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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SF소설] 극점에서

 

‘특이사항: 저는 기온을 반대로 느낍니다. 여름에는 겨울처럼 덜덜 떨고, 겨울에는 여름처럼 덥습니다. 원인은 진단받지 못했습니다.’

명현은 온점을 천천히 찍은 후, ‘2002학년도 신입학 상담지’를 두 번 접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장판에 떨어진 땀자국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보일러를 틀어 온도를 어느 정도 올려준다면 명현이 땀을 흘리지 않겠지만, 삼촌은 명현을 정신이상자, 혹은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반항하는 놈이라 생각했다. 한겨울엔 땀을 흘리다 못해 열꽃이 올라 온몸이 벌게지고, 폭염특보가 내리던 날에는 패딩을 껴입은 채 이불에 들어가 이를 딱딱 부딪으며 견뎌야 했으나 명현은 아무 말도 얹지 않았다. 삼촌 집에서 쫓겨나면 잘 데도 없을 테니.

상담지를 가방에 넣고는 교복을 챙겨 입었다. 춘추복을 걸치고 동복 재킷은 손에 들었다. 너무 더워서 도저히 입을 수가 없었으니까. 물론 여지없이, 교문을 지키던 학생주임에게 복장 불량으로 걸렸다. “정신 빠진 자식이, 입학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학생주임이 말하며 명현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명현은 다시 동복 재킷을 입고,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을 다섯 바퀴 돌았다. 땀이 비 오듯 흘러 와이셔츠는 물론이고 조끼와 재킷의 옷깃이며 겨드랑이 부분을 다 적셨다. 명현은 그날 수업 내내 조는 척하며 겨드랑이 냄새를 삼백 번쯤 맡았다. 타인의 추위와 명현의 더위가 가실 때까지 그런 날들이 이어질 터였다.

 

*

출석부에 이름은 있지만 그간 한 번도 등교하지 않던 아이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5월이 시작했을 때였다.

“난 정윤하고, 복학은 다섯 번째인데 3, 4월에는 정신병원에 있느라 학교 못 왔다.”

“너, 이 자식, 내가 그 말 하지 말라고 했지.” 옆에서 담임이 회초리로 정수리를 때리자 윤하는 “으악, 죄송해요.” 하고 아픈 척을 했으나 연기라는 게 너무 티 났다.

“이번에는 정말 안 꿇고 1학년 끝내는 게 목표고. 잘 지내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수군댔다. 명현은 박수 대신 추위로 곱은 손을 비볐다. 5월이라지만 학생이 빽빽한 교실은 이미 충분히 뜨거웠다. 아직 춘추복 착용 기간이었기에 아이들은 와이셔츠를 풀어헤치거나, 아예 웃통을 드러내고 있었다. 명현은 호된 감기에 걸려 코 양쪽이 꽉 막혀 있었다. 연신 콧물을 들이마시다가, 일진 무리에게 머리를 얻어맞은 뒤로는 입으로만 숨을 쉬는 중이었다.

담임이 정윤하 자리를 지정해주었다. 아무도 앉지 않은 명현의 옆자리. 윤하가 썩썩 바짓단 소리를 내며 걸어와서는 명현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명현이 자기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윤하는 박박 민 머리를 긁더니 명현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대뜸 속삭였다.

“야. 마이 벗어줘?”

“엉?”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첫날부터 트집을 잡겠다는 건가. 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린 명현에게서 어떤 대답도 나오지 않자, 윤하는 명현의 손을 덥석 잡더니 팔을 들어 자기 얼굴 앞에서 흔들어대며 다시 물었다.

“이거 봐, 손가락이 차갑잖아. 멀리서 봐도 딱 알겠더라, 너 춥지? 독감이라도 걸렸냐? 벗어줘?”

명현은 못마땅한 얼굴로 이쪽을 내내 쳐다보는 담임의 눈치를 보며, 손을 빼내려 애썼다. 그러나 윤하는 계속해서 “응? 응?” 하고 되물었고 결국 담임이 “거기 둘, 조용히 좀 해라.” 소리를 버럭 질렀다. 윤하는 담임을 노려보더니 입술을 비틀며 이상하게 웃었다. 올해는 1학년 끝내는 게 목표라더니, 빈말이었나. 명현은 생각하며 서둘러 교과서를 폈다. 

