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겐 반려 고양이가 둘 있다. 녀석들에게 제발 말 좀 들으라며 하소연 할 때면 지켜보던 기자의 모친이 한마디 한다. “고양이는 원래 길들일 수 없지.” 사실 그렇지도 않다. 인류의 다른 동반자, 개와는 달리 끝까지 줏대있게 자기 맘대로 살 것 같던 고양이가 ‘물어와!’를 한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그럼 우리 집 고양이는 대체 왜?). 동물 가축화를 둘러싼 질문에 답을 찾아봤다.
고양이를 개처럼 길들일 수 있을까? 인간의 친구로 진화한 고양이
인간의 집에서 참치 통조림을 받아먹으면서도 야생성을 간직하고 있는 배은망덕한 동물. 고양이다. 그런 고양이가 개처럼 인간이 던진 물건을 물어온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드디어 인류는 고양이마저도 길들이는 데 성공한 걸까. 미켈 델가도 미국 퍼듀대 수의학과 선임연구원이 이끈 연구팀은 고양이를 키우는 주인 82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물어오기 행동을 보이는 고양이의 비율이 40.9%였다고 밝혔다. 연구결과는 9월 4일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에 발표됐다. 한편 개를 키우는 주인 7만 37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때 이 비율은 전체의 77.8%로 나타났다. doi: 10.1371/journal.pone.0309068
40.9%라니. 논문을 처음 봤을 땐 숫자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고양이 둘을 키우는 6년차 집사다. 각각 솜과 사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두 녀석은 기사를 쓰는 지금도 책상 왼편의 캣타워에서 단잠을 자고 있다. 기자가 옆에 잡히는 털실 공을 집어 던진다고 해도 이들은 아랑곳 않을 것이다. 혹시나 싶어서 방금 한 번 던져봤다. 역시였다.
기자의 고양이는 아쉽게도 모두 59.1%에 속했지만, 델가도 선임연구원은 운이 좋았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보호소에서 입양한 세 마리의 고양이가 이전에 키우던 고양이들과 달리 모두 던진 장난감을 물어오는 것을 보며 연구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과연 물어오기 행동이 통념대로 고양이에게서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행동일까?” 그가 연구를 시작하며 던진 질문이었다.
특히나 주목할 건 ‘40.9%’란 숫자 너머, 고양이와 개가 물어오기 행동을 한 동기다. 개와 고양이의 물어오기 행동을 분석한 결과, 재미있는 경향성이 발견됐다. 고양이와 개는 똑같이 물건을 물어오는 행동을 보였지만 그 동기는 서로 달랐다. 연구에 따르면 고양이는 물건을 물어오는 행동이 ‘즐겁기 때문에’ 했다. 한편 개는 물건을 물어오는 행동을 자신의 일로 여기도록 ‘훈련됐기 때문에’ 했다.
연구팀이 활용한 설문조사는 개와 고양이가 보일 만한 100가지 행동 중 실제로 어떤 행동들을 어떤 빈도로 하는지 묻는 질문들로 구성돼 있다. 이중에는 “고양이/개가 얼마나 자주 물어오기 놀이를 하는지” “갑자기 뛰거나 공중으로 점프하는 경우는 얼마나 자주 있는지” 등의 질문이 포함됐다.
연구팀은 물어오기 행동을 중심으로 이 행동이 다른 행동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살폈다. 그 결과, 물어오기 행동을 보이는 고양이들은 대체로 “주인과 방과 방을 뛰어다니며 서로 쫓아다니기 놀이를 하는 고양이”이면서 “주인과 장난감을 가지고 잘 노는 고양이”였다. 결국 주인과 노는 걸 좋아하는 활발한 고양이가 물어오기 행동도 보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고양이는 사회적 놀이의 일환으로 물어오기 행동을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개의 경우엔 결과가 달랐다. 물어오기 행동을 보이는 개들은 “‘앉아’란 명령에 즉각 반응”하고 “인간의 말이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피는” 등 잘 훈련된다는 특징을 공유했다.
델가도 선임연구원은 논문에서 물어오기 행동을 둘러싼 두 동물의 동기 차이에서 가축화의 맥락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고양이나 개 모두 품종에 따라서 물어오기 행동의 빈도가 달라지는 것이 그 이유다. 델가도 선임연구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몇 사람들은 고양이가 인류에게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고 교활하게 삶에 끼어들었다고 말한다”면서 “결국 우리가 고양이를 많이 바꾸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고양이의 품종 개량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개가 처음 가축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1만 5000년 전에서 4만년 전 사이로 추정된다. 이 시기 아시아에서 회색늑대가 인류와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 개가 가축이 된 역사의 시발점이다. 가축화에 따라 개는 인간의 일꾼으로 진화했다. 사냥을 돕거나, 양떼를 모는 등 실용적 목적에 맞춰 품종이 개량됐다. 그래서 델가도 선임연구원의 논문에도 인간과 함께 사냥을 다니며 사냥감을 죽이지 않고 물어 오도록 품종 개량된 리트리버, 코커 스패니얼 등의 개가 물어오기 행동을 더 잘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리트리버(Retriever, 되찾아오는 이)가 역시나 이름값을 했다.
