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집에 책을 많이 들여놓으셨다. 역사책, 위인전, 고전들은 물론이고, 만화책도 있었다. 이 다양한 책 중에서 내 관심은단연 ‘과학동아’에 쏠렸다. 부모님이 구독해 주신 과학동아에 어떤 주제가 실렸을지 매달 기대했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법을 과학동아에서 만났던 덕분이다. 새로운 실험, 우주 탐사 이야기, 신기술 개발의 최신 사례들을 읽으며 과학이 일으키는 변화가 매우 크고 다채롭다는 걸 깨닫곤 했다. 특히 과학동아의 사진들을 볼 때마다 ‘이런 사진은 어떻게 구했을까’ 감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에 관심을 가진 계기엔, 이렇게 과학동아의 비중이 단연 컸다.
자율학습의 소중한 휴식처, 과학동아
고등학생 시절의 과학동아는 어릴 때 읽던 과학동아와는 인상이 조금 달랐다. 이때의 과학동아는 학교 수업의 스트레스를 피하는 휴식처였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이 있지만, 고등학교 때만 해도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었다. 책상에서 끝없는 수학 문제를 풀다 보면 다른 무엇이든 보고 싶어졌다. 그럴 때마다 도서관 한쪽에 있던 과학동아를 찾아 들었다. 그래서 매달 도서관에서 다음 과학동아를 기다리곤 했다. 나 같이 생각하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과학동아를 보면 어렸을 때의 추억이 떠오르고, 놀라운 과학 기사들을 탐독하는 사이에 막막하던 마음도 서서히 환기됐다. “언젠가 이런 흥미로운 분야를 직접 실험하고 탐구하겠다”는 동기도 생겼다. 앞으로 과학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려면 공부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이과를 택한 데도 과학동아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과학동아의 여러 분야 중에서 생명공학이 내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다. 특히 ‘웰컴 투 게놈 클럽’이란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감자의 게놈을 전부 해독한 연구, 그리고 동식물의 염기서열 분석에 전 세계 연구소가 협력한 과정은 어린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눈앞의 교과서가 아닌, 현실에서 이뤄지는 거대한 연구를 다룬 기사들이 과학의 세계가 얼마나 방대하고 흥미로운지 생생하게 전해줬다.
또 다른 기사인 ‘생체시계와 치매의 관계’란 제목의 기사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생명공학이 루게릭병이나 치매 같은 난치성 질환을 치료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어린 나의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시켰다. 과학이 난치병 환자들도 도울 수 있다는 기사를 보며 나도 생명공학을 공부해서 그 길로 나아가겠다는 꿈을 더 키웠다.
사회에 기여할 연구를 꿈꾼 대학원 생활
고등학교 졸업 후에 재수를 한 번 거쳐, 생명공학자를 목표로 연세대 생명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교에서도 과학동아를 구독하며 틈틈이 읽는 습관을 이어갔다. 이때 과학동아는 연구자의 꿈을 키우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길잡이였다. 여러 분야의 연구 동향을 기사로 접하며 대학원에서 연구 중인 주제와 그 방식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특히 한국 이공계 대학원의 연구실과 연구 주제를 소개하는 연재, 기사들이 큰 도움이 됐다. 이 중에서도 화학과 생물학이 융합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약물전달시스템’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실험의 흥미로움을 넘어 새로운 약물, 치료법을 개발해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결국 이 분야를 전공으로 삼아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연구자의 길에 들어섰다.
대학원에 막상 들어가니 그동안 읽었던 세상과 다르긴 했다. 그럼에도 대학원 생활은 고등학교 때보다는 즐거웠다. 기초과학의 순수한 탐구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었고, 더 많은 사람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연구를 하겠다는 열망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졌다.
이 시기엔 과학동아에서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연재를 즐겨 읽으며,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심리학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 덕분에 심리학이 생명공학과 연결되는 지점을 생각하며, 융합 학문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다른 분야들의 연구에 관심을 더 가질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생활건강제품을 만드는 기업을 목표로 열심히 취업 준비를 이어갔다. 취준생 시절에도 과학동아를 보며 과학계의 최신 동향은 놓치지 않았다. 세상에 혼자만 남은 기분이 들 때면, 과학동아를 읽으며 세상과 연결된 느낌을 채우곤 했다.
