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주요기사][TEST][SF] 열 번째 세션

▲ 라헌, midjourney
 

 

한국과학창의재단
이 콘텐츠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운영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저소득·소외계층의 복지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월요일에 배신자가 한 명 더 늘었다.

 

 

승우는 우리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주말 내내 망설였다고 말문을 열더니 간밤에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도저히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며 마지막 세션에서 자기가 겪은 일을 전했다. 변명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다음 주면 내가 겪을 일이므로 나름 집중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승우의 목소리 사이로 윙윙거리는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왼쪽 가슴 안쪽이 묵직한 듯 살짝 뻐근해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한별이 너 괜찮아?” 승우가 내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눈 밑이 또 떨리는데?”
“상관 말고, 승우 넌 급식실로나 꺼져.” 책상 위에 엎드려 있던 솔이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내게 마그네슘이 든 건강 보조제와 물을 건넸다.
“빠진다면서 걱정하는 척하냐.” 미리는 자기도 한 알 달라는 듯 솔이 쪽으로 손을 내밀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제 알겠지? 이래서 내가 애초에 남자애들은 받지 말자고 한 거라고.”
승우가 교실 밖으로 나가자 교실에는 나와 솔이, 미리 셋만 남았다. 여느 때처럼 비타민이 든 젤리를 사탕처럼 천천히 녹여 먹으며 우리는 이번 주에 등교일마다 받은 충격도 함께 녹여 없애기로 다짐했다. 솔이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우리 반 열다섯 명 중에 여섯 명이었던 무리에서, 해연과 동원에 이어 승우까지 벌써 셋이나 떨어져 나간 게 실은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승우는 원래부터 핑계만 있으면 뭐 먹었잖아. 그것도 칼로리 높은 거만 골라서.”
“맞아. 맨날 속 쓰리다고 징징거리고.” 미리가 동의했다.
“그렇게 자꾸 입이 터지는 데 요요가 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100킬로그램이라니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아.”
100킬로그램이라는 말을 듣자 가슴 안쪽에서 이번에는 정전기가 스치듯 찌릿한 통증이 일었다. 울룩불룩하게 접히는 살, 출렁거리는 허연 살, 살이 접힌 자리에 고이는 땀과 땀 냄새까지 떠오르자 나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 상태를 직접 겪어 보라고 개발한 인간들은 어딘가 미친 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 미친 짓을 체험시켜야 한다며 담임이 열정적으로 부모들에게 추천했다는 사실, 그 추천에 앞다퉈 신청한 부모 중 우리 엄마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

 

미친 짓의 정식 명칭은 ‘섭식 장애 청소년을 위한 재활 세션’, 한 주에 두 번씩 총 열 번에 걸쳐 진행되었다. 구성은 제법 단순해서 한 주에 한 번(내 경우에는 수요일)은 전문가에게 심리 상담을 받고 두 번째 시간(금요일)에는 섭식 장애에서 벗어난 사람들과 만나는 방식이었다.

만남이라고 적혀 있지만 그들이 상냥한 어투로 하는 얘기들은 모조리 협박이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먹지 않고 버티면 어디까지 건강을 해치게 되는지 아마 짐작도 못 할 거라며 자기 경험담을 일러주는 어른들. 그들은 대체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어떤 면에서는 순진해 보이기도 했다. 협박이든 경고든 그들이 전하는 얘기 중에 내가 지금껏 몰랐던 것은 단 하나도 없었고, 따라서 같이 점심을 굶는 친구들을 배신할 이유로는 너무 부족했으니까.
문제는 나처럼 굳은 결심을 가진 애들이 이전에도 많았다는 점이다. 그런 애들의 부모는 마지막 시간에 ‘두 배 연령 신체 체험’이라는 옵션을 선택하며 기어이 이 미친 프로그램에 한 달 치 급여를 쏟아붓는 길을 택했다.

