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소의 중견연구원들이 대학으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무엇이 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까. 연구비전이 하루 아침에 난도질 당하는 연구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98년 과학기술 월드컵 축구경기. 24개국이 펼치는 본선에 올라온 한국선수들이 예선 첫경기를 펼치고 있다. 선수들은 이공계 대학교수,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 기업연구소 연구원들로 구성돼 있다. 8강을 목표로 장도에 올랐던 한국선수들은 예상과는 달리 첫경기부터 고전이다. 한국의 과학자들은 모두 골을 넣는데만 신경을 써 공격라인에만 몰려 있다. 어쩌다 흘러나오는 볼을 차넣으려고 하다보니 가뭄에 콩나듯 골이 들어가기는 하나 역습에 휘말리면 영락없이 실점이다. 결과는 2대10으로 대패. 2,3차전도 마찬가지로 8강은 커녕 꼴찌에 머물고 말았다.
국민들의 충격은 엄청났다. 과학기술 월드컵은 일반적인 체육경기와는 달리 단순히 '지면 속상하고 이기면 신나는' 기분상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대회. 과학기술력이 그 나라의 국력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모든 매스컴은 일제히 원인 분석에 들어갔고 과기처 통상산업부 재정경제원 정보통신부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모든 행정부서에는 불똥이 떨어졌다.
패배의 원인은 너무나 분명했다.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작전의 실패. 수비(기초과학)를 튼튼히 해야 될 대학교수들, 허리 역할(응용과학)을 해야 할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들을 모두 골을 넣는(돈이 되는) 공격(상품화 연구)만 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수비수도 미들플레이어도 공격에 가담할 수 있으나, 골을 넣는 것만이 유일한 작전이며, 골을 넣는 자만이 영웅이 될 수 있고 생존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과학자들도 자기 역할을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과학기술계 상황이 가져다줄 미래를 축구경기에 비교하여 본 것이다.
연구원 목조르기
최근 정부출연연구소는 또한번 나무 위에 올려져 심하게 흔들림을 당했다. 80년 5공 정권이 들어서 시행한 대대적인 연구소 통폐합 이후 관리들의 본격적인 통제를 받기 시작한 정부출연연구소는 80년대말부터 지금까지 '방향 정립' '기구 통폐합' '기능 재조정' '연구사업 변경' 등을 내세워 거의 2-3년 주기로 개혁몸살을 앓았다.
작년 12월 정부 조직 개편 이후 정부출연연구소에 대한 통폐합, 민영화, 기관 축소, 총 연구원가제도, 정년축소 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연구원들은 또한번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론이 좋지 않자 정부는 연구소 통폐합과 민영화 계획을 유보한다고 공식발표했지만, 연구원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목조르기' 위협에 잠을 자다가 가위눌리는 일이 잦다고 한다.
외형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중견연구원들의 이직 현상. 올해만도 화학연구소에서 3명, 항공우주연구소에서 5명, 표준과학원에서 7명(다른 연구소도 대동소이)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91년 대대적인 연구소 기능 재정립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이직현상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겉으로만 보면 이 이직현상은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 박사급 우수 연구인력이 연구소 경험을 살려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서 인력양성과 함께 연구개발을 하는 일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반문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뜯어보면 상황이 심각함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신분의 안정을 찾아 연구소의 첨단연구시설을 버리고 전문대학도 마다하지 않고 허허벌판 대학으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처음 가서는 몇년 동안 부딪쳐보다가 제풀에 지쳐 바둑이나 두면서 시간을 죽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공계 대학교수들 사이에 "시간과 능력은 있는데 연구할 돈도 없고 인력도 없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혹자는 이공계 대학 교수들 중 70% 이상이 교육이든 연구든 자신이 공부한 것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H연구소에서 지방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P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를 비판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연구소에 남아 계속 연구를 하고 싶었는데 자존심이 상해 더이상 견디지를 못했어요. 저는 원래 교육보다는 연구개발에 적성이 맞아서 연구소를 택했는데 4년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어요. 사실 제 분야는 국가적으로도 연구소 시스템 속에서 연구를 해야 의미가 있는데…"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신분이 국가적 사명이나 자신의 자아실현보다 우선했던 것이다. P교수는 친구들이 전화를 해 '축하한다'고 할 때면 더욱 괴롭다고 했다.
