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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에너지 뽑는 인간발전소

무릎에서 전기 만들고 체온으로 빌딩 난방까지

국제 유가가 연일 널뛰기를 하고 있다. 지난 여름 휘발유 가격이 L당 2000원에 육박했다가 다소 떨어졌지만, 세계적인 금융불안으로 언제 다시 치솟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기름 값이 뛰니 생필품 가격도 덩달아 뛴다. 이제 1000원 짜리 김밥은 추억이 돼 버렸다.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업들은 마른 수건까지 쥐어짜는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를 찾는 과학자들의 시도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조력, 지열, 바이오 에너지까지, 지구에서 뽑을 수 있는 에너지는 죄다 뽑을 태세다.

최근 이런 대체에너지 행렬에 새롭게 등장한 ‘다크호스’가 있다. 바로 인간의 ‘몸’이다. 걸을 때 생기는 에너지로 소형 전자장치를 돌리거나 수많은 사람의 체온으로 건물 난방을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인체’라는 기계의 에너지 효율은 40%
‘인체가 기계인가’라는 질문은 생물학과 의학 그리고 철학의 오랜 논쟁대상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이분하고 몸은 정신 작용으로 작동하는 기계로 봤다.

실제로 인체가 작동하는 근본 원리는 자동차 같은 기계장치와 매우 닮았다. 자동차는 가솔린 같은 연료에 저장된 화학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꾼다. 그리고 그 중 일부를 축전지에 전기에너지의 형태로 저장했다가 내비게이터나 라디오 같은 차내 전기장치를 작동시키는데 쓴다.

인체는 음식물을 섭취하고 그 화학적 에너지를 생체전기로 변환하며, 이를 활용해 우리의 몸을 움직인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전하를 띤 입자들의 흐름인 전류로 작동한다. 생체전기가 모터, 출입문, 펌프, 빗장과 화학공장 역할을 하는 인체 세포의 복잡한 ‘나노기계’들을 가동시키는 셈이다.

인체는 에너지 효율이 얼마나 높은 기계일까? 인간이 먹은 음식물 가운데 단백질이나 지방 같은 물질은 위와 장에서 분해된 뒤 혈관에서 인체의 각 세포로 전달된다. 그리고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서 산소로 연소된 뒤 ATP라는 매우 작은 화학물질을 만든 다음 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보통 포도당 한 분자를 태워서 36개의 ATP를 만드는데, 이는 포도당이 가진 화학에너지의 약 40% 정도다. 나머지 60%는 열로 발산돼 체온을 유지한다.

이렇듯 인체의 에너지 효율은 생각만큼 높지 않은데, 그 이유는 생명체가 에너지 효율보다 추위와 배고픔 같은 혹독한 외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는 일을 최우선 목표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인체는 먹은 음식을 당장 에너지로 소비하기보다는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저장하려는 속성이 있다. 인체에 지방으로 저장된 에너지가 일종의 배터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걸으면서 전기 만드는 ‘무릎발전기’
몸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능력은 기근이 일상적이던 과거에 인류의 생존을 가능케 한 매우 유용한 무기였다. 그러나 음식 섭취는 늘고 운동량은 줄어든 현대인에게 이런 능력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체내에 잉여에너지가 과도하게 저장된 비만 인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비만은 당뇨병이나 심장질환, 암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다. 현대의 인간은 필요이상으로 많이 먹고, 일은 별로 하지 않아 뻑뻑해진 기계가 돼 버린 셈이다.

몸속에 축적된 불필요한 지방을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로 바꿀 수는 없을까. 사실 인체에서 나오는 에너지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의 하루 기초대사율(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의 에너지 대사율로서 전체 대사율의 약 60%에 해당)은 약 70W로 백열전구 하나를 켤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

이 정도 에너지로 뭘 할 수 있을까 싶지만, 팔을 돌리거나 걸을 때 생기는 동력은 휴대용 정보통신기기 같은 소형전자장치를 구동할 에너지로 활용하는 데는 쓰고도 남는다.