승우보다 먼저 그 체험을 한 최초의 배신자 해연이는, 지금 나이의 두 배인 32세가 된 몸으로 보낸 20분이 자기 인생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고 했다. 그때 느꼈던 통증과 불편함과 간지러움을 실제로 매일 겪으며 사는 일은 지옥일 것 같다나. 지옥이라. 나는 웃음이 나왔다. 매일 아침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면 거기에 이미 지옥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해연이가 전에는 지옥을 몰랐다면 어차피 오래 함께 굶지는 못했으리라 생각하니 배신감도 옅었다. 그렇게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해연을 이번 달 내내 욕했던 승우가 돌아선 일은 좀 더 씁쓸했지만 솔이 말처럼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요요처럼 무서운 것도 없으니까. 절식과 폭식을 거듭하다 100킬로그램으로 부푼 몸 상태를 직접 경험하면 패닉에 빠질 법하지 싶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절식만 하자.” 나는 남은 두 동지에게 말했다.
“폭식 절대 금지.”
“당연하지! 말만 들어도 구역질 나.”
어느새 다시 책상 위에 엎드려 있던 솔이가 그렇게 대꾸하자 독한 것들이라며 미리가 키득거렸다.
반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돌아오자 교실 안에는 달착지근한 기름 전내 같은 음식 냄새가 퍼졌고 나는 다시 속이 울렁거려서 가방 속 마스크를 꺼내 썼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니 해연이 다음으로 우리를 배신했던 동원의 시선이 느껴졌다. 모두에게 두 배 신체 체험 경험이 끔찍했다고만 말했던 동원은, 얼마 전에 내게만 자기가 겪은 일의 진상을 얘기해주겠다며 다가왔는데 그 진상이라는 게 고작 복통이었다.
“눈앞에 보인 패널이 거울로 바뀌는 게 시작이야. 서른 살 넘은 내 얼굴이랑 몸을 확인해 보고서 그 몸으로 걷고 뛰고 계단도 올라가 보라는데 하나도 못 했어. 너무 배가 아팠거든. 변기에 앉아서 신이시여, 제발 살려만 주세요, 하고 사정해 본 적 있지? 그때보다도 더 쥐어짜는 것처럼 아팠어. 진짜 죽을 것 같아서 일 분도 못 참고 세션 포기하고 나왔잖아. 이렇게 단백질 보충제하고 설사약 많이 먹다 보면 나중에는 그렇게 될 거래. 너도 조심해.”
그때 내가 맨 먼저 떠올린 생각은 우리가 서른이 되기 훨씬 전에 배배 꼬인 장을 단박에 풀어주는 약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고, 지금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 짧은 사이에 바뀐 동원의 얼굴선이었다. 배신한 지 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는 사이에 동원은 5킬로그램은 넘게 찐 것 같았다. 불룩하게 살이 오른 볼 하며 턱선은 무뎌지다 못해 목 아래에 살이 접히기 직전이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으면 이미 접혀 보일 것이다.
저것 좀 보라지. 나는 미친 프로그램을 만들고 추천하고 예약한 어른들의 귀에 대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당신들이 나를 설득하려면 최소한 이런 문제부터 해결했어야 한다고. 3차원은 여전히 프레임 안에서 부풀려지고 무뎌지고 왜곡되는데 한참 훗날의 건강 상태를 체험하는 것쯤으로 내가 굽힐 줄 알았다면 단단히 착각한 거라고.

 

*

 

