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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의 공부벌레들

해외파 대학생 4명의 이열치열 여름 인턴 체험기

지난 5월 초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이 문을 열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수석연구원이었던 김성진 박사를 원장으로 영입했을 뿐 아니라 미국 시카고대 전희숙 교수, 하버드대 김영범 교수, 플로리다주립대 오석 교수, 예일대 최철수 교수 등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과학자 22명을 스카우트해 당시 화제가 됐다.

덕이 있으면 저절로 사람이 모인다고 했던가. 우수한 석학이 있는 곳에서 연구하고 싶다며 미국과 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서 예비 과학도 26명이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의 문을 두드렸다. 김성진 원장은 대학생들에게서 “연구원에 오고 싶다”는 e메일을 여러 통 받은 뒤 ‘여름 인턴쉽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내년에 오겠다며 ‘예약’한 대학생도 벌써 6명이나 된다. 그들이 황금 같은 여름 방학을 반납하고 한국에 온 까닭은 뭘까. 지난 7월 10일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에서 3개월 동안 ‘여름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여한 대학생 4명을 만났다.
 

새벽 1시까지 실험에 푹 빠져 사는‘성실파’김민수 씨(오른쪽). 처음엔 실험이 손에 익지 않아 쥐의 장세포를 배양하는 샬레를 오염시키기도 했지만 지금은 ‘PCR(중합효소연쇄반응)의 달인’이라 불릴 만큼 실험기기를 다루는 데 능숙해졌다.


뇌과학의 ‘달인’ 꿈꾼다_김민수

캐나다 맥길대 3학년, 신경과학 전공

“어릴 때부터 한의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의학과 뇌과학이 관련이 많은 것 같더군요.”

김민수 씨는 초등학교 때 ‘소설 동의보감’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뒤 한의학에 관심을 가졌다. 정신과 육체를 하나의 커다란 틀에서 설명하는 한의학이 매력적이었다. ‘소설 동의보감’도 책장이 닳을 때까지 몇 번씩 읽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캐나다로 이민가면서 한의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길에서 멀어졌다. 다행히 캐나다 맥길대에 진학해 해부학을 들으면서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한의학에서 느꼈던 매력을 뇌에서 찾은 것. 그는 “정신과 육체의 중간 지점에 있는 뇌가 한없이 신비하다”며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인 뇌를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맥길대에 신경과학부가 새로 개설되면서 아예 전공도 바꿨다. 그 탓에 남들보다 대학을 1년 더 다녀야 하지만 앞으로 배울 내용에 대한 기대가 훨씬 크다. 전공을 선택할 때 망설임도 없었다. 몇 년 전 김성진 원장이 NIH에 있을 때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한국까지 16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이렇게 오래 앉아 있어도 전혀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을 공부하라”는 김 원장의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그가 김 원장에게 인턴 연구원으로 오고 싶다는 e메일을 보낸 계기도 이 말 때문이었다.

현재 그가 연구 중인 내용은 ‘Smad6’과 ‘Smad7’이라는 단백질과 관련 있다. ‘Smad7’은 지난해 3월 김성진 원장이 ‘네이처 이뮤놀로지’에 류머티즘, 아토피, 알레르기, 천식 같은 면역성 질환의 염증신호를 차단하는 중요한 열쇠라는 사실을 밝힌 물질이다. 하지만 아직 이들 단백질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물질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김 씨는 한약재에 든 플라보노이드(베르베린, 바이칼린, 위고닌, 에모딘 등)가 ‘Smad6’과 ‘Smad7’의 발현을 조절하는 데 관여하는지 연구 중이다.


김영채 씨(맨 왼쪽)는 인턴 연구원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불린다. 실험을 하다 지친 동료들을 격려하다 보면 자신도 힘이 난다고.


암 정복해 어머니 암 치료하겠다_김영채

캐나다 맥길대 3학년, 생화학 전공

원래 김영채 씨의 꿈은 국제변호사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암에 걸리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과로 바꾸고 의사가 돼 어머니의 암을 꼭 치료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에 인턴연구원을 신청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에도 여름방학 때 귀국해 순천향대 의대에서 운영한 여름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곳에서는 임상에 관한 귀중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실험 과목을 들으며 연구원이란 직업에 매력을 느낀 그는 암을 다루는 기초 연구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임상에서 이미 암에 걸린 사람을 치료한다면 기초연구에서는 암을 예방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셈이니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할 때 해부학이나 미생물학을 선택하지 않고 생화학을 선택한 이유도 생화학이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서였다.