무엇이 이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까. 정신적인 측면에서부터 물직적인 것까지, 시시콜콜한 잡일에서부터 본질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뱉어내는 자조섞인 푸념은 우리 과학기술계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우리나라 과학자는 소외된 계층이지요. 변호사나 의사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이만큼 노력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연구원들은 사농공상의 공에 불과합니다. 자식의 학생 신상카드에도 연구원이란 항목이 없고 은행 대출을 받을 때도 연구원은 똑같은 학문적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는 대학교수와 차별이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표준과학원에서 한성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이남식 교수(40)의 말이다.
연구원이란 직업의 카테고리가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식들조차 "아빠 하는 일이 뭐냐"는 질책성 의문을 표시 할 때는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뿌리깊이 내려오는 사농공상의 신분의식에다 새로운 직업으로서 인정도 못 받다보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과기처 관료들조차 교수가 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는데 연구원이 찾아오면 부하직원 대하듯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분의 차이가 이럴진대 기회만 있으면 시간도 많고, 자유도 많고, 돈도 많이 받는 대학교수로 자리를 옮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자질구레한' 차별은 그나마 이겨낼 수 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역사라 해보았자 30년이 고작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자신의 하는 일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한번 가슴에 새기면 그정도 차별이야 견딜 수 있다는 것이 연구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어느날 KAIST와 KIST가 분리되더니, 갑자기 대전으로 내려가라고 해서 짐 싸들고 내려오고, 이번에는 연구소를 독립시킨다고 하면서 정년을 줄인다, 월급을 동결한다고 하니 어디 불안해서 연구를 하겠습니까. 저야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되지만 많은 연구원들이 '생존'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형편입니다."유전공학센터 책임연구원 이대실 박사(47)의 푸념이다. 대학교수야 정년퇴직을 하면 찾아오는 제자라도 있지만 연구원들은 나이가들면 '노인네 뒷방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데 안정된 연구환경 조차 마련해주지 못하고 흔들어대니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 비전이 하루 아침에 난도질 당할 때는 견디기가 힘들다. "텔런트들은 여러가지 방면에 다재다능하지만 연구원들의 재주는 연구하는 것 밖에 없어요. 그런데 국책연구개발사업 이다, G7프로젝트다, 중급기술이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연구과제를 놓고 포장하는데만 정신이 없다보니 1,2년 동안 연구시늉만 내다가 중단하는 과제가 많습니다. '연구과제 없는 연구원'이 '날개 부러진 새'와 뭐가 다를 게 있습니까. 첨단시설 갖춰놓고 연구비 한푼 없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이는 한 연구원의 항변이 아니다. 정부출연연구소에 몇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것이라는 것이 연구원들의 중론이다. 자그마한 프로젝트는 별도로 하고 화려한 출발을 했던 덩치 큰 극한기술, 초전도, 감성공학 등이 곤욕을 치렀다.
"연구과제가 불안정하다."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과학정책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의 '과학을 보는 눈'과도 관련된 문제다.
돈되는 것이 최고
젊었을 때 전문연구소에서 연구의 꿈을 펼쳐보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을 마다하고 표준과학원에 들어왔다는 책임연구원 박용기 박사(43)의 말을 들어보자. "과학기술 전문가를 키우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려요. 박사란 출발점에 불과하지요. 우리는 보통 한 과제를 3년씩 끊어서 하는데 비슷한 제목으로 한 과제를 오래 끄는 것을 싫어합니다. 중복투자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3년 지나면 제목을 확 바꿔야 연구비 확보가 용이합니다. 때로는 아예 다른 분야를 선택하기도 하지요. 진짜 전문가가 탄생할 수 있는 풍토가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구멍가게이긴 하지만 한 분야를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는 연구원이 생기고, 남아 있는 사람은 초라함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결과물에 대한 조급성. 이는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만 인식하는데서 연유한다. 채찍을 가하면 '소나타'가 나오는 것으로만 과학을 이해하는 것이 현실. 말로는 과학을 외치지만 몸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과학을 창조 행위로 이해하는 관료들은 드물다.