수요일, 아홉 번째 세션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집 안에는 토마토수프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 입자를 머금은 흐릿한 붉은 베일이 온 집안에 드리워진 것 같았다.
“한별이도 좀 줄까?” 국자를 든 아빠는 빠르게 덧붙였다. “많이 먹으라고 안 할게. 딱 맛만 봐. 구할 수 있는 야채는 다 넣었으니까 칼로리는 낮고 식이 섬유가 엄청나게 들어 있을 걸?”
“아주 조금만요.”
“아빠, 나는 많이! 많이!”
펄쩍펄쩍 뛰며 같은 말을 반복하는 동생 두리를 한 팔로 번쩍 안아 들며 아빠는 집 안에서 뛰면 안 된다고 부드럽게 주의를 줬다. 한별이는 조금만, 두리는 많이, 라고 반복하며 수프를 뜬 아빠 곁에 엄마가 있었다면 열여섯 살짜리가 세 살짜리 만큼도 안 먹는 게 말이 되느냐며 내 그릇을 더 채워 넣었겠지만 오늘도 엄마는 야근 중이었다. 즉 오늘 저녁도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두리의 것과 같은 크기의 수저를 가지고 와서 수프를 뜨고 그 안의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당근은 가능한 가장 느린 속도로 씹었다. 그러자 속이 쓰렸는데 오늘 처음으로 따뜻한 음식을 맞이한 위장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당장 따뜻한 음식으로 꽉 채워 달라고. 나는 웃기지 말라는 듯 수저를 내려놓고 물 한 모금을 삼켰다.
아빠는 그런 나를 지켜보았지만 눈이 마주치자 시치미를 떼며 두리의 입을 닦아 주었다. 얼마 전부터 스스로 숟가락을 쥐고 먹을 수 있게 된 두리는 수프를 가득 떠 입으로 가져가자마자 당근이 싫다며 수프 안에 든 것을 골라내 손끝으로 짓이겼다.
“두리! 먹을 것 같지고 장난 하면 안 돼.” 아빠의 목소리에 좀 더 힘이 들어갔다.
“그래, 두리야. 세상에는 아직도 굶는 애들이 있대. 아, 굶는다는 건 밥이 없어서 못 먹는다는 말이야.”
“언니 말 들었지?” 아빠가 반색하며 두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별아, 오늘 상담에서 들은 얘기니?”
“상담 선생님 말고, 회복한 어떤 언니가요. 세계적으로 보면 생각보다 되게 많대요. 우리나라에도 있대요.”
“얼마나 불쌍한 일이야 그래. 그러니까……”
“맞아요. 그러니까 저를 설득할 시간에 제가 먹기 싫다는 거 모아서 그중에 제일 배고픈 애한테 주면 어때요? 재활 프로그램에 쓸 돈도 거기에 쓰면 그 불쌍한 애들을 여러 명 살릴 수 있을 걸요?”
내 말을 들은 아빠의 입에서 한숨 같은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다음 행동은 이럴 때 늘 그랬듯이 반사적으로 신경질을 내지 않고 부모로서 마땅히 일러 줘야 할 말을 가늠하며 입을 앙다물고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언제든 귓가에 “야”! 하고 시작하는 고함이 들려올 것만 같았는데, 이런 기분은 그의 탓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생부의 탓이었다.
집 밖에서는 소심하지만 안에서는 다혈질이었던 생부. 그와 엄마는 내 기억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늘 사이가 나빴다. 결국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생부와 헤어지고, 성격이 정반대인 지금의 아빠와 만났다. 결코 욱해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엄마가 일 때문에 바쁠 때면 수프나 찌개처럼 따끈한 음식을 만들고, 기다리기를 좋아하는 차분한 사람. 나는 엄마가 이번에는 남편감을 제대로 골랐다는 사실이 기뻤다.
나이 차가 열 살도 넘는 동생이 생긴 일도 예상보다 흥미로웠다. 분유 먹는 때가 지난 후에도 두리의 머리칼에서는 이따금 우유 냄새가 났다.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고 사랑스러운 냄새가 나는 두리. 그런 두리를 따라 환하게 웃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 나는 때때로 기분이 가라앉았다. 생부보다 더 나은 남편감을 찾은 것처럼 엄마가 실은 나보다 더 나은 아이를 줄곧 원해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그런 기분은 불현듯 스쳐 지나갈 뿐 대체로 나는 두리를 좋아했다. 품에 안으면 보드랍고 말랑거리는 느낌이 좋았다. 주변의 또래 중에 동생을 가진 아이는 나뿐이어서 동생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도들었다. 어쩌면 그 점이 가장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우리가 식사를 마쳤을 때쯤 귀가한 엄마의 얼굴에는 일부러 칠한 것처럼 짙은 다크 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얘 오늘은 뭐라도 좀 먹었어?” 엄마가 묻자 아빠는 한 그릇을 다 비웠다고 거짓말을 한 뒤 내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러니까 약속 지켜.” 나는 엄마 앞을 가로막듯이 서서 말했다.
“엄마가 시킨 대로 마지막 세션까지 하고 나면 이제 다시는 나한테 밥 먹는 거 가지고 잔소리 안 하는 거야.”