고양이의 경우 가축화 초기부터 개와 역할이 달랐다. 약 1만 2000년 전, 인간의 마을 근처엔 마침 들고양이의 먹잇감인 쥐와 같은 작은 동물이 많았다. 그래서 은근슬쩍 스리슬쩍 마을로 다가와 인간에 익숙해진 게 고양이 가축화의 시작점이다. 고양이에겐 개처럼 큰 책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외모와 성격을 다원화하기 위한 품종개량이 이뤄졌다. 그리고 다양한 품종의 고양이 중 인간에게 더 관심이 많은 샴 고양이나 활달한 벵갈 고양이 등에서 물어오기 행동이 더 자주 관찰됐다.
델가도 선임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고양이가 얼마나 인간과 사회적으로 많이 교류하는지 보여준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에게 장난감을 가져오는 건 일종의 사회적 부탁이에요. 많은 이들이 고양이가 독립적이라고 잘못 생각하지만, 실은 고양이들도 주인과 상호작용하길 정말로 즐긴다는 거죠.”
놀고 먹는 데 인간을 이용하는 것 같은 고양이의 모습이 오히려 고양이가 가축화됐다는 증거일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인류는 고양이를 가축화할 때부터 녀석들이 제멋대로란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까지 쓰는 사이 깨어난 솜이가 의자 옆에 와 앉아있다. 별 말 없이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건 한 번 쓰다듬으라는 사회적 부탁이리라. 솜이의 부탁을 무시하면 곧 엉덩이나 발등을 물리고 만다. 다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얼른 쓰다듬고 와야겠다.
‘가축의 조건’이란 실존할까? 살아남기 위해 변화(당)한 가축들
흔히 고양이를 인간의 가축보다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룸메이트에 비유하곤 한다. 기자와 두 고양이 사이의 관계가 딱 그렇다. 우리에겐 음식을 먹기 전엔 꼭 냄새를 맡게 해줄 것, 불을 켜고 자지 말 것. 집에 돌아오면 일단 쓰다듬어줄 것 등의 생활수칙이 있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엎드려’나 ‘물어와’를 훈련시키는 데 성공한 적은 한번도 없다.
고양이는 개와 말처럼 가축으로 묶이는 다른 인류의 동물 동반자와 무언가 다르다. ‘가축’이라는 범주에 일관적인 기준이란 없을까. 10월 4일 만난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동물의 가축화는 하나의 기준을 두고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면서 “비교대상을 가장 가축화가 많이 된 개로 두니 기준이 높은 것”이라고 답했다.
“학계에도 가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확히 정의한 내용은 없다는 걸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고양이가 얼마나 가축화됐는지를 알고 싶다면 비교대상을 야생 고양이인 들고양이로 둬야 합니다. 개와 고양이는 처음 가축화가 된 출발선상부터 다르니까요. 하지만 들고양이와 고양이 사이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행동도, 거주지도 다르고요. 들고양이는 인간 근처에서 살지 않으니까요. 논문에서 물어오기 행동을 보인 고양이의 비율이 40.9%라고 했지요? 이 숫자는 개보다는 떨어지지만 들고양이에 비해서는 분명 높을 겁니다.”
실제로 고양이의 경우, 조상인 들고양이와 유전적으로도 다르다. 김재민 경상대 동물생명융합학부 교수팀은 3종의 들고양이와 16품종의 고양이 사이의 전체 유전체를 비교해 고양이와 들고양이의 유전자가 다르게 진화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2023년 학술지 ‘저널 오브 애니멀 브리딩 앤드 지노믹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고양이와 들고양이의 유전자 중 사회화, 영양분 소화, 털 색에 대한 유전자가 서로 달랐다”고 밝혔다. doi.org/10.12972/jabng.20230002
장 교수는 그럼에도 가축화된 동물의 조건은 몇 가지 꼽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축화라는 건 궁극적으로 동물과 인간의 공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도 가축으로 인해 진화했고, 가축도 인간으로 인해 진화해서 둘 사이의 관계가 의존하는 관계로 바뀌는 거죠. 그 밖에도 서로를 길들이는 과정, 그리고 도움을 주고받는 상리공생의 성격 등이 필요합니다.”
