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 해 격무를 거치며 허벅지와 배 둘레에 차곡차곡 지방을 적립한 과학동아 OOO 기자. 어느 날, 비만의 기준을 체질량지수(BMI) 25에서 27로 바꾸자는 연구가 나왔다는 뉴스를 접합니다. BMI 25에서 사망률이 제일 낮기 때문이랍니다. 헐레벌떡 BMI를 재보니 26.4.
어?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비만에서 탈출하는 거야?! 어떻게 된 일인지, 비만 연구자에게 비만 진단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위 사례는 가공된 것으로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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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기준, BMI 25에서 27로 바꾸려는 이유
비만 진단 기준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온 자리는 2024년 11월 8일 열린 ‘2024년 한국보건교육건강증진학회 추계학술대회’입니다. 이 학회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측은 “‘체질량지수(BMI) 25 이상’인 우리나라의 비만 기준을 국내 상황에 맞게 최소 BMI 27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왜 비만 기준을 바꾸자는 걸까요? 먼저 비만 기준의 척도로 쓰이는 BMI의 정의부터 알아봅시다.
BMI(체질량지수) = 체중(kg) ÷ 키의 제곱(m2)
BMI는 체중과 키만 알면 되기 때문에, 현재 가장 간편하게 비만을 측정하고 진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널리 쓰입니다. 대한비만학회는 BMI가 18.5 이하면 저체중, 18.5~22.9면 정상 체중, 23~24.9는 과체중, 25 이상이면 비만으로 진단했습니다.
건강보험연구원은 2002년부터 2003년 사이 일반건강검진을 받은 성인 최대 847만 명을 21년간 추적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BMI 수준과 사망률, 심뇌혈관질환 발생 위험 정도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BMI 25 구간에서 사망위험도가 가장 낮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사망위험이 가장 높은 구간은 BMI 18.5 미만(저체중)과 BMI 35 이상(3단계 비만)으로, 사망 위험이 BMI 25 구간 대비 각각 1.72배, 1.64배 높았죠.
한편 심뇌혈관질환(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의 경우, BMI가 높아질수록 전반적으로 질병 발생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두고 건강보험연구원 측은 “BMI 25 구간을 비만 기준으로 특정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보도자료에서 설명했죠.
정리하면, BMI 25 구간에서 오히려 사망률이 낮으니 비만의 진단 기준을 사망률이 올라가는 BMI 27 구간으로 바꾸자는 것이 건강보험연구원 측의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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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체질량지수(BMI)를 넘어 ‘생체저항전기분석법’ 등을 이용해 비만을 다양하게 측정한다. 생체저항전기분석법을 이용해 비만을 측정하는 모습.
문제는 사망률이 아니라 비만 동반 질환!
재미있는 점은 건강보험연구원의 발표 12일 후인 2024년 11월 20일, 대한비만학회에서 이 제안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것입니다. 대한비만학회는 “(건강보험연구원의) 제안은 비만 진단 기준에 혼동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국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죠. 왜 반대한 걸까요?
“BMI 25를 고수하는 이유는 사망률이 아니라 비만 관련 만성질환 위험 때문입니다.”
대한비만학회의 언론홍보이사인 허양임 분당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유를 밝혔습니다. 2형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심뇌혈관질환 등의 만성질환은 BMI가 증가할수록 높아집니다. 특히 정상 체중에 비해 비만 전 단계부터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데, 2형 당뇨병의 경우 정상 체중에 비해 비만 전 단계에서 1.55배, 1단계 비만에서는 2.46배 발병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BMI 25라는 수치에서 사망률이 낮게 나올 수는 있어도, BMI가 25 미만이더라도 비만으로 인한 만성질환의 발병률은 더 높아지기 때문에 위험한 수치라는 주장이죠. 대한비만학회는 성명서에서 “비만의 진단 목적은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 발생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우려를 반영해 비만 진단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서양과 중국의 비만 진단 기준인 BMI 30, BMI 28도 2형 당뇨병 발생 위험이 증가하기 시작하는 기준으로 정해졌죠.
대한비만학회에서 비만 동반 질환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유는 사망률의 경우 연령, 건강 상태, 흡연 등 코호트* 특성과 추적 기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동반 질환이 많은 노인은 사망률이 가장 낮은 BMI 수치가 젊은 성인에 비해 높은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인 남성 흡연자와 비흡연자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사망률이 높은 BMI가 각각 다르게 나왔죠.” BMI와 사망률의 연관성을 따져 비만을 진단하기에는 두 인자 사이의 연관성이 낮다는 허 교수의 설명입니다.