멀어져야지, 친해지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말썽을 피운다면 삼촌네에서 쫓겨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노력은 별 소용이 없었다. 윤하가 자꾸만 명현을 끼고 돌려 들었으니까. “칼부림은 예사라더라, 이미 폭력조직의 일원이라더라, 사람 죽였는데 집에 돈이 많아 소년원 대신 정신병원에 갔다더라.” 하는 휘황찬란한 뜬소문의 당사자가 왜 친구도 없고 왜소한 자신에게 자꾸 다가오는지 명현은 알 수 없었다. 장난감이 필요한 걸까? 괴롭힐 준비를 하는 걸까, 뒤탈을 미리 막기 위해 일부러 부모 없는 애를 골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명현은 쉬는 시간엔 윤하와 매점에 가고, 매일 축구나 하는 체육 시간엔 슬쩍 빠진 채 학교의 구석진 곳에서 담배 피우는 윤하를 지켜보고, 또 다른 수업 시간엔 윤하가 교과서 한구석에 냅다 적는 낙서들에 선생 몰래 답장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리고 동시에, 성큼성큼 다가오는 폭염을 온몸으로 겪었다. 스무 개의 손발톱이 모두 시퍼렜고, 이에서 딱딱 소리가 나지 않게 종일 턱을 앙다물고 지내니 아래턱의 통증이 어마어마했다. 수업 시간 교사의 물음에도 자꾸 말을 더듬어 출석부로 머리를 맞는 일이 잦았다. 하복 착용 기간이 되자 춘추복을 입는 것도 허락받지 못했다. 너무 괴로워 교무실에 찾아가기도 했다. “선생님, 하복 위에 긴팔 와이셔츠만이라도 입고 있으면 안 될까요?” 그러나 헛소리를 한다며 대뜸 때렸다. “네 말을 믿는다면 너는 정신병자야. 뇌에 문제가 있으니, 학교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 담임의 말에 명현은 답했다. “맞습니다 선생님.” “아니, 더 크게!” 담임이 요구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명현은 소리쳤다. 음성이 덜덜 떨렸다. 추워서였을 것이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현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늠할 수 없었으니까.

교문을 나오면 비로소 옷을 껴입을 수 있었다. 집채만 한 가방을 뒤져 카디건을 꺼내 입고, 목도리를 두른 후 장갑을 꼈다. 행인들은 명현을 손가락질하며 티 나게 수군거렸다. 어린 부랑자로 여기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아무래도 부랑자들은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조차 패딩 차림이니까. 게다가 명현의 카디건도 적잖이 낡은 채였다.

카디건이 그렇게 된 이유는 별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잡아당기고 찢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입은 옷의 두께가 다르다는 것, 겨우 그런 이유로도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게 사람이란 걸 명현은 이제 의심하지 않았다.

 

*

학교 수업 시간에 그런 얘기가 가끔 나왔다. 물 부족 국가, 환경오염의 위험, 스모그와 산성비, 엘니뇨와 라니냐 같은 것들. 그러나 아이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종말이 온다던 2000년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사태를 겪은 것이 벌써 2년 전이었다. 노스트라다무스도 예언했었고, 컴퓨터 전문가들도 대재난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그래서 모두들 생필품을 앞다투어 사재기하고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밀레니엄의 카운트다운을 기다렸는데, 결국 허무할 정도로 무사통과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지구가 아파요.” 같은 표어와 포스터는 그저 우스웠다. 인류는 영원불멸할 거라고 모두가 자신 있게 생각했다.

아이들은 등교하자마자 에어컨 온도를 최하인 18도로 내렸다. 이동수업이나 체육수업이 있을 때도 끄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린 후 얼음장 같은 교실에 들어와야만 기분이 좋다는 이유였다. 창문도 닫지 않았다. 에어컨은 밖에서 뜨거운 공기가 밀려 들어오는 만큼 더 열심히 일했으니까. 어느 날의 아침 조회 때는 담임이 말했다. “야, 집에 에어컨 있는 사람 손들어.” 대여섯이 손을 들었다. 다 잘 사는 아이들이라는 걸 모두가 알았다. 딤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지 않은 아이들을 휘 둘러보았다. “이것들아, 공부 열심히 해라. 나중에 에어컨 구걸하는 거지가 되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지금도 그러고 있지 않냐?”