‘가축화=공진화+길들임+상리공생’이라는 공식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가장 쉬운 예시인 개를 떠올려보자. 개는 가축화되면서 눈을 통해 인간과 감정을 소통할 수 있도록 눈 근육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래서 개는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눈꼬리를 내릴 수 있다. 조상인 늑대에선 볼 수 없는 모습이다. doi: 10.1073/pnas.1820653116 한편 인간은 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우유 속 젖당을 더 분해하기 쉽도록 진화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공진화가 곧 가축화를 의미하진 않는다. 장 교수는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도시의 개구리 사례를 들었다. “인간의 영향을 받는 환경이 넓어지면서 점차 그 안의 동물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에 맞춰 삶의 형태를 바꾸는 사례도 생기고 있어요. 개구리 중에선 배수로에서 노래하는 행동 양상이 드러나고 있죠. 배수로 안에서 노래하면 소리가 그 안에서 퍼지기에 노래를 전달하기 유리하니까요. 그 외에 인간 근처에서 살아가는 쥐나 해충들도 인간과 함께 진화합니다. 이걸 가축화라고 부를 순 없어요.”
여기서 상리공생이란 요소가 더해진다. 개나 고양이처럼, 가축이 사람의 사냥을 돕거나 해로운 생물을 쫓아주면서 안전한 주거환경과 먹이를 제공받는 관계를 말한다. 길들일 수도 있어야 한다. 가축은 사람을 너무 경계해선 안된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는 유전을 통해 후대에 전해져야 한다. 간혹 사람과 수십 년간 함께 살아가는 곰, 어릴 때 알고 지내던 사람을 기억하는 암사자의 사례가 알려진다. 하지만 학습의 결과물이 유전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가축화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가축화된 동물이 공유하는 공통의 경향성을 찾기 위한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특징은 ‘가축화 신드롬(domestication syndrome)’이다. 가축화가 되면서 동물의 귀가 접히고, 털에 흰색 반점이 생기며, 뇌가 작아지고, 코가 짧아지고, 더 온순해진다는 것이다. 이 경향성은 개와 고양이 외에도 보노보, 기니피그 등 다양한 동물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가축화 신드롬은 아직까지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학설이다. 여러 종의 가축에 걸쳐 같은 경향성이 발견되는 이유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가축화 신드롬에 해당하는 특징도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가축과 야생 동물의 인지능력 차이를 비교한 88편의 논문을 분석해 동물이 가축화되면서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가축화 신드롬의 한 특징을 정면으로 반박한 논문도 2023년 발표된 적 있다. 프랑스 투르대와 스웨덴 린코핑대 국제공동연구팀이 발표한 이 논문에는 “가축화는 흔히 동물의 인지능력 하락을 불러온다고 여겨지나, 현재까지 가축화의 인지능력 하락을 명확히 밝히는 연구는 발표된 바 없다”고 딱잘라 적혀있다. doi: 10.1016/j.neubiorev.2023.105407
인류는 자신을 가축으로 길들였다? 자기 가축화를 둘러싼 논쟁
2021년 출간된 후 큰 인기를 끈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중심 키워드는 바로 ‘자기가축화’다. 저자인 브라이언 헤어 미국 듀크대 진화인류학 교수는 서문에서부터 현생 인류 특유의 친화력은 자기가축화를 통해 진화했으며, 이는 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현재까지 살아남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자기가축화란, 인류가 가축화된 야생동물처럼 공격성이 줄고 친화력, 공감능력, 협력 능력 등 가축의 특성이 강화되며, 뇌 용적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가설이다.
스스로 가축처럼 순해지길 택하는 동물로는 인류와 보노보가 꼽힌다. 헤어 교수는 2012년 국제학술지 ‘애니멀 비헤이비어’에 보노보의 자기가축화 양상을 분석한 논문을 한 편 발표했다. 헤어 교수가 주목한 건 보노보와 침팬지 사이의 성격 차이다. 보노보와 침팬지는 원래 하나의 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이 살던 아프리카 중서부 지역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콩고 강에 의해 나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2만 년 전 벌어진 일이다. doi: 10.1016/j.anbehav.2011.12.007
콩고 강 북쪽 영역은 고릴라와 먹이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험한 환경이었다. 이 환경에서 침팬지와 보노보의 공통조상은 현재 침팬지라고 부르는 동물로 진화했다. 강한 먹이경쟁 탓에 침팬지는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는 데 예민하고, 폭력적인 경향을 띠게 됐다는 것이 헤어 교수의 분석이다. 한편 보노보가 처한 환경은 고릴라와 같은 거친 경쟁자가 없고 먹이가 풍부한 환경이었다. 헤어 교수는 여기서 보노보가 더욱 큰 규모의 사회를 형성하고, 폭력성이 감소했다고 설명한다.
