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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포뮬러1(F1) 스페인 바르셀로나-카탈루냐 그랑프리 후반부. 타이어를 교체한 레드불 팀의 차량이 크게 흔들렸다. 바로 뒤를 따르던 페라리 레이스카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추월에 성공했다. 이처럼 타이어는 F1에서 순위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실제 경기 결과를 통해 F1 타이어의 중요성을 알아봤다.
김태희
나창운 경북대 고분자공학과 교수가 타이어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첨가제, 카본블랙을 들고 있다. 카본블랙은 타이어의 강도 등을 높인다.
F1 타이어에 합성고무를 많이 넣는 이유
타이어는 차량을 움직이게 만드는 핵심 부품인 동시에 F1에서는 순위와 전략을 결정 짓는 요소다. F1 타이어는 단단한 정도에 따라 구분하지만 각 타이어가 천연고무와 합성고무를 어떤 비율로 혼합하는지, 또 타이어 성능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보강제를 얼마나 넣는지는 기밀이다(타이어 제작 레시피는 F1 타이어 공급업체 피렐리뿐만 아니라 모든 타이어 공급업체만의 원천 기술이다). 하지만 F1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와 비교했을 때 몇가지 큰 특징이 있다.
타이어의 기본 성분은 고무와 보강제다. 피렐리는 천연고무 약 15%와 합성고무를 혼합해 타이어를 만든다. 5월 23일 경북대에서 만난 나창운 고분자공학과 교수는 “현재 모든 타이어 제조사들이 천연 고무와 합성고무를 혼합한다”고 설명했다. 천연고무의 특성과 합성고무의 특성을 모두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F1 타이어의 천연고무 비율은 일반 타이어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편이다. 일반 타이어의 천연고무 비율은 대개 40~45% 수준이다.
합성고무 중심으로 타이어를 만드는 것은 F1 타이어의 목표가 가능한 빨리 달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타이어 성능은 ‘접지력’ ‘회전 저항’ 그리고 ‘내마모성’이란 세 가지 핵심 특성이 결정한다. 접지력은 노면과의 마찰력이다. 레이스카가 가속 성능을 내거나 코너를 돌 때 반드시 필요한 성능이다. F1에서는 접지력을 ‘그립(grip)’이라 표현한다. ‘그립이 없다’는 말은 접지력이 약해 트랙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뜻이다. 회전저항은 타이어가 굴러갈 때 받는 저항이다. 저항이 낮을수록 연비가 좋고 에너지 효율이 높다. 내마모성은 타이어가 얼마나 잘 닳지 않고 오래 버티는지를 뜻한다.
“세 개의 특성이 삼각형을 만드는데 이걸 매직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러요.” 나 교수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각각의 특성은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무가 노면에 더 강하게 달라붙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회전저항도 커진다. 내마모성을 높이면 접지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반 타이어는 세 개의 특성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게끔 설계된다. 하지만 F1 타이어는 다르다. 연비와 에너지 효율이 중요하지 않다. 시속 350km를 넘나들며 질주하는 레이스 카는 오직 빠른 속도만이 중요하다.
따라서 F1 타이어는 접지력을 최대화하면서 내열성과 내구성이 좋게 만들어야 한다. 이때, 그 특성을 조절하기 힘든 천연고무보다는 분자 구조를 정밀하게 설계해 원하는 기계적 특성을 맞출 수 있는 합성고무가 더 많이 사용되는 것이다.
한편 레이스카가 지나간 트랙 위에는 검은색 자국이 남는다. 타이어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카본블랙 때문이다. 카본블랙은 불완전하게 연소된 석유에서 얻는 미세한 탄소 입자로 오늘날 타이어 제작에 빠질 수 없는 첨가제다. 카본블랙은 단순히 타이어를 까맣게 만드는 염색물질이 아니다. 나 교수는 “카본블랙의 미세한 입자가 고무 안으로 분산돼 타이어의 기계적 강도를 최소 10배, 최대 1000배 높여준다”고 설명했다. 또한 카본블랙이 고무 입자와 결합하면 인장강도, 내마모성, 내열성도 크게 증가한다.