 

*

 

금요일 오후, 두 배 신체 체험을 앞두고 상담 선생님이 주의 사항을 전해 주는 동안 나는 세 번이나 그의 말을 멈추고 화장실로 향했다.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지만 정말로 뭔가를 토해내지는 않았다. 센터 안이 아니면 얼른 손가락을 입안에 찔러 넣어서 더 빨리 편해질 텐데.
화장실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고개를 수그리고 있느라 붉어져서 보기 흉했다. 붉어진 내 얼굴은 어김없이 생부를 떠올리게 했다. 걸핏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던 그의 길쭉한 얼굴형, 갸름한 게 아니라 지나치게 길기만 한 얼굴 모양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키는 크지 않고 광대는 툭 튀어나온 것까지 닮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악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대단하지 않았다. 그저 봐줄 만한 정도는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길쭉한 얼굴이 도드라지지 않을 정도의 마른 몸이 필요했다. 그게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광대를 어떻게 처리할지의 문제는 일단 미뤄두었다. 어차피 엄마는 절대로 안 도와주겠다고 했으니까,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한참 더 걸리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별이 정말 괜찮겠어?” 자리로 돌아오자 상담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오늘 컨디션이 그렇게 안 좋으면 마지막 세션은 다음 주로 미루는 게 낫지 않겠니?”
“그냥 오늘 끝낼래요. 세션 전에 몸이 안 좋아 보였다고 엄마한테 말할 건 아니죠?”
“걱정 마.”
“뭐, 그동안 저랑 선생님 사이에 그 정도 라포는 생겼을 거라고 믿을게요.”
선생님은 피식 웃더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주의 사항을 말했다. 지금 나이의 두 배가 되었을 때의 신체를 체험하는 동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거나 공황에 빠질 것처럼 극심한 압박감이 들면, 언제든 그만 나가겠다고 말하면 된다고. 말조차 나오지 않는 경우에는 두 주먹을 꽉 쥐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한 번 양쪽 손을 꼭 쥐어 보았다. 말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의 충격과 고통을 겪을 수 있다니, 이런 고문을 체험하라고 만든 사람들은 확실히 미친 돼지들이라고 여기면서.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한숨이 나왔는데 남들을 돼지라고 부를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주먹 쥔 손을 보자 내 몸은 어쩌면 이렇게 손가락에까지 살이 차 있을까 싶어서 한숨이 나왔다.
“그럼 체험실로 가 볼까.”
체험실 안에 놓인 캡슐은 한때 엄마가 빠져 살던 전신 안마의자를 세워 놓은 것처럼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두 다리와 팔을 끼워 넣자 뒤통수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는 듯 폭신한 재질의 커버가 느껴졌다. 손등처럼 맨살에 닿는 부분은 정말로 사람의 피부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부터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될까? 상체까지 덮는 덮개가 내려오는 사이에 배가 뒤틀리듯 아팠다던 동원의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났다. 다른 배신자는 몸이 너무나 무겁고 기운이 없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고 했고, 승우는 100킬로그램이 넘게 불어난 자기 몸을 본 충격에 몸을 떨었었다.
왼쪽 가슴 안쪽에 찌릿하고 둔중한 통증이 퍼졌고, 그 순간 나는 평소에 통증을 느꼈을 때와는 달리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원래 여기저기 아팠으니까 이제부터 겪을 일이 별것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못 견디게 아프면 예전에 겪은 생리통을 떠올리며 참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식단을 조이며 생리를 안 한 지 2년쯤 됐지만 그때의 괴로움을 완전히 잊을 만큼 긴 시간은 아니었으니까.
“시작할게.”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먼저 겪은 아이들이 알려준 대로, 먼저 얼굴 앞을 덮은 패널이 거울처럼 바뀐 순간, 나는 서른이 넘은 내 얼굴을 보는 게 겁나서 살짝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순간 거울에 비친 것은 뜻밖에 나이 든 내 얼굴과 몸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몇 줄의 문장만 적혀 있었다. 모르는 말은 하나도 없었지만 의미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32세 데이터값 없음.
29~30세 경 심혈관 질환에 의한 쇼크사 추정.
왼쪽 가슴 안쪽, 아마도 심장에 가까운 쪽에 한 번 더 찌릿한 감각이 퍼졌다. 이명도 울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에 힘이 들어갈 것만 같아서 손을 곧게 펴고는 심호흡하며 눈을 감았다. 귓가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외적인 경우라 자기도 당황했다면서 그만 나와도 된다고 했다.