그날부터였나. 아이들은 에어컨에 딱 붙어 찬 바람을 쐬는 서로를 ‘거지’라 불렀다. 집에 에어컨 없는 아이들끼리 같은 멸칭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지 떠들어댔다. 한국 조폭 영화에서 본 사기와 공갈 혹은 범법이 주된 방법이었다. 그렇게 실컷 몸을 부풀려 과시하다, 명현 옆의 윤하 눈치를 슬쩍 살피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몇 년을 꿇은 미지의 불량 학생이 자신들을 비웃을까 두려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윤하는 그 애들한테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

그리고 한일 월드컵이 개막했다.

 

명현은 스포츠라면 지긋지긋했다. 잘나가는, 그래서 남을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하는 애들의 전유물. 그러니 월드컵에도 하등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일까, 분명 최약체라던 한국 팀이 계속 이긴다고 했다. 명현은 창고 방에 앉아, 왼쪽 귀로는 에어컨 튼 거실에서 흘러나오는 티브이 소리와 삼촌 가족의 함성을, 오른쪽 귀로는 동네의 떠들썩한 응원 소리를 동시에 들으며 추위에 몸을 떨었다. 전 국민이 밀려드는 기쁨을 감당하지 못해 반쯤 미친 것만 같았다. 날더러 항상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며 괴롭혔는데, 함께 미치니 저들끼리는 하나의 단결된 붉은 영혼이 되는구나, 참 이상도 하지. 명현은 생각했다.

수업 시간마다 과목을 막론하고 아이들은 교사를 꾀었다. 땡땡이에 성공하면 함성을 지르며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돌진했다. 교사들도 운동장에 나가서는 아이들의 공놀이를 보며 환호해댔다. 최약체로 불리던 조국의 연승은 그 정도의 위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명현은 교실에 남고 싶었으나 교사가 ‘단독 행동’을 불허했기에, 운동장 스탠드의 그늘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히말라야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등산가의 심정으로.

그러나 스페인인가 어디였나와의 경기 전날에는 그늘에 앉을 수가 없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온 형국이었으니. 이미 학생이든 교사든 그날 수업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모양이었다. 다음날의 거리 응원에서 공연한다는 풍물부와 댄스부가 각각 스탠드를 점령해 왁자지껄하게 연습을 했고, 남은 그늘은 교사들 몫이었다. 교장까지 나와서는 축구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어설픈 기술을 선보이는 중이었다. 그 엉성한 기술을 놀랍게도 다들 받아줬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야. 너 괜찮냐? 임마, 괜찮냐고.”

직사광선이 쏟아지는 운동장 구석에서 엎드리듯 온몸을 웅크린 채 떠는 명현에게 윤하가 연신 물었다. 명현은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생기의 계절이라 말하는 그토록 찬란한 여름, 고양된 모두가 땀을 흘리며 떠드는 생명력 가득한 소리, 그런 것들이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자신에게는 더없이 공포스럽다는 걸 타인이 어찌 이해할까. 너무 추워서, 눈꺼풀이 참을 수 없이 시려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 와중에도 눈물이 아니라 땀처럼 보였으면 해서 명현은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 관자놀이 옆에 다시 찍어 발랐다. 계속 명현을 주시한 윤하에게는 당연히 들킬 수밖에 없는 꼼수였지만.

한참을 명현 옆에서 지껄이던 윤하가 일어섰다. “아 씨, 안 되겠다.” 윤하가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잠시, 몸 옆의 체온이 사라졌다. 추위가 아주 조금, 정말이지 아주 조금 덜해진 것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고는 무언가 툭, 크게 깨지는 소리가 났다. 좌중이 순간 조용해졌다. 파열음이 한 번 더 이어졌다. 운동장의 누군가 외쳤다. “어! 저기 뭐야? 뭐가 떨어진 거야?”

명현은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그곳을 보았다. 태극기 액자와 급훈 액자가 운동장 국기계양대 옆의 바닥에 나란히 산산조각 나 있었다. 저 급훈. 명현은 알아봤다. 명현이 속한 1학년 1반의 것이었다. 곧 2반 급훈과 국기도, 3반 것도, 그 옆 교실의 것도 떨어졌다. 아이들이 와글댔고, 운동장에 나와 있던 교사들과 교장이 일제히 우르르 위로 향했다. 명현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러고는 교실을 향해 걸었다. 가장 느리게. 그러나 1반이 있는 4층에 채 도달하기 전, 3층에서 누군가에게 손목을 붙들렸다. 윤하였다.

