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폭우, 가뭄, 그리고 산불은 기후변화가 낳은 괴물이다.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규모도 강도도 빈도도 점점 더 흉폭해지고 있다. 자연 재해는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긴밀히 얽힌 시스템 속에서 작동한다. 산불을 중심으로 기후변화가 어떻게 재난을 촉발하는지, 그 과학적 원리를 분석했다.

물
기후위기는 물 순환 시스템을 바꿔놨다. 기후위기의 가장 대표적인 기상 변화는 기온의 상승이다.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 중 수증기량이 많아져 강수량이 증가한다. 전 지구 평균 기온이 1850~1900년 대비 1℃ 올라간 현재, 강수량은 6.7% 늘었다. 대한민국의 경우 기상청이 2024년 4월에 발표한 ‘2023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장마철 강수일수가 22.1일로 평년 17.3일 대비 28% 증가했다. 강수량 역시 전국 660.2mm로 평년(356.7mm) 대비 85% 증가했다. 반면 겨울은 더 건조해졌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1990년대 겨울철(12, 1, 2월) 건조특보 발효일수는 평균 36일이었지만 2020년대에는 평균 66일로 크게 늘어났다. 건조함은 산불의 증가로 이어진다. 한국의 1990년대 겨울철 산불 발생 평균 건수는 88건이었지만 최근 5년간은 154건으로 약 2배 증가했다.

흙
기후위기로 토양의 수분이 감소한다. 육지 표면의 온도가 상승하면 지표면에서 대기로 이동하는 수분 증발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위기로 겨울철 적설량이 감소하는 것도 봄과 여름철 토양 수분 함유량에 영향을 미친다. 2024년 1월, 알렉산더 고틀리브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원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 남서부와 북동부, 유럽 중부와 동부 지역은 1980년대 이후 10년마다 적설량이 10~20%씩 줄었다. doi: s41586-023-06794-y 적설량 감소가 봄철 기온 상승과 겹치면 토양의 수분 함유량은 더 낮아진다. 내린 눈이 곧바로 녹아 강이나 바다로 흘러가버려서다. 토양과 식물이 보유한 수분량이 감소하면 산림이 더 쉽게 불에 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바싹 마른 산림에서는 작은 불씨에도 쉽게 불길이 커진다.

공기
강한 바람은 산불이 났을 때, 불길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불씨를 수 km 밖까지 운반하며 피해를 키운다. 기후위기는 대기의 불안정성을 높여 강한 바람이 발생할 조건을 더욱 자주 만든다. 대표적인 예로, 북극 지역은 다른 곳보다 훨씬 빠르게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이를 ‘북극 증폭’ 현상이라 부르는데 극지방에서 얼음과 눈이 녹으면서 더 많은 열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북극 증폭은 북반구의 고위도 지역과 저위도 지역의 온도 차이를 줄이고 기존의 제트기류(고도 약 10~12km에서 발생하는 빠르고 좁은 대기 흐름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에 따라 적도의 뜨거운 공기와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불규칙적으로 섞이며 강한 바람과 폭풍이 발생한다.

인간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한국에선 1년 평균 546건의 산불이 발생한다. 그중 자연 발생하는 산불은 1%에 불과하다. 나머지 99%는 사람의 부주의와 같은 인위적인 요인 때문에 발생한다. 제대로 끄지 않은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쓰레기를 태우거나, 산에서 밥을 해 먹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불이 대부분이다. 기후위기로 분명 지구는 더 건조해졌고, 더 더워졌으며, 더 극단적인 기후 환경을 맞닥뜨리고 있지만 인간이 행동을 바꾸면 산불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더 뜨겁고 더 광범위한
세계 산불 지형도
2020년 이후, 지구는 전례 없는 산불로 고통받았다. 기후위기 시대의 산불은 더 잦고 거세고 뜨거웠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을 한눈에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