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오스민(Geosmin)

편집자 주
봄이다. 산과 들의 지루한 갈색 사이사이로 연한 초록빛이 움트더니 어느 순간 산야를 덮어버렸다. 어린 이파리들은 봄비를 맞으면 더욱 생동감 넘치게 자라난다. 빗방울이 땅을 점점이 적시면 광물성의 먼지 냄새 같기도 하고, 마른풀의 식물성 냄새 같기도 한 향이 코를 간질인다. 오랫동안 맡지 못했던 냄새, 빗물이 흙을 적시면서 나는 냄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이 냄새는 오묘하게 만물의 생동감을 전달한다. 실제로 있는 냄새인가 헷갈릴 수도 있지만, 1964년 두 화학자가 ‘페트리코(Petrichor)’라는 이름까지 붙인 엄연한 향이다. doi: 10.1038/201993a0
페트리코를 구성하는 중요한 화합물 중 하나는 ‘지오스민’이다. 지오스민은 흙과 곰팡내를 뚜렷이 풍기는데, 토양의 스트렙토마이세스속(Streptomyces) 균류를 포함해 다양한 조류, 진핵생물의 대사산물로 만들어진다. 지오스민 향은 산책로에서 맡으면 향긋하지만, 식수나 물고기에게서 풍기면 불쾌한 ‘물비린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03년, 키스 채터 영국 존 이네스 센터 분자미생물학과 교수팀은 스트렙스마이세스균에서 지오스민을 만드는 유전자를 분석했다. doi: 10.1073/pnas.0337542100 왜 이 균은 지오스민을 만들까? 채터 교수는 당시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오스민이 동물이 물을 찾는 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냈다. 예를 들어 낙타는 지오스민 향으로 오아시스를 찾고, 이때 스트렙스마이세스균은 낙타에 묻어 확산할 수 있다고 추측했다. 검증이 더 필요하지만 채터 교수의 가설은 우리로 하여금 매력적인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인간 또한 지오스민 냄새에 매우 민감한 동물 중 하나기 때문이다. 봄의 문턱에서 맡는 비 냄새는 어쩌면 과거 메마른 사바나에서 물을 찾아 돌아다니던 선조들이 생존하기 위한 진화적 적응의 결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