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지 22년. 그러나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 달여행 제2막인 '달기지 건설'을 앞두고 지금까지의 성과를 간추려본다.
60년대와 70년대 우주개발의 모든 목표는 달이었다. 즉 달은 광활한 우주를 향한 인간의 꿈을 펼친 첫 관문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선을 나와 월면에 내디던 닐 암스트롱의 첫발은 원대한 우주개발의 출발점으로 기록됐다. 그로부터 22년, 달은 점차로 신비한 모습을 인간 앞에 드러내 이제는 달기지 건설을 위한 여러 모델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옥토끼 이야기는, 이제 달에는 어떤 광물이 있으며 달에 세워진 천문대에서 우주의 생성비밀을 밝혀줄 새로운 전파를 관측한다는 이야기로 바뀌어지고 있다. 달은 더이상 신비의 천체가 아니다. 30개의 분화구로 뒤덮인 지구4분의1(지름 기준) 크기의 곰보딱지 천체에 인간의 족적이 촘촘히 박히는 순간, 화성이나 금성 또는 우주공간에 떠있는 수많은 별(항성)들은 그 본연의 모습을 속속 드러낼 것이다.
달은 어떤 천체인가. 지구 유일의 위성인 달은 지구 질량의 1.2%밖에 되지 않는다(7.38×${10}^{22}$kg). 지구와 가장 가깝게 있기 때문에(38만 4천 4백km) 매우 크게 느껴지지만 실제면적은 남극 대륙 3배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이 조그만 면적속에 아폴로11호가 착륙한 '고요의 바다'를 비롯해 수십개의 바다와 크고작은 분화구 수십만개가 분포돼 있다.
달에서 바다라 함은 지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물이 괴어있는 곳이 아니라 용암이 흘러나와 굳은 넓은 평원일 따름이다. 지구에서 관측할 때 이 부분은 어둡게 보이기 때문에 '바다'라고 불린다. 이 바다속에는 직경이 수m에서 2백km에 달하는 크레이터(분화구)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 분화구도 지구의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달의 내부 물질이 솟아 폭발한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들이 달표면에 상처를 낸 것이다. 얼마나 큰 운석이 부딪쳤길래 분화구 지름이 그렇게 클까. 이에 대한 대답은 명백하다. 달에는 보호막(대기)이 없기 때문에 조그만 운석의 충돌에너지도 같은 양의 TNT 1백배 이상 크다. 달이 곰보딱지로 변한 것은 바로 대기가 없다는 이유때문이다.
달에 대기가 없다는 것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대기를 잡아둘만큼 힘(중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몸무게 60kg짜리 사람은 달에서는 10kg으로 준다.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대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금방 탈출해버렸을 것이다. 실제로 물체가 지구를 탈출하려면 11.2km/초의 속도를 내야하지만 달에서는 2.4km/초만 내면 얼마든지 우주여행을 떠날 수 있다. 달에 생산기지를 세워 물자를 우주공간에 공급한다면 지구에서 운반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송비용이 적게들 것이다.
미국의 승부수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달에 관한 지식의 대부분은 '아폴로 계획'의 성과다. 61년 5월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60년대가 끝나기 전까지 인간을 달세계에 착륙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부에서는 미소의 우주경쟁에서 한발 뒤처진 미국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1961년은 소련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1호가 유리 가가린을 태우고 최초의 우주비행을 성공시켜 미국을 제압했던 시기다.
미국은 철저한 준비(레인저 서베이어 루나 오비터 계획 등)를 거쳐 68년 10월 아폴로 7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달착륙계획에 들어 갔다. 그로부터 1년도 못된 69년 7월 20일 11호의 두 우주인(암스트롱과 올드린)이 2시간 32분에 걸쳐 달표면을 산책하면서 월석을 채집하고 지진계와 레이저광선반사경을 설치한 후 지구로 귀환했다.
그후에 아폴로 17호가 생쥐 20마리를 태우고 달세계에 갔다오기까지 (72년 12월) 다섯번(13호는 사고로 달착륙 포기) 인간의 달착륙이 더 이루어졌다. 아폴로 15호는 '로버'라 불리는 월면주행차를 타고 착륙지점으로부터 9.6km거리까지 탐사했으며, 16호는 인간의 월면활동시간을 20시간 14분까지 연장 시켰다. 물론 매번 수십kg 월석이 지구로 운반됐다.
미국 존슨 우주센터에 보관돼 있는 총 3백85kg의 월석은 달의 생성에 읽힌 비밀과 그 이후의 역사에 대해 많은 사실을 밝혀줬다. 월석을 분석해 얻은 데이터로만 수만페이지에 달하는 과학출판물이 출간됐을 정도다. 월석분석 결과 지구의 나이 만큼이나 오래된 암석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달의 바다의 암석은 33억~38억년이나 됐고 대륙의 암석도 40억년 가깝게 오래됐다는 점이다. 지구의 나이는 46억년이며 지구에서 채집된 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38억년이기 때문에, 달은 지구와 거의 동시에 태어났다고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월석의 화학적 조성이 지구의 암석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달의 바다에는 철과 티탄이 풍부하고 대륙지대에는 알루미늄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특징. 한편 지구에는 1백종의 원소가 분포하지만 달에는 60여종밖에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월석채집 이외에도 달에 착륙한 아폴로우주선이 이룩한 성과는 많다. 우선 월진계(月震計)를 설치해 달 내부를 간접적으로 관측하는 일이다. 달의 속을 들여다보려면 땅을 파고 표본채집을 하면 되지만 쉽지 않으므로 월진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월진계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지구보다는 미약하지만 달에도 매년 3천회나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달의 지진강도가 지구보다 훨씬 떨어지는 이유는 진원이 땅속 깊은 곳(표면에서 7백km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월진계가 알려준 사실은 달의 내부 세계도 지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폴로 15, 16호가 가져간 X선장치도 큰 역할을 했다. 달의 내부는 지각 맨틀 핵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바깥쪽의 지각은 60km의 두께로 알루미늄과 칼슘이 풍부한 화성암이 대부분이고, 맨틀층은 8백km의 두께를 가지며 밀도가 높은 암석으로 구성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핵부분은 더욱 불분명하다. 확인조차 불가능하지만 전체 달질량에 비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충돌설? 형제설?