F1 타이어의 종류와 구분
‘컴파운드’는 타이어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고무 재료의 조합을 가리키는 말이다. 포뮬러1(F1)에서는 이 컴파운드를 기준으로 타이어를 구분한다. 맑은 날 사용되는 F1 타이어는 여섯 가지, 노면이 젖은 경우 사용하는 타이어는 두 가지다. 총 여덟 종류 타이어의 특징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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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미디움, 소프트 타이어
F1 타이어 공식 공급업체인 피렐리는 그랑프리 개최 약 한 달 전, 서킷의 노면 마찰, 코너 하중, 저속 및 고속 비중 등을 고려해 6개 컴파운드 중 3개를 선정한 뒤 국제자동차연합(FIA)과 각 팀에 공식 발표한다. 다만 날씨 변화나 트랙 상태에 따라 최대 2주 전까지 선택을 조정할 수 있다. 지정된 3개 컴파운드는 상대적 강도에 따라 하드, 미디엄, 소프트 타이어가 된다. 예를 들어 C2, C3, C4가 사용되는 영국 실버스톤 그랑프리의 경우 C2이 하드, C3이 미디엄, C4가 소프트 타이어다.
컴파운드별 특징
C1 궁극의 하드 컴파운드
가장 단단한 컴파운드로 타이어가 힘을 많이 받는 서킷에 투입된다. 높은 열과 강한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긴 주행에도 안정적이다.
C2 극한의 내구성을 위한 설계
속도가 빠르고, 온도가 높으며, 노면이 거친 서킷에 적합하다. 신규 서킷에서 처음 그랑프리가 개최될 경우 ‘하드 타이어’로 C2 타이어를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
C3 다재다능한 컴파운드
하드, 미디엄, 소프트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유연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 타이어 성능과 내구성의 균형이 탁월해, 안정적인 선택지로 사용된다.
C4 빠른 워밍업, 우수한 접지력
타이어 마모가 크지 않은 서킷에서 타이어의 온도를 빠르게 올려 최적의 성능에 빨리 도달하도록 설계된 컴파운드다. 시즌 내내 폭넓게 사용된다.
C5 최고의 부드러움과 속도
C5는 마모와 열화가 낮고, 속도가 느린 서킷에서 최대의 기계적 접지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설계됐다. 매우 매끄러운 노면의 서킷에서 주로 사용된다.
C6 도심 서킷의 여왕
2025년에 새로 도입된 가장 부드러운 컴파운드다. 부드러운 만큼 속도가 빠르지만, 타이어 마모가 큰 편이라 도심 서킷 전용으로 한정해 사용한다.
인터미디엇(intermediate)
가볍게 젖은 노면이나, 마른 구간과 젖은 구간이 혼재된 상황에서 사용한다. 표면에 파인 홈은 초당 약 40리터의 물을 배출한다.
웻(wet)
빠른 주행이 불가능할 만큼 비가 많이 오고, 노면 웅덩이에 물이 고여있는 상황에서 투입된다. 인터미디엇보다 2배 정도 많은 물을 배출한다.
전략❶ 서킷과 상황에 따라 타이어를 선택하라
F1의 타이어는 총 8종류가 있다. 이 중에 맑은 날 사용하는 ‘드라이 타이어’는 총 6종류, 노면이 젖었을 때 사용하는 ‘웨더 타이어’는 2종류다. 6개의 드라이 타이어에는 C1, C2, C3, C4, C5, C6란 이름이 붙는다. 알파벳 C는 ‘컴파운드’를 뜻한다. 컴파운드는 타이어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고무 재료의 조합을 뜻하는 단어다. F1에서는 이 컴파운드를 기준으로 타이어 종류를 나눈다. C1 타이어는 가장 단단한 컴파운드며, C6 타이어는 가장 부드러운 컴파운드다.
