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연금술에서 출발한 이온의 개념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연구와 실험에 의해 근대화학의 골격으로 자리잡았다.
1839년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기학 실험연구'에서 이온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이온이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그러나 이온 개념의 기원은 중세의 연금술에서부터 찾아 보아야 할 것 같다.
기원 전후한 시기에 이집트를 중심으로 생겨나 유럽과 중국에 널리 퍼져 14세기 이전 세계를 지배한 물질에 관한 사상을 우리는 연금술이라 부른다. 당시의 연금술사들은 수은 황 소금을 물질의 3원소로 생각했다. 금속은 황과 수은의 배합비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해, 다양한 배합비로 수은과 황을 섞어서 금과 같은 귀금속을 만들고자 했다.
연금술사들은 대단히 비과학적이었다. 이들은 그들이 수은 황이라고 생각되는 물질을 일정한 비율로 섞어서 가열하면 새로운 화학적 성질을 가진 '불로장생의 신비한 영약'이나 '신비로운 돌'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연금술사들의 천부적(?) 감각
그런데 이들이 수은 황 소금 등 물질의 3원소로 생각 한 것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해 볼 때 물질의 세가지 화학적 결합방식, 즉 금속결합 공유결합 이온결합과 일치한다. 물론 당시 이들은 물질이 세가지 결합방식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 어떻게 이들은 물질을 세가지의 화학적 결합방식에 따라서 구분할 수 있었을까.
황을 태우면 기체가 되며 이것을 물에 녹이면 산성을 나타낸다. 반면에 마그네슘과 같은 금속을 태우면 고체로 된 금속재가 생기고 이것을 물에 녹이면 염기성을 나타낸다. 비록 물질내부의 원자간의 결합방식은 모르더라도 그 물질이 표면적으로 나타내는 화학적 성질이 이와같이 판이하게 다르므로 물질을 구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 탄소 염소 등은 황과 유사한 화학적 특성을 나타내므로 연금술사들은 이들 물질들 속에는 황이라는 원소가 많이 들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철 구리 수은 등이 유사한 화학적 특성을 나타내므로 이 물질속에는 수은이라는 원소가 많이 포함된 것으로 생각했다. 전자가 비금속원소들이고 후자는 금속 원소인 셈이다. 물질을 화학적 성질에 따라 금속과 비금속원소로 나누는 전통은 이때부터 생겨난 것이다.
실험적인 수단을 통하여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물질을 원소로 생각한 라브와지에는 자신이 발견했거나 그 당시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33종의 원소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원소 개념은 연금술사들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혁명적 화학이론과 과학적 실험방법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원소 구분도 연금술사들과 마찬가지로 물질을 금속과 비금속 원소로 나눈다.
원소들이 전기를 띤다?
마찰전기의 발견 이후에 전기적 현상의 해석을 둘러 싼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연을 띄워 공중전기를 유도한 것으로 유명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전기는 한 종류다. 전기가 많을 때는 음전기를 띠며 이것이 적을 때는 양전기를 띤다." 이른바 양·음전기설을 세운 것이다. 반면에 베르셀리우스는 "모든 원소는 양전기와 음전기를 가졌고 대전현상은 그 한 쪽이 많아질 때 일어나는 것이다"라는 물질 이원설로 프랭클린의 의견을 반박했다.
베르셀리우스는 모든 물질이 양의 전기를 띤 원자와 음의 전기를 띤 원자 간의 전기력에 의하여 결합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리튬 나트륨 칼륨 등의 알칼리 금속은 강한 양의 전기를 띤 원소이며 산소는 강한 음의 전기를 띤 원소라고 보고 1820년 경에 알려진 50여종의 모든 원소를, 음전기를 띠는 원소의 극단으로 하여(산소를 기준) 양전기가 증가하는 순서로 배열했다.
(-)O, S, N, F, Cl, Br, I, … H 음성:양성…Fe, Zn,…, Be, Mg, Ca,…, Li, Na, K(+)
베르셀리우스의 이러한 구분은 금속과 비금속 원소에 각각 양전기와 음전기의 성격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베르셀리우스는 볼타가 화학전지를 만들자 즉시 이 전지를 사용해, 그가 금속원소와 비금속원소의 전기적 결합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염을 수용액 중에서 전기분해했다.
그는 이 실험에서 양극에서는 산과 산소가, 음극에서는 염기와 수소가 모이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물질이 전기적으로 다른 두 종류의 원자간 결합에 의하여 형성돼 있다고 믿었다. 그는 금속원자와 비금속원자가 결합에 의해 양과 음의 전기를 잃고 중성이 된다고 했다.
베르셀리우스의 잘못
같은 현상에 대해 여러가지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설명 가운데 오래 지속이 되는 설명과 생명이 짧은 것이 있다. 베르셀리우스가 양·음전기를 원자의 고유한 특성으로 생각하여 모든 원자를 두 종류로 나눈 이른바 '물질의 이원설'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베르셀리우스의 잘못은 무엇일까.
그의 잘못은 패러데이가 밝혔다. 패러데이는 전기유도 및 전기와 자기의 관계 등 전자기학의 여러부분에 대한 실험적인 발견을 통하여 전자기학의 기초를 세웠다. 그는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위의 공간에 자기장이 생기는 것도 알아냈고, 닫혀있는 도선 주위에 자기장의 변화를 일으키면 도선에 전류가 흐르는 현상도 알아냈다. 물론 그러한 지식은 그의 실험과 사색의 결과 만이 아니라 당시의 많은 과학적 발견의 덕택이기도 하다.
