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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아론은 카네기멜론 공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인텔사에서 5년간 근무했다. 하지만 평소 좋아하는 등반과 탐험을 자유롭게 즐기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 여유가 더 많은 스포츠용품점에서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유타 주의 블루존 협곡으로 홀로 여행을 갔다가 조난을 당하고 만다. 협곡 아래로 내려가다가 발을 딛었던 바위와 함께 떨어졌는데, 오른팔이 협곡의 벽과 바위 사이에 끼어 꼼짝할 수 없게 돼 버렸다.



과학동아 평점





사람은 물과 음식 없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127시간’은 아론 랠스톤이 2003년에 미국 유타 주 블루존 협곡에서 실제 겪은 사고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극한 상황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생히 보여준다.



사고를 당했을 때 아론이 몸에 지닌 식량은 1L짜리 물 한병, 초콜릿 바 한 개, 그리고 열량 500cal쯤 돼 보이는 작은빵 두어 개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려 127시간을 버티고 탈출했다. 이 사건은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후에 아론이 쓴 ‘127시간’이라는 책은 사건 모든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주인공 아론 랠스톤은 등반과 탐험을 좋아해 주말을 블루존 협곡에서 지냈다.]





[아론은 협곡을 내려가다 발을 딛었던 바위와 함께 떨어졌다.

바위와 협곡의 벽 사이에 오른팔이 끼어 꼼짝할 수 없게 됐다.]





[아론은 등반과 탐험에 필요한 장비를 늘 지니고 다녔다.]

 
 
생존을 위한 과학

사건은 말 그대로 ‘아차’ 하는 순간에 벌어졌다. 하지만 탈출의 과정은 그렇지 않다. 극한 상황일수록 치밀하고 정확한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론은 40여 분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판단하기 시작한다. 물은 긴장한 상태에서 3분의 1이나 들이켰기 때문에 650mL밖에 남지 않았다. 그에겐 등산용품 몇 가지, 헤드랜턴, 주머니칼, 캠코더와 같은 잡다한 물건이 있다. 아론은 자신을 붙잡아두고 있는 바위 위에 이들을 늘어놓고, 이 물건을 어떻게 이용하면 살아 나갈 수 있을지 차근차근 생각해 본다.
 


아론은 남은 물은 한 번에 얼마나 어떤 간격으로 먹으면 되는지 계산해 그대로 정확히 마셨다. 사막 같이 건조한 곳이라 수분을 잃기 쉽고, 탈수는 생존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아론은 평소에 알고 있던 지식을 통해, 가진 물과 식량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사나흘이라고 판단한다. 그런데 사건 발생일이 토요일이라, 지인들이 그의 실종을 알아차리고 신고해 수색이 시작되려면 빨라도 5일은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아론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찾아내려면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탈출해야 한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팔을 빼려 했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칼로 바위를 깎아내면 틈을 넓힐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로 종일 바위를 쪼았지만 역시 성과가 없었다. 다음에는 로프를 바위에 묶어 벼랑 위에 던져 걸고 온몸으로 줄을 잡아당겨 바위를 들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무게는 둘째 치고 로프의 탄력이 커서 늘어나기만 할 뿐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묵직한 돌로 바위를 쳐 보기도 했지만 돌만 부서졌다. 오랜 비바람에도 침식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만큼 단단한 바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팔을 잘라낼 도리밖에 없다. 아론은 총 세 번에 걸쳐 팔을 자르는 시도를한다. 첫 번째는 칼날이 무뎌서 베어지지 않아 포기했고, 두 번째는 칼을 과감하게 수직으로 찔러 넣었지만 뼈까지 절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물이 다 떨어지고 이틀 후인 엿새째가 되던 날, 결국 팔을 꺾어 뼈를 부러뜨리고 나머지 부분을 칼로 자른 다음 탈출한다. 더 이상 자신의 팔이 아니라고 느낄 만큼 심하게 부패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일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근육, 동맥, 정맥, 힘줄, 신경을 세심하게 구분해 어떤 순서로 잘라야 할지 냉철하게 판단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팔을 총 한 시간에 걸쳐 잘랐다.