둘은 아직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갔다. 최저온도로 맞춰진 에어컨이 역시나 씽씽 돌아가고 있었다. 윤하가 명현을 끌고 에어컨 앞에 섰다. 그러고는 날개를 명현 쪽으로 내려 주었다. 명현은 놀랐다. 언제나 에어컨에서 가장 먼 자리에 앉아야 하는 서열이었기에 바람을 직접 쐬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은 따뜻했다. 뻣뻣했던 손이 부드러워지고 언 볼이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얼굴 피부가 따가워.” 윤하가 말하자 명현이 물었다. “녹기 시작해서 그렇지?”

“응.”

“아주 추운 날 모닥불 앞에 앉았을 때처럼 말이지, 그치? 아, 너는 모르려나.”

“응. 하지만 따뜻해.”

명현은 침을 삼켰다. 모닥불이라. 불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그러나 그 얘기까진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내가 어떻게 이상한지, 이 증상이 뭔지 알아?”

“엉.”

“어떻게?”

“실은 복학할 때 담임이 네 얘길 했어. 온도를 반대로 감각한다고 주장하는 자식이 있어서 이미 골치가 아프니 너는 조용히 살아달라나. 만약 말썽을 피울 거면 차라리 그 전에 너를 맡아서 닥치게 만들어달라고도 하더라. 둘은 힘드니 하나만 남겨달라고. 한 반에 정신병자는 하나면 족하대.”

그랬구나, 그래서 내게 에어컨 바람이 따뜻할 거라고 확신했구나.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명현은 이해했다. 윤하의 앞머리가 에어컨 바람에 낱낱이 휘날렸다. 명현은 에어컨 날개에 이마를 갖다 댔다. 이렇게 따뜻하다니, 사람에게선 느낀 적 없는 온기였다. 명현은 추위에 흘렀던 눈물이 빠르게 마르는 것을 느꼈다. 윤하가 팔짱을 낀 채 명현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뀉이렇게 에어컨을 틀면 엘니뇨랑 라니냐가 온다고, 그랬는데.”

마침내 무언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만큼 체온을 올린 명현이 중얼거리자 윤하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너를 강제로 땡볕에 세우지만 않았어도 이 바람을 맞을 이윤 없었어. 그러니 문제는 그저 사람이야.”

학교의 CCTV가 유명무실했으므로 윤하는 범행을 들키지 않았다. 그러나 차라리 그때 잘못을 발각당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겨우 몇 대 맞는 것으로 끝났을 테니. 물론 결과론적인 얘기다. 마치 엘니뇨와 라니냐를 나중에 탓하며, 여전히 에어컨 바람을 원하는 사람들의 것처럼.

 

*

세계 최고의 강팀이라던 스페인을 또 이기자 학교는 광기에 휩싸였다. 독일을 상대하는 준결승은 저녁 8시 반에 시작한다고 했다. 1학년은 모두 응원에 동원되었다. 그 밤중의 응원으로 체험학습활동을 갈음하겠다는 교장의 독선적인 결정은 어처구니없었으나 ―그 자리에 떵떵거리며 모습을 드러낼 도지사와 각종 의원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겠다는 교장의 개인적인 목표 때문이었음을 사람들은 나중에야 알았다.― 골치 아픈 체험학습을 때울 수 있게 된 교사들도, 박물관과 민속촌이라면 신물이 난 애들도 마냥 환영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온갖 학원도 그 시간엔 다 휴강을 했으나 학부모 민원도 없었다. 애들은 마구 날뛰었다. 이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 이는 이번에도 나뿐이겠지. 명현은 생각했다. 언제나 모두의 의견에 반대해야만 하는 사람, 생존을 위해 그래야만 하는 사람. 왜 이렇게 됐지.

“특히 조윤하, 너 이 자식, 가서 허튼짓하면 가만두지 않는다? 너는 입 딱 다물고, 시체처럼 가만히 있다 가라, 알았냐 인마?”

거리 응원을 앞두고 한 담임의 말이 명현은 더없이 이상했다. 윤하는 복학해서 단 한 번도 말썽을 피운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 피우긴 했지만 들킨 적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윤하는 청순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일 따름이었다. 분노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담임은 그게 더 기분 나쁜 모양이었다.

