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주요기사][TEST] 암세포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 암, 정상세포로 바꾸는 방법

▲ Shutterstock
 

 

오늘날 항암치료는 모두 암세포를 죽여 없애는 방식입니다. 있던 세포를 죽일 땐 정상 세포에도 피해가 가는 등 인체에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되돌릴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습니다. 세포를 죽이지 않으니, 부작용도 없을까요?
눈이 번쩍 떠지는 소식에 연구자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되돌려 치료하는 원천 기술을 개발했다.” 2024년 12월, KAIST는 조광현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doi: 10.1002/advs.202402132 연구팀은 대장암세포를 변환시켜 정상 대장세포와 유사한 상태로 되돌릴 방법을 세계 최초로 보고했죠.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2025년 1월, 같은 연구팀은 동일한 학술지에 또 한 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변화하는 순간, 암세포를 다시 정상 세포로 되돌리는 ‘암 가역화(reversion)’를 유도하는 분자스위치를 찾아냈다고 말입니다. doi: 10.1002/advs.202412503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에서 이 연구가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인류의 최대 적이라고 불리는 ‘암’을 정복할 일이 머지않은 걸까요? 3월 6일, KAIST에서 조 교수를 만났습니다.

 

 

정상 세포 닮은 암세포? 질문의 시작

 

“암이 생기면, 다시 저절로 정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준비한 질문을 내어놓으려는 기자에게 조 교수가 먼저 질문을 던졌습니다. 잠깐 고민한 후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죠. 암세포 하나 정도가 어쩌다가 정상 세포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건 우연일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암 환자들이 암 치료를 받고 있진 않을 테니까요. “맞습니다. 암이 저절로 정상이 될 수 있단 건 아직 일반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조 교수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15년 전 암세포를 죽이지 않고 정상 세포로 되돌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처음 한 이후 계속 연구하고 있고, 최근 5년 동안 여러 편의 논문을 통해 실험에서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최근 연달아 발표한 논문도 그 일환입니다.”


연구팀이 암을 되돌리는 기술에 관한 논문을 처음 발표한 건 2020년입니다. 연구팀은 대장암세포와 정상 세포를 비교한 결과, 정상 세포에서는 ‘정상 상태’를 결정짓는 총 5개의 단백질 발현이 특별과학동아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떤 암세포는 특이하게도 이 5개의 단백질 발현이 여전히 많은 경우가 있었죠(정상이 아니면서!).

 

▲ 과학동아
암 발생 및 가역화
일반 세포의 DNA가 손상되면 암세포가 된다. 조광현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암세포의 유전자 네트워크를 조작하는 분자스위치를 찾아 암세포를 다시 일반 세포로 되돌리는 연구를 발표했다.


단백질 발현이 많은데도 암세포인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연구팀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답은 ‘SETDB1’이라는 후성유전학 조절인자였습니다. 일반적인 대장암세포에서는 SETDB1이 5개 단백질 활성을 억누르고 있었죠. “이 경우 SETDB1 작용을 억제하니 암세포가 정상 세포로 되돌아가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연구는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암세포에 5개 단백질 발현이 높은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구는 계속됐습니다. 2023년, 연구팀은 특정한 상황에서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되돌리는 암 가역화 현상의 원리를 최초로 규명했습니다. 암세포의 입출력 관계를 바꿔 세포분열을 조절하는 기능을 정상화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암세포와 정상 세포의 가장 큰 차이는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입니다. 정상 세포는 세포 주변에서 보내는 신호에 끊임없이 반응하죠. 증식하라는 신호가 들어오면 증식을, 세포주기를 정지하라는 신호가 들어오면 정지합니다. 무엇보다 사멸하라는 신호가 들어오면 사멸하죠. 반면 암세포는 주변 신호를 무시하고, 자기증식만 반복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증식하라는 신호가 없음에도 이 신호를 매개하는 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증식하라는 신호를 계속 핵 안의 유전자에 내려보내는 겁니다. 연구팀은 암세포의 왜곡된 입출력 관계를 개선하는 유전자를 찾아내 시뮬레이션 실험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암세포가 정상 세포로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암 가역화 연구는 매우 예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예외적인 것이 불가능을 의미하진 않는다. 언젠가 완전히 암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정상 세포도 아닌, 암세포도 아닌 ‘전이 상태’ 포착

 

이후 연구팀은 암이 생기는 과정이 점진적이지 않다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정상 세포는 계속 정상 상태로 있기 위해 노력합니다. 쉽게 말해 버티고 버티다가 어느 순간 임계 변화가 일어나서 암세포가 되죠.” 이 연구 성과가 바로 2025년 1월에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변화하는 순간의 임계 전이 현상을 포착하고, 이를 분석해 암 가역화를 유도하는 분자스위치를 찾아냈습니다.