패러데이는 염이 용해되어 있는 수용액에 전지의 두 극을 담근 후 여러 조건에서 물질이 분해되는 실험을 하였고, 이때 발생되는 물질의 양과 전기분해에 사용한 전기량의 관계를 정확하게 측정했다. 그는 수용액에 전지의 두 전극을 담그면 수용액 속에 전기장이 생기며 이로 인하여 수용액 속의 물질이 전기를 띤 입자로 분해돼, (+)전하를 띤 입자는 음극으로, (-)전하를 띤 입자는 양극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즉 전기장의 영향에 의해 전하를 띤 입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분명히 원자가 전하를 띠고 있다는 베르셀리우스의 생각과 다르다.
패러데이는 이 분야에서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다. 그는 전기분해시 전류의 입구와 출구를 전극(Electrode), 전류에 의하여 분해되는 물질을 전해질(Electrolyte), 분해과정 그 자체를 전해(Electrolysis), 분해의 산물을 이온(Ion; 이동하는것), 전류의 입구인 양극(Anode)으로 이동하는 것을 음이온(Anion), 전류의 출구인 음극(Cthode)으로 이동하는 것을 양이온(Cthion)이라 이름 붙였다.
젊은 대학생 아레니우스의 도전
패러데이는 원자와는 별도로 이온이라는 독립된 입자에 의해 일어나는 전기분해 현상을 설명했다. 그러나 전기장에 의해 이온이 생성된다는 설명은, 이로부터 50년 후 스웨덴의 스톡홀름 대학 졸업을 앞둔 22세의 젊은 청년 S. A. 아레니우스의 도전을 받았다.
아레니우스는 "전해질은 전기장과 무관하게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나뉘어 독립적으로 운동한다"고 주장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였다.
당시에 용액 속의 용질 입자의 수에 비례하여 어는 점(빙점)이 내려가고 끓는 점(비등점)이 올라가며 삼투압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설탕 등 분자성 물질과는 달리 전해질은 분자수의 정수배로 끓는 점 오름과 어는 점 내림 그리고 삼투압이 변화한다. 아레니우스는 앞의 실험으로부터 전해질 1분자가 수용액에서 몇개의 이온이 되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 숫자는 끓는 점 오름과 어는 점 내림 및 삼투압에 영향을 미치는 입자수와 일치하였다. 결국 전기장을 걸어주지 않아도 전해질이 수용액 중에서 독립된 이온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설명이 확인된 것이다.
원자의 전자배치가 밝혀지고…
앞에서 이온의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물질은 금속과 비금속으로 나눌 수 있다.
(2) 금속원자와 비금속 원자는 전기적 인력에 의하여 결합돼 있다.
(3) 전해질용액에 전기장을 걸어주면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극으로 끌린다.
(4) 전해질은 전기장이 없어도 물속에서 이온으로 분리 되며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물질에 대한 인류의 인식이 획기적으로 변하게 된 것은 원자와 분자 그리고 이온의 구체적 존재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인류의 발견은 거듭되었고 전자와 원자핵의 발견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은 질적인 발전을 이룬다. 이온의 형성과정과 물질의 결합방식에 대해서도 새로운 설명이 가능해졌다.
원자의 현대적 모형에 따르면 전자는 원자에 갇혀 특정한 공간을 점유하며 운동하는데 원자 내의 전자가 존재하는 공간을 껍질 혹은 궤도(orbit)라 부른다. 전자껍질은 원자의 중심으로부터 K L M N 등으로 부른다. 전자는 에너지가 낮은 K껍질을 채운 후에 L M N 순으로 채워나간다. 그리고 전자가 있는 가장 바깥 껍질이 모두 채워질 경우에 그 원자는 가장 안정된 상태가 된다는 것도 확인됐다.
원자의 전자배치 발견으로 금속과 비금속원자의 성질은 원자의 전자배치 차이에 따른 것임이 밝혀 졌다. 금속원자는 대개 마지막 껍질의 전자수가 1~2개다. 이 마지막껍질의 전자는 잃어버리기 쉽다. 비금속원자는 마지막 껍질의 전자가 5~7개로 마지막 전자껍질을 완성하기 위해 다른 원자로부터 전자를 받아들인다.
결국 금속원자와 비금속원자가 만나면 금속원자는 전자를 잃고 양이온이 되고 비금속원자는 전자를 얻어 음이온이 되며 양이온과 음이온 사이의 전기적 인력에 따라 결합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이 되는 것이다(그림1).
이온들이 결정하는 여러가지 모양
이온들이 쌓이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공통점은 제멋대로가 아닌 규칙성을 띤다는 것이다. 양이온 다음에 음이온, 그리고 그 다음에 양이온과 같은 순서로 쌓이는데 어떤 이온 결정은 양이온 1개 주위에 6개의 음이온 그리고 음이온 1개 주위에 6개의 양이온이 있고, 다른 이온 결정은 양이온 1개 주위에 음이온 8개 그리고 음이온 1개 주위에 양이온 8개가 있다.
전자를 면심입방구조 후자를 체심입방구조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전자는 NaCl, 후자는 CsCl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구조의 차이는 양이온과 음이온의 크기의 차이에 기인한다. 양이온과 음이온의 크기가 비슷한 경우와 크기가 서로 다른 경우에 입자들이 최대한 촘촘하게 쌓이는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