월석분석이나 월진계에서 얻어진 데이터는 곧바로 달탄생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응용된다.
현재까지 제기된 달탄생설은 네가지. 우선 달이 지구에서 떨어져나갔다고 주장하는 분열설(친자설이라고도 불림)이 있다. 이 설은 심정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설득력을 가졌으나 물리적 타당성에 있어서는 낙제점을 받고 있다. 실제로 80년대 초 커트 한센이라는 사람이 만유인력법칙에 의해 달이 지구에 22만5천km 이내로는 결코 가까와질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다른 천체가 지구 옆을 통과하다가 붙잡혔다는 포획설인데, 이 또한 정설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붙잡혀 있기보다는 오히려 충돌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아폴로가 가져온 월석이나 월진계를 통해 얻어진 데이터로부터도 포획설은 그다지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현재까지 가장 그럴듯하면서 정설로 인정되는 것은 형제설이다. 지금으로부터 45, 6년 전 태양계가 탄생하면서 지구도 만들어지고 달 또한 고체상태의 미소천체가 모여서 형성됐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도 허점은 많다. 형제설이 맞다면 구성물질이 지구와 같아야 할텐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아폴로가 가져온 월석을 분석해보면 이리듐이나 토륨 등 철에 녹기 쉬운 친철성원소가 매우 부족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태양계(지구 포함)의 재료물질로 알려진 친철성원소의 부족은 형제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달의 중심부(핵)에 수백km의 금속층이 존재하고 이 부분에 친철성원소가 다량 포함돼 있다면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달탄생설은 충돌설이다. 이 학설은 지구가 굳어지기 전인 약 45억년 전 지구 크기의 7분의1 되는 천체(화성 크기)가 지구와 부딪쳐 떨어져나가 달이 됐다는 주장이다. 아직까지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점점 설득력을 더해 가고 있는 이론이다.
과학자들은 아폴로가 가져온 운석이나 월진계 정도로는 달의 탄생이나 그 이후의 진화과정을 밝히는 것은 역부족이라면서, 즘 더 정밀한 월진계를 설치해 지각 내부에 관한 데이터와 핵이나 맨틀에 관련된 정보를 더욱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달 내부로부터 흘러나오는 열량을 정확히 측정, 달 전체의 열적상태를 알아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는 달을 데우고 있는 우라늄이나 토륨 등 방사성원소의 함유량을 측정하는데도 매우 요긴하다. 물론 아폴로 비행사들도 일부에서 달의 표면온도를 측정하기는 했지만, 계측기가 설치된 지점은 달의 평균적지각과는 거리가 멀며 얻어진 데이터도 달 전체의 열적상태를 파악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태양풍 측정기도 활약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남기고 온 '지구인 흔적'은 월진계뿐만이 아니다. 태양풍측정기를 달표면에 설치해 태양의 정체를 보다 정확히 파악했다. 달세계가 지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대기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외계에서 오는 모든 물질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통과한다는 의미다. 달에서 관측한다면 그만큼 실체를 정확히 밝힐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달에 설치된 태양풍측정기는 태양에서부터 날아오는 단파장광선(X선 γ선 등)을 측정해 태양이 발산하는 에너지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게 해주었다. 물론 현재는 태양탐사선 율리시스 등이 태양 가까이로 탐사에 나서 달에 설치된 태양풍측정기가 빛을 잃었지만, 당시만해도 훌륭한 데이터원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아폴로 11호가 달착륙 후 맨먼저 설치한 기계는 레이저광선 반사경이었다. 직진성이 뛰어난 레이저광선을 달에 쏘아 그것이 되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계산해내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오차가 15cm 이내로 줄었으며, 달의 궤도운동도 보다 정확히 측정됐다.
총 2백50억 달러의 비용이 든 아폴로계획은 인류에게 달에 관한 많은 지식을 새로이 제공했다. 여기에는 소련의 루나계획의 공헌도 컸다. 하지만 엄청난 비용에 비해 얻은 성과는 너무나 초라하다는 비판도 일었다.
19년 민간인 지질학자 슈미트를 태운 17호를 끝으로 달여행은 1막을 내렸다. 미소의 우주개발경쟁에서 다시 우위를 확보한 미국은 '인간 달에 간다'는 이벤트의 의미가 시들해지고 경비의 과다지출이라는 비판이 일자 즉시 아폴로계획을 중단시켰다. 일부에서는 달착륙으로 인류생활에 도움이 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과학적으로도 들인 비용에 비해 크게 얻은 것이 없다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아폴로 계획 이후 10년 이상 넘게 달은 우주개발 목표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달기지 건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이제 20여년의 공백기를 뛰어넘어 달탐사 제2막이 오르려는 시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