피렐리는 그랑프리 개최 전 서킷 특성과 날씨 등을 고려해 6개의 타이어 중에 총 3개를 선정한다. 스페인 카탈루냐 그랑프리에서는 C1, C2, C3가 투입됐다. 선정된 3개 타이어는 숫자가 낮은 순서대로 하드, 미디엄, 소프트 타이어라 불린다. C4, C5, C6가 사용된 모나코 서킷에서는 C4가 하드, C5가 미디엄, C6가 소프트 타이어였다.
F1 타이어는 무한정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F1의 그랑프리 주말은 여러 세션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3번의 연습주행(FP1~FP3, 프랙티스), 그랑프리 출발 순서를 결정하는 3번의 퀄리파잉(Q1~Q3), 그리고 본선 경기인 그랑프리로 이뤄진다. 이 모든 세션에서 사용할 수 있는 타이어가 규정으로 정해져 있다. 모든 드라이버는 그랑프리 주말 동안 총 13세트의 드라이 타이어를 지급받는다. 8세트의 소프트, 3세트의 미디엄, 2세트의 하드 타이어다.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 4세트의 인터미디엇, 3세트의 웻 타이어도 함께 지급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바꿔놓은 모습 중 하나예요.” 6월 2일 작업실에서 만난 윤재수 쿠팡플레이 F1 해설위원이 말했다. 코로나19 전까지는 13세트의 타이어를 팀에서 원하는 구성으로 ‘주문’해 사용했다. 윤 위원은 “2020년 시즌은 팬데믹으로 경기가 모두 취소됐다가 일주일 전에 갑작스럽게 개최가 결정되기도 하다보니 타이어 공급에 차질이 생겼고, 당시 지급하는 타이어의 구성을 통일한 이후 지금까지 해당 규칙이 이어져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과거엔 각 팀에서 ‘어떤’ 타이어를 사용할지가 경기의 운명을 갈랐다면 지금은 같은 타이어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좀 더 집중하게 된 것이다.
타이어는 일정 세션이 끝난 뒤 수거된다. 연습주행이 끝날 때마다 모든 드라이버는 두 세트의 타이어를 반환해야 한다. 세 번째 퀄리파잉(Q3, 세 번째 예선)에 진출하는 드라이버는 반드시 Q3 전용 소프트 타이어 1세트를 Q3 종료 후 반납해야 한다. 때문에 Q3 진출자는 그랑프리가 시작하면 총 6세트의 타이어를, Q3 탈락자는 7세트의 타이어를 갖고 경기를 시작한다. 어떤 팀은 Q3 진출을 의도적으로 포기하거나, Q3에 진출하고도 타이어를 아끼는 전략을 짜기도 한다.
가장 단단한 타이어가 투입되는 서킷
2025년 일본, 바레인, 스페인 그랑프리에서는 상대적으로 단단한 C1, C2, C3가 각각 하드, 미디엄, 소프트 타이어로 투입됐다.
바레인 사키르 서킷은 표면이 매우 거칠고 마찰력이 큰 편이다. 또한 제동 구간과 가속 구간이 뚜렷하게 반복돼 높은 트랙션(가속할 때 바퀴가 헛돌지 않고 잘 밀어주는 힘)을 요구하며, 더운 기후로 트랙 온도가 높은 편이라 마모가 적고 내구성이 높은 단단한 컴파운드가 투입된다.
일본 스즈카 서킷은 고속 코너가 연속돼 코너를 돌 때 타이어 측면에 가해지는 힘이 큰 편이다. 이를 버틸 수 있는 단단한 컴파운드가 사용된다.
가장 부드러운 타이어가 투입되는 서킷
2025년 모나코, 캐나다 그랑프리에서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C4, C5, C6가 각각 하드, 미디엄, 소프트 타이어로 투입됐다.
