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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전의 ‘초(超)재료] 강도와 탄성 두 마리 토끼 잡은 초탄성 금속

 

 

‘탄성(elasticity)’이란 외부에서 물체에 힘을 가했을 때 원래의 원자 및 분자구조가 변화하고, 외력을 제거하면 원래의 원자 및 분자구조로 되돌아가는 특성이다. 이런 탄성을 가진 대표적인 물질이 고무다. 하지만 같은 고무라도 고무줄과 타이어, 운동화 밑창과 라텍스 장갑은 물성 차이가 크다. 미세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천연고무는 일반 고무와 달리 높은 온도에서는 끈적거리고 낮은 온도에선 딱딱해져 균열이 생긴다. 이런 천연고무의 미세구조를 살펴보면 마치 미세한 실이 엉켜있는 것처럼, 이소프렌(C5H8) 분자가 7000개 이상 연달아 달라붙어 있다. 분자들끼리의 결합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아 조금만 힘을 주면 분자들끼리 미끄러지며 떨어진다.

 

1839년경 미국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찰스 굿이어는 천연고무에 황을 첨가하고 가열해 오늘날의 탄력있는 고무를 만들었다. 굿이어는 황 원자로 고분자 실 사이에 다리를 만들었다. 고분자 실들을 3차원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를 ‘가교결합’이라고 한다. 그 결과 고분자 실끼리의 결합력이 커지고 엉킨 구조가 단단히 유지돼 강도 큰 고무가 탄생했다.

 

세라믹은 깨지고 금속은 휘어지는 이유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첫번째 조건은, 탄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분자(또는 원자) 간 결합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합력이 약한 기체나 액체는 외력에 형태가 변하지만, 외력을 제거해도 원래 형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결합력이 너무 강한 도자기(세라믹), 금속, 콘크리트와 같은 재료도 탄성이 매우 작다. 이들 재료는 ‘탄성변형 한계(yield point)’가 1% 미만이다. 원래 길이보다 1%만 더 길어져도 깨지거나 휘어져 버린다는 뜻이다. 여기서 탄성을 갖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물질이 탄성을 보이려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탄성변형 한계 또한 커야 한다.

 

탄성변형 한계를 넘었을 때 물질은 각각 다른 특성을 보인다. 특히 금속의 변화는 독특하다. 금속 젓가락을 구부린다고 생각해보자. 약간의 힘을 가할 때는 조금 휘었다가 원래 형태로 돌아간다. 그런데 큰 힘을 주면 더 많이 휘고, 계속해서 휜 형태를 유지한다. 이것을 ‘소성(plastic) 변형’이라고 한다.

 

소성 변형이 일어났을 때 젓가락을 이루는 금속 원자들을 들여다 보면, 힘을 받은 부분의 원자들이 옆으로 밀려나며 원자들 사이의 간격은 많이 벌어져 있다. 그럼에도 원자 간 결합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는다. 금속 원자는 주변의 원자와 최대한 많이 접촉하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밀려난 원자들은 원래 붙어있던 결합을 재빨리 끊고 좀 더 가까운 원자와 결합한다(이때 결합 원리는 자유 전자가 금속을 돌아다니며 원자를 이루는 양이온들을 결합시키는 금속 결합이다). 이 과정이 원자 수백억 개에서 줄지어 일어나는데 전자현미경상에서는 실처럼 보인다. 이것을 ‘전위(dislocation)’라고 부른다.

 

반면 도자기의 재료인 세라믹은 원자들이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분리된다. 세라믹 원자들은 전자를 공유하거나(공유 결합), 주고받는(이온 결합) 식으로 결합하고 있는데, 원자 간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원자의 전자구조는 더 이상 결합하지 못하는 형태가 돼 서로 분리된다. 이것을 우리는 물질의 표면이라 부른다.

전위를 생성하지 않는 금속을 만들다

 

금속과 세라믹의 탄성변형 한계는 고무나 여타 고분자물질처럼 크지 않다. 세라믹은 0.5%, 금속은 고작 1%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탄성변형 한계를 높일 수 있을까. 금속 연구자들은 ‘탄성 한계를 넘어선 변형이 무엇인가’라는 정의에 주목했다. 전위가 발생해서 이동한 원자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변형이 탄성 한계를 넘어선 변형이라면, 힘을 받아도 전위가 생성되지 않는 금속을 만들면 된다!

 

2003년 일본의 자동차회사 도요타의 사이토 타카시 연구원팀은 그동안 1%를 넘지 못하던 금속의 탄성변형 한계를 2.5%까지 끌어올린 Ti-12Ta-9Nb-3V-6Zr-1.5O 합금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티타늄(Ti) 금속에 여러 가지 원소를 혼합했다. 티타늄 금속 원소가 줄지어있어야 할 자리에 탄탈럼(Ta), 나이오븀(Nb), 바나듐(V), 지르코늄(Zr), 산소(O) 원소를 끼워 넣은 것이다(각 원소 앞에 쓰인 숫자는 원자 수의 비율을 나타낸다. 1.5O는 합금을 구성하는 총 100개의 원자 중 산소 원자가 1.5개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선 합금을 10배로 길게 늘여 단면적을 10%로 만들었다.

 

놀랍게도 이렇게 만든 합금은 외력을 받아도 전위를 생성하지 않았다. 밀어도 원자들이 주변과의 결합을 끊지 않고 어긋난 자세로 계속 붙어 있었다. 원자 간 간격과 원자 간 결합력이 서로 다른 여러가지 원소를 절묘하게 배열한 결과였다.

 

초탄성 금속은 첨가하는 원소의 가격이 저렴하고 제조 공정도 쉬워 제품화가 더욱 기대되는 초재료다. 예를 들어 초탄성 금속을 건물 뼈대로 사용한다면 강한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세울 수 있다. 인류가 우주탐사를 나갈 일이 더 많아진다면, 뜨거운 행성에 보낸 착륙선의 바퀴를 초탄성 금속으로 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초탄성 금속이 상용화되면 아무렇게나 엎드려 자도 망가지지 않는 안경도 개발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는 아이디어를 겨루는 중이다. 여러분의 아이디어가 곧 한국의 경쟁력이다.

 

※필자소개

한승전. 1990년 부산대 무기재료공학과, 1997년 KAIST 재료공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부터 한국재료연구원에 재직하며 2002년에는 일본 오이타대 비상근 강사, 2018, 2022년에는 일본 도호쿠대 금속재료연구소 초빙교수로도 일했다. 2020년 정부출연연구소 우수성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2021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 2022년 대한금속학회 동국송원학술상을 수상했다. ‘모던 알키미스트’ 등의 책을 저술했다. szhan@kim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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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한승전 한국재료연구원 책임연구원
  • 에디터

    이영혜
  • 디자인

    이명희
  • 일러스트

    남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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