"과학기술은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긴 여정입니다. 아이디어 연구 개발 상품화 등을 거쳐야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요. 70년대를 거쳐 8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는 노동력을 주죽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했지요. 그 한계는 곧 드러나 88년 이후부터는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정부는 그 책임을 과학기술계에 돌렸습니다. 뭐 했느냐는 것이지요. 그 하나가 출연연구소 평가입니다.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평가의 기준이 틀렸다는 이야기지요." 화학연구소 책임연구원 류성은 박사(45)의 이야기다.
연구개발의 특성은 전혀 고려치 않고 인풋(input)이 얼마인데 아웃풋(output)이 왜 이것밖에 안되느냐를 따지고(실패를 인정하지 않음), 2~3년 동안 결과도 없는 연구에 매달려 무엇을 했느냐고 질책하고, 연구의 본질에 대한 감사보다는 사회 통념적인 시각으로 돈을 어디에 썼느냐만을 따지는 감사가 연구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KIST 책임연구원 김영하 박사(47)는 "R&D(연구개발)는 교육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R&D로 돈을 벌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며 "당장의 결과만을 쫓는 연구개발은 남의 뒷북만 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생리상 당장 상품화가 가능한 기술 쪽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지만 정부출연연구소가 추구해야할 방향은 중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제품의 '씨앗'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그렇지 않으면 맨 앞에 예를 든 축구 경기의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작년 말에 입각한 정근모 장관은 한국형경수로의 예를 들면서 '미드엔트리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원초적인 단계에서부터 기술개발을 하자면 너무나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상업화 이전에 있는 기술을 도입하여 엔지니어링을 통해 곧바로 상품화시키자는 것. 그러나 한국형경수로처럼 '입에 맞는 떡'이 그렇게 쉽느냐는 것이 과학기술자들의 반응. 실제로 미드엔트리 전략은 최근의 연구소 독립안, 총연구원가제도 등과 맞물려 단기간에 결과를 낼 수 있는 연구를 하라는 얘기로 받아들여졌다.
인삼농사 불가능
"같은 연구를 하더라도 아웃풋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면 창조적이지 못하고 루틴한 결과를 낳게 되지요. 남이 해놓은 것에 자연히 눈이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모방의 단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야할 때인데···"
"매년 결과를 내라면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어요. 봄에 심어서 여름에 결실을 맺는 토마토만 심어야지요. 몇년씩 걸리는 인삼농사는 생각하지 말아야겠지요. 결과지상주의. 글쎄요, 잘못하면 재탕이 되더라도 화장만해서 발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은 과학자들의 책임도 있지요. 인재를 모아놓고 돈을 투자했는데도 국민들에게 과학기술의 결정적인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하나의 학문 분야가 탄생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1백년이 넘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과학을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되지요."
"연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져야지요. 그러나 모든 과학기술분야가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야는 당장의 결과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 어떤 분야는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특허건수로만 연구업적을 평가한다든가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분야를 하나의 시각으로 재단하려 한다면 역효과만 날뿐이지요."
"대학과 출연연구소, 기업을 경쟁시키면 기업만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기업은 덤핑도 할 수 있으니까요. 기업만 살아남는다는 뜻은 공격수만 양성하는 결과를 낳지요. 당장은 경쟁력이 생길지 모르지만 5년 후, 10년 후에는 수비수나 미들플레이어가 없어 경기에 대패할 수밖에 없지요." 말은 다르지만 모두 한 목소리다.
