를 추출해 봤지만, 녹아 나오는 과불화화합물의 농도는 모두 검출 한계 미만이었다. 김재우 KOTITI 시험연구원 미래환경분석본부장은 “일회용 포장용 종이의 경우 입에 닿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노출되는 양이 다른 제품군에 비해 높을 수도 있다”면서도 “위해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화학물질 함유량뿐만 아니라 피부 흡수율, 사용 특성과 빈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불화화합물은 과거 섬유산업 분야에서 특히 많이 사용했다. 원단을 방수 코팅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과불화화합물 폐수가 발생했다.

규제 힘들고 자연에 쌓이고  대체하고 유통 관리
과불화화합물 생산과 사용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미국의 주요 제조업체들은 자발적으로 대표적인 과불화화합물인 PFOA, PFOS, PFAS(86쪽 참조)를 제품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그린피스와 같은 환경단체가 캠페인을 벌여 기업들을 압박한 효과도 있다!). 20개가 넘는 글로벌 의류 기업들이 ZDHC(Zero Discharge of Hazardous Chemicals)라는 위원회를 결성해서 생산 과정 전반에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의류산업은 한때 과불화화합물이 가장 많이 쓰이던 산업이다. 방수를 위해 원단을 코팅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과불화화합물 폐수가 배출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과불화화합물 대신 기능은 떨어지지만 탄화수소 성분으로 원단에 발수 기능을 내는 기술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환경보호청(EPA)이 PFOA 생산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과불화화합물을 생산하는 주요 8개 업체가 PFOA를 2015년 이후 생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해당 기업들은 탄소가 8개인 과불화화합물 대신, 탄소가 6개인 플루오르텔로머(fluorotelomers)라는 대체물질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첫째는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 규제하는 몇 가지 과불화화합물(PFOS, PFOA 및 C8보다 긴 사슬의 과불 카르복실산류)이 전체 과불화화합물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과불화화합물은 탄소 수나 작용기를 바꿔 매우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데, 규제하는 물질과 작용기 하나만 달라도 규제를 피한다. 이런 과불화화합물은 지금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과불알콜, 과불요오드, 과불아크릴모노머, 과불아크릴폴리머, 과불폴리우레탄폴리머 등이 대표적이다. 의류용 비불소계 발수제를 개발하고 있는 최은경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섬유연구그룹 수석연구원은 “과불화화합물이 워낙 다양한 구조와 용도로 사용돼 왔기 때문에 대체물질이 확보돼야만 규제가 가능할 것”이라며 “플루오르텔로머들의 유통 현황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사슬이 짧은 과불화화합물도 잠재적으로 유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불화화합물은 북극곰
의 혈액에서 검출될 만큼 잔류성이 높다. 일부 과학자들은 사슬이 짧아도 사슬이 긴 유사체와 구조가 비슷해 분해되지 않고 환경에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슬이 짧은 과불화화합물이 오히려 식수에서 제거하기가 더 어렵다는 연구(doi:10.1021/acs.estlett.6b00398), 길이가 짧은 과불화화합물(FTOH)은 길이가 긴 유사체보다 종이 포장지에서 식품으로 이동할 확률이 더 높다는 연구도 있다(doi:10.1021/acs.est.5b03806).

마지막으로 건강과 환경에 잠재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규제가 우리나라에는 없다. 아직까지는 과불화화합물을 관심대상물질로 정해두고 유통량, 배출량 등을 조사하는 중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C8 및 더 긴 과불화화합물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서 제품에 함유된 상태로 수입되면 국내 소비자들은 과불화화합물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제품에 어떤 물질이 얼마나 쓰였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과불화화합물의 종착지는 자연이다. 특히 수계에 축적되는 양이 가장 많다. 피자를 운반하는 종이 상자를 생각해보자. 피자 소스가 묻지 않도록 상자를 코팅하는 과정에서 폐수가 발생한다. 또 사용된 피자 상자가 소각 되거나 폐기물 매립지에 묻히면 이차적으로 침출수가 나온다. 김 본부장은 “과불화화합물의 최종 배출량을 관리하는 방안 쪽으로 후속 연구를 하고 있다”며 “생산과정 중 어느 단계에서 과불화화합물을 처리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알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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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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