 

*

“원래도 추운데, 사람이 그렇게나 많으면 너는 얼마나 더 추워지는 거냐?”

집결지인 중앙공원으로 걸어가며 윤하가 물었다. 학교에서는 무조건 붉은 티셔츠를 입고 오라고 했지만 ―수학여행에도 교복을 입어야 할 정도로 교복에 집착하는 학교에서 사복을 허용한 건 개교 이래 처음이라고들 했다.― 둘 다 그 차림은 아니었다. 명현은 붉은 티셔츠가 없었기에 그냥 교복을 입었다. 교복이라면 담임이 용인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윤하는 하얀 티셔츠 차림이었다. 여기저기 검은 기름 얼룩이 튀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예상이 안 돼.”

“진짜로 위험해지면 어떻게 해? 얼어 죽는다든지.”

“거기서 동사하면 지금껏 무시당했던 주장이 다 진실임을 증명받을지도 모르지.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말하고서 명현은 스스로에게 몹시 놀랐다. 이렇게 길게, 또 이렇게 솔직하게 생각을 드러낸 적이 언제였던가? 명현은 잠시 우뚝 멈춰 있었다. 윤하가 입을 열 때까지.

“그런 생각 하지 마라.”

윤하는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네가 죽어서 증명해봤자 사람들은 기억 못 해. 살아야지. 살아서 계속 거슬리게 굴어야 해.”

 

둘은 출석 체크 후 반 아이들이 만든 줄의 가장 끝에 앉았다. 그러나 곧 사람들이 밀려들었고, 대형은 무너졌다. 윤하는 목덜미에서 땀을 줄줄 흘렸고, 명현은 반대로 정신을 잃을 듯 추웠다. 파도타기를 할 때 명현은 몸이 굳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는데, 어느새 바로 옆까지 다가온 담임이 욕을 했다. “너 인마, 한국 사람 아니야?” 맥주캔을 든 채 불콰한 얼굴로 외치는 담임에게 명현은 죄송하다고 대답했다.

단합을, 하나됨을 말하는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사람들, 다섯 번의 박수를 치는 사람들, 하나의 뜨거움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 만약 이긴다면 이 사람들, 또 얼마나 날뛸 것인가. 그러면 얼마나 추워질 것인가. 게다가 결승에 진출한다면 또 거리응원에 동원될지도 몰랐다. 지는 게 나을 거야, 졌으면 좋겠어. 명현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했고, 그러자 한국이 기회를 놓칠 때마다 한 몸처럼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탄식에 박자를 맞출 수가 없게 됐다.

한 골을 허용한 채로 경기가 막바지에 이르자 군중은 문자 그대로 날뛰었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누군가 애국가를 목청 높여 선창했다. 그러자 곧 여기저기서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모두는 악을 쓰며 삼천리 화려강산을 외치는 덩어리가 되었다. 명현은 두 팔로 상체를 감싸안으며 주저앉았다. 갑자기 담임이 명현을 껴안았고 명현은 소스라쳐 비명을 질렀다. 담임이 닿은 모양 그대로 금세 몸이 쓰라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명현이 화상을 입었던 자리와 비슷한 위치였다.

 

*

어린 명현이 부모와 살던 집에 불을 지른 이는 할아버지였다. 공장 소유주인 할아버지의 오래된 악행을 아빠가 공장 노동자들에게 고발한 바로 그날 밤. “‘우리’를 위해 그런 거다. ‘우리’를 배신하고 먹칠한 대가다.” 경찰에 검거된 할아버지의 논리였다. 호화 변호인단을 고용한 할아버지는 초기 치매 증세에 따른 심신 미약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명현과 그는 이후에도 왕왕 마주쳤다. 친척 모임은 아주 많았으니까. 명현은 언젠가 딱 한 번, 너무나 추웠던 날에, 112에 전화해서 울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전혀 치매가 아니라고, 의도적으로 방화했다고. 그리고 경찰은 신고 내용을 할아버지에게 전했다.