그렇다고 연구원들이 신세한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문제점은 없는지를 따지고 주어진 여건에서 보다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어느 집단보다도 국가 소명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바로 과학기술자들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과학기술은 일종의 마라톤인데, 지금의 상황은 5㎞ 선상에 모든 상품을 다 갖다놓고 관중들도 모두 거기에 몰려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상을 보면서도 10㎞, 20㎞를 뛰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도 응원하지 않지만 과학기술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연구업적'이니까요." 류성은 박사의 이야기다.
세계의 명문 MIT의 교수직을 던져버리고 91년 2월 귀국해 허허벌판 기초과학지원센터에 플라스마 핵융합장치 '한빛'을 만들어낸 이경수 박사(39)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연구원들 스스로 책임질 부분이 많습니다. 비전이 있으면 달라 붙어야지요. 왜 도망갑니까. 세상에 뚝 떨어지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작은 연구비라도 그것이 모두 국민들이 낸 세금이라는 인식을 갖고 자세를 달리 해야지요." 그는 귀국할 때 자신의 월급이 얼마인지, 자신이 속할 기초과학지원센터의 상황이 어떠한지 전혀 모르고 왔다. 귀국시 그가 받은 월급은 91년 당시 MIT에서 받던 연봉 6만3천달러의 1/3 수준이었고, 기초과학지원센터는 건물도 없이, 대학과 연구소가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플라스마 발생장치가 필요하다는 막연한 계획을 가진 상태였다. 귀국 후에도 KAIST 포항공대 등에서 교수 제의를 받았지만 '내가 왜 왔느냐'를 생각하면서 거절 했다고 한다.
아직도 많은 연구원들은 자신이 받는 처우 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을 우선으로 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한결같이 요구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연구의 자율성 확보이고 연구성과에 대한 올바른 평가이다. 이것만 제대로 된다면 자존심을 지키면서 관중이 없어도 42.195㎞를 완주할 뜻이 확고하고, 인삼 농사를 묵묵히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임연구원들 방에 들어가면 책상의 반 이상을 점하고 있는 보고서철이 쉽게 눈에 띄인다. 전화 한통화로 될 것도 서류로 해야되고 직접 가서 보고해야 한다. 흔히들 책임연구원이 되면 서울 대전간의 고속도로에 버리는 시간이 연구하는 시간보다 많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연구성과를 발표하는데도 연구소 차원에서 하면 될 것을 소장을 대동하고 과기처에 올라가서 발표해야 한다. 어느 책임연구원은 연구비 지급명목이 10여가지로 나뉘어 있어 정신을 차릴 수 없다고 한다. 대학교수들이 연구비를 딸 때 한두 페이지로 끝나는 것을 30페이지 이상씩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
"문서 회의 출퇴근이 무척 피곤하게 만듭니다. 연구 업적을 묻는 것이 아니고 규정을 잘 지키고 있느냐를 묻는데는 정말 진저리가 납니다. 연구자율성의 침해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런 사소한 문제부터 출발하는 것 같아요." 연구소에 있다가 1년전에 대학으로 쫓겨가다시피한 N교수의 이야기다.
연구원들이 제시하는 '연구업적의 올바른 평가'란 무엇인가. "연구업적을 제대로 평가 하기란 쉽지 않아요.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제일 좋은 방법은 연구소 스스로 평가하게 하는 것입니다. 소장 이하 연구원들이 모여서 자체 감사를 할 때 가장 혹독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방법이 어려울 때는 대만처럼 5년마다 외국의 전문가 집단에게 공정한 평가를 맡기든지요." 평가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이 연구원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과학기술 관료의 책상 앞에 미래 과학기술에 대한 책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는 자체 평가가 유일한 대안인지 모른다.
어느 연구원의 경험담 한가지. 미래핵심 기술에 대한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나노테크놀러지를 이용한 초미세박막기술에 대해 설명 하자 "좋은 기술이긴 한데, 기업에서는 왜 투자를 하지않지. 뭐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야"라는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나노테크놀러지는 이미 3-4년 전에 대중과학잡지에서도 많이 다루어진 익숙한 테마이다.