이게 예외적인 경우라면 분명히 엄마에게 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불편하지 않으니 이 상태로 20분 동안 쉬다 나가겠다고 하는 내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조금 허세가 섞인 것처럼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데이터값 없음.
눈을 감아도 그 글자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고개를 좀 더 뒤로 젖히고 몸에 힘을 빼자 가슴의 통증은 줄었지만 심장 박동이 아프도록 빠르게 느껴졌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휘청거리던 엄마의 얼굴, 훌쩍거리면서도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괜찮다는 말을 거듭하던 얼굴이 생각났다. 하지만 내 장례식에 있는 엄마의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았고, 성인이 되었을 두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때 두리와 아빠가 엄마 곁에 있을 테니 그 점만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돼지들이 만든 이런 프로그램의 데이터 값을 온전히 믿지는 말자고 스스로에게 되뇌면서도 나는 내가 없는 미래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그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미리와 솔이는 어떨까. 집에서는 곧잘 일반식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후회하는 미리는 괜찮겠지.
하지만 나보다 더 철저하게 식단을 조이는 솔이는 도대체 어떻게 될까. 솔이는 요즘 부쩍 자주 어지럽다고 했고 이번 주 등교일에는 집에서 나서는 길에 쓰러져서 학교에도 못 나왔다. 어쩌면 솔이는 나보다 더 일찍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아닐까.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두 눈을 부릅떴다. 거울에는 데이터값이 없다는 문장이 여전히 떠 있었고 그 위로 눈물이 맺힌 내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전에도 나는 거울 앞에서 울음이 터지곤 했다. 한동안 거울을 보면, 열한 살 때 같은 반이었던 원규가 내 턱을 손바닥으로 움켜쥐면서 너는 얼굴이 이만큼만 없으면 나름 괜찮을 거라고 했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원규는 원래 못됐고 아무나 놀렸으니까 그냥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원규의 말을 들은 반 아이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숨이 넘어가도록 웃으며 손바닥으로 책상을 탕탕 치는 소리까지 들려오자 창피해서 온몸이 굳었다. 턱을 잡힌 채로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 창피해졌다. 사람들 앞에서 창피해지는 게 세상에서 가장 싫은 일이 되었다. 견딜 수 없이 창피해지는 일은 이후에도 아주 여러 번 겪어야 했다. 생부 때문이었다.
엄마와 말다툼이 일어나면 생부는 어디서나 참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상을 쓰며 쳐다보는 사람들, 수군거리는 사람들, 신경질을 내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는 생부 때문에 죽도록 창피해서 그냥 세상에서 사라지고만 싶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없어지고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했으니 벌을 받아서 오래 못 살게 되는 것일까. 알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한 가지 다행은 내가 없더라도 엄마 곁에 남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도 우악스러운 생부가 아니라 아빠와 두리가 남는다는 것이었다.
두리는 아빠를 닮아서 귀여운 얼굴형을 가졌으니까 최소한 나 같은 고민은 덜 하겠지. 그 점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빠가 주는 음식을 실컷 먹다 보면 머지않아 통통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나는 지금도 아빠가 우리에게 맨 처음으로 만들어 주었던 감자수프를 떠올릴 수 있다.
고소한 향이 퍼지며 김이 오르던 걸쭉하고 뽀얀 수프. 아빠는 그 위에 눈처럼 하얀 치즈 가루를 듬뿍 뿌리면서, 어렸을 때 할머니 댁에 딸린 밭에서 감자를 직접 캐 봤다고, 줄줄이 올라오는 알감자는 어딘지 모르게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냐고 묻기에 모르겠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그때의 나는 수프를 받아 들고 금세 두 그릇을 비웠다. 두리는 요즘도 매번 두 그릇씩 먹는다. 그러다 보면 역시 살이 찔까. 그래서 굶기로 작정한 다음에는 결국 이 정신 나간 체험을 하며 데이터값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될까. 아, 싫다. 정말이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눈물이 두 뺨 위를 타고 내려갔고 나는 두 손을 꽉 쥐며 항복 선언을 했다. 캡슐의 덮개가 열리고 체험실의 문도 열렸다.
“엄마한테 나 울었다는 말 하지 마세요.”
“걱정 마, 한별아. 우리 사이에 그 정도 라포는 있잖아.” 선생님이 티슈를 건네며 말했다.
“대신 내일쯤 체험 만족도 조사 링크 갈 거거든? 그거 응답 좀 잘 부탁해.”

