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7000만 년 전, 한 무리의 동물이 처음으로 물속을 떠나 뭍에 올라섰다. 최초의 육상척추동물인 이들이 만난 육지는, 물속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강한 중력이 몸을 짓누르고 따가운 햇볕이 피부를 때렸다. 이들은 중력을 극복하기 위해 점차 강한 네 다리를 발달시켰고, 따가운 햇볕으로부터 몸의 수분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피부와 껍질이 있는 알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7000만 년 뒤, 좀더 진화한 새로운 동물군이 나타났다. 바로 파충류다.
다시 수천만 년이 지나 중생대가 시작될 무렵, 반전이 일어났다. 파충류가 다시 바다로 진출한 것이다. 중생대는 엄청난 규모의 생물 대멸종이 끝나면서 시작됐다. 대멸종에 의해 많은 생물이 사라지자, 생태계에는 빈 공간(니치)이 수없이 나타났다.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생물이 이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에는 고생대의 바다를 누비던 거대한 포식 물고기들의 자리가 있었는데, 이 공간을 채운 것이 바로 바다로 진출한 해양파충류였다.
파충류가 바다로 진출한 또 다른 이유는 당시의 지형과 관련이 있다. 고생대 말 판의 이동으로 초대륙 판게아가 만들어졌다. 대륙이 모이는 과정에서 화산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는데, 이 때 대기로 방출된 대량의 온실가스가 지구 전체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따뜻해진 기온은 극지방의 빙하를 녹이면서 해수면을 상승시켰다. 이후 중생대 초 트라이아스기가 시작될 무렵, 판게아는 다시 여러 대륙으로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분리된 대륙과 대륙 사이에는 새로운 바닷길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얕은 바다를 형성하며 점점 넓어졌다. 얕은 바다는 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조개, 물고기, 암모나이트와 같은 수많은 바다생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파충류는 이때 육상보다 풍부해진 식량을 얻기 위해 바다로 진출했다.
같은 듯 다르다! 해양파충류는 ‘다문화 가족’
많은 사람들이 생김새 때문에 해양파충류와 공룡을 혼동하곤 한다. 하지만 공룡과 해양파충류는 차이가 많다. 먼저 공룡은 다리가 몸의 아래로 쭉 뻗어있다. 반면 해양파충류는 모두 다리가 몸의 옆으로 뻗어 있다. 더 나아가, 모든 공룡은 한 조상동물로부터 진화했지만, 해양파충류는 각기 다른 조상동물로부터 진화했다. 쉽게 말하면, 해양파충류라는 집단은 일종의 ‘다문화 가족’인 셈이다. 바다로 진출한 파충류 집단은 최소 9가지로, 모두 서로 다른 육상파충류 집단에서 진화했다. 집단에 따라 바다로 진출한 시기와 절멸한 시기가 제각각이다(개성 넘치는 분류군 각각에 대한 설명은 44~45쪽 INSIDE 참조).
그럼에도 해양파충류들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어떤 종류는 너무 비슷해서 친척관계로 오인될 정도다. 현재 학계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동물은 거북이다. 거북이 과연 어떤 파충류 집단에서 나왔는지에 대해서 학자들은 수십 년째 골치 아픈 연구를 하고 있다. 한때는 거북과 유사한 등딱지를 가진 플라코돈트류를 조상으로 지목했다. 이들 중 헤노두스(Henodus, 38쪽)와 플라코켈리스(Placochelys)는 바다거북과 상당히 비슷한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빨이 없는 거북과 달리 플라코돈트류는 입천장까지 이빨로 덮여 있다. 또 갈비뼈와 척추뼈로 만들어진 거북의 등껍질과 달리, 플라코돈트류의 등껍질은 갈비, 척추와는 별개인 작은 뼈 파편들로 만들어졌다. 두 집단은 외모만 비슷하게 진화했을 뿐, 전혀 관련이 없다.
이렇게 공통조상으로부터 기원하지 않은 서로 다른 생물집단에서 놀랍도록 비슷한 외형이 등장하는 것을 학자들은 ‘수렴진화’, ‘진화적 상동’ 또는 ‘생태 형태 유사성’이라고 부른다. ‘다문화 가족’인 해양파충류에는 이런 사례가 아주 많다. 예를 들어 유선형 몸매를 보자. 가장 오래된 해양파충류인 어룡과 갑옷이 없는 악어 메트리오린쿠스류, 그리고 거대한 바다도마뱀 모사사우루스류는 모두 전혀 다른 동물로부터 각기 다른 시기에 진화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헤엄치며 전진하기에 적합한 유선형의 외형을 공통으로 지니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골격구조까지 모두 똑같은 패턴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등뼈의 모양을 단순화시켜 등의 유연성을 떨어트렸으며, 효과적인 전진운동을 위해 꼬리를 초승달 모양으로 바꿨다. 또 유영할 때 방향을 전환하기 좋도록 다리와 발의 형태를 뻣뻣한 노의 형태로 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발가락뼈가 추가로 생기는 다지골증(hyperphalangy), 또는 발가락의 개수가 증가하는 다지증(hyperdactyly)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은 모두 목뼈의 개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목뼈의 수가 줄어들면 머리뼈와 몸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이는 물속에서 전진하기 위해 꼬리운동을 할 때 머리가 흔들리는 현상을 막아주며, 빠르게 방향전환을 할 때 목이 다치지 않게 도와준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유선형 외형의 진화는 이후에 등장한 고래나 바다소와 같은 해양포유류에게서도 그대로 관찰된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해양파충류와 해양포유류는 골격구조뿐만 아니라 장기 등 기관의 위치까지 서로 비슷하게 변화했다. 2010년에 보고된 모사사우루스류 플라테카르푸스의 화석을 보면, 신장으로 추정되는 부위가 등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이는 신장이 골반 근처에 있는 일반 파충류들과는 다른 형태로, 오히려 고래와 유사하다. 고래는 유선형의 몸체를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신장이 등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또 이 화석에는 기관지의 흔적도 남아 있는데, 역시 형태가 도마뱀보다는 고래와 유사하다.