그즈음부터 명현은 온도를 반대로 느끼기 시작했다. 아마도, 살기 위해서. 아니다, 불이 나면 물리적으로는 타 죽겠지만, 의식이 끊어질 때까지 아무 일도 아니라고, 뜨겁지 않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일지도. 아무래도 자신이 할아버지를, 거대한 ‘하나’란 개념을 확신하며 그 ‘하나’의 발전을 원하는 이들을 이길 수 없다고 명현은 직감했기에, 최후를 피할 희망 따윈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

담임의 품 안에서 명현이 몸부림쳤으나 그는 더 단단히 껴안았다. 아니, 껴안았다는 말은 너무 부드럽다. ‘포박’ 정도가 어울리겠다. “너 같은 것들은 예전엔 삼청교육대에 집어넣었지, 지금은 시민 대접을 해주니 얼마나 좋냐?” 말하는 담임에게 술 냄새가 났고, 차가웠다.

와아아 하고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그때였다. 껴안은 두 사람이 보고서는 일종의 동료의식을 형성하고 있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승리!” “단결!”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흐드러진 봉오리의 꽃잎처럼 마구 두 사람 위로 겹쳐졌다. “대애한민국!” 꽃잎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외쳤다. 가장 아래 깔린 명현은 느꼈다. 내 심장이 멈추고 있어. 추워서, 박동하지 못하고 있어. 어쩌면 불타 죽는 것보다는 이렇게 서서히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러나 비명과 함께 꽃잎들이 짓이겨졌다. 붉은 즙이 튀었다. 비린내가 났다. 명현은 자신을 짓누르던 꽃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동그라진 담임을 볼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 모든 ‘하나’의 더미가 명현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감각기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에.

명현이 가까스로 시야의 초점을 되찾았을 때, 보인 것은 그저 수군대는 사람들과 빨간 즙, 그리고 시뻘건 물이 들어 거의 ‘비 더 레즈’의 색과 비슷해진 흰 티셔츠뿐이었다. 검은 기름 얼룩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윤하가 누구라도 해한 것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벌떡 일어나 사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다들 몸에서 힘을 뺀 채 경기를 보는 중이었다. 마치 좀비들처럼.

저쪽에서 경찰차가 떠나고 있었다. 그 애는 명현을 깔아뭉갠 사람들을 공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명현은 윤하를 다시 보지 못했다.

 

*

사람이란 종은 왜, 언제부터 같은 것을 감각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판단해야 했을까?

 

*

“주임님. 오늘 수리 나가실 건수 미쳤어요, 어제 에어컨 좀 많이 튼 곳들은 실외기 다 터졌대요, 이거 다 하실 수 있겠어요?”

“그만, 그만요. 방금 출근했는데 숨 돌릴 틈이라도 주면 안 돼요?”

“오늘 안으로 해결해주면 따따블로 주겠다는 데가 천지예요.”

“음, 그럼 가야죠.”

명현은 두터운 롱패딩을 걸치고, 공구 상자를 들었다. 40도를 넘는 폭염으로 전력 생산이 과부하되어 자주 멈추고, 에어컨 수리기사들을 비롯한 온갖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는 여름이었다. 어차피 에어컨이 너무 자주 멈춰서, 쓰러지는 이들은 직업이나 소득과 큰 상관이 없었다. ‘하나’된 공평한 재난이었다. 이 와중에 추운 명현에게는 일이 넘쳤다. 몰려드는 일을 바삐 해결하다 보면 패딩 속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놀랍게도.

“아 맞다, 어제 의뢰 건 중에서 좀 특이한 고객님이 계신대요. 두 달 대기하라고 말씀드리니까, 너무 바쁘시면 안 오셔도 된다고 하시긴 했는데뀉.”

뒤에서 직원이 말했다.

“에어컨에 손을 녹이고 있다고 하시네요. 에어컨에 손을 녹인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이죠? 에어컨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는 건가? 비꼬는 건가?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목소리가 되게 평온했거든요. 그래서 이게 장난 신고인지 아닌지 감이 안 와요. 그리고뀉.”

손을 들었다. 직원이 말을 멈추었다. 명현은 물었다.

“의뢰인 이름은요?”   

 

 

 

설재인
2002년에 중학교를 다녔다. 누구보다 열심히 응원했고 누구보다 거친 말을 쓰며 상대 팀을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이후 문득 그때의 자신이 잘못된 방식으로 ‘돌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작으로 소설집 ‘월영시장’, 장편소설 ‘그 변기의 역학’ ‘우연이 아니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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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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