 

*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나를 압박감이 들 만큼 세게 안았다. 나는 집 안을 가득 채운 찌개의 냄새, 달짝지근하면서도 칼칼한 맛을 짐작할 수 있는 그 냄새를 맡으며 잠시 품에 안겼다가 엄마를 부드럽게 밀어냈다. 씻고 나오자 저녁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어서 들자며 미소를 지었는데 웃는 얼굴이 어쩐지 툭 건드리면 울 것처럼 보였다. 맨 먼저 숟가락을 쥔 두리는 숟가락으로 김치찌개의 붉은 국물을 뜨더니 식탁 위에 흩뿌리며 깔깔 웃었다.
“두리야, 먹을 거로 장난 치는 거 아니래.”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줄도 모르면서 동생을 타일렀다.
“그래, 두리야 제대로 앉아서 먹어.” 아빠가 말했다. “한별아. 먹자 이제. 밥 너무 많으면 아빠한테 덜어도 돼.”
내 밥그릇에는 밥이 3분의 2쯤 차 있었다. 가득 담아 넣을지 반만 넣을지 고민 끝에 나온 타협안처럼. 윤기가 흐르는 잡곡밥 옆으로 놓인 애호박이 듬뿍 든 김치찌개에서 훈김이 피어올랐다. 반찬은 두리가 좋아하는 김, 원래 내가 제일 좋아하던 새우전, 얇게 채 썬 감자볶음이었다.
나는 그 음식들이 어떤 맛을 내는 줄 알았다. 전에도 먹어 봤으니까. 또한 얼마만큼의 칼로리인지, 그 칼로리를 소모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지난한지도 잘 알았다. 식사를 마치고 그만큼 움직이기에는 너무 지쳤다는 생각이 따라 붙었다. 김에 싼 밥을 입에 넣는 두리를 보며 시간을 벌기 위해 물잔을 들었다.
“자기야, 너무 맛있다. 나는 삼시 세끼 이것만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빠가 감자볶음을 입에 넣자마자 호들갑을 떠는 동안에도 엄마의 시선은 집요하게 나를 향했다. 어쩔 수 없이 수저를 쥐었다. 갸름한 타원형의 수저는 뒤집힌 거울처럼 위아래가 뒤바뀐 내 모습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은모든
2018년 ‘한국경제’ 신춘문예에 장편소설 ‘애주가의 결심’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한 사람을 더하면’, 연작소설 ‘우주의 일곱 조각’ 등이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5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은모든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