해양파충류, 바다에 완벽히 적응하다
대부분의 해양파충류들은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수중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완전수생 종들은 몸을 지탱하는 골격체계가 무너져버렸고, 뭍으로 오를 수 없는 몸 구조를 가지게 됐다. 바다거북의 경우 몸을 완벽하게 지탱하는 다리구조가 사라졌지만, 단단한 껍질로 중력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어서 매번 해변으로 올라와 알을 낳는다. 하지만 껍질이 없는 다른 해양파충류들은 출산을 물 속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몸 속에서 알을 부화시켜 새끼를 낳는 난태생으로 진화했다. 독일과 중국에서는 출산 중에 사망한 어미 어룡의 화석이 발견됐고, 미국에서는 뱃속에 새끼를 지닌 수장룡과 모사사우루스류의 화석이 발견됐다. 특히 골반 부위에 4마리의 새끼를 보존하고 있는 모사사우루스류 플리오플라테카르푸스의 화석은 이들이 여러 마리의 새끼를 한번에 낳았음을 알려준다. 또, 출산 중에 사망한 해양 파충류들의 모습을 보면 모두 새끼의 꼬리가 먼저 나오고 있다. 이는 새끼의 익사를 막기 위한 것인데, 같은 출산법을 오늘날의 고래에게서도 볼 수 있다.
이상한 놈, 희한한 놈, 괴상한 놈
중생대의 시작과 함께 파충류의 시대는 약 1억8000만 년 동안 이어졌다. 그 중에는 육상의 공룡만큼이나 기괴한 것도 많았다. 압권은 올해 처음 발표된 중국의 아토포덴타투스(Atopodentatus , 38쪽)다. 긴 몸, 짧은 목과 다리를 가진 몸길이 3m의 반수생 해양파충류인데, 얼굴이 몹시 소름 돋게 생겼다. 위턱의 가운데가 벌어져 있고 이 틈을 따라 세로로 작은 이빨이 늘어서 있어, 마치 입이 세로로 나 있는 것 같이 괴상하다. 이 이빨들은 위턱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시작해 입의 가장자리를 따라 촘촘히 나 있다. 마치 지퍼를 연상시키는데, 지금의 홍학이나 수염고래처럼 물속의 작은 생물들을 걸러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원시 기룡류의 일종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에 발견된 또 다른 괴상한 해양파충류로는 오케페켈론(Ocepechelon )을 꼽을 수 있다. 백악기 후기에 살았던 이 거대한 바다거북은 머리밖에 발견되지 않았는데, 마치 진공청소기 호스처럼 생긴 70cm 길이의 긴 주둥이를 가졌다. 지나가는 물고기를 쏙 빨아들이는 오늘날의 부리고래처럼 사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고기처럼 생긴 어룡은 시각이 매우 발달했던 해양파충류였다. 이들의 눈구멍은 매우 컸으며, 카메라 조리개처럼 생긴 얇은 뼈가 둘러싸고 있어 수압으로부터 눈동자를 보호했다. 눈이 가장 큰 것은 템노돈토사우루스(Temnodontosaurus )다. 이 어룡의 눈은 지름이 약 26cm로 농구공보다 컸다. 이는 지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눈으로 기록돼 있다.
해양파충류의 몸 구조가 독특하다 보니, 연구하는 학자도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원시 조룡류인 타니스트로페우스(Tanystropheus , 39쪽)는 몸길이가 6m나 되는 해양파충류인데, 몸의 절반 이상이 목으로 아주 이상하게 생겼다. 목은 수장룡과 마찬가지로 길지만 유연하지 못했으며, 먹잇감에게 들키지 않고 몰래 접근하기 위해 작은 머리와 긴 목을 진화시켰을 것으로 예상된다. 1886년에 이 동물의 화석을 처음 발견한 고생물학자는 익룡이라고 보고했다. 목뼈를 익룡의 날개 뼈로 오인했기 때문이다. 화석의 주인이 이렇게 말도 안 될 정도로 목이 긴 해양파충류였다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빛 바랜 사진첩 같은 해양파충류 시대
파충류의 시대가 끝난 지도 어느덧 6600만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해양파충류 역시 지구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자신들의 자리를 포유류에게 넘겨줬다. 그래도 세계 곳곳에는 아직도 다양한 파충류가 존재하고 있으며 포유류가 적응하지 못하는 극한 환경 속에서도 생존하고 있다. 이들이 햇볕을 받으며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마치 전성기를 뒤로 하고 평화로운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는 노인 같다.
하지만 우리의 부주의 때문에 이들의 행복한 노후생활도 조만간 끝이 날지도 모른다. 1년에 150여 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있는 지구역사상 최악의 멸종사건이 현재 진행중이다. 현재 수많은 파충류들이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보호협약(CITES)에 의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보호 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수가 삶의 터전을 잃고 있으며, 수많은 종이 암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파충류들은 과연 이번 대멸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는 수억 년에 걸쳐 탄생한 진화의 산물을 과연 부주의와 태만으로 사라지게 해도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