이 대목에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적당히 뚱뚱해야 오래 산다는 말은 사실일까요? 허 교수는 “이 주장은 ‘비만 역설’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허 교수는 “BMI의 증가 추세는 비만으로 인한 질환 및 여러 가지 합병증도 증가시키지만, 동시에 좋은 영양 상태를 반영한다. 근육의 기능이나 근육량도 좋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부 연구 혹은 질환 집단에서 과체중인 건강한 노인에서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밝혀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비만인의 생존 기간이 긴 것이 아니라, 오래 산 사람이 체중이 늘어났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비만 역설이 건강과 몸무게 사이의 인과가 아닌 상관관계에서 나타나는 허상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허 교수는 “따라서 비만을 치료할 때 체중은 물론 근력, 혈압, 혈당 등 다양한 생리적, 대사적 기능도 평가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건강보험연구원 연구에서 제안된 새로운 비만 기준
BMI에 따른 상대적 사망률을 그래프로 그렸다. BMI 25의 사망률을 1.00으로 뒀을 때, 그래프가 U자 곡선을 그린다. 25를 기준으로 BMI가 낮거나 높을수록 사망률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 자료를 기준으로 건강보험연구원 측은 비만 진단 기준 BMI를 25에서 27로 높이는 방안을 주장했다.
BMI 진단 자체에 문제 있을 수도
여기까지 읽어보셨으면 알겠지만, 비만 진단 기준은 세계적으로 조금씩 다릅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보편적 기준은 BMI 30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각국에서 별도의 기준을 작성합니다. WHO 서태평양지부는 아시아인이 서구인에 비해 더 낮은 비만도에서 질병 위험이 증가하므로 BMI 25를 비만 기준으로 정했죠.
일각에서는 BMI를 기준으로 하는 비만 진단 기준 자체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BMI는 체중과 키만 사용하기 때문에 체지방량과 근육량을 구분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체지방 대신 근육이 많은 사람도 BMI 수치가 높게 나와 비만으로 잘못 진단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허 교수는 “국내 연구에서도 BMI는 체지방‘률’보다는 체지방‘량’과 관련성이 높다는 보고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체지방을 측정할 때 다른 방법들이 병행해서 쓰입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몸에 약한 전류를 통과시키며 전압을 측정하는 ‘생체전기저항분석법’입니다(한국에서는 ‘인바디’라는 브랜드로 체성분 검사를 하면서 접해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몸의 수분 대부분은 근육에 저장되기 때문에 지방 조직보다 전기가 잘 통합니다. 그래서 신체 조직을 통과하는 전류의 저항을 계산하면 체지방률을 계산할 수 있죠. 물론 이런 방법은 특별한 측정 도구가 있어야 하고, 생체 조건에 따라 측정값이 변동될 확률도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이 쓰이는 다른 기준은 ‘허리둘레’입니다. 허 교수는 “허리둘레는 BMI와 독립적으로 대사증후군, 2형 당뇨병, 관상동맥질환 등의 병에 걸릴 비율이나 사망률과 연관돼 있다”며, “BMI의 오류를 보정할 수 있어 BMI와 함께 허리둘레를 측정할 것을 권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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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는 1996년 비만을 질병으로 지정했으나, 세계적으로 비만율은 높아지는 추세다. WHO는 2022년 기준 전 세계 인구 8명 중 1명이 비만을 겪고 있으며, 1990년 이래로 전 세계 성인 비만이 두 배 이상, 청소년 비만은 네 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비만, 사회적 질병이 되기까지
실제로 건강보험연구원 측의 주장에 따라 비만 진단 기준이 바뀌게 될까요? 건강보험연구원 측은 과학동아의 질문에 “현재 복지부와 이 사안에 관해 구체적으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제 연구 결과가 나온 정도라 실제로 건강 보험 등 여러 정책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기다려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BMI 논쟁은 사회적으로 비만이란 질병이 점점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추세란 점을 명백히 보여준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10년간 한국의 비만 유병률은 30.6%에서 38.4%로 7.8% 상승했습니다. 남성의 경우, 비만 유병률이 37.9%에서 49.6%까지 올랐죠. 길에서 만나는 남성의 절반 가량이 비만이라는 뜻입니다. 2024년 11월에는 ‘비만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비만을 국가 차원에서 심각한 질환으로 인식하고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발의입니다.
BMI 25와 27 사이의 간극을 보면서 신기하게 생각하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단 기준이 뭐길래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비만이었다, 아니었다 바뀌는 걸까 하고요.
20세기 초에 활동한 프랑스의 의학철학자 조르주 깡귀엠은 “질병은 규범의 부재가 아니라 새로운 규범의 창조”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특정 상황에서 정상과 질병을 규정하는 조건들은 생물학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였죠. 사망률과 동반 질환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에 따라서 비만의 진단 기준이 달라지는 것처럼요.
1996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비만은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약 30년이 지난 지금 심각한 질병으로 받아들여지는 비만은 앞으로도 사회의 모습이 바뀜에 따라, 비만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그 모습을 계속 바꿔 나갈 것입니다.
용어 설명
코호트(Cohort) : 특정한 기간에 태어나거나 결혼을 한 사람들의 집단과 같이, 통계상의 인자를 공유하는 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