물리적 특성도 달라졌다. 보노보의 코가 짧아지고, 뇌가 작아지고, 암컷과 수컷의 신체 차이도 줄어들었다. 그렇다, 앞서 설명한 가축화 신드롬에 부합도록 진화한 것이다. 논문에서 헤어 교수는 “보노보와 침팬지의 차이는 자기가축화 가설로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서 “자기가축화 경향은 포유류의 진화에서 널리 발견되는 특징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같은 학설은 현재 학계에서 얼마나 널리 받아들여지는지 장 교수에게 물었다. 장 교수는 “혼자 살지 않고, 사회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동물이면 당연히 사회생활에 적합한 방향으로 여러 변화가 일어난다”면서 “무례하고, 공격적인 행동들은 집단 내에서 살아갈 때는 문제가 되므로, 사회성 동물이라면 그런 행동들은 도태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간과 보노보처럼 사회를 이뤄 살아가는 생존전략을 택한 동물들은 그 전략에 맞게 진화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에서 ‘생존을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하도록 진화했다’는 부분에 과하게 몰입해선 안된다. 장 교수는 “코끼리와 사자도 마찬가지인데, 사회의 구성원들이 혈연으로 연결되는 경우엔 먹이를 함께 사냥하거나, 육아를 함께 하는 등 이타적인 행동이 생존전략”이라면서 “혈연이 있지는 않고, 포식자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집단생활을 하는 가젤 등의 경우엔 이타적인 행동이 쉽게 관찰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동물의 자기가축화, 나아가 인간의 자기가축화는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란 뜻이다. 여기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기엔 우린 이 현상을 아직 잘 모른다. 당장 보노보만 해도 공격적인 수컷일수록 짝짓기 성공률이 높아지며, 이때 수컷 보노보의 공격성은 침팬지보다도 높다는 연구결과가 지난 4월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된 바 있다. doi: 10.1016/j.cub.2024.02.071
한편으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인류학자인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1월 2일 유튜브 채널 ‘보다’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의 자기가축화에 대해 아래와 같은 의견을 남긴 적 있다.
“문제는 그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가설은 옛날 인류는 더 폭력적이었고 현생 인류는 더 온순하다는 겁니다.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기가 힘들어요. 왜냐하면 지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가 과연 옛날보다 덜 폭력적일지 의심이 듭니다. 사실 진화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두고 ‘왜’를 떠올리기란 힘들어요. 이미 살아남았기 때문에 어떤 설명을 갖다붙여도 다 이유가 되는 거예요.”
가축화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현생인류와 가축들은 여전히 서로를 변화시켜가며 생존을 이어나가고 있다. 인류가 남아있는 한 끝나지 않을 기나긴 실험이다. 확실한 것은, 인류와 가축은 자연에게 ‘선택 당하기’ 위해 수만 년의 역사 속에서 유전자를 바꾸며 진화해왔고 그 끝에 (아직까지는) 살아남는 데 성공했단 점이다. 앞으로 수만 년 간 인류와 가축은 어떻게 살아남으며 진화할까. 수만 년 후 고양이는 여전히 인류를 캔따개 정도로 부릴지 상상해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동물의 가축화는 현재진행형?
“만약 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더 행복해지겠지.”
감동적인 대사를 날리며 어린왕자에게 길들임을 가르쳐주던 여우를 기억하는가. 어린왕자와 여우의 관계처럼 실제로 인간이 여우를 길들이는 데 성공한 사례가 있다. 이야기는 추운 시베리아에서 시작한다.
1952년, 소련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와 류드밀라 트루트는 시베리아에서 오늘날 ‘은여우 가축화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연구를 시작했다. 이들의 질문은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였다. 그래서 같은 개과인 은여우(위 사진)를 가축화하는 실험을 고안했다. 당시 은여우의 모피는 사치품으로 애용됐는데, 은여우가 워낙 사나워 모피를 얻기 어려웠다는 점 또한 실험에 동기를 부여했다.
공격성이 덜한 개체를 골라 교배시키길 10여 년, 1963년에는 개처럼 꼬리를 흔드는 수컷 여우가 태어났고, 이후 개처럼 귀가 접힌 여우(아래 사진), 낯선 이를 보면 짖는 여우가 태어났다. 가축화 경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999년 트루트는 뉴욕타임즈에 “40년의 실험을 통해 4만 5000마리의 여우를 키운 끝에 개처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 열정적인, 길들여진 동물 집단이 탄생했다”고 썼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러시아 정부가 연구에 대한 지원을 끊으면서 은여우 가축화 실험은 현재 위기를 겪고 있다. 은여우 가축화 실험과 트루트의 이야기는 2018년 국내에 출간된 트루트의 책 ‘은여우 길들이기’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