연구팀은 정상 세포와 암세포가 공존하는 불안정한 ‘임계 전이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암 발생 과정에서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전환되기 직전의 상태입니다. 그동안은 정상 세포와 암세포가 공존하는 구간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전환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나요?” 기자의 질문에 조 교수는 “시간의 변화를 공간의 변화로 투영할 수 있는 ‘구역 암화’ 개념이 활용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암세포와 가까운 정상 세포는 암세포와 멀리 있는 정상 세포와 같은 듯 다릅니다. 암세포와 가까울수록 암세포의 무분별한 증식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암세포와 암세포로부터 가까운 조직, 그보다 먼 조직 세포를 순서대로 샘플링하면,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전환되는 과정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이 구간에서 임계 변화를 지배하는 유전자 네트워크를 추론하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었죠.


추론에는 연구팀이 약 5년간 개발해 온 핵심 유전자 네트워크 모델이 사용됐습니다. 모델은 ‘끌개 지형’을 활용합니다. 끌개 지형이란 세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특정한 상태를 시각화한 겁니다.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정상 세포가 안정적인 끌개 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정상 세포가 암이 되는 과정에선 암세포가 안정적인 상태가 되며, 정상 세포는 불안정한 상태가 되죠. 모델로 이를 시각화해 보면 두 개의 웅덩이가 있는데 암세포는 웅덩이가 깊고 크지만, 정상 세포는 웅덩이가 얕고 작습니다. 그런데 공존의 구간에선 어느 한쪽으로도 끌개 지형이 확실히 깊고 크지 않습니다. 즉 암세포와 정상 세포 모두가 불안정한 상태인 겁니다.


연구팀은 끌개 지형의 변화를 수치화해 ‘캔서 스코어’라고 하는 암 점수를 매긴 뒤 분자를 끄고 켜는 가상의 실험을 하면서 끌개 지형이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정상 세포를 가장 안정적인 상태로 만드는 분자를 찾았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찾아낸 분자스위치는 USP7입니다.” 연구팀은 분자스위치에 ‘리버전 스위치’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암세포가 다시 건강한 세포로 변하는 버튼이란 뜻이죠. 리버전 스위치, USP7은 활성화되면 암세포 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특정 유전자 네트워크를 조작합니다. USP7은 MYC와 YY1이란 이름의 전사인자로부터 동시에 조절받는 유전자였습니다. MYC와 YY1이 과하게 발현하면 암세포의 비정상적인 증식을 촉진하죠. 조 교수는 “USP7 억제제를 사용해보니 암세포가 정상 세포와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암세포의 세포 증식이 정상화된 것을 확인한 겁니다.

 

▲ 조광현
조광현 교수(사진)는 “대장암세포 가역화를 촉진하는 분자스위치를 찾은 것은 맞지만, 이것이 최적의 분자스위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 효과적인 분자스위치를 찾는 연구가 앞으로 계속될 예정이다.

 

 

암을 되돌리는 연구의 여정은 이제 시작

 

“다만 USP7이 가장 최적의 분자스위치라는 말은 아닙니다.” 조 교수는 이번 연구가 확대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며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어떤 조절 경로가 어떤 분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지를 확인한 초기 단계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아직 암 가역화 연구는 매우 예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외적인 것이 불가능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2006년, 야마나카 신야 당시 일본 교토대 재생의학연구소 교수가 세포 역분화 현상을 처음 포착하고 학계에 보고했을 때도 다들 이게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야 교수는 이후 역분화줄기세포(iPS) 개발에 관한 공로로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죠.


아직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지만, 암 가역화에 더 효과적인 분자스위치를 찾아내는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조 교수는 “언젠가 완전히 암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목표”라고 말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 전 세계 신규 암 환자 발생 건수(약 3500만 건)가 2022년(약 2000만 건)보다 77%나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 전에 암을 되돌리는 연구가 완성돼 새로운 치료 가능성이 열릴지, 지켜볼 일입니다.

 

▲ 조광현
유전자 네트워크 조절 암 치료
대장암세포의 가역화를 유도할 수 있는 핵심 분자스위치를 찾아내고 이를 활용해 암을 치료하는 모식도다. 세포의 상태를 ‘끌개 지형’으로 시각화하면 암세포와 정상 세포의 안정화 정도를 웅덩이의 깊이로 나타낼 수 있다. 유전자 네트워크를 조작해 암세포의 안정성을 낮춤으로써 정상 세포로 전환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5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김태희
  • 디자인

    이한철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