두 달 남짓 연구원에서 생활한 지금, 그는 “환자도 치료하고 연구도 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예상보다 암을 정복하는 길이 훨씬 멀고 험난해보여서다. 그도 그 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임상뿐 아니라 기초 연구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조기유학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쓴소리도 덧붙였다. 중학교를 마치고 유학길에 오른 그는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외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고등학교까지는 한국의 교육 과정이 외국보다 빨라 잘 따라가지만 대학에 진학한 뒤부터는 갑자기 실력 차를 느낀다”고 말했다.


연구원들 중 학부 1학년으로 가장 어린 임수아 씨(오른쪽). 양경민 박사는 그런 임 씨에게 실험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준다.


과학이냐 정치학이냐 그것이 문제_임수아

미국 웰즐리칼리지 1학년, 신경과학과 정치학에 관심 있음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2살 때부터 독일과 미국에서 지낸 임수아 씨는 한국말이 서툴다. 부모님이 한국말을 가르친 덕에 대화에는 문제가 없지만 전공 용어는 아직 영어가 편하다.

인턴연구원으로 참여한 학생들 중 유일하게 학부 1학년이자 가장 어린 임 씨는 대학에서 아직 전공을 선택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정작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들었을 때 ‘이거다’라는 생각이 든 학문은 정치학이라고. 사실 웰즐리칼리지는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힐러리 클린턴의 모교이기도 하다.

임 씨가 인턴연구원으로 지원한 이유는 자신의 적성을 찾기 위해서다. 앞으로 과학을 공부할지 정치학을 공부할지 결정하는 데 이번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직까지는 실험을 하고 결과를 얻으면 그 자체로 뿌듯하고 보람 있단다.

현재 그가 진행하는 연구는 ‘FAT’이라는 암 억제 인자의 역할이다. 최근 FAT이 TGF-β라는 암 억제 인자의 수용체와 결합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그 역할은 밝혀지지 않았다. FAT은 단백질 분자량이 워낙 커서 연구가 어렵다. 그는 실험 결과가 잘 나오지 않더라도 끝까지 해보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김성진 원장도 수시로 그를 격려한다. 요즘 의학계에서는 ‘모든 길은 TGF-β로 통한다’고 할 정도로 TGF-β에 관심이 높다. TGF-β 수용체의 양이 줄어들면 암과 각종 염증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노트의 신’이라는 별명이 부담스럽다는 이지희 씨(왼쪽). 그에게 늘 기록하는 습관을 갖도록 강조한 사람은 그의‘멘토’현자실 박사다.


연구원이 체질이네_ 이지희

캐나다 토론토대 2학년, 인체생물학과 심리학 전공

“남자친구가 그 정도면 벌써 약 나왔겠다며 투덜대요.”
이지희 씨가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연애도 잊고 실험실에서 연구에 푹 빠진 이 씨가 남자친구의 애정 섞인 투정에 조금은 미안한가 보다. “인턴연구원들은 다들 ‘구소’와 ‘미나’ 만나러 가자는 우스갯소리를 한다”며 주변에 동의를 구했다. ‘구소’는 연구소를, ‘미나’는 세미나를 말한다. “출근은 8시지만 퇴근은 대중없다”고 하니 ‘구소’와 ‘미나’를 ‘남친’과 ‘여친’으로 삼을 법하다.

이 씨는 고등학교 때 생물을 배우면서 인간의 몸이 얼마나 신기한 대상인지 깨달았다. 조그만 세포 하나가 문제를 일으켰을 뿐인데 몸의 모든 신체대사가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평소 우리 몸이 균형을 유지한다는 사실 자체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대학에 진학할 때만 해도 그저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수업을 들을수록 자신이 생물학과 심리학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연구라는 것이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분야를 알아가는 일이라 더욱 끌렸다.

이 씨는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앞으로 생명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원이 되기로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다. 남 앞에 나서는 것보다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는 편이라 성격에도 잘 맞을 것 같다고. ‘노트의 신’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연구 내용을 잘 정리하는 일도 장점 중 하나다. 그는 현재 비전이성 유방암세포에서 많이 나타나는 단백질 ‘Rabex5’의 기능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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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 사진

    윤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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