모나코의 기존 도로를 활용한 모나코 서킷은 F1 서킷 중에서 가장 좁고 속도가 느리다. 또한 노면이 미끄러운 편이라 타이어의 접지력이 낮다. 타이어가 도로에 잘 붙으려면 빠르게 온도가 올라가야 하므로 부드러운 타이어가 필수다.
캐나다 몬트리올 서킷은 노면이 매끄럽고, 다소 기온이 낮은 편이다. 이에 부드러운 타이어를 사용해 최적의 접지력을 확보해야 한다.
경기❶ 의도하지 않게 타이어를 아낀 르끌레르
스페인 카탈루냐 그랑프리 결승 개최 전날인 5월 31일, 랩타임(레이스카가 서킷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 순서대로 1위부터 10위까지 그랑프리 출발 순서를 가르는 Q3 경기가 열렸다(11위부터 20위까지 순위는 Q1, Q2에서 결정된다). Q3 종료 3분 30초를 남기고 대부분의 레이스카가 다시 트랙 위로 향했다. 자신의 랩타임을 경신해 그랑프리에서의 출발 순서를앞으로 당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샤를 르끌레르 페라리 드라이버는 차에서 내려 왔다. 르끌레르는 Q2에서도 다른 드라이버들과 비교해 랩타입 기록을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그는 Q3가 끝나고 “언더스티어(코너를 돌 때 자동차가 밀려나가는 현상)가 너무 심해서 더 달릴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르끌레르는 타이어를 아꼈다. 퀄리파잉에서는 비교적 부드러운 소프트 타이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퀄리파잉은 최단 랩타임을 겨루는 싸움이라, 최고의 접지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유연한 타이어일수록 타이어 표면이 노면에 더 잘 달라붙어 빠르게 코너를 돌 수 있다. 그런데 소프트 타이어는 내구성이 좋은 편이 아니다. 특히 스페인 카탈루냐 서킷은 뜨거운 지중해성 날씨로 그랑프리가 개최되는 초여름 기간 트랙의 온도가 높은 편인데다, 고속 코너가 길어 타이어 좌우 부하가 비대칭적이다. 또 앞 타이어가 과열될 가능성이 높아 타이어를 ‘신선하게’ 남겨두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F1 규정 상 퀄리파잉에서 사용된 소프트 타이어는 일정 온도 이상 올라가지 않으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르끌레르는 비록 7위 자리에서 스페인 그랑프리를 시작했지만 Q2, Q3에서 남들보다 덜 달린 덕분에 다른 상위권 드라이버들보다 사용량이 적고 상태 좋은 소프트 타이어를 1세트 더 보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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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에선 젖은 노면에 주행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두 개의 웨더 타이어가 있다. 인터미디엇 타이어와 웻 타이어다. 일반 타이어와 비교했을 때 표면에 홈이 파여 빗물을 배출하는 외형이 돋보인다. 웨더 타이어는 비오는 날 비교적 낮은 온도(30~80℃)에서 성능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진다.
언더컷을 막는 전략
스페인 바르셀로나-카탈루냐 그랑프리(총 66랩)에서 루이스 해밀턴 페라리 드라이버가 17랩에서 첫 번째 타이어를 교체했다. “왜 이렇게 일찍 교체했냐”는 해밀턴의 질문에 엔지니어는 “뒤차의 언더컷을 막기 위해”라 답했다. 언더컷은 상대보다 먼저 피트인 해 신선한 타이어로 빠른 랩을 기록하고 상대가 타이어를 교체하는 사이 추월하는 전략이다. 윤재수 F1 해설위원은 “앞차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뒤차를 막는 전략”이라 설명했다. 당시 해밀턴의 차량은 앞선 차량들과는 비교적 간격이 넓었지만, 뒤로는 10초 이내 간격으로 따라붙은 레이스카가 3대 있었다.