치약 하나에 담긴 다양한 요소들
지금은 애경그룹에서 치약 제품의 연구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연구의 주요 내용은 충치, 시린 이, 구취 같은 구강 질환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개선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실험실에서의 연구를 토대로 소비자들의 일상생활을 직접 개선할 수 있는 결과물까지 생산한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치약의 연구 개발은 한 가지 전공 지식만으로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생명과학의 전문적 이해를 바탕으로 치아와 구강의 생리적 구조와 반응을 알아야 하고, 화학적 지식으로 성분 간의 상호 작용을 파악해서 치약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사용자의 사용감, 즉 맛과 질감, 거품의 발생 정도도 고려해야 하며, 더 나아가 마케팅 관점에서 제품의 어떤 기능과 메시지가 소비자에게 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요소가 입체적으로 결합해서 비로소 하나의 제품이 완성된다.
과학동아가 어린 시절부터 내게 생명공학자의 꿈을 심어준 계기였다면, 지금은 과학동아 기사 속의 다양한 주제가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 이제 생명공학을 어느 정도 배우고 나니 과학동아에서 더 다뤄줬으면 하는 생명공학 관련 주제들도 떠오르곤 한다.
세계 무대의 생명공학자로 향하는 길
현재의 나는 연구자로서 앞으로의 커리어를 계획하면서 장차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생명공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최근엔 미국에서 열린 국제구강건강학회에 참석했다. 이 학회는 세계적인 구강용품 기업과 연구소들이 모여서 최신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다. 콜게이트, P&G, 센소다인, 라이온, LG 등의 글로벌 구강용품 기업들이 자사의 신기술과 차세대 제품 연구를 발표했고, 여러 대학과 병원 연구소도 치의학과 약물전달시스템에 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특히 내가 관심이 큰 약물전달시스템 분야에선 약효 성분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강 내에 전달하고 흡수율을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이 소개됐다. 단순히 특정 성분을 첨가하는 차원을 넘어서 나노입자 기반의 성분 전달 기술이나 고분자 코팅을 활용한 치약 형태의 안정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런 기술들은 구강 점막을 통한 약물 흡수율을 높이고 약효 지속성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까닭에, 이번 학회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 주목한 부분은 불화주석(stannous fluoride)에 대한 심층 연구였다. 불화주석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충치 예방 성분이지만, 이번 학회에선 불화주석의 잇몸 질환 억제와 시린 이의 완화 효과까지 과학적으로 입증한 여러 연구가 발표됐다. 기존에 사용된 불소 성분보다 여러 방면에서 우수한 효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화주석의 학문적·산업적 잠재 가치가 크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번 국제구강건강학회에서 얻은 약물전달시스템의 최신 연구, 다양한 성분의 효능 데이터 같은 지식은 현재 진행 중인 시린 이 관련 신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앞으로 할 연구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동안 과학동아를 보면서 키운 과학적 호기심이 이젠 연구 현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경험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이럴 때도 과학동아에 큰 고마움을 느낀다. 독자 여러분도 원하는 정보만 골라보는 스마트폰에서 잠시 벗어나, 매월 과학동아와 깊이 있는 탐구를 하는 시간을 꾸준히 가져보시길 바란다.
나만의 과학동아 활용법
Q.과학동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나요?
생명공학과 출신이어서 의학과 관련된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돼지 장기의 인간 이식이 가능할지에 대한 기사를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위한 세계의 많은 연구를 접하며, 저도 이렇게 인류에 기여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Q.과학동아를 실제로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요즘 인공지능(AI), 챗GPT와 연계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인데 이런 트렌드를 파악할 때에 도움이 됩니다.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동안 멀어질 때가 있는 물리학, 천문학 같은 다른 과학 분야의 최근 동향을 살펴볼 때도 유용합니다.
Q.과학동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스마트폰으로 많은 정보를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책으로 읽을 때 비로소 정확히 이해되는 지식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과학을 연구하려면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학동아는 과학을 이해하기 쉽게 전해주는 책이어서, 지금 독자 여러분이 과학동아를 읽는 습관이
과학을 공부할 미래의 여러분을 도와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