과학정책의 책임자들이 미래 기술의 경향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돌리면서 국민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설명하라는 말을 들을 때는 어깨에 힘이 쭉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대실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만은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아카데미(과학기술원로 10여명으로 구성)를 운영하고 여기에 10여개의 정부 관할 연구소의 모든 예산권을 줍니다. 각 연구소장은 1페이지 정도의 보고서를 들고 가 예산을 따옵니다. 행정이나 관료가 관여할 틈이 없지요. 그러나 5년이 지나면 평가는 혹독하게 합니다."
회사를 R&D로 유지하면서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을 탄생시킨 듀폰중앙연구소는 연구원에게 "왜 연구를 하느냐"를 묻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원들 개개인은 회사의 운명이 자신의 어깨에 달려 있다는 책임감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대학, 만능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공계 고급인력의 80% 가량이 대학에 몰려 있다. 안정된 신분에다 시간도 많고 보수도 많고 자율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학위와 포스트닥을 마친 고급인력들이 시간을 허비하면서까지 교수자리를 기다리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정부출연구소에 자리가 많은 것은 아니다. 정부출연연구소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력 충원을 극도로 억제해 '고인 물' 신세를 면치 못 하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투자예산 비율(정부:17% 기업:83%)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급변하는 정세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곳은 기업연구소. LG화학기술연구원의 경우 1천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중에서 박사급은 1백명. 앞으로 연구인력을 2천명으로 확대할 예정인데, 이중에서 박사급을 7백-1천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LG화학기술연구원 고분자연구소 소장인 여종기 박사(49)는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국내에 들어오려고 줄을 섰다고 하는데, 실상 사람을 뽑으려면 적절한 사람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기업연구소에 대한 과거의 이미지가 씻겨지지 않은 것 같아요."
기업의 본질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고 돈되는 것으로 쏠리는 것이 기업의 생리이긴 하지만, 최근 앞서가는 그룹에서는 R&D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초연구에도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박사를 뽑아서 상품생산에 투입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시설과 돈을 투자해 기초연구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몸사리지 말고 문을 두드려 보라"는 것이 여박사의 주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에서는 기초연구는 고급인력의 80%가 몰려 있는 대학에서 적당히 하면 되고 나머지는 기업에서 알아서 할 것이 아니냐는 '발 빼기식' 무책임론이 무언중에 고개를 들고 있다. 사석에서 한 과기처 관료는 "80년대 정부출연연구소가 했던 역할은 이제 변화될 수밖에 없다"며 "시대 상황에 맞춰 정부출연연구소도 자기 변신을 해야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대학이나 기업연구소에 모든 역할을 맡겨놓는다는 것처럼 무대책은 없다. 굳이 기업에서 관심이 없는 공공기술 부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각개 행진을 하는 대학의 연구인력이나 시설로는 감당할 수 없는 대형기초 연구나 종합시스템 연구개발이 너무나 많다. 최근 학연(學硏) 공동연구를 위해 설치한 플라스마 발생장치 '한빛'과 포항방사광가속기가 좋은 예다.
이제 우리도 기업연구소는 기업연구소 대로, 정부출연연구소는 정부출연연구소대로, 대학은 대학대로 자기 역할을 재정립해야 할 때가 왔다. 정부출연연구소나 대학보고 산업체가 해야할 일을 기웃거리라는 식의 강요가 아니라, 국가가 마스터플랜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고급두뇌들이 자신의 전공과 적성에 맞춰 갈 곳을 정해야 할 것이다. 연구원들 스스로가 자율적인 평가시스템을 갖는, 세계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는 전문연구소가 탄생 할 때, 서슴지 않고 대학(뉴욕주립대)에서 연구소(페르미국립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이휘소박사의 후예들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독일은 산업체 경력이 없으면 정교수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우리도 일부 이공계 대학에서 출연연구소나 기업연구소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교수자리를 보장해준다면 좋은 선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학과 연구소간의 인적 교환이 자유로이 이루어질 때 연구와 교육은 한단계 질적 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