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상으로는 있으나 실제로는 없는 태양 중성미자. 과학자들을 난처하게 해 온 이 중성미자는 손실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질로 변한다는 이론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소련 코카서스지역의 광산 내부 깊숙한 곳에서 작동되고 있는 소련-미국 공동연구팀의 고감도 태양 중성미자(中性微子) 탐지기는 설치 이후 아직껏 그것이 찾고자했던 희미한 태양입자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 결과에 실망하기보다는 오히려 들떠있다.
일군의 정열적인 과학자들은 이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오랫동안 천체물리학자들의 '성배(聖杯)'가 되어온 통일장이론-자연의 여러 기본적인 힘들은 실제로 한 현상이 다르게 나타난 것일 뿐이라는-의 첫번째 관측증거가 될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결과가 과학자들에게 제시하는 또 다른 의미는 입자들이 지금까지 생각해왔듯 질량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이 이렇다면 우주학자들이 우주의 구조와 진화를 이해하는데 열쇠가 될 것이라 생각해온 전체 우주질량의 90%에 이르는 암물질(暗物質, dark matter)에 대해 많은 부분을 새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즉 앞으로 계속될 관측에서 중성미자가 발견된다면 그것이 입자물리학이나 천체물리학 우주론에서 갖는 의미는 막대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발견되지 않는다해도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의 중성미자가 이론과는 달리 크게 부족하다는 이전의 실험결과를 보다 확고히 지지해 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장비나 분석방법 검토해야
태양내부의 핵융합에 관한 현재까지의 이론에 따르면 융합결과 일정한 양의 중성미자가 형성되며 그 중 상당량이 지구를 관통한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중성미자 관측실험에서는 예측한만큼의 양이 관측되지 않아 천체물리학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이번의 미국과 소련의 관측결과가 옳든 그르든 과학자들은 이제 '예측은 됐으나 실제 관측되지는 않은' 태양 중성미자들이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해내야 한다.
이 새로운 이론은 중성미자가 감지될 수 없는 어떤 형태로 전환된다는 가능성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번 실험결과에 대해 모든 과학자들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보다 앞서 중성미자 관측실험을 했던 브룩스해븐 국립연구소의 물리학자들은 중성미자가 전혀 관측되지 않은 것이 장비나 분석방법의 어떤 특성때문이 아닌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 결과가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을 때 그에 대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결론을 내리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브룩스해븐의 니콜라스 박사의 말이다.
태양핵융합에 관한 표준모델에 따르면 태양의 내부에서는 매초 6백만t의 수소(H₂)가 헬륨(He)으로 전환되고 부산물로 어마어마한 양의 중성미자를 발생시킨다. 이 중성미자는 전하(電荷)를 띠지 않고 질량도 없으며 광속(光速)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추론돼 왔다. 이런 성질때문에 중성미자들은 다른 물질과 반응하는 힘이 너무 약해서 별다른 제약없이 태양의 핵으로부터 표면을 통과, 우주공간으로 방출된다. 과학자들은 이 입자들을 연구함으로써 태양내부의 작용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20년전 브룩스해븐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사우스 다고타주(州)의 금광(金鑛)바닥에 태양 중성미자 탐지기를 설치했다. 태양 중성미자외의 다른 입자들은 땅속 깊속한 곳까지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금광 바닥같은 지하에서는 검출이 보다 용이하다. 탐지기는 염소(CI)를 포함한 청정액(cleaning fluid) 탱크에 설치됐다. 염소를 통과하는 중성미자는 방사선 아르곤(Ar)의 궤적을 남김으로써 자신을 노출시킨다. 그러나 브룩스해븐 연구팀은 이론상 관측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양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중성미자만을 검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부족현상이 정확한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80년대에는 일본에서 카미오칸데Ⅱ(Kamiokande Ⅱ)라는 중성미자 관찰실험이 실시됐다. 이 실험에서는 물을 이용하는 새로운 기술이 사용됐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편 앞서의 두 실험이 고(高) 에너지 상태의 태양 전자 중성미자(electron neutrino)만을 감지할 수 있었던 데 반해 최근에 실시된 소련-미국 공동실험에서는 처음으로 고에너지 중성미자 뿐만 아니라 저에너지 중성미자까지 관찰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탐지기의 매질(媒質)로 사용된 것은 수은(Hg)과 같은 유동성금속 갈륨(Ga) 71 30t으로 흑해 근처 바크산(Baksan)시의 광산에 설치됐다. 전자 중성미자가 갈륨과 반응, 게르마늄(Ge) 71의 핵을 만들어내면 이것을 검출해 중성미자의 수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험결과 아무 것도 관측할 수 없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탐지기에 극소수의 게르마늄 71이 기록된다 할지라도 지구에 도달하는 고(高)에너지나 저(低)에너지 중성미자의 실측치가 천체물리학자들이 계산한 이론치에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을 연구팀은 강조하고 있다.
질량을 가진 전자중성미자
한편 중성미자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바컬박사와 노벨상 수상자인 코넬대학의 한스 베스박사는 이 실험데이터를 가지고 나름대로 계산해 본 후 그 결과가 5년전 소련과학자들이 제시한 중성미자 부족의 가설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만일 전자 중성미자가 질량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미세한 질량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중성미자는 일반물질과 반응, 진동하게 될 것이다. 많은 경우 좀 더 무거운 타우(tau)나 뮤온(muon) 중성미자로 바뀌며 바뀐 중성미자들은 탐지기에 측정되지 않는다는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베스박사는 "이번에 수행된 실험결과에 따르면 태양의 전자 중성미자가 관측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기존의 소련이론과 완전히 일치한다. 따라서 중성미자는 질량을 갖는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베스박사는 아직 자신의 설명을 통일장이론에 확대할 준비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장이론은 지금까지 알려진 물질계의 네가지 기본적인 힘을 하나로 묶는 골격을 찾는 것이다. 이 네가지 힘은 중력, 전자기력, 기본입자들을 원자속에 묶는 강한 핵력, 물질의 방사선붕괴를 야기하는 약한 핵력 등이다.
또 이 새로운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과학자들은 암물질이 전자중성미자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현재까지의 관측결과를 종합해 볼 때 중성미자 결손의 문제는 태양입자가 우주공간을 가로지르는 동안 어떻게, 탐지되지 않는 다른 형태의 물질로 전환되는가에 그 핵심이 있는 것 같다.