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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승리로 이끈 물수제비

수면 위로 폭탄 굴러가게 해

물수제비를 폭탄투하에 이용한 바니스 월리스(1887-1979).


호숫가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아내는 작은 돌을 던져 수면을 몇번이나 튕겨나가는 물수제비를 멋지게 성공시킨 뒤 남편을 바라보며 우쭐해 하고, 남편은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누구라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광고의 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에게 자랑삼아 뜨는 물수제비가 전쟁의 역사를 바꿔놓은 적이 있습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영국군은 독일의 수력발전용 댐을 폭파해 군수산업에 치명타를 가함과 동시에 연합군의 사기를 올린다는 대담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문제는 고공 폭격으로는 댐을 정확하게 맞추기가 어렵고, 저공비행으로 폭탄을 투하하다간 폭격기까지 함께 폭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댐 아래 호수에 어뢰를 떨어뜨릴 방법도 생각했지만 그것도 독일군이 물 속에 설치한 기뢰 때문에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때 당시 영국 제일의 항공기 설계자인 바니스 월리스(Barnes Wallis)가 생각한 것이 바로 물수제비였습니다. 즉 댐 아래 호수에 투하된 폭탄이 물수제비처럼 수면 위를 튕겨가다가 물 속에 가라앉은 뒤, 댐 바로 아래에서 터져 그 충격파로 댐을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월리스는 수많은 실험 끝에 맥주통처럼 생긴 4t 무게의 폭탄을 고안해냈습니다. 그리고 폭격기가 18m의 높이로 저공비행을 하다가 댐 약 8백m 앞에서 투하해야 정확하게 댐 바로 밑에서 폭발하게 된다는 것도 계산해냈습니다. 월리스는 폭탄이 분당 5백회 정도의 역회전을 하게 만들었는데, 이렇게 되면 위쪽에서는 공기의 속도가 빨라지고 압력이 감소하는 반면, 아래쪽에서는 압력이 증가하게 돼 자연 위로 뜨는 힘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1852년 독일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마그누스가 밝혀낸 것으로 ‘마그누스효과’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물수제비를 뜰 때도 돌을 약간 위로 들리게 한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튕겨 회전을 걸어줍니다. 이렇게 하면 돌에도 마그누스효과에 따라 위로 뜨는 힘이 발생합니다. 영국에서는 물수제비를 마치 오리들이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것 같다고 해서 ‘Duck and Drakes’(암오리와 수오리)라 부르는데, 돌이 뜨는 것이나 새의 비행이나 모두 양력을 받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절묘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드디어 1943년 5월 16일 밤, 영국 공군의 랭카스터 폭격기 19대가 북해와 네덜란드를 거쳐 독일 루르 계곡 상공에 당도했습니다. 폭격기 양 날개에서는 수면을 향해 서치라이트를 교차시켰는데, 이 빛이 한점으로 모일 때 폭탄 투하 고도 18m가 되도록 미리 맞췄습니다. 이날의 폭격으로 루르 계곡의 댐 3곳 중 2곳이 파괴됐습니다. 폭탄은 수면을 4번 튕겨나가 댐 바로 아래에서 폭발했는데, 그 결과 댐에 폭 91m, 높이 30m의 구멍이 뚫려 1억t이 넘는 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최근 프랑스 리옹대의 리데릭 보케 교수는 여덟살짜리 아들을 위해 돌이 오랫동안 물 위를 튀어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수학적으로 계산했습니다. ‘아메리칸 저널 오브 피직스’에 게재된 연구논문에 따르면 물수제비 회수는 돌의 속도가 빠를수록 증가하며, 최소 한번 이상 튀게 하려면 시속 1km는 돼야 합니다. 이번 연구는 돌에 회전을 걸어주면 자이로스코프에서처럼 물에 빠지기 전까지 돌을 평평하게 유지시켜준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물수제비는 평평한 쪽이 수면과 부딪히게 하는 것이 좋은데 이는 물의 표면장력을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보케 교수는 또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골프공처럼 돌에 구멍을 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물수제비는 몇번이나 뜰 수 있을까요? 기네스북에 따르면 세계 기록은 1992년 미국 텍사스에 사는 엔지니어 저던 콜맨 맥기라는 사람이 블랑코강에서 기록한 38번입니다. 당시 맥기는 MIT 공대생들의 도움을 받아 고속촬영장치를 이용해 물수제비를 물리학적으로 분석했다고 합니다. 보케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지름 10cm의 돌로 맥기와 같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시속 40km와 초당 14회의 회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맥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1975년 미국 미시간주의 매키낙섬에서 열린 물수제비 대회에서 존 코라가 세운 기록은 놀랍게도 ‘24번 그리고 무한대’였습니다. 당시 매키낙섬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는데, 코라가 던진 돌이 24번 수면 위를 튀고 나서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누가 압니까, 혹 코라가 던진 돌이 아직도 호수 위를 튀어다니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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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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