아론은 이렇게 127시간을 버티는 동안 몸무게가 20kg 가까이 빠졌다. 자신의 몸을 시간당 평균 150g씩 섭취하면서 살아남은 셈이다. 사람이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음식은 몇 주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물을 먹지 못하면 3~4일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 몸의 70%가 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탈수로 인한 대표적인 증상은 어지럼증으로, 몸에 있는 수분이 약 2%만 잃어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수분의 15% 이상을 잃으면 죽는다. 수분이 빠져 나가면 혈액이 줄면서 혈압이 낮아지고, 낮아진 혈압을 보상하기 위해 심장이 빨리뛴다. 조난을 당한지 나흘째인 화요일에 아론은 자신의 맥박을 재어 보았는데, 평소보다 무려 60%나 빨리 뛰었다고 한다.







극한 상황에서의 감각과 기억

사람은 죽는 순간 생전에 겪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찰나의 시간에 평생을 다시 사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또 큰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사고 발생 순간에 시간이 매우 천천히 흘러가는 듯 느껴지며,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칠 내용들까지 또렷이 기억한다고 말한다. 감각이 매우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자는 시간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 잠든 순간과 깨어난 순간 사이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감각이 대부분 쉬고 있기 때문이다.



수면이 감각을 이완시킨다면 생존의 위협은 감각을 극대화한다. 감각이 선명할수록 시간의 밀도는 더 크고, 밀도가 더 큰 시간은 더 길게 느껴지는 법이다. 127시간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닷새가 조금 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에게는 영겁보다도 긴 시간이다. 어떻게 하면 그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 사실 아론이 부질없는 시도를 하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힘을 아끼면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아론은 무엇이 됐든 새로운 행동을 시도해 보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고 책에 적었다. 탈출에 도움이 안 되는 활동일지라도 시도해 봄으로써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삶의 의지 역시 고양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마셨던 갖가지 음료수들을 떠올리며 황홀해 하는 장면도 나온다. 사실 예전에 뭘 마셨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론 역시 사고 전에는 그런 기억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게다. 하지만 갈증이 심해지자 어릴 적 마셨던 음료수까지 죄다 기억해 낸다. 이때 기억 속의 음료수들은 너무나 생생해서, 현실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마시는 음료수보다 더 음료수답게 느껴진다. 기억은 현재보다도 생생하게 체험될 수 있다.



캠코더로 자신의 상황을 기록하는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아론은 아침마다 자신의 상황을 보고하며 캠코더에 담는다. 혹시 그때 아론은 기록으로 남길 바라는 모습에 맞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또 그는 카메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몸으로 느끼던 것보다 안 좋게 보이자 실제로도 더 힘든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자신을 보여주는 영상이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을 좌우할 수 있다. 흔히 찍는 ‘셀카’를 생각해 보자.



자신의 모습을 남들이 봐주기 바라는 대로 연출한다. 이런것을 ‘외부의 시선이 내면화된다’고 말하며, 카메라 같은 장치가 그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다. 아론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나는 여기로 오기 위해 평생을 살아 왔다”고 생각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저리다. 팔을 짓누른 바위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고, 자신은 이곳에서 죽음을 맞기 위해 살아왔다는 것이다.



옛 여자 친구를 매정하게 떠날 때 “너는 혼자 지내게 될 거야”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 말이 실현됐다고 자책한다. 인생의 모든 일들이 이 사고를 당하기 위해 있었던 것처럼 인식된다. 기억은 과거의 사건들을 변치 않게 보존해 둔 것이 아니라, 늘 새롭게 기억되며 다른 것으로 변한다.



아론은 사고 후에도 여전히 모험을 즐긴다고 한다. 모험을 포기했다면 끔찍한 기억만 남을지 모르지만, 계속하면 그 사건조차 새롭게 기억될 것이다. 아론에게는 물 한 모금처럼 흔하고 평범한 것조차 사건 전만큼 허투루 보이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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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종립, 황희선│이미지출처│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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