지난 해 미국 MIT 미디어랩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팀이 개발한 ‘100달러 노트북’도 자가발전 방식을 채택했다. 노트북 측면에 발전용 손잡이가 달려 있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제3 세계학생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팔을 일부러 돌리지 않고 그저 걷기만 해도 전기가 생기는 장치도 등장했다. 2005년 7월 미국 펜실베니아대 로렌스 롬 교수팀은 메고 걷기만 해도 전기가 생기는 ‘배낭발전기’를 개발해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사람 몸은 걸을 때 무게중심이 약 5cm 정도 상하운동을 반복하는데, 이를 소형발전기를 이용해 전기로 바꾸는 원리다. 배낭발전기를 메고 보통걸음으로 걸으면 7.4W의 전기가 생긴다.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막스 도넬란 교수팀은 걸을 때 무릎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전기를 일으키는 소형 ‘파워 브레이크’, 일명 ‘무릎발전기’를 만들어 지난 2월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무게가 1.6㎏인 장치를 무릎에 착용한 뒤 걸으면 전기를 최고 13W까지 만들 수 있다.

이런 인간동력 장치에 가장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바로 의사들이다. 심장박동을 정상으로 유지시키는 인공심박조율기, 이식형 심실제세동기(심장충격기), 말기심장병 환자를 위한 이식형 인공심장, 난청환자를 위한 인공와우(인공청각 장치) 등 다양한 이식형 인공장기가 최근 속속 개발되고 있다.

현재 이들 장치는 배터리를 주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몸에서 직접 얻은 에너지로 인공장기를 구동할 수 있다면 그동안 배터리를 교체하기 위해 외과 수술을 하던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티끌’ 운동 모아 ‘태산’ 에너지

요즘처럼 기름 값이 비싼 시기에 가장 탐이 나는 장치는 사람의 힘만으로 달리는 인간동력 자동차다. 미국 발명가 찰스 그린우드는 4명이 노를 젓듯 자가발전해 달리는 ‘인력자동차’를 만들었다. 인력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90km에 이른다.

에너지를 만드는 사람의 수가 많다면 작은 발전소 정도의 에너지를 얻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노동력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의 모습은 왠지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대신 부지불식간에 낭비되는 군중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됐다.

2007년 미국 MIT 건축학부 연구진은 걷거나 뛸 때 바닥으로 전달되는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군중발전소’를 제안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역이나 쇼핑몰 같은 곳에 군중발전소를 설치하면 ‘공짜’ 에너지가 펑펑 솟을 것이란 생각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걸을 때마다 바닥에는 체중만큼 압력이 전달되는데, 압전소자를 이용해 이를 전기로 바꾼다. 한 사람이 한 번 걸으면 60W 전구를 1초 동안 켤 수 있는 전기가 만들어지는데, 만약 2만 8527명이 동시에 걸으면 기차를 1초 동안 움직이는 에너지를, 8400만 명이 동시에 걸으면 우주왕복선을 발사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나온다.

군중의 체온을 에너지로 이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스웨덴 예른후센사는 스톡홀름 중앙역을 오가는 승객들 몸에서 나는 열을 모아 2010년 완공될 중앙역 옆 13층 건물 난방에 사용할 계획이다. 몸에서 발생하는 열을 중앙역의 환기장치에 모아 뜨거운 물로 전환하는 열전환 시스템에서 4만m2 건물의 난방에 필요한 열의 15%를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구가 증가하고 고령화될수록 지구의 에너지 자원은 줄어들고, 노후의 질병관리 비용은 증가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체에서 에너지를 뽑아 쓰는 인간발전소를 미래의 인간생활을 바꿔 놓을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한다.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인간발전소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운동부족 때문에 생기는 성인병을 크게 줄이는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인 셈이다.

심은보 교수 >;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KAIST에서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2008년 일본 교토대 의대에서 생리학으로 의학박사학위도 받았다. 현재 강원대 기계메카트로닉스공학부에서 심장의 생체역학적 원리를 연구하는 국가지정연구실(NRL)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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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심은보 강원대 기계메카트로닉스공학부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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