전략❷ 항상 타이어를 따끈따끈하게 유지하라
좋은 상태의 타이어를 남겨두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경기 중의 타이어 온도 관리다. F1에서 사고가 나면 트랙이 다시 말끔하게 정리되기까지 세이프티 카(safety car)가 투입된다. 모든 레이스카는 속도를 줄여 세이프티 카 속도에 맞춰 줄 지어 주행해야 하고 추월도 금지된다. 이때 레이스카가 세이프티 카 뒤에서 지그재그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타이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타이어는 특정한 온도에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되는 고분자 재료기 때문이다.
F1 타이어의 이상적인 성능은 매우 좁은 온도 구간에서 발휘된다. 흔히 이를 ‘스윗스팟(sweet spot)’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드라이 타이어의 작동 온도 범위는 약 80~100℃ 사이다. 컴파운드에 따라 접지력, 마모 저항성, 구조 안정성이 모두 최적으로 조화되는 구간이 다르다. 타이어는 스윗스팟을 벗어나면 성능이 급격히 저하된다. 너무 차가우면 고무가 경직되면서 접지력이 떨어지고, 너무 뜨거우면 타이어 표면이 녹거나 구조적 손상이 발생해 그립이 불안정해진다. 이런 까닭에 세이프티 카 상황에서도 레이스카는 타이어가 식지 않도록 타이어를 괴롭히는 것이다. 특히 지그재그로 주행하면 타이어 측면까지 고르게 데우는 데 효과적이다.
타이어는 컴파운드에 따라 최적의 온도까지 데워졌다가 식는 속도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소프트 타이어는 고무가 부드럽고 유연해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데워지며, 한두 바퀴만에도 스윗스팟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그만큼 열을 쉽게 흡수하고 쉽게 잃기 때문에, 성능 유지 시간이 짧고 마모가 빨리 일어난다. 반면 하드 타이어는 구조적으로 단단하고 밀도가 높아 온도 상승이 느리며, 예열 시간이 길고 스윗스팟에 도달하지 않으면 접지력이 약하다. 하지만 일단 적정 온도에 도달하면 그 온도를 오래 유지하면서도 마모가 적은 장점이 있다.
경기❷ 르끌레르를 ‘포디움’으로 올린 소프트 타이어
6월 1일, 스페인 카탈루냐 그랑프리가 막바지로 치닫는 순간, 트랙에 위험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옐로우 플래그(yellow flag)’가 선언됐다. 키미 안토넬리 메르세데스 드라이버가 엔진 고장으로 트랙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곧이어 ‘세이프티 카’도 등장했다.
모두가 천천히 주행하는 세이프티 카 상황은 타이어 교체를 하기 가장 좋은 순간이다. 이에 트랙 위에 있던 대부분의 드라이버가 피트 인(F1 레이스 중 차량이 정비를 위해 트랙을 벗어나 피트 레인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1위와 2위로 달리고 있던 멕라렌의 두 드라이버 뒤로 레드불의 막스 베르스타펜(당시 3위)도 타이어를 교체했다.
“베르스타펜 하드(타이어) 꼈나요?” 윤 위원이 트랙 위로 다시 나온 베르스타펜의 타이어를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그러고 30초 뒤, 중계를 통해 베르스타펜의 팀 라디오가 송출됐다. “우리 지금, 이거 무슨 타이어야?” “하드 타이어야 막스.” “왜? 왜 우리 하드 타이어야?” “그게 유일한 선택지였어.”
이후 세이프티 카가 철수하고 다시 경기가 재개되며 모든 레이스 카가 속도를 높이는 찰나, 베르스타펜의 차량이 크게 흔들렸다. “아, 결국은 저 하드 타이어 온도가 부족했어요!” 윤 위원이 탄식하며 외쳤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르끌레르가 베르스타펜을 추월하는 순간, 두 드라이버의 레이스카에는 각각 소프트 타이어, 하드 타이어가 끼워져 있었다.
그렇다면 레드불은 왜 베르스타펜에게 하드 타이어를 준 걸까? 기자의 질문에 윤 위원은 웃으며 말했다. “중계에서는 모든 팀 라디오가 나오지 않았는데요. 레드불 레이스 엔지니어는 원래 베르스타펜에게 ‘트랙에 남으라’고 지시했어요. 그런데 베르스타펜이 ‘신선한 타이어로 달리고 싶다’고 말했죠.” 실제로 이날 베르스타펜은 이렇게 말했다. “Do we have another set of tyres? It will make a difference, fresh tyres(우리 다른 타이어 있어? 신선한 타이어면 차이를 만들 수 있을 거야).” 윤 위원은 “이 신선한 타이어란 표현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앞서 3번의 타이어 교체를 진행한 베르스타펜에게 한 번도 쓰지 않아 신선한 타이어는 오직 하드 타이어 하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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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F1팀 메카닉이 타이어를 타이어 블랭킷(담요)에 싸고 있다. F1 타이어는 타이어가 한 번 최적의 온도까지 데워졌다가 다시 식는 과정(히트 사이클)을 관리하는게 중요하다. 히트 사이클이 여러 번 반복되면 타이어 내부의 고분자 구조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5위에서 1위로. 맥라렌 타이어 온도 관리 비법
타이어를 적정 온도로 잘 관리하는 것은 드라이버의 역할만이 아니다. F1에 참여하는 팀의 숙제이기도 하다. 총 24개의 그랑프리가 개최되는 2025년 F1 시즌의 중반부로 접어든 현재(기사 작성일 6월 13일 기준), 맥라렌 F1 팀은 컨스트럭터 포인트를 무려 362점 모았다. 2위인 페라리(165점)보다 2배가 넘는 압도적인 성적이다.
“유독 맥라렌만 리어(뒤) 타이어 온도 관리가 잘 되고 있어요. 분명 (새로운) 기술이 들어간 겁니다.” F1에서 타이어 온도 관리는 경기의 핵심 요소다. 수십 년 동안 다양한 기술이 사용됐다. 그 중 하나가 브레이크에서 나오는 고온의 공기를 타이어로 유도해 타이어 온도를 빠르게 올리는 ‘브레이크 덕트(브레이크 시스템과 타이어를 식히기 위해 공기를 유도하는 장치) 냉각 열 재활용’ 기술이다.
실제로 레드불 F1팀은 올해 5월 초, ‘맥라렌의 브레이크 덕트와 리어 타이어 주변 냉각 기술이 의심스럽다’며 규정 위반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레드불은 국제자동차연합(FIA)에 공식적으로 항의하지는 않았고, FIA도 같은 달 중순, 맥라렌의 브레이크 및 냉각 장치가 규정을 위반한 사실은 없다고 발표했다.
윤 위원은 “맥라렌이 2022년 시즌에 브레이크 덕트로 계속 고생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맥라렌은 브레이크 냉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시즌 개막 전 테스트 주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개막전 그랑프리에서 두 명의 드라이버가 14위, 15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맥라렌이 이후 브레이크 덕트 문제로 1년 반 여를 고생했는데, 당시 문제를 해결하다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맥라렌은 2022년 시즌을 5위로 마무리했다. 당시 1년 동안 모았던 컨스트럭터 포인트는 159점. 2025년 시즌, 9경기를 마치고 쓸어담은 포인트가 362점인 것과 비교한다면 환골탈태나 다름없다. 맥라렌이 타이어 온도 관리에 어떤 기술을 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타이어가 F1에서 팀과 드라이버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이다.
용어 설명
F1 팀 라디오 : 드라이버와 레이스 엔지니어가 실시간으로 전략, 차량 상태 등을 주고받는 무선 통신 시스템.
컨스트럭터 포인트 : 팀 순위를 정하는 데 사용하는 점수. F1 각 팀(컨스트럭터)의 두 드라이버가 얻은 점수를 합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